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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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우연들>은 김초엽 작가의 첫 에세이로 읽기 여정을 되짚어가며 그 안에서 '쓰고 싶은' 나를 발견하는 탐험의 기록을 담았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 '세계를 확장하기'에서는 창작 초기부터 이어져온 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에 대한 고민을, 2장 '읽기로부터 이어지는 쓰기의 여정'에서는 쓰기 위해 지나온 혼란의 독서 여정을, 3장 '책이 있는 일상'에서는 책방과 독자, 과학과 작업실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며 소설가의 일상을 다룬다. 김초엽 작가는 이 책은 특별한 조언이나 창작법이 아니라 새내기 작가로서 겪었던 좌충우돌 생존기이자 혼란의 독서 여정에 가깝다고 말한다. 또한 김초엽 작가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했지만 그 앞에서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두려움을 겪어본 이들에게,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살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책들이 우리의 세계를 이전보다 더 흥미롭고 복잡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결코 읽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눈길도 주지 않았던 책을 우연히 펼쳐드는 순간이 있다. 투덜거리며, 의심을 가득 품고,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그런 우연의 순간들이 때로는 나를 가장 기이하고 반짝이는 세상으로 데려가고는 했다.

그 우연의 순간들을 여기에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김초엽 작가는 어쩌면 유독 인간 바깥의 무언가에게 이끌리는 사람들이 SF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곰팡이가 미로를 피해 균사를 뻗치고 개미를 조종할 때, 꼭 거기서 어떤 인간적인 교훈을 추출해내지 않더라고, 그냥 곰팡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이 재미있는 사람들, 때로는 우리가 개별적 개체에 갇혀 전체를 사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 곰팡이처럼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할 수 있는 세계 바깥에 무수히 많은 세상이 있다는 사시이 여전히 가슴 벅차게 설레는 이들이라면.

"SF는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무척 좋아한다. 개별 작품마다 인간에 치우치거나 비인간에 치우치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SF에서 비인간 존재들-자연, 우주, 행성, 테크놀로지, 동물, 식물, 외계 생물-은 인간만큼이나 중요하다. 나는 이 행성의 꽤 많은 사람이 비인간 존재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만다는 사실을, 또 그들 중 (그리 많지 않지만) 일부가 SF를 읽고 쓴다는 사실을 좋아한다."

김초엽 작가는 첫 장편 소설을 구상하던 시기에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초엽 작가는 종말의 시대에 번성했던 식물이 등장하는 장편 <지구 끝의 온실>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이 '연결망'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물망처럼 엮인 선들이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증명하는 이야기, 연구 데이터를 파헤쳐서 잊힌 이야기를 복원하는 장면, 그것이 소설로 이어진 처음의 발상이었다. 김초엽 작가는 <지구 끝의 온실>에 등장하는 모스바나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식물이지만, 가장 있을 법한 형태로 이 식물을 묘사하고 싶어서 무신경하게 지나쳐 갔던 풀들의 이름을 알게 되고, 식물원 탐방을 하는 과정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의 풍경들이 갑작스레 문을 열어 준 것만 같았다고 말한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인간 없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번성할까?'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이라는 논픽션은 '어느날 갑자기 인간이 사라진다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구에서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혹은 인간의 장소였다고 이제는 버려진 장소들을 탐험한다. 그곳에서 와이즈먼이 마주하는 풍경은 황폐함과는 거리가 멀다. 버려진 장소들은 이제 가장 번성한 생태계다. 물과 바람, 흑, 그리고 식물들이 가장 먼저 인간이 떠난 장소를 점령하고 인간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러면 인간 대신 다른 동물들이 찾아와 자리를 채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덩굴식물들이 가득 뒤덮어버린 멸망한 도시 유적지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인간 없는 세상에 무엇이 가장 먼저 퍼져나갈지 답은 분명했다. 불모지, 폐허, 무인도를 뒤덮어버린 식물들. 식물은 황무지를 개척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존재다. 지구의 거의 모든 생물이 식물들에게 빚지고 있다. 말없이 뿌리를 뻗고 세상을 지탱한다."

김초엽 작가는 글쓰기가 작가 안에 있는 것을 소진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바깥의 재료를 가져와 배합하고 쌓아 올리는 요리나 건축게 가깝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배우고 탐험하는 일, 무언가를 넓게 또는 깊이 알아가는 일, 세계를 확장하는 일, 그 모든 것이 김초엽 작가 자신에게는 쓰기의 여정에 포함된다고 이야기한다. 김초엽 작가는 소설은 자신에게 아는 걸 쓰는게 아니라 쓰면서 알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고 말한다.

"가끔은 소설 쓰기를 낯선 여행지의 가이드가 되는 일에 비유한다. 나에게는 이 세계를 먼저 탐험하고 이곳이 지닌 매력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 출발 지점에서, 낯선 여행지는 아직 내게도 안개로 덮인 듯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안갯속에서 초고를 쓰고, 많은 자료를 읽고 공부하고 가져와 길목 구석구석을 점차 구체화하고, 또다시 쓰고 고치다보면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공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사각사각 밟히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점차 맑아지고 풍경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어누 순간 내가 그 여행지의 풍경 속에 정말로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비로소 나는 이 소설을 쓸 준비가 된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자신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소설의 공통점은 초점이 중심이 아닌 변두리에 있었다고 말한다. 김초엽 작가는 세계의 중심에서 과학자나 군인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발견을 하고 그것으로 인류와 외계 생명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보다는,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 모순적 상황과 세계와의 갈등에 처하는, 그러나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이야기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읽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사랑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김초엽 작가는 낯선 세계에 대한 이해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SF로부터 배웠다고 전한다.

"SF 소설을 독파하다보니 내가 왜 이 장르에 빠져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나는 SF의 밑바탕에 있는 태도가 좋았다. SF의 화자, SF의 인물은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한다. 뱀파이어도 유령도 외계인도 갑자기 하늘은 뒤덮기 시작한 검은 구체도 SF에서는 그냥 지나칠 대상이 아니다. 세계의 이상한 구석과 결함, 미지의 무언가, 괴기한 현상을 마주쳤을 때 덮어놓거나 도망치거나 "그냥 그런 거야" 말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어 알고자 하는 태도가 SF의 근저에 있다."

김초엽 작가는 완벽한 작업실을 꾸려놓고 밖에 나가서 글을 쓰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김초엽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은 계속해서 변하지만 그 모든 순간 마주한 빈 화면이 자신에게 주는 두려움과 기쁨은 변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나에게는 떠날 곳과 돌아올 곳이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창밖 풍경이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선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만큼 이 일을 오랫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 낯선 공간에서의 고립이 주는 우연한 불씨들을 모으고 싶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글을 쓸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인간이 작고 큰 존재들에게 생의 시간을 빚지며 살아가는 우주먼지라는 사실을 자주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초엽 작가는 한 사람의 호기심과 사랑이 어떻게 결심과 강인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나는 과학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도구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의 알고자 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일보다 이 우주에서 우리가 위치한 곳을, 우리가 어디에서 탄생해 어디로 흘러가 소멸하는지를 말해주는 데에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너무 순진하고 낙관적인 믿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이곳에 존재하게 된 이상 누군간느 끊임없이 묻고 또 알고자 할 것이다. 자연의 일부이자 물리법칙에 지배받는,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마지막에는 입자 단위로 분해되어 우주로 산산히 흩어질 우리의 삶에 대해서. 우리를 둘러싼 광막하고 거대한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누군가는, 그 질문에 조심스럽고 잠정적인 답을 내어놓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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