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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학의 풍경들
진동선 글.사진 / 문예중앙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취미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지 이제 1년이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것조차 쑥스럽고 남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것도 어색하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것보다 먼저 카메라의 배터리 점검을 먼저 할 만큼 푹 빠져있다. 내가 그렇게 카메라에 빠져들게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카메라를 통해 표현하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게된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사진을 잘 찍게 되었다거나 카메라 기법에 능통하게 되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눈으로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보는 좋은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진의 감각에 대해서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좋은 사진인지에 대해서 나 자신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요. 바라보고 있습죠." 

한 장의 사진에서 카메라는 무엇을 보며, 사진은 무엇을 보여주며, 사진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진가가 들어있지 않은 사진에서 사진가는 어떻게 감지되고 또 보여지는가? 그것은 경험대상에 대한 분명한 자기인식, 자기제시라는 저자의 말은 나의 마음을 쿵하고 때리고야 말았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본인에게 뭘하냐고 묻는 물음에 존 버거가 항상 말했다는 말. 바라보고 있다. 그래, 제대로 볼 줄 알아야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보고자하는 마음이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애인이 거리에서 미소를 흘린다면 나를 위한 미소인가! 모든 남자들을 위한 미소인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 질 들뢰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진가는 그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존재의 참모습 혹은 존재의 진실에 다가서는 사람이 사진가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진가는 깨어있어야 하고 의식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사용해도, 아무리 멋진 장소를 찍어도 사진의 수준은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가 더럽혀진, 왜곡된 행위"   

인화 시 크롭핑, 혹은 인화 후 트리밍 작업에 대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이다. 물론  이 말이 명제는 아니다. 다만 사진을 찍을 당시의 중요성에 대한 극단적으로 표현일 뿐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사진을 찍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레임을 정하는 일일 것이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여러 사람이 같이 촬영을 해도 똑같은 프레임이 나오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프레임은 한마디로 눈과 마음의 그릇이기때문에. 그 그릇은 저마다 크기와 깊이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릇에 따라 담기는 것의 내용이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프레임 워크가 다 다를 것이므로. 사진의 형상은 한순간 눈과 마음에 비친 인식의 소요이고 사진의 프레임이 철학의 틀이 되는 순간이라는 저자의 말은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 길인지 공부하고 사유해야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실패를 예정한 시도이다. 나는 카메라를 메고 더 이상 거리를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진실은 언어로 말해진다. 사진은 연속된 언어다. - 듀안 마이클 

 사진은 잘 찍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멋진 사진과 좋은 사진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걸판지게 한 상 잘 먹고 제대로 체한 사람처럼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늘 명치 끝이 답답함을 떨쳐낼 수 없었던 나였다.   '사진을 잘한다'.  어쩌면 앞으로 더 가다보면 또다른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찾아낸 나의 소화제이다. 사진을 잘한다.  하루 세끼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이라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사진을 잘한다'라는 의미이다. 물론 쉽지 않다. 어렵다. 하지만 내가 늘 찾아 헤매던 답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사진을 잘하고 싶다. 

 

                             "올바른 이미지란 없고 사랑하는 이미지만 있다" 

                                                      - 장 뤽 고다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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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제들 마이어에 따르면, 현대 예술이라는  복잡한 숲을 이루는 그 모든 가지는 결국 네 개의 "공동의 뿌리" 에서 자라 나왔다고 한다.  '순수성의 추구, 기술적 구축, 광기의 탐닉, 근원의 탐색' 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를 제들마이어는 현대예술의 '근원 현상' 이라고 부른다. 순수,기술, 광기, 근원. 이것이 20세기의 아방가르드(avant - garde) 운동을 추동해온 네 가지 충동의 이름이다. 

 

 이 책은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대 중 하나였던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실 아방가르드란 이름은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나타내는지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슬쩍 흘려들은 그것이 전부였던 나였지만,  '세잔과 마티스'의 ' '야수주의' 부터, "현존하는 미술의 원형"을 해체하고 산업에 적합한 양식을 창조하기 위한 대안적 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가 나치에 의해 사라진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를 참으로 일목요연하게 풀어나간 진중권 교수의 글은 받아들이기가 참 편안했다. 

지은이의 말에서 진중권 교수는 '작품을 작가의 '의도'로 환원시키는 데는 이른바 '의도주의의 오류(intentionalist fallacy) '의 위험' 이 따른다고 했지만  그가 택한 방식은 유효적절했다는게 나의 평가이다.  물론 미술사에 문외한인 내가 받아들이기에 벅찬 어휘들의 향연임은 틀림없지만 전체적인 문장의 흐름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가늠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예술도 사회 구조의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배경, 경제적 배경의 영향을 피할 수 없기에 화가들도 그 틈바구니에서 자신을 자리매김을 위해 많은 방황과 충돌을 겪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예술도 사람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 중에 하나이다. 좌익과 우익 모두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표현주의가 그러했고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파시즘에게 버림받은 미래주의가 그랬고  세계대전의 충격을 견디기 위한 예술가들의 심리적 방어기제였다고 할 수 있는 다다이즘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상황이 어찌되었건 잠시 순수 예술에서 멀어지거나 또는 급진적인 진보나 보수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화가들의 부단한 자기 성찰과  현실과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노력이 현재의 미술사를 만들어낸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미술사상 어쩌면 가장 치열한 분쟁과 변화를 모색했던 아방가르드 시대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도 아름답고 현실적인 미술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현 사회가 썩어가는 가운데서도 한 가지 희망적인 조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 문화의 이 마지막 국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니즘에서 벗어나려는 가운데 서구의 부르조아 사회는 뭔가 전대미문의 것을 만들어냈다. 바로 아방가르드 문화다.

                                     - 클레멘트 그린버그(미국의 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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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예전 내가 어릴 적, 골목은 하루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새벽 여명이 푸르스름해지면 신문배달 소년과 우유 아줌마의 바쁜 걸음이 하루를 열고 지금처럼 밝진 않지만 어스름한 백열 전구의 가로등이 켜지고 반주 한 잔에 비척거리는 아버지들의 고단한 발걸음으로 하루를 마감했던 곳, 골목.  

  지금은 가물가물한 동무의 얼굴이지만 까르르~ 울려퍼지던 웃음소리만은 너무도 선명한  행복이 숨어있는 그 골목을 이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한 사진작가의 평생이 녹아있는 골목안 풍경. 그 진솔한 삶의 향기를 맡아보고싶다. 

 

 

 

 

 

 

  늘 똑같은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살게 되는 하루 하루. 가만히 보면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한 고민도 기쁨도 매 한가지 형식인 경우가 많다. 

  내가 이책을 읽고 싶은 이유는 낙서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선 하나를 그냥 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기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심금을 울리는 광고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35인의 머리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이 책속에 있다.  누구나 공감하고 감명을 받게 만드는 광고를 창조해낸 그들의 통찰력을 배울 수 있는 방법. 

  만약 지금 누군가가 백지 한 장을 주면서 내 마음을 표현해 보라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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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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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때는 자로 잰듯한 콘크리트 건물의 평수에 집착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보다 크고 넓은 크기의 공간에 그럴듯한  가구들을 빼곡하게 채워놓은 것을 상상하며 그것이 성공의 잣대라고 믿었던 시간들. 그 시기에 나는 더하는 것에만 열중했을 뿐 빼는 것은 생각치도 못했었다. 하지만 더하기만 하다가는 결국 차고 넘쳐 하중을 못이겨 무너져 내리거나 공간의 주인이어야 할 나 자신이 내동댕이 쳐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버린 아픈 경험이 있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이라는 책을 받았을때 문득 그때의 쓰린 상처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건축, 혹은 건축가라는 단어가 내게는 썩 반기고 싶지않은 분야였기에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의 감정이 잘못된 선입견이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책은 건축가가 쓰고 건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철학이나 여행기에 가까웠기때문이다. 

  건축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안도 다다오가 건축가로서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입지전적인 인물로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여행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1965년 4월 아르바이트로 모은 적은 돈을 가지고 처음 유럽 여행을 시작한 그는 5개월이 지난 9월에서야 겨우 파리에 도착한다. 돈이 없었기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그는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돌아돌아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은 막무가내 방식으로 어떤 건축이 어느 도시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무작정 그 도시를 찾아가는 식이었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을 수도 없고 편안한 잠자리나 따뜻한 식사를 기대할 수도 없는 빈곤한 걸음. 하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금의 그를 만드는 양식이 되었다. 

  이 책에서 안도 다다오는 세계 유명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그것을 건축한 건축가들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여행을 가서 관광을 하게 되면 겉으로 보이는 건축물들의 겉모습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고오게 마련인데 거기에 철학이 더해지니 감상의 즐거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흔히들 여행이라 하면 돈 많고 시간이 남아 도는 팔자 편한 사람들의 유흥으로 치부하기 쉽고 사실 그런 개념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이란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기존의 나를 재조정하는 빼기의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나를 더하는 시간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성공한 여행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꼭 비싼 여행 패키지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멋진 건축물을 보고 오거나 멋진 사진을 찍어서가 아닌 그 경험을 안고 일상으로 복귀한 내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참다운 여행의 의미이며 선물일 것이다. 우물 속 개구리가 보는 하늘은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에 우물 밖으로 나와봐야지만 진정한 하늘의 크기를 알 수 있는 것처럼.  

 

  '... 결국 교토역 공모전은 낙선으로 끝났다. 내 설계안은 지정된 부지를 크게 초과했고, 요구된 기능, 또한 예산마저 초과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 요령을 부려, 이를테면 정해진 틀 안에서 고답적으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은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낙선은 했지만 공모전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쥐어짠 사고의 궤적은 굳건히 내 안에 깊이 뿌리 내렸고 다음에 만들 건축 아이디어의 싹을 틔우는 중이다...' 

 

 그의 건축에 대한, 나아가서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구절. 이런 철학을 가진 그가 만든 건축물들이 빛이 나고 사랑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것은 살아 숨쉬는 생각을 가진 멋진 사람을 또 한 명 알게 된 기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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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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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고전 음악하면 떠오르는 이름 중에 차이콥스키는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왔고 영향력 또한 크다. 그래서인지 고전 음악에 그다지 조예가 없는 나도 차이콥스키 음악은 꽤 들어왔다. 들으면서 늘 느꼈던 것은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고 그리고 왠지 어둡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그 느낌이 단순히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색깔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단 그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이 그런 느낌을 가지게 했던 것 같다. 왠지 러시아하면 어둡고 춥고 삭막하고 광활한 벌판이 떠오르는데, 그런 이미지가 음악에 색깔을 입혔던 것 같다. 또 한가지는 러시아 문학. 러시아 문학이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이고 심오한 깊이가 있다보니 그 또한 영향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가 아는 차이콥스키와 그의 음악은 선입견으로 점철되어진 왜곡된 모습이었던 결론이다. 

  일단 차이콥스키는 어둡기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물론 그를 평생 괴롭혔던 신경쇠약 증세나 우울증이 있기는 했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겼고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할만큼의 끼도 충분히 가진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지나치게 예민해서 일상적으로 넘길 수 있는 일들도 그에게는 상처가 되고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했다지만 어쩌면 그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수성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고 미미한 것들 조차 감지할 수 있는 능력. 그것들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탓에 그런저런 나약하고 히스테리한 모습들이 표출되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가 부모 형제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했던 모습은 그가 따뜻하고 사랑스런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작은 충격을 주었던 내용은 차이콥스키의 동성애 기질이었다. 사실 고대로 부터 예술가들 중에는 동성애에 빠졌던 인물들이 적지않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나의 선입견으로 보자면 차이콥스키는 왠지 군인이나 성직자 같은 강인하고 엄격한 기질이 더 가깝게 느껴졌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그의 취향은 조금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에 와서 왈가왈부할 소재는 될 수 없을 것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니만큼  그저 차이콥스키에 대해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된 것으로 마무리하는게 옳을 듯 싶다. 

  그가 동성애적인 기질이 있었다지만 치를 떨며 불행하게 끝난 안토니아와의 결혼생활도 해봤고 예술사상 가장 '기이한 사랑'이라고 일컬어지는 폰 메크 부인과의, 오로지 편지로만 이루어졌던 사랑도 했던 차이콥스키.  그는 보통 사람으로 살길 원했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뇌도 많았지만 그의 타고난 예술가적 기질을 뿌리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차이콥스키의 삶을 안다는건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좀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의 음악도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극한의 고통이나 삶에 찌들어 있을 때도  그는 극과 극인 작품을 쓰는 재주가 있었다. 극적으로 과장된 '프란체스카 다리미니'를 쓰면서도 가벼운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썼듯이 말이다. 흔히들 작품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자였음을 나타내는 일면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내 자동차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선율이 흐른다. 책에 부록으로 들어있던 CD 2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알려진바로는  차이콥스키가  동성애에 대한 고민 끝에 자살을 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지만 이 책에 의하면 콜레라에 의한 자연사에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한다. 그가 어떤 형식으로 죽음을 맞이했건 우리에게 남겨준 음악들만으로도 그는 위대하다.  

 그는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성격도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돈에 대한 가치관도 약해서 때로는 무분별하게 낭비를 일삼기도 했다. 싫고 좋음이 지나치게 분명해서  변덕쟁이의 인상도 강하게 남겼다. 하지만 그뿐이다. 차이콥스키는 지금 없고 그가 남긴 음악만이 우리 곁에 있을 뿐이다. 그의 음악에 대해서도 혹자는 혹평을 서슴치 않았지만 그것은 그 평론가의 느낌일 뿐이다. 내가 들었을때 혹평에 긍정적인 표를 던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우리 손에 있고 옳고 그름을 떠나 다만, 즐길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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