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 - 나다운 삶을 위한 가장 지적이고 대담한 여정
마사 벡 지음, 박여진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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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걸었다>는 세계 지성들이 극찬하는 불멸의 고전 '신곡'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나로 온전한 삶을 되찾아가는 방법을 다룬 책이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크게 흔들리는 때가 온다. 그럴 때 우리는 마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린 듯 불안해하며 방황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이자 하버드대학 사회학 박사인 저자 마사 벡은 인생 중반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단테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떠나기를 권한다. 인생의 불안과 혼란은 마음이 원하는 것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곡' 속 단테의 여정을 차용해 진짜 자신의 감정과 열망 그리고 본성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매 순간 나다운 삶, 나를 위한 삶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내가 아는 한 단테의 <신곡>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온전함을 회복해 더 나은 감정을 느끼는 매우 강력한 지침서다. 한 남자의 신비로운 여정을 담은 이 책은 우리도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궁극적으로 모든 과정을 다 거치도록 해주다.

단테는 14세기 유럽의 비유와 상징을 사용했지만 여기에 사용된 심리적 은유들은 현대에도 커다란 울림을 주며 우리가 여전히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은 인생의 어느 순간, 어떤 길의 한 중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삶의 어느 순간에 곧은 길에서 벗어나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이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네." 어떻게 그 숲에 가게 되었는지, 곧은 길에서 벗어났을 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곧은 길을 벗어나 얼마나 멀리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살다 보면 단테처럼 자신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느낌, 인생을 망쳤다는 느낌이 돌연 밀려올 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몇 년 동안 지속해온 직장 생활, 인간관계, 현재 자신의 모습 등 모든 것이 불현듯 낯설게 느껴진다. 저자는 진실의 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접어들어 고통이 극심해지며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어두운 과오의 숲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 삶이 길을 잃었음을, 제 방향을 찾아야 함을 알리는 방식이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찾아온 진실이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기쁨의 산은 우리가 사회와 문화에서 배우는 '더 나아지기 위한' 모든 방법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에게 이 산은 써도 써도 부족하지 않은 큰돈일 것이다. 이 황금만능주의의 토대 위에 아찔하게 아름다운 외모, 번뜩이는 지성, 완벽한 예술성, 동화에나 나올 법한 사랑 등 이 모든 것을 향한 욕망이 겹겹이 쌓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쁨의 산 역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어두운 과오의 숲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더 나아지기 위해' 산을 오르려면 엄청난 강도의 고된 노동이 필욯다. 조금씩 나아지는 듯 보인다 해도 그때마다 불안과 우울, 분노 등 끔찍한 감정들이 엄습해온다. 이 감정들을 우리의 노력을 무너뜨리고, 결심을 약하게 만들고, 어두운 숲 가장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게 한다.

"단테의 <신곡>에는 이 성공을 향한 몸부림과 관련해 매우 적절한 은유가 있다. 어느 날 컴컴한 과오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달은 단테는 음울한 암흑 속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우뚝 서 있는 산을 보게 된다. 자태가 아름답고 웅장한 그 산을 그는 '기쁨의 산'이라고 불렀다. 산은 어두운 숲에서 벗어날 완벽한 길처럼 보였기에 그는 극도로 고단한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숲속에 있었던 무시무시한 짐승들을 기억하는가? 계속해서 위협해오는 짐승들 때문에 우리의 주인공은 겁을 먹고 다시 낮은 땅으로 돌아가야 했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만난 단테는 한시라도 빨리 어두운 과오의 숲을 벗어나 평화로운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승은 그를 지옥의 문으로 데려갔다. 저자는 이처럼 온전함의 길로 계속 나아가려면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멀리했던 비밀스러운 것들 사이를 반드시 관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단계는 자신의 삶 특정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지옥의 문으로 갈 때 겁을 죽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희망과 공포만이 존재하는, 오직 거기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현재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괜찮다는 사싱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한다.

저자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온전함을 잃어버리는 가장 흔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고통이 생겨난다. 저자는 이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자신이 분열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이야기한다. 이 고통의 목적은 내부의 분열에서 제자리를 찾고, 진정성을 회복하고, 내적 균열을 치유하도록 돕는다.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지옥을 통과하는 동안 세 가지 일을 하라고 한다. 악마를 보고, 그들에게 질문을 하고, 계속 나아갈 것. 저자는 우리가 정신적 고통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세 과정이라고 말한다. 자기 고통의 관찰자가 되고, 우리를 불행의 덫에 가둔 믿음들에 계속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진정한 본성으로부터 엇나가기 시작한 지점이 어디인지 알아낼 때까지. 저자는 이 시점에서 지옥의 사슬이 끊어지고, 세 번째 단계인 계속 나아가는 과정을 밟는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행복하게 하거나 슬프게 만드는 것, 우릴 억압하거나 자유롭게 만드는 것은 사고방식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가 아니다. 변수는 그런 생각들을 진실이라고 느끼는가 아닌가다. 진실에서 분열될 때 그곳이 지옥이다. 온전함을 회복한다는 말은 지옥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가 묘사한 지옥의 일곱 번째 고리는 다시 세 고리로 나뉜다고 말한다. 첫 번째 고리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해 상처를 입힌 자들이 있는 곳이고, 두 번째 고리는 자살하거나 집이나 도시, 자기 자신에게 폭력적이었던 자들이 있는 곳이다. 세 번째 고리는 신과 자연의 뜻을 거스르며 순리에 폭력적이었던 자들이 있는 곳이다. 저자는 이들 각각의 고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과오를 범할 때 가장 매몰되기 쉬운 행위를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타인, 자신, 섭리를 공격함으로써 그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폭력을 저지른 자들이 고통받는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벗어나 마침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한다고 말한다. 지옥의 여덟 번째 고리와 아홉 번째 고리에 가까이 간 단테는 모든 죄인 중 최악의 죄인들인 거짓말쟁이를 만난다. 저자는 거짓말을 멈출 수 없다면, 설령 자기 자신에게라도 거짓말을 한다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의도적으로 진실을 떠날 때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혹은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안개 자욱한 세계에 살게 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신뢰할 만하거나 의지할 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이라고 믿는 거짓말 혹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흔한 가정과 전제들도 모두 거짓된 신념에서 나온다. 우리는 내면의 지옥을 통과하며 그런 과오와 거짓 전제들을 찾아내고 거기에 질문을 던졌다. 매 순간 진실을 말하다 보면 마치 고고학자처럼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깊숙이 파헤치고 탐구하게 된다. 무지의 실수와 자신만 옳다고 믿는 실수로 무장한 거짓말의 덫에서 해방될 때 '근본적 거짓말'이 훤히 드러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근본적 거짓말이란 타인을 조종하고 추어올리는 모든 말을 의미한다."

저자는 온전함을 삶의 방식으로 계획한다는 것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나라의 시민이 되기로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정체성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저자는 온전한 삶을 살기로 한 이들이라면 반드시 이 오래된 불행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시간을 거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충분히 그리워하고 난 후에는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의 기쁨이 찾아오고 또 다른 문 앞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단테는 연옥의 가파른 산비탈을 힘겹게 오르며 사색에 잠겼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여행자를 생각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이 초현실적인 여정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삶을 끌어당겼던 중력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일어날 근본적 변화에 점점 가까워졌고 변화가 임박했음을 감지하자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삶에 강렬한 향수를 느꼈다."

진정으로 아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느끼는 것을 느끼고, 진정으로 의도하는 것을 말라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라는 온전함에 대한 한 심리학자의 표현처럼, 온전함을 추구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흐리고 모호한 문화를 꿰뚫고 그 너머에 가려진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진정한 위안을 얻으려면 자신의 참된 본성을 포용하 때만 가능하다.

"모든 말과 행동에 진심을 실으면 인간의 가장 본질적 요소인 사랑이 번져 나온다. 분열된 상태에서는 분노가 치솟지만 완전하게 진실과 일치된 상태에서는 행복과 위안이 샘솟는다. 그러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 위안을 다른 이에게도 나눠 주고 싶다는 바람이 생긴다."

"단테는 연옥의 산으로 올라가면서 점점 몰입했다. 산 아래에서 자신만 옳다고 믿는 과오와 거짓을 정화하는 과정은 고되었지만 몸과 마음은 점점 가볍고 강해졌다. 단테는 무수한 고통에서 해방되었고, 여전히 진정한 본성과 분리된 자신의 모습도 모두 떨쳐내기를 갈망했다. 그런 그의 주위에는 행복한 영혼들이 있었다. 온전함을 추구하다가 이 지점에 오면 당신 역시 단테가 느꼈던 기분을 느낄 것이다."

저자는 삶의 보상을 제로섬 방정식으로 보는 우리의 문화는 누군가 뭔가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잃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단테의 <신곡>의 이야기를 통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기쁨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전한다. 오히려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제한되거나 쪼개지지 않으며 무제한 증식한다.

"그는 베르길리우스에게 어떻게 연옥의 산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단테도 모든 사람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에게 어떻게 사람들끼리 선함을 나누면서 동시에 더 많은 선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연옥에서는 모든 사람이 파이 한 조각씩을 나눠 갖고 나면 처음보다 더 많은 파이가 남는다.

단테의 질문에 베르길리우스는 행복을 계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대답하면서 단테의 마음이 여전히 세상의 것에 고정되어 있다고 했다. 돈과 권력 같은, 기쁨의 산이 추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보상은 나뉘어야 한다. 누군가 더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은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는 이유는 그것이 평화, 목적의식, 소속감, 성취감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얻는다고 해서 기쁨이 쪼개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커진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에서 잘못을 바로잡은 단테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타락과 부패를 모두 태워버릴 정화의 불을 만나게 되었고, 무서웠지만 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길리우스는 그에게 죽은 시인의 망령인 자신을 그만 따를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단테는 온전함에 극도로 가까워져서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 즉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줄 길을 계속 따라가면 천국에 곧장 도달할 수 있었다. 단테의 내면의 스승은 외부의 스승만큼이나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저자는 단테의 <신곡>의 내용과 함께 자신의 실제 삶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온전함으로 가는 길이 반복의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단테는 <신곡>에서 이 길을 한 번만 갔지만 우리가 삶의 각기 다른 분야에서 겪는 고통을 정화하려면 어두운 숲에서 지옥으로, 지옥에서 연옥으로 가는 여정을 수없이 거쳐야 한다.

"나는 애덤이 다운증후군 진단을 받은 후 지성을 둘러싼 믿음들을 버렸다. 유타주로 돌아온 후에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생긴 상처를 치유했다. 그다음엔 나의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했고 직업을 다시 선택했다. 그러고 나서는 내 성 정체성을 발견했고 결혼을 다시 생각했다. 이 모든 문제를 나의 온전한 길과 일치하도록 대처하면서 예쩐에 나를 사회화했던 기존의 사회문화 규범들을 거의 다 깨야 했다. 그 후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졌다."

저자는 <신곡>의 주인공 단테는 그저 유구한 영광을 향해 떠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중 인물이 아닌 실제 저자인 단테는 현싱의 삶에서 깨달음의 경험을 한 후에도 빛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현실에 머물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는 당시의 관습대로 라틴으로 글쓰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모국어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언어를 사용했고,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통합해 구사함으로써 '이탈리아 문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저자는 단테는 현실 세계의 베르길리우스가 되어, 어두운 과오의 숲으로 돌아가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평화로 가는 길을 인도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온전함을 추구하며 행동을 변화시킬 때 우리 인생의 형태, 우리 말과 행동의 형태가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과 작은 집단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온전함에 도달하면 유대감과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돕는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 이는 순수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생겨나는 일체감과 공감의 필연적 결과다. 저자는 온전함의 프랙탈이 점점 더 크게 뻗어나가고 조금씩 형태는 달라도 유사한 아름다움을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에게는 어두운 과오의 숲 증후군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한다. 가장 지배적인 사회들은 거짓되고 분열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온전함을 파괴되어 개인과 집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과 정부, 인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형적 프랙탈은 여전히 더 많은 돈, 더 큰 권력, 더 높은 지위를 찾아 기쁨의 산을 오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진실에서 어긋만 문화적 장소들을 식별하여 거짓 전제들을 없애고, 진실을 향한 다음 단계를 인지한 후, 행동을 변화시켜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온전함이 마음을 깨끗하게 할 때, 우리는 어설프고 복잡한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 모든 것의 진정한 본성에 담긴 무한한 지성에 동참하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마음과 삶의 면을 맑게 닦고, 혼란과 우울에서 벗어나 명료함과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일부는 단테가 지금 이 순간 우리를 향해 직접 쓴 <신곡>의 영원한 평면에 함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상상하는 물질의 조각들과 우리의 관념을 초월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진리 사이에 어떤 구분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 고립되어 있다는 거짓말을 버릴 때 우리는 단테와 모든 사람, 모든 것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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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쓸모 - 개츠비에서 히스클리프까지
이동섭 지음 / 몽스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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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학작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삶을 통찰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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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쓸모 - 개츠비에서 히스클리프까지
이동섭 지음 / 몽스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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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쓸모>는 우리가 알던 세계문학 작품을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해부한 책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끌림과 유혹'에서 사랑이 깊어지며 동반되는 '질투와 집착'의 감정을 지나 연인 사이에서의 동서고금의 숙제인 '오해와 섹스'를 거쳐 사랑의 완성이라 여기지만 실상 사랑의 무덤일지도 모를 '결혼과 불륜'까지 17개의 고전 소설을 통해 그 찬란하고도 어둡던 '사랑의 시절'에 우리를 관통하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예술인문학자인 이동섭은 예민하게 살핀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루는 행복한 이야기와, 장애물에 굴복하고 마는 슬픈 이야기 등 시대화 문화는 달라도 소설의 뼈대와 전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비슷한 이야기를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왔음은, 인간은 사랑으로 웃고 우는 존재임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것의 웃음과 울음을 우리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늘 쩔쩔맸다. 이런 어긋남을 이해하고자 나는, 사랑을 소재로 쓴 위대한 문학 작품들을 탐독했다."



저자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통해 '와 나는 하필이면 너를 사랑할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연애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내가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인은 내 욕망을 발견하게 만드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랑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왜 나는 하필이면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출발한다고 전한다. '첫사랑'의 소년 블라디미르는 사랑과 행복은 독을 품고 있음을 배운 후에 사춘기가 끝난다.

"선망은 내가 갖고 싶으나 갖지 못한 특질을 소유한 상대에게 끌리는 마음이다. 가장 강렬하게 체감하는 선망은 사랑, 그 가운데 첫 사랑일 것이다."

저자는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통해 '옛 애인에게 집착하는 뜻밖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헤어지고 나서도 유난히 잊히지 않는 연인이 있는 것은 사랑을 통해 얻고 싶은 무엇을 경험하게 만들어서 우리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브람스 음악회는 폴과 로제의 관계가 단단해지는 시작점이자, 폴이 자아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였고, 로제를 향한 사랑이 흔들리는 촉발점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저자는 폴이 로제에게만 느낀 편안함은 오랜 기간 그에게 맞추며 적응된 익숙함이라고 이야기한다. 폴은 로제를 버려야 진정한 자아와 정체성을 만들고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관계의 주도권을 쥔 로제는 폴과 더불어 행복하다. 하지만 폴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행복하고 싶어서다. 지금보다 행복하려 연애하고, 연애보다 행복하려 결혼하고, 결혼이 행복하지 않아 이혼한다. 행복하려면 우선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달아야 한다. 자아니 정체성이니 하는 것도 다 행복을 찾으려는 한 과정임을 고려한다면, 로제는 폴의 편안한 불행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을 폴은 외로움으로 착각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통해 '우리가 섹스에 집착하는 의외의 이유'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실의 시대'는 자살한 가즈키의 상실이 아니라, 그 사건으로 자신을 잃은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가즈키는 죽어서 자신을 지켰고, 나오코와 와타나베에게는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함께 그리고 각자 찾으려 애썼고, 마침내 그들 안에 있는 가즈키의 시선을 죽여야 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에 실패한 나오코는 기즈키를 뒤따랐다. 저자는 와타나베에게 레이코는 기즈키와 나오코의 시선을 끊어내는 마침표이고, 레이코에게 와타나베는 정신병원을 나와서 현실로 복귀하는 시작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랑보다 연민, 애정보다 우정이 느껴지는 이들의 섹스는 일종의 부활의식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작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이혼은 행복의 의지다'라는 제목의 글을 써내려갔다. 저자는 주인공 안나는 당대의 도덕 기준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행복을 선택핬다고 말한다. 부도덕의 오욕을 감수하며 그 길을 선택한 안나의 삶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이유다.

"도덕심을 갖되 도덕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도덕적인 삶을 살려면 판단의 기준을 잘 살펴봐야 한다. 과거의 기준만을 고수하면 도덕은 인습으로 우리를 억압한다. 도덕 판단의 기준은 변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러시아와 21세기 한국의 기준은 다르다. 오래된 생각이라고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우리는 도덕의 허울을 쓴 인습에 억놀려 신음하는 안나를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도덕은 배워 행하는 것이고, 행복은 경험하며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행복과 깨달음이 자주 붙어 다니는 이유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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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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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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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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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은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로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을 담았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세계를 확장하기'에서는 창작 초기부터 이어져온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고민을, 2장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에서는 쓰기 위해 지나온 혼란의 독서 여정을, 3장 '책이 있는 일상'에서는 책방과 독자, 과학과 작업실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며 소설가의 일상을 다룬다. 김초엽 작가는 이 책은 특별한 조언이나 창작법이 아니라 새내기 작가로서 겪었던 좌충우돌 생존기이자 혼란의 독서 여정에 가깝다고 말한다. 또한 김초엽 작가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했지만 그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겪어본 이들에게,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살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 투덜거리며, 의심을 가득 품고,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의 순간들이 때로는 나를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김초엽 작가는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곰팡이가 미로를 피해 균사를 뻗치고 개미를 조종할 때, 꼭 거기서 어떤 인간적인 교훈을 추출해내지 않더라고, 그냥 곰팡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들, 때로는 우리가 개별적 개체에 갇혀 전체를 사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곰팡이처럼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다는 사시이 여전히 가슴 벅차게 설레는 이들이라면.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무척 좋아한다. 개별 작품마다 인간에 치우치거나 비인간에 치우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SF에서 비인간 존재들-자연, 우주, 행성, 테크놀로지, 동물, 식물, 외계 생물-은 인간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이 행성의 꽤 많은 사람이 비인간 존재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는 사실을, 또 그들 중 (그리 많지 않지만) 일부가 SF를 읽고 쓴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김초엽 작가는 첫 장편 소설을 구상하던 시기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초엽 작가는 종말의 시대에 번성했던 식물이 등장하는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 '연결망'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물망처럼 엮인 선들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증명하는 이야기, 연구 데이터를 파헤쳐서 잊힌 이야기를 복원하는 장면, 그것이 소설로 이어진 처음의 발상이었다. 김초엽 작가는 <지구 끝의 온실>에 등장하는 모스바나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식물이지만, 가장 있을 법한 형태로 이 식물을 묘사하고 싶어서 무신경하게 지나쳐 갔던 풀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식물원 탐방을 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의 풍경들이 갑작스레 문을 열어 준 것만 같았다고 말한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번성할까?'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논픽션은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혹은 인간의 장소였다고 이제는 버려진 장소들을 탐험한다. 그곳에서 와이즈먼이 마주하는 풍경은 황폐함과는 거리가 멀다. 버려진 장소들은 이제 가장 번성한 생태계다. 물과 바람, 흑, 그리고 식물들이 가장 먼저 인간이 떠난 장소를 점령하고 인간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러면 인간 대신 다른 동물들이 찾아와 자리를 채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덩굴식물들이 가득 뒤덮어버린 멸망한 도시 유적지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인간 없는 세상에 무엇이 가장 먼저 퍼져나갈지 답은 분명했다. 불모지, 폐허, 무인도를 뒤덮어버린 식물들. 식물은 황무지를 개척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존재다. 지구의 거의 모든 생물이 식물들에게 빚지고 있다. 말없이 뿌리를 뻗고 세상을 지탱한다."

김초엽 작가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게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넓게 또는 깊이 알아가는 일, 세계를 확장하는 일, 그 모든 것이 김초엽 작가 자신에게는 쓰기의 여정에 포함된다고 이야기한다. 김초엽 작가는 소설은 자신에게 아는 걸 쓰는게 아니라 쓰면서 알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로 덮인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누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소설의 공통점은 초점이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었다고 말한다. 김초엽 작가는 세계의 중심에서 과학자나 군인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발견을 하고 그것으로 인류와 외계 생명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보다는,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 모순적 상황과 세계와의 갈등에 처하는, 그러나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이야기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읽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초엽 작가는 낯선 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SF로부터 배웠다고 전한다.

"SF 소설을 독파하다보니 내가 왜 이 장르에 빠져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나는 SF의 밑바탕에 있는 태도가 좋았다. SF의 화자, SF의 인물은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한다. 뱀파이어도 유령도 외계인도 갑자기 하늘은 뒤덮기 시작한 검은 구체도 SF에서는 그냥 지나칠 대상이 아니다. 세계의 이상한 구석과 결함, 미지의 무언가, 괴기한 현상을 마주쳤을 때 덮어놓거나 도망치거나 "그냥 그런 거야" 말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알고자 하는 태도가 SF의 근저에 있다."

김초엽 작가는 완벽한 작업실을 꾸려놓고 밖에 나가서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김초엽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은 계속해서 변하지만 그 모든 순간 마주한 빈 화면이 자신에게 주는 두려움과 기쁨은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는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창밖 풍경이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선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만큼 이 일을 오랫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 낯선 공간에서의 고립이 주는 우연한 불씨들을 모으고 싶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글을 쓸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인간이 작고 큰 존재들에게 생의 시간을 빚지며 살아가는 우주먼지라는 사실을 자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초엽 작가는 한 사람의 호기심과 사랑이 어떻게 결심과 강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나는 과학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알고자 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일보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위치한 곳을, 우리가 어디에서 탄생해 어디로 흘러가 소멸하는지를 말해주는 데에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너무 순진하고 낙관적인 믿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이곳에 존재하게 된 이상 누군간느 끊임없이 묻고 또 알고자 할 것이다. 자연의 일부이자 물리법칙에 지배받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마지막에는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우주로 산산히 흩어질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를 둘러싼 광막하고 거대한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고 잠정적인 답을 내어놓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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