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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평점 :
"행복과 지혜는 지나온 삶의 '모든 부분을 측량하고' 그것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능력에 달려 있다."_171p
바쁜 일상 속에서 어느 순간, 번득이는 과거 소환 & 회상의 지점이 불현듯 찾아오곤 한다.
이를테면..
늦여름 산야를 헤매다 샹긋한 아카시 꽃 내음을 맡았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속속들이 누비던 어린 시절 동네 뒷산, 동근 손 벌린 아카시 잎들의 진초록이 떠오른다.
아파트 단지 앞 폐기물 구역에 놓인 낡은 화장대 거울과 마주하면,
어릴 적 누렇게 바랜 화장대 앞에 웅크리고 앉아 서글피 눈물짓던 어머니의 동그란 얼굴이 눈앞을 가린다.
어느덧 나이 오십이 가까우니 후회와 자책, 한으로 얼룩진 과거의 변곡점들이 수북이 쌓여
이들을 모조리 되짚어 본다면 장편 대하소설 분량을 채울지도 모르리라.
분명 희열이 넘치고 아름다운 기억도 부지기수일 터인데.. 밝음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낯을 내밀어 자주 소환되니 이 또한 나이 듦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도서출판 푸른숲 신간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샤를 페팽'의 저작이다.
저자는 말한다. 개인의 과거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생동하기 때문에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인간의 기억은 매 순간 망각의 수렁으로 퇴적물을 밀어 넣지만, 그 일부는 질기게 살아남아 우리를 휘감고 얽매이게 한다. 우리는 끔찍한 사고와 비극, 그로 인한 본인, 가족이나 지인의 패가망신 또는 죽음을 뇌리에 깊이 새기고, 이를 반추하고 부풀리며 암울한 기억에 매몰되는 경우가 잦다.
샤를 페팽은 과거의 성공, 비극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지 못하고 내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베르그송, 데카르트, 니체, 프로이트 등 선대 철학자들에게 과거를 바라보는 적절한 시선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이를 재해석하여 우리에게 들려준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도입부의 유명한 장면..
홍차에 담근 마들렌을 매개체로 과거의 빛나는 순간으로 초대하는, 자신의 삶을 정밀히 기록한 문학적 성취와 상상력 충만한 레미니상스에 대해 그 의미를 조명한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데이비드 린치 그리고 레전드 축구 선수 즐라탄까지 거론하며 각자의 과거와 손을 맞잡아 독특한 영화 세계를 창조하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우리는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를 통해 자신의 발목을 잡아채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과거의 트라우마, 회한 가득한 기억들을 풀어헤쳐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익힐 수 있다. 과거에 매몰되거나, 애써 모른 척하고 고개를 돌리기보다는, 프루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한 걸음 다가가 마주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게 어떨까? 팩트에 더하여 상상을 버무린 기록을 통해 재구성한다면 지나간 삶을 다시 살아가는 쾌감에 젖을지도 모르리라.
일말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희로애락이 넘실대는, 당신의 지난날을 조각한 작품이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놓인 서가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는 것.
어찌했든 우리는 과거를 생의 동반자로 끌어안아, 빛나는 현재를 누리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샤를 페팽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는 각자의 과거와 함께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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