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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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는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젊은 뇌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이글먼'의 신작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신경과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뇌과학의 최신 이슈를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는 대중 강연자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이라는 찬사를 듣고 있다. 원서 제목이자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LIVEWIRED'는 저자가 뇌 가소성(Brain Plasticity)이 가진 의미에 한계를 느끼고 새롭게 만든 용어다. 우리말로는 '생후배선'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전구에 불이 켜지려면 전기 배선이 서로 연결되고 발전하며 성장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뇌의 지도는 그려져 있지 않으며, 삶의 경험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뇌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더 브래인>이 뇌과학 입문서라면, 이 책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는 그 후속작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뇌'의 특증에 특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인간의 변화무쌍한 가능성의 세계를 계속해서 증명해내는 지점에 서 있다. 뇌의 반쪽을 잘라낸 아이가 어떻게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 어린 시절의 적절한 사회화와 상호작용이 왜 중요한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왜 청각이 발달했는지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뇌의 효율에 따라 최적화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을 다룬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처럼, 삶의 여러 가능성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우주가 결정되고, 마지막 순간에 결국 나의 세계가 완성된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저자는 DNA가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일부를 차지하기는 해도, 그것은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에는 사람의 경험과 주변 환경에 대한 풍부하고 세세한 정보가 있다. 이 모든 것이 뇌세포와 연결점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테피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경험을 담는 그릇이고, 여기에 시간과 공간의 작은 표본 하나가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감각기관을 토애 주위의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인다. 몸 속의 DNA 못지않게 주변 환경 또한 나의 사람됨에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뇌 가소성'은 신경과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이 책에서는 이 용어 때문에 목표를 놓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 용어의 사용을 가능한 자제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가소성'이라는 말은 한번 형태를 만들어 놓으면 그 형태가 영원히 유지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의 형태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한 예다. 하지만 저자는 뇌는 평생에 걸쳐 계속 스스로를 바꿔 나가기 때문에 주제를 더 생생히 표현해주는 용어인 '생후배선(livewired)'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저자는 뇌가 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려줄 중요한 틀을 마련하여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소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넓혀서 이처럼 계속적인 변화라는 개념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기존 문헌과의 연결성을 위해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겠다. 그러나 플라스틱처럼 모양이 잡히는 현상에 감탄하던 시절은 이미 우리에게 과거가 된 듯하다. 지금 우리 목표는 이 살아 있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주제를 더 생생히 표현해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생후배선(livewired)'이라는 용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뇌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층으로 나누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있고, 정보를 구하는 이 시스템을 파악하려면 '라이브웨어(liveware)'라는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짜릿함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현재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에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 우리 뇌는 마법도 구성요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요소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듬어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천을 짜는 방식에 달려 있다."

저자는 얄팍한 설계도에서 860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복잡한 뇌가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답변의 축을 이루는 것은 게놈의 영리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불완전하게 만든 뒤, 세상 경험으로 다듬어지게 하라는 전략이다. 저자는 따라서 갓 태어난 인간의 뇌는 놀라운 정도로 미완성 상태이며, 반드시 세상과 상호작용을 해야만 완성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뇌가 신체 지도를 갖게 되는 것은 뇌세포들 사이의 연결을 다스리는 간단한 규칙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아주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활성화되는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 연결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함께 활성화되는 부위들은 한동안 세상과 상호작용을 경험한 뒤 뇌에서 바로 옆에 나란히 자리를 잡을 때가 많다. 이런 상관관계가 없는 부위들의 신경회로는 서로 멀리 떨어져 형성되곤 한다. 이런 식의 동시 활성화가 오래 지속되면 이웃 영역들의 지도, 즉 신체 지도가 만들어진다.

저자는 뇌의 가장 놀라운 재주 중 하나는 신체의 암호를 최적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바뀌면, 피질의 대규모 재편성이 일어난다. 뇌의 신체 지도는 유전자에 미리 각인된 것이 아니라, 입력되는 정보에 따라 형성된다. 뇌의 신체 지도는 미리 정해진 설계도를 따른다기보다는 국지적인 영토 경쟁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함께 신호를 쏘는 뉴런들이 회로를 이루기 때문에, 함께 활성화되는 지역은 뇌에서 인접해 있다고 볼 수 있따. 저자는 몸의 형태가 어떻게 변하든,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뇌 지도에 반영된다고 이야기한다. 신체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뇌의 변신은 모든 감각에 해당된다.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시각' 피질이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에 맞춰진다. 이처럼 피질의 땅을 추가로 확보한 감각은 민감도가 올라가고, 그 감각에 할애된 뇌의 영역이 넓을수록,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피질의 영역 재배치는 어디서나 일어난다. 사람이 청각을 잃으면, 전에 청각을 담당하던 뇌 조직이 다른 감각을 대변하게 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의 주변부 시주의가 더 뛰어난다거나, 사람들의 말씨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그리 놀랍지 않을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입술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보고 출신지를 알아맞힐 수 있다. 신체 일부를 절단한 자리의 감각이 더 섬세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예전보다 가벼운 압력을 가해도 촉각이 감지되며, 가까운 지점 두 군데에서 느껴지는 촉각도 하나가 아니라 따로따로 감지된다. 뇌가 아직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위에 더 많은 영역을 할애하기 때문에 감각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저자는 시각 시스템은 다른 감각에게 영역을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지구의 자전으로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에도 폭발적인 활동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감각 영역의 영토를 두고 끊임없이 경쟁이 벌어지는 환경에서 후두엽의 자기방어가 진화했다. 저자는 시각은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하루 중 절반 동안 그 기능을 도둑맞기 때문에 꿈은 신경 가소성과 지구 자전이 미교한 사랑으로 낳은 자식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해마와 전전두엽 피질이 깨어 있을때보다 꿈 수면 중에 덜 활발히 활동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저자는 뇌가 이 두 영역을 닫아두는 것은 꿈 수면의 핵심적인 목적이 이웃들과 싸우는 시각 피질을 돕는 것이라면 꿈의 기억을 굳이 저장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날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꿈에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보지 않고, 다른 감각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가구 배치가 바뀐 거실에서 감각으로 길을 찾거나 낯선 동물이 짖는 소리를 듣는 식이다. 이것은 시각장애인의 후두 피질이 다른 감각들에 병합당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에게서도 밤에 후두엽이 활성화하는 현상이 일어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그것을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경험한다.

"자는 사람은 완전히 긴장을 풀고 많은 기능을 닫아둔 것처럼 보이지만, 뇌의 전기활동은 평소와 똑같이 돌아간다. 밤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시간은 꿈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렘(빠른 안구운동)수면 중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작은 근육들이 움찍거리고, 뇌파는 작고 빨라진다. 수면 중 이 단계에서 꿈이 말생한다. 렘 수면은 뇌간의 뇌교라는 곳에 있는 특정 뉴런들에 의해 촉발된다. 이 뉴런들의 활동 증가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째, 주요 근육들이 마비된다. 꿈을 꾸는 동안 정교한 신경회로가 몸을 마비된 상태로 유지하는데, 이 회로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곧 꿈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꿈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이 회고가 발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육의 활동이 정지된 사이 뇌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않고도 직접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흉내를 낼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 번째 결과다. 스파이크의 파동이 뇌간에서 후두 피질까지 전달되는 것. 스파이크가 그곳에 도달하면, 뇌간의 활동은 시각적 경험이 된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꿈이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그림이나 영화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세상을 향해 항상 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피드백을 평가해 행동을 조정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시험하며 가능성의 폭을 조정한다. 상황에 따라 유머를 발휘하는 방법, 반항적으로 팔짱을 끼는 방법, 울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법 중 무엇이 나을지 시험하는 것이다. 저자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페르소나에 매력이 있음을 알게 되면, 우리는 업데이트가 필요해질 때까지 그 페르소나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다양한 도식을 채택한다. 그리고 운동 피드백에 의존할 때처럼 사회적 피드백에 의존한다.

"끊임없이 세상을 시험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생각하는 법 또한 배우는 건지 모른다. 우리 뇌의 관점에서 보면, 생각은 동작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폭풍처럼 일어나는 신경 활동으로 우리가 팔을 들게 되는 것처럼, 우울한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줄지, 양말이 어디로 사라져버렸을지, 점심 식사로 무엇을 주문할지 생각할 때도 아주 비슷한 신경 활동의 폭풍이 일어난다. 생각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뇌가 발차기, 돌진하기, 손에 쥐기를 조종할 때처럼, 생각이 사고의 공간 안에서 개념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초에 신경과 의사이자 저술가인 올리버 색스가 자아 상실을 경험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르웨이에서 산길을 걷던 그는 앞에 나타난 황소를 보고 화들짝 놀라 허겁지겁 산길을 내려갔다. 그러나 걸음을 서두르다가 그리 높지 않은 졀벽에서 떨어져 대퇴 사두근에 부상을 입었다. 그는 우산을 임시부목으로 다리에 대고, '완전히 쓸모없어진' 다리로 산길을 비틀비틀 내려오다가 다행히 사슴 사냥꿈들을 만났다. 그 뒤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망상과 혼란에 시달렸다. 찢어진 대퇴 사두근 때문에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 다리가 자기 것이 아니라고 100퍼센트 확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기 다리가 앞으로 쭉 뻗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침대 옆으로 다리가 늘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경각심을 느꼈다. 저자는 올리버 색스의 경험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자아가 되고,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가 되어, 색스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다리를 도저히 자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냥 수십억 개의 세포와 뼈와 피부가 뭉쳐 있고 거기에 이상한 털까지 자라고 있는 낯선 물체였다. 저자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감각도 전혀 느낄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몸을 이렇게 바라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뇌는 중요성을 북극성으로 삼아 중요하고 세세한 정보를 유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수백억 개의 뉴런은 우리 주위의 세상을 그려내는 거대한 캔버스 역할을 하며, 그 덕분에 우리는 농구, 연기, 배드민턴, 그리고 고전 읽기, 절벽 점프, 비디오게임, 라인댄스, 포도주 만들기 등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발전시킨다. 저자는 우리의 큰 목표와 대략 일치하는 임무가 나타나면, 뇌의 회로에도 그 점이 반영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뇌는 신경조절물질을 방출하는 광범위한 시스템을 통해 중요성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이 화학물질들은 대단히 한정적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특정한 때에 특정한 위치에서만 변화가 일어난다. 저자는 특히 중요한 화학적 메신저가 아세틸콜린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물질을 방출하는 뉴런은 보상과 처벌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동물이 어떤 과제를 학습하느라 변화가 필요할 때 이 뉴런들이 활성화되지만, 일단 학습이 잘 끝난 뒤에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아세틸콜린은 자신이 가 닿은 뇌의 영역을 향해 변화하라고 말하지만, 변화하는 방법까지 일러주니는 않는다. 콜린성 뉴런(아세틸콜린을 뱉어내는 뉴런)이 활성화되면, 그들이 겨냥한 영역의 가소성이 증할 뿐이다. 그들이 비활성화되면, 가소성은 거의 또는 전부 사라진다.

"보상은 뇌의 재편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지만, 댜행이 우리 뇌가 재편될 때마다 쿠키나 상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개는 우리가 달성하려는 목표에 따라 변화가 이루어진다. 북극에서 얼음낚시 하는 법과 다양한 종류의 눈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 뇌에 그 정보가 기록될 것이다. 적도에서 피해야 하는 뱀과 먹을 수 없는 버섯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는 뇌가 이 상황에 맞춰 자원을 할애할 것이다."

"아세틸콜린은 뇌 전체에 널리 영향을 미쳐, 모든 종류의 관련 자극에 따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자극이 악기로 연주되는 음이든, 질감이든, 칭찬의 말이든 상관없이. 아세틸콜린은 '이건 중요한 거니까 잘 감지해야 돼'라고 말하는 보편적인 매커니즘이다. 그래서 해당 영역을 넓혀 중요성을 표시한다."

저자는 요즘의 토론은 문제를 차례로 해결하면서 신속하게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혼자 있을 때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며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링크가 폭포처럼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링크를 따라 여섯 번쯤 점프하고 나면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사실들을 학습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환경의 이점은, 우리 뇌가 새로 생각해내는 모든 아이디어가 전에 학습했던 정보의 혼합인데,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즘 아이들은 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누리며 살고, 우리 지식은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앞에 더 많은 문이 생겨났다. 젊은이들은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얻은 지식을 결합해 이전 시대에는 상상도 모샇던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류의 학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통신의 속도도 그 어느 때보다 빨라서 많은 지식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인터넷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훨씬 더 풍요로운 교육의 새로운 단계가 개방되기 직전인 것 같다."

저자는 마약이 신경계를 개조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재조정이 금단증상이라는 고약한 현상의 기반이며, 뇌가 마약에 적응하면 할수록, 약을 끊었을 때 충격이 크다고 말한다. 저자는 금단증상은 약의 종류의 따라 식은땀, 떨림, 우울증 등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예측했던 강력한 물질의 부재가 공통적인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뇌의 예측과 그 결과를 이해하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의 일부가 된다. 비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그 사람이 우리의 내적인 모델에 흡수된다는 뜻이다. 뇌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예측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재편한다. 그런데 애인과 헤어지거나, 친구 또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그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해 항상성이 크게 때진다. 이와 같은 것을 칼릴 지브란이 <예언자>에서 "항상 사랑은 이별의 순간에야 자신의 깊이를 깨닫는다."고 표현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마약을 사용하면 뇌에서 그 약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수가 달라진다. 죽은 사람의 뇌에서 분자 수준의 변화만 측정해도 그 사람의 중독 여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사람들이 마약에 점점 내성이 생기는 이유도 같다. 뇌가 약의 존재를 예측하고 수용체 수를 조정해서, 다음에 약이 들어왔을 때 안정적인 평형이 이루어진다. 문자 그대로, 뇌가 약의 존재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세세한 부분들도 여기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한다. 이제 시스템은 일정량의 약이 항상 몸에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에, 처음과 같은 황홀경을 맛보려면 약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우리 뇌는 우리가 접촉한 모든 사람의 네거티브 이미지와 비슷한다. 애인, 친구, 부모님이 각자 예상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배에서 내린 뒤에도 파도를 느끼거나 약을 끊은 뒤 갈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뇌는 우리 삶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던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계속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를 거절하고 떠나거나 세상을 떠나 그 자리에서 사라지면 뇌는 어긋난 예측 때문에 괴로워한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 다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저자는 한 가지 일을 잘하게 되기 위해 다른 일들로 통하는 문을 닫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한 뻔 뿐이므로 자신이 어떤 일에 헌신하는가에 따라 특정한 길을 따라가게 되고 나머지 길은 모두가 영원히 '가지 않은 길'로 남는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는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은 저자가 이 책을 시작한 이유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이를 먹어 뇌 가소성이 감소하더라도 다행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생후배선은 젊은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얘기다. 회로 재편은 평생 동안 계속 이루어진다. 저자는 우리가 새로운 생각을 해내고, 새로운 정보를 축적하고, 사람과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신경망이 더욱 단단히 고정되는 것은 기능이 쇠퇴하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한 것들을 잘 알아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뇌가 아이의 것처럼 다시 유연해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뇌가 매력적이기는 해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는 규칙을 알아내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우리는 유연성을 잃는 대신, 전문성을 얻는다.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갖가지 연상의 연결망이 100퍼센트 옳지도 않고 심지어 내적인 일관성조차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합쳐져서 인생 경험, 노하우,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완전한 유연성을 계속 유지한다면 아기처럼 무력해진다.

"뇌도 처음에는 신경망 전체에 걸쳐 가능한 경로를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 쌓인 경로들은 잘 사라지지 않게 되고, 사용 빈도가 낮은 뉴런들은 결국 일을 접고 자살을 택한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경험이 쌓이면, 뇌에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물리적으로 새겨지고, 우리는 단단히 다져져 살아남은 경로들을 따라 결정을 내린다. 좋은 점은 문제의 해결책을 빛의 속도로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야생적이고 창의적은 방법으로 문제를 공략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뇌는 변화하더라도 아주 작은 일부만이 변화한다는 점이다. 반면 아기의 뇌에서는 광대한 영역 전체에 걸쳐 변화가 일어난다. 아기의 뇌는 아세틸콜린처럼 널리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뇌 전체에 뜻을 알려, 경로와 신경회로를 바꾼다. 뇌의 그림이 선명해지는 데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디서나 변화가 가능하다. 어른의 뇌는 한 번에 조금씩만 변한다. 대부분의 신경회로가 굳게 자리를 지키고, 뇌는 이미 학습한 것에 매달린다. 알맞은 신경전달물질들의 조합을 통해 아주 작은 영역만 유연해질 뿐이다. 어른의 뇌는 거의 완성된 그림에서 점 몇 개의 색조만 수정하는 점묘화가와 같다."

"뇌가 나이를 먹을수록 학습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여닫이문이 이미 닫혔다는 사실이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다. 내면의 모델과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의 '차이'가 뇌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을 기억하는가. 뇌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변화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가정생활,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좋아하는 음식 등 세상의 여러 규칙을 익혀나가면 뇌에 도전장을 내미는 신선한 자극이 줄어들어서 뇌가 점점 안정된다. 어렸을 때는 내가 믿는 것을 남들도 다 믿는다는 것이 내면의 모델이다. 그러나 세상을 경험하면서 나의 예상과 실제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나면, 신경망이 그 차이에 대응해서 변화한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의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은 생후배선으로 인해 우리 각자는 공간과 시간의 그릇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상의 어느 특정 지점에 떨어졌을 때 그곳의 세세한 특징들을 모두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거하는 그 순간을 기록하는 장치가 되는 셈이다. 우리의 사람됨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든 것, 즉 주변 환경, 경험, 친구, 적, 문화, 신념, 시대 등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을 분리할 길은 없으며, 외부세계가 없으면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생후배선 덕분에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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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습관, 일, 관계까지 바꿔주는 뇌 최적화의 기술
가비아 톨리키타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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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일, 관계를 바꾸는 뇌 최적화의 기술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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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습관, 일, 관계까지 바꿔주는 뇌 최적화의 기술
가비아 톨리키타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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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싶은 욕망이 항상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뇌’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하던 일, 익숙하고 편한 일을 좋아하는 뇌는 우리가 달라지려고 하는 모든 행동을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계속 원래의 습관, 행동 패턴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정말 인생의 변화를 이루고 싶다면 뇌를 바꿔야 한다. 현재에 안주하려는 지금의 뇌를 도전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데 거리낌 없는 뇌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책 <당신의 뇌는 변화가 필요합니다>는 수백 건의 임상 사례와 최신 신경과학 연구로 검증되고 수백 명의 CEO, 운동선수, 학자들에게 극찬받은 ‘뇌 최적화의 기술’을 소개한다.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단순하고 사소한 행동 방식을 설계해 습관, 성격에서부터 일, 관계까지 인생의 9가지 영역을 효과적으로 바꾸는 방법들이다.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습관은 아침에 하고,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 호흡 연습을 하고, 일을 미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이유’를 자문자답해보는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이런 방법들을 한번 시도해볼 의지만 있다면 뇌를 바꾸는 일도, 늘 작심삼일로 끝나는 인생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일도 놀랍도록 간단해진다. 그러니 이 책을 따라 일상 속 작은 행동들을 하나씩 바꿔보자. 중간에 멈추는 법 없이 계속해서 더 나은 길로 향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하루가 끝나고 피곤할 때, 더구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인간 뇌, 특히 전전두피질과 같이 가장 복잡한 븐블이 적절하게 기능할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없다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간은 좀 더 에너지 효율이 높은 포유류 뇌의 지배를 받는 옛 습관으로 쉽게 돌아가고 만다. 따라서 저자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하루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전전두피질의 지배를 받는 우리의 의지력은 그 시점에서 거의 바닥나기 때문이며, 이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새로운 습관 형성의 첫 번째 규칙은 "새로운 일은 아침이나 휴식 직후에 하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뇌가 사용할 에너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전전두피질에 휴식이 필요한 저녁에는 의지력을 비롯한 전전두피질의 중요한 자질들이 많이 약화되어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층 발달된 뇌 중추를 사용해야 하며 여기에는 휠씬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저자는 전전두피질을 사용해서 눈앞의 충동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위해서는, 습관을 바꿀 때의 많은 이점을 목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습관을 바꾸지 않을 때 지금의 그리고 장래의 부정적 결과도 목록으로 작성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행동과 낡은 행동에 대해 그렇게 많은 수의 혜택과 결점을 찾으려면 자신의 삶을 일, 가족, 인간관계, 사회생활, 취미,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자기계발의 여덟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포유류 뇌의 쾌감 및 고통 중추를 재교육시켜야 한다. 습관이 장기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 습관이 우리를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는지 아니면 그 길에 방해가 되는지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당신의 포유류 뇌가 이런 연관성을 잊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리란 것을 유념해야 한다. 즉 이 목록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포유류 뇌에게 장기적인 결과를 계속해서 상기시켜야 한다."

저자는 성공적으로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포유류 뇌가 안정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편도체를 진정시키는 활동을 하고 변화를 작은 단계로 쪼개 친숙한 느낌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가능하면 무엇이든 한 번에 한 가지씩 바꾸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야심 찬 큰 변화로 여러 가지 새해 계획을 만드는 일은 편도체에게 최악이다. 대신 저자는 이달에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그 변화를 위해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번 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단계의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모든 인간의 감정은 크게 슬픔, 분노, 죄책감과 수치심, 혐오감, 두려움, 놀람, 흥분과 기쁨, 사랑과 신뢰의 여덟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각 감정은 뚜렷한 목적과 그와 연관된 구체적인 트리거, 즉 유인이 있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여덟 가지 감정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설명한다. 그중에서 저자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당신의 행동이나 존재 방식이 사회의 요구에 적합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현대에 와서는 죄책감의 주된 유인이 '의무'로 바뀌었다. 즉 다른 사람이나 사회로부터의 기대에서 비롯된 내면화된 지침으로 말이다. 저자는 그러기위해서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의무를 적은 광범위한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한정된 자원들을 어디에 사용해야할지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삶에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순간에 당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의식적인 선택을 하고 그 가치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의무'를 그런 방식으로 바라보면 즉각적으로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이로써 자기 비난과 수치심을 덜어낼 수 있다.

"죄책감이 특정한 행동 혹은 반대로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감정인 반면, 수치심은 결함이 있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은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믿음과 실제의 상태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감정을 관리하는 것을 뇌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편도체를 달래서 신체를 교감신경 지배 상태에서 부교감신경 지배 상태로 전환시키고 몸과 뇌의 화학 구조에 회복할 기회를 준다고 말한다. 그때에서야 명확한 사고와 창의성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대를 형성할 능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분했을 때 우리는 주위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흥분한 상태는 편도체를 위험에 좀 더 기민해지도록 만든다. 저자는 편도체가 안정되면 우리의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면서 편도체에게 세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가 때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가장 주된 이유는 사람들 각자가 세상을 바라볼 때 대단히 편향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뇌는 대단히 선택적이어서 이전에 중요하다고 정해둔 것들만을 인식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식한 것 중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을 기억한다. 그 결과 실질적으로는 기억하는 부분은 더 적어진다. 저자는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세상에 대한 기존의 모델을 깨부수고 새로운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과거의 행동 패턴에 가둬버리는 편도체 지배적인 사고인 고정형 사고방식을 버리고 당신이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장형 사고방식을 키우라고 말한다.

저자가 감정을 통제하고 의지려과 주의 집중력, 작업 기억과 동기를 갖게 하는 전전두피질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도록 해주는 습관을 소개하여 눈길을 끈다. 첫째 전전두피질의 뉴런들이 영양소와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으려면 규칙적으로 영양이 풍부한 식사를 하고, 호흡을 느리고 깊게 하고, 운동을 해서 혈액의 산소포화도를 높여 혈관을 확장시켜야 한다. 둘째 일과 휴식 시간을 번갈아 가져야 한다. 셋째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신체 활동을 해야 한다. 또한 저자는 멀티태스킹은 두뇌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시간을 낭비하게 해 성과를 저하시킨다고 말한다. 두뇌를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저자는 일상 속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지루함을 경계하여 당신을 흥분하게 하는 도전을 찾으라고 말한다. 흥분되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할수록 스트레스 수치는 떨어지고 인지 능력은 개선되고 그만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강화 환경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여행이다.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수치는 운동,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특히 밤에 이루어지는 숙면으로도 관리할 수 있다.

저자는 편도체를 안정시키는 대화를 위해서는 약속을 하기, 주관적인 경험을 공유하기, 상대의 말을 반복하기, 상대의 다름을 수용하기, 상대의 말에 공감하기에 대한 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끝없는 언쟁을 단숨에 멈추는 4단계 기술로 관찰하기, 느낌 공유하기, 욕구 확인하기, 요청하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가 뇌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서 뇌에 맞서려고 노력하는 대신 현재 상태에 따라 변화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의 뛰어난 두뇌에 대해 배우는 일이 당신 자신을 훨씬 더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글이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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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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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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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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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이 책은 '1장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2장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3장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4장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해서'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성과사회는 피로사회이고, 피로사회는 곧 부채사회라고 말한다. 즉 성과사회는 부채사회의 부채노동으로 성과를 만드는 사회이고, 누군가의 저당 잡힌 노동과 피로 덕에 누군가의 안락함이 보장되는 매우 불평등한 사회다. 저자는 부채 때문에 쉴 수 없는데, 누군가는 이를 꿈을 이루는 열정의 과정이라고 포장한다고 이야기한다.

"저당 잡힌 미래, 이것이 바로 부채의 본질이다. 이렇게 끌어들인 미래의 노동, 내 미래를 저당 잡은 부채는 불행히도 내 노동 가치를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내가 원하는 일, 나 자신을 위한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부채 규모에 반비례해서 적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고 대출 원리금을 매달 꼬박꼬박 갚으려면 원치 않는 일이거나 싼값이라도 노동을 팔아야 한다. 노동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부채와 육체의 노화로 인해 점점 평가 절하되고, 신용등급은 하락한다. 미래에 사용될 노동까지 저당 잡힌 소비 능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반대로 늘어나는 부채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마침내 니 사회가 요구하는 성과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결국 삶 속에서 자유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이에 반비례하여 불안은 점점 커진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실업자는 의중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낮은 존재면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추진하는 강력한 노동 통제와 저임금 정책 아래에서 항시적으로 고용이 불안정하게 된 데 따른 사회적 결과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런 의미에서 실업은 비록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비노동의 상태지만 쉼과는 전혀 다른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쉼의 상태를 여가나 레저, 또는 필요한 자원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상태, 공공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 데 비해, 실업은 노동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 실제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암울하다. 실업은 사람이 온전히 쉴 수 있는 조건에 도달할 수 없는, 실패의 상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실업은 소비 능력이 전혀 없을뿐더러 사회적 자산과 국가 재정 측면에서 '마이너스'로 간주되고, 노동윤리적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상태다. 그래서 일을 쉬고 있는 실업은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긴장이 가장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실업자를 호모 사케르처럼 취급할수록 불안은 점점 사회를 잠식한다."

저자는 취직만 하면, 로또만 당첨되면, 결혼만 하면, 대통령에 당선만 되면, 통일만 되면, 재개발 승인만 떨어지면, 마치 관련된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의 생산이 판타지의 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판타지는 결핍을 채우고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착각일 뿐, 도달할 종착점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착각 노동에 빠져들면 들수록,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는 상태, 즉 '실업'이나 '폐업'을 결핍과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어진 좌절의 상태이자 욕망을 실현할 수 없는 상태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착각노동'이라는 판타지는 사람들이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면서도, 실업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노동을 충실히 되풀이하도록 하고, 노동에 중독되도록 한다.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도,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아킬레우스가 달리기를, 시시포스가 바위 굴리기를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비록 지금의 노동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 노동의 종착지에는 성취, 보상, 만족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힘든 것은 이 종착지에 가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성찰 없이, 종착지에 도달하기 위해 각종 진통제와 피로회복제, 다양한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곁에 둔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기대했던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잇을까? 노동에 대한 이러한 믿음이 착각은 아닌지 한번쯤 의식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자는 과잉 노동은 곧 노동하지 않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비노동 시간(쉼과 여가의 시간)을 줄어들게 하고, 그나마 조금 있는 비노동 시간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시간이 아닌,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갇힌 시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과잉 노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 뿐더러, 그 기원이 어딘지도 모를 GDP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에 자기 욕망을 맞춰야 하는 몰가치적인 상태로 전락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리의 일은 '쉼'을 통해 '과잉 노동'이나 '착각 노동'이 아닌, 나와 사회의 통증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는 '기쁜 노동', '행복한 노동'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진정으로 쉰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상태를 넘어, 불안 대신 어떤 기대와 믿음, 설렘이 우리를 감싸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또 저나는 쉼의 상태는 개인이 느끼는 통증을 가족, 이웃, 사회, 일터의 동료,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공감'의 상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쉴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을 낯설게 느낀다는 수준을 넘어 세상과 항시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긴장 관계 속에서 통증을 호소하는 일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고, 개인과 사회의 통증은 결국 구성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불안과 고통이 된다. 우리는 나와 타인의 통증을 공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쉼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쉴 수만 있다면, 함께 느끼는 통증은 함께 살아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이 통증을 치유해내면 함께 살며 즐기는, 공색공략의 삶을 이룰 토대가 마련된다."

저자는 쉼은 자신이 편안하고 존엄하다고 느끼는 안정된 상태라고 말한다. 반대로 진정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느끼는 통증을 달래고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외부 힘에 의해 강제로 억눌려 있음을 의미한다. 존재와 삶의 자율적 의지가 꺽이는 것이다. 저자는 자기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거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자기를 힘들게 하고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결정권과 자기접근성을 주장할 때 타인의 그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쉰다는 것은 외부의 강제성을 벗어난 상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기존엄성과 연결된다. 자기존엄성이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 즉 '자기결정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이 자기결정권은 그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한테 필요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고 그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저자는 쉰다는 것은 인간이 정한 인위적이고 상징적인 것,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 뒤따르는 합의들로부터도 해방된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 합의는 신과 인간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구별하고 위계를 만드는 계약이다. 쉰다는 것은 이러한 위계적 구별은 없앤다. 저자는 편히 쉰다는 것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의무와 부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깨 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음으로써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존재를 위한 의지, 삶을 위한 의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저자는 쉼이 있는 사회는 숲과 같아,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따로 또 같이 차별이 아닌 평등한 차이 속에서 유기적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 기반이자, 존재의 의미가 된다. 저자는 우정, 사랑, 환대, 연대는 쉼이 있는 사회의 소중한 자양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쉼이 있는 사회는 경제성장이나 국가발전 전략을 이유로 누군가의 삶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다. 쉼이 있는 사회는 도시재개발의 시간에 따라 원주민을 내쫓지 않는다.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동일한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표준화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 더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대화와 도시화만을 정답으로 삼거나, 자본주의의 교환가치가 기준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부정할 수 있어야 쉼이 있는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 부정은 곧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와 공생공락의 쉼을 회복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착각과 중독 속에서 반복되는 노동의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을 잠시 멈춰보자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왜 이렇게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매일매일 반복되는 노동이 과연 자신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알기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는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정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중한 경쟁과 무리한 노동은 죽음과 같은 삶을 강요할 뿐이며, 이제 여기서 벗어날 '정지 운동'을 시작할 때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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