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 전 세계를 울린 영혼의 치유자가 전하는 다섯 가지 삶의 지혜
돈 미겔 루이스.돈 호세 루이스.재닛 밀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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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할 때, 아름다움을 찾는다. 자유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 때, 자유를 쫓는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에 행복을 찾는다. 수십만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며 열광하게 만든 책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의 주제는 바로 '당신의 행복'이다. 저자는 행복을 찾는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만, 삶의 이치를 꿰뚫고 있는 진리가 이 안에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사랑과 자유,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지식의 전부는 우리가 지각한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호나 단어에들에 불과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은 상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신념체계를 구성하여, 지식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세상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상징체계에 불과한 것이 '지식'임에도 우리는 우리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우리가 믿는 것들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자신과 우주 전체를 인식하는 방식을 설명하려 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세상의 온갖 신화와 종교, 철학 그리고 수많은 신념과 사고방식들이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간의 합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사실은 객관적인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과학이라 부르며, 사실에 대한 해석이 주관적인 것일때 우리는 예술이라 부른다고 이야기한다.

"과학과 예술은 각각 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진정한 진리는 생명이 피워내는 창조 행위이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는 절대적인 진리다. 사실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창조물이며 합의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상대적인 진리다. 이러한 점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행복을 찾는 첫 번째 지혜로 '흠결 없는 언어로 말하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흠결 없는 언어가 매우 중요한 이유는 당신의 언어가 바로 메신저인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언어는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부이며, 그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나 주변의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에게 전해진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흠결 없는 언어로 말하라'는 이야기는 언어가 가진 힘을 자신을 대적하는 데 사용하지 말하는 뜻이라고 전한다. 자신의 언어로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타인을 험담하며 감정의 독을 퍼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창조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만일 흠결 없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면, 그 뒤로는 그저 자신을 위해 전개될 이야기를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당신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진실과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모든 생각과 행위와 언어들 속에 당신의 진심을 담아 자신을 설명하고자 할 것이며, 당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술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저자는 행복을 찾는 두 번째 지혜로, '어떤 것도 개인의 잘못으로 받아들이지 마라'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여 소통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아름다운 지침이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개인에게 더 큰 자유를 선사하는 안내자가 된다. 저자는 당신의 모든 행위가 당신이 아닌 사람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리를 자각하는 일은 자아 완성의 첫 단계이며,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를 행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행복을 찾는 세 번째 지혜로 '함부로 추측하지 마라'고 이야기한다. 선과 악의 갈등은 결과일 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갈등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 놓여 있다. 저자는 진실에서는 갈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모든 갈등은 거짓의 결과라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거짓은 우리가 만들어낼 때만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만 유지된다. 거짓은 단어의 왜곡이며 메시지에 담긴 의미의 왜곡이다. 그 왜곡은 인간의 마음이 그러하듯 믿음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거짓은 실재가 아닌 우리가 창조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거짓에 생명을 불어넣고 마음속 가상현실을 실재하는 현실로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간을 포함하여 창조된 모든 것은 완벽하다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것은 완벽하다. 누군가 가질 수 없는 장애나 질병도 마찬가지다. 배우는 것에 서툰 사람도 완벽하다. 손가락이나 팔이 없이 태어난 사람도 완벽하다. 질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완벽하다. 오직 완벽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인식의 진화를 이루는 데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단계다. 완벽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자각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믿어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강조하건대 이를 통한 자각은 매우 중요하다. 진실은 말이나 지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거짓은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져 세상을 수많은 지식으로 뒤덮는다. 우리는 허다한 거짓을 믿는다.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실을 무시하고 진실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에 길들면서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 하지만 그 지식들은 안개에 둘러싸인 벽과 같아서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우리의 신념체계는 우리가 믿는 것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추측하지 않는다면 지식의 목소리를 대하거나 소위 사유를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면역을 갖게 된다. 추측하는 것은 생각의 작용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은 추측으로 이어진다. '만약에?'라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의심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의 삶에 거대한 드라마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많은 생각과 의문들 가운데서 살아가는데 그 생각들은 필연적으로 공포를 부른다. 머릿속에서 왜곡되는 그 모든 생각과 상징들을 우리는 통제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아무것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대상도 추측하지 않게 된다."

저자는 행복을 찾기 위한 네 번째 지혜로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한다. 네 번째 지혜는 앞의 세 가지 지혜가 당신에게 깊이 뿌리내린 습관이 되도록 돕는다. 저자는 반복과 연습을 통해 당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겠지만, 이러한 지혜를 곧바로 통달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롯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자는 행복을 찾기 위한 다섯 번째 지혜로 '의심하라, 그러나 경청하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듣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경청하는 법을 배운다면 당신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호들의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들과 더 잘 소통하게 된다.

저자는 당신이 기호들의 무게를 내려놓는다면, 남는 것은 온전한 진실과 순수함과 단순함이라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 필요하 없다. 당신은 당신이 아닌 모습을 가장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온전히 당신 자신이다. 저자는 당신이 드러내는 모습이 메시지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당신이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때, 당신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 즉 당신 자신이자 당신의 존재 자체를 보여주게 되고, 그들에게 크나큰 의미를 선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당신은 삶을 누리기 위해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삶의 풍진을 견디기 위해, 혹은 사소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존재와 관련이 없으며 당신의 삶에 필요하지도 않다. 저자는 당신은 꿈꾸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상처와 자신의 희생에만 몰두한다면 당신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없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진실의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며, 이 단계에 이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기호들은 우리의 창조물이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안다고 말한다. 우리는 참된 앎을 얻었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삶과 진실로 여기기 때문이다.

"진실은 당신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실을 관조하는 것은 당신의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진실 자체가 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것이 진정한 당신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아닌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진실에 대한 열망과 진실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가르침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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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중력 - 생의 1/4 승강장에 도착한 어린 어른을 위한 심리학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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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터 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치유의 힘을 전하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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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중력 - 생의 1/4 승강장에 도착한 어린 어른을 위한 심리학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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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중력>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른의 무게를 처음 마주한 2030대의 이야기를 한다. 안개처럼 흐릿하지만 무거운 중력, 어린 시절 무한한 가능성은 현실에 맞게 작아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 하지만 동시에 내가 잘하는 게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작은 희망, 그리고 용기 없는 나에게 누군가 나타나 이 세계에서 나의 가능성을 길어 올려주길 바라는 그 마음들. 방황하는 그 마음을 위한 책이다.

청소년기를 통과했지만 아직도 방황과 고민으로 가득한 성인들의 마음을 놀랍도록 잘 담아낸 이 책은 이 시기에 겪게 되는 보편적인 방황과 고민에 대해 따뜻안 분석을 건넨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알아서 잘하라며 사회는 등을 떠밀지만, 20대, 30대를 맞은 당사자들의 마음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한 괴로움과 서툰 방황으로 가득하다. 이는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융 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심리학자인 저자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는 가장 먼저 그들의 '심리학적'인 이름을 되찾는 일부터 시작한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생의 1/4 지점, '쿼터라이프'라는 생애 주기를 지정하고, 이 시기를 변하지 않는 심리적 단계로 구분하여, 그들의 방황과 고민을 위한 정확한 지도를 전달한다. 심리학을 넘어 이 세대의 문제에 접근하는 저자의 통찰력 있는 시각, 흡입력 있는 필치가 책의 깊이를 더한다. 상담심리학자인 저자는 실제 상담에서 접한 수많은 젊은이들의 사례 중에서도 가장 생생하면서도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해 마치 캐릭처럼 보여주며, 그들이 온전히 나를 찾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드러낸다. 너무나 내 마음 같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이들 깊은 내면에 자리한 장애물에 대한 탐색과 해결 과정에 함께 참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는 '안정형'과 '의미형'이 각각 고민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영혼의 지도'를 따라 찾아가는 듯한 이 온전한 스토리텔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온전한 자기 이해와 삶 속으로 함께 걸어 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방황하는 이 시대의 2030에게 이 책은 현대적 융 심리학이 제시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온전하고 안전한 지도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절박한 피곤하고 두려우며 우울하고 불안한, 어쩌면 자신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열여섯 살에서 서른여섯 살의 모든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인생의 1/4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중력처럼 눈앞에 닥친 세계가 무겁게 느껴지고, 그 거대한 무게와 하찮은 나의 고민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끝없는 절망과 떨칠 수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 명확성과 방향성의 기쁨이 가득한 성인기를 구축하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고통받는 지구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과거의 쿼터라이프를 돌아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쿼터라이퍼의 부모, 치료사, 교육자 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없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과 목표를 찾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자는 융의 <영혼 돌보기>라는 책을 읽고 융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자신의 삶 속의 경험과 깊이 공명했다고 말한다. 융이 자기만의 삶을 찾아내고 살아내야 할 필요성에 관해서 쓴 대목을 읽었을 때, 저자는 내 끝없는 질문과 더 나은 삶을 향한 탐색이 옮다고 인정받은 기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융이 완벽과 성취가 아닌 온전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는 그 기분이 더 강렬해졌고, 오랜돗안 느끼지 못한 깊고 지속적인 평온을 느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쿼터라이프를 지칭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연장된 청소년기, 어린 성인기, 이른 성인기, 성장하는 성인기 등의 용어의 공통점은 이 시기를 일종의 중간다리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이 시기의 발달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원인은 어느 시기든 특정 세대를 지칭하는 단어가 유행을 타면 다들 그 단어에만 결착하는 풍조라고 비판한다. 매일 더 많은 Z세대가 쿼터라이프에 진입하고 있으나 대다수는 청소년기와 아동기에 머물러 있다. 세대와 생애 주기는 같은 것이 아니며, 같은 나이대에 속한 사람들이 전부 똑같은 것도 아니다.

"인생의 20년 남짓한 기간이 '진정한' 생애 주기 사이에 낀 전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태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앉아 기다리는 로비 격이라는 듯한 태도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력과 인간관계 면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야 진정한 성인기가 도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기반을 마련하면 고통의 로비에 있던 사람이 마법처럼 '진정한 인생'이라는 웅장한 복도로 입장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릴케가 쓴 문장 "친애하는 카푸스 씨.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당신 앞에서 슬픔이 자라나고 있다면, 그 어느 때보다 큰 슬픔이라면, 빛이나 구름의 그림자처럼 불안이 당신의 손과 모든 몸짓 위로 드리운다면,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 품 안에 당신을 안고 추락하지 않도록 지켜주리라는 것을."이 10대 후반에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위안을 주었다고 말하는 글귀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여정의 목표는 단순히 파트너를 구하거나 경력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개인적이고 진실한 삶 말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발달기의 궁극적인 목표는 온전한 자신을,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삶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정의 목표는 지금과 다른 무언가, 지금 이상의 무언가를 향한 가슴 저릿한 갈망이 멈추는 것이다. 쿼터라이퍼는 삶의 기반, 안전함, 사회적 안정을 원하기도 하고, 모험, 경험, 자기만의 의미를 원하기도 한다. 저자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굳건한 세계를 구축해야 하지만, 삶에 온기와 동기를 부여하는 수수께끼, 친밀감, 심지어 불안 같은 것도 끌어안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심리학을 논할 때, 이런 모순을 '안정과 의미를 향한 혼란스러운 갈망'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안정과 의미, 두 가지 목표는 언제나 쿼터라이프에 속했다고 말한다. 쿼터라이프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만의 독립적이고 고유한 삶을 구축하는 것, 안정적이고 의이 있는 삶이 정확히 어떤 삶인지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밝혀내는 것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를 잘 살아낸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훌륭'하거나 '성공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안정과 의미 둘 다 적절하고 건강한 지향점이라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수록, 성인기를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경향도 줄어들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두 가지 유형의 쿼터라이퍼, 즉 의미형과 안정형을 이해하는 일은 쿼터라이프의 심리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라고 말한다. 자신이 의미와 안전 스펙트럼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 가려내면 더 강력한 동기와 열의를 갖춘 채 쿼터라이프의 온갖 과제를 해결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형은 감정을 조절하고 생활력을 기르며 세상을 살아갈 자신은 없을지라도, 마음속에서 자신이 생물학적 나이보다 성숙하고 지혜롭다고 느낄 수 있다. 굉장한 소질과 재능으로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일상적인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돈이나 직선적인 시간관념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의 사회 참여를 방해한다. 의미형은 돈을 역겹고 위험하고 사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고통의 근원으로 인식한다. 직선적 시간을 '감옥', '사회적 구조물', '사람들을 자본주의에 묶어놓는 족쇄'로 바라본다. 이런 관점 때문에 그들은 자기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욕망, 풍요롭고 안정적이며 탄탄한 기반을 갖춘 삶을 향한 욕망과 무의식적인 갈등 관계를 형성한다."

"반면 문화가 정해놓은 '어른의 삶'을 보다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살아내는 사람들도 줄곧 있었다. 더 성공적이고 건실하며, 더 '체계적'인 쿼터라이프들, 나는 이들을 '안정형'이라고 부른다. 의미형이 한마디로 '예술가', 철학자나 음악가인 것과 달리, 안정형은 한마디로 '변호사', 이를테면 금융에 종사하거나 사업을 운영하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성적, 탄탄한 과외 활동, 장기적인 계획, 가정 꾸리기, 안정적인 직장 생활, 승진, 저축 등 한때 성인기의 근본적인 과제라고 간주했던 목표들을 우선시한다. 강력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믿음에 회의를 품고나 내적인 갈등을 경험할 기회가 아직 많이 않았을 것이다. 갈등이나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분명 그런 감정을 억압하는 데 능숙하다. 안정형은 자신에게 사회 규범에 순응하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천성이 그렇거나, 따돌림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의미형에는 적응하겠다는, 따돌림당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결심이 있다."

"안정형은 인생의 발전에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지력이 높지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거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 앞에서 막막함을 느낄 수 있다. 사회에서 유지하던 외양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사회가 정해준 과제를 하나하나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진다. 바로 이때부터 외부의 기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삶의 더 큰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중년의 위기'의 기원이다. 중년의 위기란 안정형의 위기인 것이다. 이성애 중심적인 엄격한 성역할에 맞춰 살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타고난 편향성과 삶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안정형이 사회의 기대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시점도 앞당겨졌다. 과거의 안정형이 중년에 집인한 후에야 기존의 믿음을 상실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쿼터라이프에 진입하면서 상실을 경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쿼터라이프 발달에 관한 사회적, 심리학적 담론이 대학, 직업, 결혼, 자가, 양육, 경제력 같은 외적인 성취만을 강조하고 자기 자신을 찾는다는 근본적인 과정을 무시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강조한다. 삶은 성취의 행복과 실패의 불행으로 축소될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여정은 더 복잡하고 특별한다. 우리에겐 그 여정을 향한 강력한 본능이 있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내고 싶은 충동, 자기 자신으로서 세상에 나서고 싶은 충동이 있다.

"쿼터라이프는 안정적인 관계와 경제적 조건을 마련하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의미를 향한 개인적인 여정이다. 진정한 성인기는 심리적인 것이다. 안정을 획득하거나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출산이나 주택 담보 대출과도 거리가 멀다. 생활력 기르기를 거부하면서 자기만의 사상과 의미에만 몰두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심리적 의미에서 진정한 성인기란 균형을 추구하는 성숙한 탐색의 과정, 공동체의 일원이자 의식 있는 개인으로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안정과 의미를 모두 추구하는 여정이다. 질서와 혼란, 문명과 자연, 인간성과 신성을 결합하는 시기다. 두 특성이 각각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생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마치 파도를 타기 위한 서프보드, 불을 피우기 위한 난로, 포도주를 담기 위한 술잔과 같다."

저자는 쿼터라이프는 자기 몸을 의식하고 사랑하면서 몸과 관계를 다져나가는 시기라고 말한다. '결점'이 있거나 정확한 기능과 보호에 '실패'한 몸을 용서하는 시기이디고 하다. 저자는 몸의 크기나 형태, 색깔이 이상하다면서, 장애가 있고 완전하지 않다면서 조금씩 유해한 가르침을 주입해온 가부장제와 백인 우월주의적 가치관을 차단해내야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 몸에 결점이 있다는 생각은 셀 수 없이 많은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지극히 소수의 인간이 만들어냈음에도 영구히 지속해온 유독한 가치 체계 때문이다. 저자는 의미형이 안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고 말한다. 소처럼 내키지 않는데고 시간과 시대에 질질 끌려다니는 기분으로 사는 대신, 삶에 참여하겠다는 의식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스스로 몸 안에서 살아있기로 결심해야만 하는 것이다. 온전한 삶을 이뤄내래면 자신의 두 발로 삶에 오롯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내가 제시하는 목표는 자신이 태어난 세상에, 시대에, 삶에 참여하는 것이다. 삶의 힘겨움을 전부 겪어내고 살아내겠다는 결심 없이는 다른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내면의 성장 스위치가 켜지지 않는다.

몸으로서 살겠다는 결심, 실체가 있는 몸 안에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면 의미형은 자신에게 부족했던 의지와 헌신을 발휘하고 진정한 삶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살겠다고 선택함으로써, 지금이라는 역사 속 특정한 순간을, 자신이 부여받은 특정한 몸과 가족 등 다양한 조건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러한 특정한 조건들에, 지금 이 삶을 사는 일에 헌신하는 일은 무척이나 힘들 때가 많다. 의미형은 생각도 거대하고 감정도 거대해서, 무한한 우주의 일부가 되기를 꿈꾸거나 역사 속 다른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 지금 이곳에 속하는 몸속으로서의 삶은 답답하고, 재현적이고, 고통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네 명의 사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계발 작업이 각 유형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파고든다. 네 사람은 분리, 경청, 구축, 통합으로 이루어진 '네 개의 성장 기둥'이라는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과거의 성별 고정관념이 녹아있는 조지프 캠벨의 '영웅의 여정' 이론과 세계 곳곳의 성인식에서 나타나는 발달 단계를 수정하고 현대화해서 네 개의 성장 기둥을 고안했다. 융 심리학에서 '개성화'라고 정의했던 의식 발달과 자기 탐색 작업, 역사적으로는 중년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던 작업을 이해하는 틀이기도 하다. 네 개의 발달 기둥은 계단을 올라가는 것, 할 일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완수하고 잊어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네 기둥은 거미줄의 꼭짓점처럼 방향과 체계의 기준을 제공한다. 저자는 한 사람이 경험과 노력을 통해 자기 삶을 직조하면서, 이 꼭짓점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현대 쿼러라이프의 첫 번째 물리적 분리는 외압에 의한 것이든, 선택에 의한 것이든, 자기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타오르는 충동과 갈망이 있다고 말한다. 분리 본능으로 인해 가족을, 어쩌면 교회, 공동체, 친구들, 당시의 연인을 두고 떠나, 넓은 세상에서 더 높은 차원의 독립과 자기 계발을 추구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물리적 분리를 이뤄낼 수 있도록 사회에서 확실하게 생활과 경제적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쿼터라이프는 분리를 미룰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분리 본능을 무시하면 막대한 좌절감에, 갇혀 버렸다는 기분에 휩싸일 수 있다.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삶을 시작하고 싶은 내적 욕구가 있다. 내면의 목소리는 '논리적인 결정'이 무엇인지, 생활에 어떤 제약이 생길지 신경 쓰지 말고 그저 나아가라고, 탐험하고 호기심을 충족하라고 외친다. 그것은 정확히 명명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욕구이자 갈망이다. 어린 시절의 집과 관계에서 분리되고 싶은 욕구,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도 같은 욕구를 묵살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진정한 분리란 관계 속의 경제적, 정서적, 심리적 의존을 천천히 바꿔나가면서 자기 자신고 바꿔나가는 긴 과정이다. 건강한 분리 작업에는 새로이 관계의 선을 긋고, 의사소통 능력을 개선하고, 부모와 형제자매가 (그리고 수많은 타인이) 자신의 자아 인식에 미치는 오묘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는 활동이 포함된다. 목표는 자신에 대해 알아내는 것, 자신을 사랑하는 것, 자신을 신뢰하는 것, 독립하는 것, 그렇게 타인과의 친밀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루기 힘들 때도 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감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저자는 부모의 기대는 쿼터라이프 시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 중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하며, 이는 부모의 헌신에 직접적인 의문을 제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 공경은 사회적으로, 지적으로 '선'하고 '도덕'적인 일로 수회된다. 많은 문화권와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하지만 저자는 쿼터라이프에게는 뿌리로부터 진화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본능은 작은 속삭임과 회의감을 심어줄 때도 있도 요란한 비명을 외칠 때도 있다. 부모에게 의존하고 영향받는 삶과 분리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삶에 익숙한 상태인 데다가 부모의 믿음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허용하는 사회적 기반이 거의 없다 보니, 부모의 관점이 나 자신의 본능보다 중요해진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충심을 너무 오래 간직하면 심리에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부모님의 복제품이나 후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깊이 탐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프의 두 번째 성장 기둥은 '경청'이라고 말한다. 더는 유익하지 않은 관계와 관점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용기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이에 더해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내면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경청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직감, 느낌, 신체 감각, 우연, 침묵, 꿈을 비롯한 온갖 비언어적 정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는 물질적 성공과 세상에 순응하는 삶에 보상을 제공한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려면 타고난 개성을 발달시켜야 한다. 모순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성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절히 경청할 줄 아는 능력을 통해 연마되는 것이다."

"경청은 그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닌 분별력을 요구한다. 분별력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어떤 것의 특성을 옳게 판단하고 그런 판단력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분별력은 자기 자신을 든든한 거름망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때로는 반문화적 신념과 실천에 전념하는 집단이나 운동도 지배 문화만큼이나 자기 내면을 경청하는 작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경처으로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는 결정 과정을 단순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종종 쿼터라이프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모르기에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얼어버리고 만다. 심리적 성숙의 바탕, 그리고 성숙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사회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능력, 주변 사람의 관점과 거리를 둔 채 스스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다. 이것은 자신을 신뢰하는 능력이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수를 통해 안감힘을 쓰거나 지나치게 고민하는 일 없이 내면의 신호를 알아채는 법을 깨우쳤다면, 최종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지탱해준 회복력을 쿼터라이프에 쇠약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본능적인 방어력이 힘을 잃으면서 과거에 묻어두었던 온갖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역사가 있는 경우, 쿼터라이프 초 반의 몇 년은 거셉 급류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쿼터라이퍼는 '경직 상태'에서 영웅적인 회복력을 유지하지만, 끊임없이 흐르는 삶 속에서 점차 지키고 만다. 회복력이 바닥나고, 그 밑에 있는 겹겹의 절망과 공포가 드러난다. 저자는 대단하든 미미하든 트라우마 역사가 남아 있다면, 자기 내면을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트라우마 치유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묵은 트라우마와 해로운 패턴의 목소리가 본능과 욕구가 내는 믿음직한 목소리와 싸우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트라우마는 지상의 지옥처럼 느껴지고는 하지만, 해소한 트라우마는 신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는 피터 레빈의 문장을 소개한다. 저자는 트라우마 중심의 심리 치료를 초함해 일반적인 심리 치료 역시 상처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서 현실 세계에서 자유와 독립성을, 무엇보다 기쁨을 체험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미형에게 이는 현실 세계가 자신을 품어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믿음을 다지는 과정이다.

저자는 쿼터라이트에서 경청이라는 행위는 삶의 중심을 목표 중심에서 호기심 탐구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만의 특성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쿼터라이퍼는 오직 시도와 실수를 통해서 자기 삶을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주어지 상황에서 신체와 감정이 보이는 반응에 집중하면, 아주 미묘한 반응이라도 정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내담자에게 권장하는 것은 저항, 두려움, 갈망, 즐거움, 피로, 호기심,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경청해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런 반응의 의미를 질문하기 전에 그저 귀 기울려보고 자신의 경험에 관찰자적 태도를 취할 것을 권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장의 세 번재 기둥은 '구축'이라고 소개한다. 삶을 구축하는 행위는 자기 자신이 되는 행위이다. 경정에 열린 마음이 필요했던 것처럼, 구축에는 노력, 일관성, 의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쿼터라이프 시기에는 열심히 일하기를 장려했지만, 이런 관점은 보편적인 발달 목표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회 조직의 일원으로 경제체계에 보탬이 되는 데 집중할 뿐, 자기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삶을 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저자는 한 사람의 삶을 구축한다는 것은 노력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의식적으로 존재를 가꾸어간다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만의 삶이라는 작품을 창조하려면 크고 작은 노력이, 체계와 질서가 필요하고 떄로는 막대한 신념과 신뢰도 필요하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구축하려면 일관성과 집중력이 필요하고, 피로가 쌓이거나 내적 한계에 부딪혀도 밀고 나가야 한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향한 불신과 더 나은 삶을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감을 상쇄하기 위해 장기적인 과제에 매달려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 삶과 미래 구축을 위한 작업은 단조롭고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고 한 사람을 새로이 거듭하게 해줄 수 있다."

"모험과 위험 감수는 쿼터라이프의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삶을 구축하기 위한 내적, 외적 작업은 전형적인 모험 이야기보다는 반복적인 과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축하기 위해 세심하게 공들이고, 피로해도 한 걸음씩 나아감으로써 쿼터라이퍼는 새로운 한계를 설정하고, 새로운 능력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회복력을 얻는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한 사람의 정체성과 성격이 빚어지고 형성되며, 자긍심이 깊이 뿌리내리게 된다."

저자는 분리, 경청, 구축, 이 세 가지 작업이 '통합'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통합의 경험은 놀랍고 실질적인 '성취'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직업적 성공이라든지, 예술 작품을 완성한다든지,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애 관계를 맺게 되는 식이다. 많은 사람에게 통합의 경험은 마치 마법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크고 작은 순간이 쌓여 자신의 영혼과 자아가 공생하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는 한 사람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가 합일을 이루는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침내 안정과 의미 자아는 더 이상 반목하지 않고 끈끈히 연결되어 삶과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분리하고, 경청하고, 구축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후에 그 모든 결과를 통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축복과도 같다. 이런 경험을 통해 쿼터라이퍼는 자신이 지켜보기만 할 뿐 실제도 행동하지 못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로서 세상의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껏 견뎌야 했던 방황과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굉장한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쿼터라이퍼에게, 나는 자기 삶을 사랑할 수 있다고, 기쁨을 즐기고 선한 것을 믿는 능력을 과거의 치열한 노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는 취약함과 친밀함, 창의력, 성공이 두려워질 때 그 두려움을 직면하는 행위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존재로 거듭날 용기, 마음이 동하는 새로운 길을 믿어볼 용기,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힘들어하는 쿼터라이퍼에게 진정한 안내와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몸이 있다는 뜻이며, 몸이 있다는 것은 분투하고 성장하고 분투하고 성장하기를 반복하는 뜻이다. 이런 본질적인 반복은 인간이 생득권이다. 우리의 소명은 변화하며 살아가는 법,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창조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어른의 중력>은 쿼터라이프라는 심오하고 심리적인 여정을 얻는 데 필요한 기반을 얻어 자기만의 고유한 삶과 자기만의 진실을 생생하게 체험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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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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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철학자들의 책을 소개하며 철학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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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박제이 옮김 / 독개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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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르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공동 환상론'을 바탕으로 대화, 생각, 일, 믿음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본 인문 도서이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아렌트, 요시모토는 하나같이 시대와 깊게 뒤섞여 살았다. 책상 앞에만 죽치고 앉아있기보다는 행동했다.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과 깊이 교류했다. 때로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면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다.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며 살아낸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책을 통해 철학자가 도달한 곳이 아니라 그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생각의 여정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소크라테스가 '진실'된 말은 '무작위'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단어로 이루어진 말이라는 소리다. 보통 우리는 무엇을 말할지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는 '무엇을'보다 못하지 않다고 확신했다. '무엇을'은 요약할 수 있지만, '어떻게'는 요악할 수 없고 치환 불가능하다. 요약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 중에서 '진실'된 것을 발견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며,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미사여구'로 장식된 말은 누군가의 모방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로 살면서 터득한 말로 이야기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무작위'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 말고 방법은 없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서 있는 위치였다. 곧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오히려 '어떻게'가 정해지면 '무엇을'은 자연히 정해진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상태야말로 인간이 가장 지혜로 충만한 상태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무지의 지'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모르는 자신을 산다는 것은 조금 다른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무지의 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성'은 완전하다. 왜냐하면 인간성은 누구나 대등하게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모두의 인간성 '상태'는 불완전하다. 누구나 발전하는 중인 불완전한 상태이기에 비로소 인간성을 기름으로써 인생의 깊이를 더하 수 있다. 그리고 불완전하다고 스스로 아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지혜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빨리 이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에게 데카르트의 <병법서설>에서 "어떤 사람은 타인이 20년이나 걸려서 생각한 모든 것을 고작 두어 마디 말을 듣고서는 하루 만에 다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머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쉽게 틀릴 수 있고 진리를 파악하는 힘도 약해질 수 있다. 그들이 나의 원리라고 믿는 것을 토대로 삼아 터무니없는 철학을 만들어내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며, 또한 그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라는 문장을 거듭 읽어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워야 할 점은 '빨리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빨리 이해하려는 것은 예지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데카르트는 느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더욱 위험한 것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는 수많은 것을 빨리 알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빨리 아는 것'보다는 '확실히 아는 것', '깊이 아는 것'이다. 곧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할 때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데카르트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무언가를 '사는 일'은 다르다고 말한다고 전한다. 나아가 무언가를 '배우는 일'과 '사는 일' 양쪽의 길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데카르트로부터 밝혀낸 것이다.

"공부는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것 외에는 배울 수가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은, 결국 제 손으로 찾아야 한다. 데카르트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진정한 배움이란 공부 바깥에서 자신이 만나야 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데카르트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리라. 가령 지금부터 내가 '사랑이란 이러한 것이다'라는 강의를 한다고 치자. 이때 내가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해 동서고금의 명저가 말하는 것을 소개하면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배우는 일'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진정한 사랑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설명으로 '사랑'에 관해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 없다."

저자는 데카르트는 인간이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 할 때, 그것에 무척 어리석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것만 생각하다 보면 막상 자신이 보이지 않게 되어 '말'에서 멀어지고 만다. 저자는 우리는 자신의 언행이 진정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기 위해 좋은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뀌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라는 것 뿐이므로 누군가를 흉내 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이것을 하나의 계기로 자신과 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봄으로써 자신 안에 또 하나의 대화 주체를 발견하기 위한 책이다.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고, 자신을 바꿔나가기 위한 책이다.(...)

자신 안에서 진정 우수한 타자를 얼마나 발견할 수 있을가. 데카르트는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과 깊은 대화를 펼쳐나갔다. 데카르트는 이것을 책상 위에서 고찰하지 않았다. 마흔한 살까지 책상에서 떨어져 직업이 다양하고 신분이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여 <방법서설>이라는 책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생각을 뜻하는 '철학'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철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개개인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철학을 구축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철학은 철학자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전제를 세우고 20세기를 대표하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통해 '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저자는 인간은 누구나 방황할 때 재빨리 답을 찾고 싶지만, 그러면 인간은 그 답에 다소 속이 있어도 그것을 들이키고 만다고 말한다. 저자는 철학적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목이 마르다고 해서 독을 마셔서는 안 되며, 그 목마름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어떤 문제를 진정으로 생각하려 한다면,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이론을 궁극의 해답처럼 생각하는 것이나 그렇게 생각하도록 재촉하는 것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철학의 전제라고 아렌트는 말한다.

이때 아렌트는 단순히 해답처럼 보이는 것을 의심하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이 절대적인 말을 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개개인이 각자 사고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저자가 노동과 일의 근원적인 차이를 말하는 아렌트의 글을 소개하여 인상적이다. 아렌트는 "노동이란 인간 육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활동력이다. 인간 육체는 자연스레 성장하여 신진대사를 한다. 그리고 결국 썩게 되는 이 과정은 노동에 의해 생명 과정에서 태어나 소비되는 생활의 필요물로 구석된다. 이때 노동의 인간적 조건은 생명 그 자체다. 일이란 인간 존재의 비자연성에 대응하는 활동력이다. 인간 존재는 종의 영원한 생명 순환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종의 생명 순환이 영원하다는 사실로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은 모든 자연환경과 지극히 다른 '인공적' 세계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아렌트는 노동은 생명 활동과 깊이 맺어진 행위라고 생각했고,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이라는 말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존엄과 같은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한 이 책의 글귀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인이 항상 '삶'이라는 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의미를 찾아내는 데서 아렌트의 철학은 출발한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에는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의 의미가 퇴색된 채 '일'하기를 강요받는다. 그가 말하는 '노동'을 잊은 채로 일의 평가에 따라 인간의 삶이나 존재를 판단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일 없는 노동은 성립하지만 노동 없는 일은 성립하지 않는다. 일 위에 노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직결된 노동 위에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이 꽃피우는 것이다.

일의 현장에서는 노동력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이야말로 아렌트가 말하는 '노동'에서 가장 동떨어져 있다. 그가 말하는 노동은 그 사람만 행할 수 있다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 생명의 행위를 가리킨다. 그런데고 노동력이라는 말은 노동을 대체 가능한 양적인 것으로 치환해버린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요시모토 다키아키의 <공동 환상론>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하여 요시모토 다카아키로 끝내려 한 것은 그가 누구를 대하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강속구로 날리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아낸 모습과 실로 가깝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요시모토 다키아키는 개인의 내면에 깃든 인간을 신뢰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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