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거는 영화들 - '조커'에서 '미나리'까지 생각을 넓히는 영화 읽기 생각하는 10대
라제기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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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거는 영화들>의 저자인 영화 전문 기자 라제기는 24편의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영화 읽기'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한다. 저자는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단편을 파고들어 예리하게 읽어내며 독자에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자신이 본 영화로 생각의 영역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면 영화 관람은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갈 수 없는 나라를 영화로 만나 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신나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요? 영화 한 편으로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이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은 1부 자아찾기에서 '아이 엠 우먼, 톰보이, 주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2부 갈등과 화해에서 '미나리, 우리 집,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어디 갔어 버나뎃, 리틀 큐, 포드 VS 페라리', 3부 고발에서 '글로리아를 위하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조커, 어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4부 한국사에서 '남산의 부장들, 나랏말싸미, 자산어보, 강철비 2: 정상회담', 5부 미래에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서복, 테넷, 승리호'라는 24편의 영화에 관한 저자의 깊이 있는 글을 주제별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영화에 대해 '삶을 연기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글이 흥미롭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 대한 진실을 쉽게 알기 어려우며, 아무리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봐도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숨겨진 진심은 금방 알아채기 힘들다고 말한다. 저자는 누군가의 진심과 진실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우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 생활 속의 '적절한 연기'를 하면 오해에서 비롯되는 충돌을 막을 수 있고, 서로 화해할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파비안느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사람이지요. 연기에만 집착하는 냉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을 무조건 품어 안는 천사도 아닙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고, 때로는 은근슬쩍 주변 사람 눈치를 보기도 하며, 표현은 안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 않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오해와 왜곡된 기억이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저자는 영화 <조커>를 통해 '악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선보여 인상적이다. 저자는 영화 <조커>는 진정한 가치가 전복되고 약자만이 고통받는 사회라면 조커 같은 인물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실제로 나타나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조커를 추앙하는 사회의 등장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질문하는 영화<조커>의 의미에 대해 독자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구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는 세계에서 약자는 또 다른 약자를 착취합니다. 아서는 동료의 농간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유명 코미디언 머레이는 아서를 자신의 코미디 쇼 시청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취급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아서는 무료 정신 상담을 받지 못하고, 우울증 관련 약고 처방받을 수 없게 됩니다.

광대 분장도 지우지 못한 아서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건 패거리에게 얻어맞다 그들을 총으로 쏘고 마는데, 이 사건 후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합니다. 광대 복장을 한 남성이 기득권층인 금융 회사 직원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대중은 그를 영웅시합니다. 아서는 자신이 코미디언으로 세상을 웃기려 할 땐 정작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광대 복장을 한 채 사람들을 죽이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저 위 어딘가에 있는 삶의 가치를 좇기보다, 삶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찾을 다른 방법을 그는 조금씩 인식합니다.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듯 악행을 저지르다 보면 사람들이 그의 존재 가치를 더 잘 알아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아서는 점차 무차별적인 악인이 되어 가고, 시민들도 그를 따라 광대 가면을 쓴 채 거리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또 다른 내가 나타나다'라는 제목의 영화 <어스>의 글을 통해 도플갱어 가족이 무엇을 상징하며, 또 다른 내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여 눈길을 끈다. 영화 <어스>가 주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와 '우리'를 항상 돌아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언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붕되될지 모른다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이 영화는 '인터넷 시대의 우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지하 세계는 인터넷 세상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온라인 속 우리의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지요. 즉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각종 커뮤니티가 생기고,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그 안에 각자의 분신(아바타)을 하나씩 만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신은 결국 우리와 별개의 존재로 볼 수 없습니다. 온라인상의 분신이 현실 속 나와 구별된다 해도 사람들은 온라인 속 모습까지 모두 고려해 나를 판별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이 오프라인상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막말을 온라인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던졌을 때, 사람들은 오프라인상에서의 행실만을 따져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막말이 만들어 낸 파장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묻지요."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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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 프랑스 노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최린 옮김 / 센시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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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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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 - 프랑스 노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최린 옮김 / 센시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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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은 프랑스 노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가 전하는 삶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내게 남은 삶이 한 시간뿐이라면'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본 적이 있을 법한 질문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 세상과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함축적이고 시적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저자는 '내 삶에 남아 있는 시간이 단 한 시간밖에 없다면'이라는 갑자기 인생에 불쑥 끼어든 생각을 상상하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해야 하는지,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질문을 떠올린다.

저자는 나에게 남은 삶이 단 한 시간 밖에 없다면, 준엄하게 정해진 단 한 시간이 나에게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제가 시간이 있다고 믿고, 죽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스스로를 위로하고, 언젠가를 상상하며 이야기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지나가는 1초는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리는 시간이며, 피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저자는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직시하며 죽음 앞에서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며 침착하게 긴장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죽음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일들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과정과 결과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속의 존재에 대한 이 이야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빠져 있고, 공백과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너무 많습니다. 쓸데없고 비상식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삶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거기에 일관성과 구조를 부여하고, 엉성하기 그지없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합니다. 이런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하는 것은 그 이야기의 미래를 쓰려는 열망입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그 미래에 우리는 빠져 있습니다."

저자는 인생은 끊임없이 두근두근 뛰고, 고동치고, 오고 가지만,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앞에서 마주볼 수 없는 것은 태양과 죽음만이 아니라 이유는 다르지만 인생도 그렇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박동처럼 간격이자 틈이며,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 안에, 그 박동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산을, 지는 해를 바라보듯이, 갈매기가 나는 모습이나 말이 달리는 걸 관찰하듯이, 인생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그 바깥에 있어야 합니다. 밖에서 주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 항상 박동의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저자는 행복은 연속적이고, 어떤 굴곡도 없이 안정적이며, 조금의 결함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한다. 완전한 행복은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으며, 천상의 황홀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결코 퇴색하지 않은 절정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란 그저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것, 완전히 하찮은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황홀함과 비탄, 환희와 고독, 간질거리는 것과 역겨운 것, 이 모든 것이 언제나 두서없이 얽혀 잇는 것, 그것이 삶이라고 전한다.

"인생의 어두운 측면이라는 것도 환상일 뿐이며, 불합리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많은 이들이 완전하고, 순수하며, 절대적이고, 완벽한 행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 것일까요?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존재를 통합하고, 다양성을 단일함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쪽 눈으로 한쪽 면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완전하게 통합되어 있는 하나의 덩어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자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단 한 시간뿐이라면 돌피, 쇼터, 그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을 잃고 호흡과 리듬의 균열이 일어나는 것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이 즉흥적으로 음악을 만들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절규하며 음표를 외친 것처럼 문장을 쓰고, 그들이 침묵을 찢어버린 것처럼 나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한 시간도 안 되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을 느낀다.

"내 삶이 단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는 죽음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선택할 것입니다. 이것은 보잘것없는 술책입니다. 제한적이고 불완전하며, 안타깝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거나 완전히 무기력한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내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명확하게 이해한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글쓰기가 시간을 봉인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지된 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계속 이어지고, 그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아주 작은 행위, 삶의 파편, 우리의 작은 몸짓까지 결정체로 남습니다. 그것들은 유일합니다. 일반적인 것이란 없습니다. 일반적인 것은 살아남지 못합니다. 유일한 것만이 영속합니다."

저자는 서로 상반되고, 대조를 이루며 대립하고, 긴장관계에 있는 것들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가득 찬' 것처럼 보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텅 비어' 보일 수도 있고, 우리가 '좋다'고 판단한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나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한다고 이야기한다. 쾌락과 고통은 마치 부와 가는, 용기와 비겁함, 사랑과 증오처럼 서로 얽혀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이 반대되는 것들은 결코 낯선 영역에 있지 않다. 세상은 빛과 어둠이 얽혀서 돌아간다.

"선하고, 용감하고, 유쾌하고, 밝은 사람도 내리막길을 갈 때는 악하고, 비겁하고, 슬프고, 우울한 면이 나타납니다. 삶과 세상을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런 이중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사물의 한쪽 면만 보고, 세계의 한쪽 면만 생각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어둡게' 보고, 또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장밋빛'으로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증오, 슬픔, 절망으로 가득하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오직 기쁨과 행복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두 가지 시각을 놓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자는 우리는 죽음을 단 한 번 경험하며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기회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죽음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든, 어떤 방식이든, 훈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책 <내게 남은 시간이 한 시간뿐이라면>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이 문장들을 읽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써내려가며 삶의 통찰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독자에게 삶과 죽음의 철학적 본질을 일깨우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인생이란 풍성하게 넘쳐흐르는 것, 영원히 범람하는 것이라고 말할 겁니다.

인생은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두드러지고,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지치고, 황폐해지고, 소모된 것처럼 느껴질 때 삶으 스스로 다시 에너지를 채워나갈 거라고 말할 겁니다.

삶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나 선택되고, 보존되고, 찾아지고, 암중모색하며, 잘못되고, 파괴적이고, 느려지는 모든 것에 맞선다고 말해줄 겁니다. (...)

나에게 남은 시간이 몇 초밖에 없다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어느 정도 말하고, 불필요한 찌꺼기와 독기를 싹 쓸어버린 다음, 문장을 정리하고 경험과 생각을 압축해서, 깨지기 쉽고 불확실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신뢰가 가는 법칙의 파편들을 구성할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주석을 달고, 계속 움질일 여지를 남길 겁니다. 그러고 나면 나는 거의 마지막에 도달해 있을 것입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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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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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섬세하고 담담한 문체가 빛나는 단편 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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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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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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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등을 쓴 일본 여성 작가 에쿠니 가오리의 2005년 단편 소설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가 리커버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열일곱 살 여고생들의 감정을 섬세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그녀낸 단편소설집으로 인상적이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의미를 규정할 수 없는 순간들과 소소한 경험들 속에서 자라나는 열일곱 살의 성장통을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일상적이면서도 세련된 화법으로 들려준다.

단편 소설집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여자 치한을 만나지만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해 불감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손가락>, 정신에 금이 간 단짝 친구 때문에 슬퍼하는 기억을 담은 <초록 고양이>, 비만인 몸에 대해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몰래 일기에 독약을 처방하는 <사탕일기> 등이 담겨 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첫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인 '손가락'에서 열입곱 살 여고생으로서 살아가는 기쿠코의 모습을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가는 에쿠니 가오리의 문장들이 눈길을 끈다. 교복이라는 동일한 의복을 입는다는 것이 개인의 생활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글에 공감을 느낀다.

"여자 고등학교는 참 이상하다. 마음이 편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서먹하다. 교복 탓인지도 모르겠다. 교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을 완벽하게 가려 준다. 학교 밖에서는 따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마치 한 집단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전철에서 자신을 만지던 40대 여성 치하루를 만나게 된 기쿠코는 그녀가 교실에 한 명 정도는 늘 있는 타입의 여고생 같다고 생각하며 친근함을 느낀다. 기쿠코는 남편과 별거 중인 치하루를 만나서 그녀의 집까지 따라가게 되고, 학교의 친구들보다 더 많은 공통점을 느낀다. 기쿠코는 치하루가 전철에서 자신을 만졌을 때 어렸을 때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거나 잠옷을 입혀 주었던 엄마 손의 감촉과 비슷한 정겨운 느낌을 받는다. 친절해서 사이좋은 부부로 알았던 부모님이 아빠가 전근을 가기 훨씬 전부터 각자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엄마가 낮에 우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아빠와 관계가 서먹해지며 엄마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는 딸 키쿠코는 엄마가 더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랬으며, 엄마의 더 깊은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불현듯,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꼈다. 그녀와 헤어져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끝난다는 것에. 나는 눈앞에 있는 고등학생들보다 그녀와 보다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에서 두 번째 단편 소설 <초록 고양이>는 정신이 무너져버린 친구 에미로 인해 슬퍼하는 기억을 담은 열입골 살 소녀 모에코의 이야기를 그렸다. 친구란 훨씬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러 명의 친구와 같이 어울려다니기 보다, 단짝 친구 에미와 가깝게 지내던 모에코는 에미의 정신병으로 인해서 에미가 반에서 외톨이가 되는 모습을 알게 된다. "둘이서만 붙어다니는 것은 건전하지 않다."며 모두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고 친구는 재산이기 때문에 많은 게 좋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모에코는 "'모두'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따돌릴 때 외에는."이라고 생각한다. "외톨이로 태어나 열대 우림 어딘가에 살고, 죽을 때까지 다른 생물과는 한 번도 만나지 않는" 보라색 눈의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에미의 말은 슬픔을 담고 있다. 학교 친구들이 다가오지 않으며, 원조 교제를 하는 '다카시 씨'라 불리는 여학생만이 에미를 피하지 않았다는 것은 같은 슬픔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모에코는 에미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며 친구들이 에미를 외톨이로 만드는 과정을 바라보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절대로 친구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비 오는 날 에미의 우산을 쓰고 오는 '다카시 씨'는 적어도 에미를 더럽다거나 세균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는 문장은 혼자라고 느껴지는 청소년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여 눈길을 끈다.

""나는 초록 고양이가 되고 싶어. 다시 태어나면."

보라색 눈의 초록 고양이, 라고 말하고 에미는 꿈을 꾸듯 미소 지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그 생각만 했다고 한다.

"그 고양이는 외톨이로 태어나 열대 우림 어딘가에 살고, 죽을 때까지 다른 생물과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아."

에미는 열대 우림을 어떤 류의 숲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세 번째 단편소설인 '천국의 맛'은 쇼핑을 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는 엄마의 공허한 삶을 바라보는 열입곱 살 딸 유즈의 이야기를 담았다. 성장할 시간이 많은 자신과는 달리 엄마의 불행을 느끼며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슬픔을 이해하는 유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아주아주 슬픈 일이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에서 네 번째 단편소설 <사탕일기> 비만인 몸에 대해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몰래 일기에 독약을 처방하는 열입곱 살 '카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여름에 너 같은 녀석이 옆에 있으면 정말 숨이 턱 막힐 것 같다."라고 말하는 카나의 아빠, "여자 씨름꾼도 아니고, 조금은 신경을 써야지."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무심한 말들은 카나가 사탕일기로 독약을 처방하게 만든다.

"사탕은 독약. 지금은 그저 수첩에다 달아 놓을 뿐이지만.

파란 사탕은 가벼운 독, 가벼운 벌을 주기 위한 것이니까 아마도 미미한 두통과 구역질 정도. 검정 사탕은 독한 독, 죽음에 이르는 독이다. 지금까지 사탕일기를 쓰면서 몇 명이나 독살했는지 모른다. 한 명을 몇 번이나 죽인 적도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일단 죽은 후에 다시 산다.

그 말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일단 파괴한다는 것. 나 자신은 물론 주위까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아 버렸다. 파괴하면 돌아갈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여름휴가 때나 설날 때나 홀로 아파트에서 지내고, 아르바이트하는 여고생에게 친구 대접 이나 받는 오니시 씨처럼.

여행은 파괴의 결과이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의 다섯 번째 단편소설 <비, 오이, 녹차>는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며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서른 여섯 살 시토 이모와 열입곱 살 조카 유코의 이야기를 담았다. <비, 오이, 녹차>는 비 오는 날과 찻주전자에 끓인 녹차, 싱그럽고 엷은 초록의 색을 띠고 언제나 냉장고에 있는 오이라는 세 가지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제목이 흥미롭다. 특히 <비, 오이, 녹차>는 이모와 조카의 관점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이 눈길을 끈다.

"독신 생활이 자유롭고 편하기는 한데, 한 가지 곤란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가출할 수 없다는 것.

“그렇잖아, 내가 가출을 해 봐, 그건 절대 가출일 수 없잖아. 돌아오면 여행인 거고, 돌아오지 않으면 이사잖아.”

이모는 가능성의 문제라고 말한다.(중략)

“내가 실종 신고 해 줄게. 그러니까 이모도 가출할 수 있어.”

이모가 정말 어린애처럼 가출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래도 만약 가출을 하면 실종 신고를 하고 찾아내면 데리러 가 주리라.

이모가 말한 대로, 그것은 가능성의 문제다."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에서 여섯 번째 단편소설 <머리빗과 사인펜>은 '다카노 씨'로 불리며 원조교제를 하는 열일곱 살 '다카노 미요'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요의 가방에는 머리빗과 사이펜 뭉치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머리빗과 사인펜>에서 자신에게 아무도 다가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미요의 담담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인상적이다.

""다들 나를 다카노 씨라고 불러."

언젠가 미요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거리감이 있는 거겠지."

라는 말도.

"사실은 아무도 내게, 다가올 수가 없는 거겠지.""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는 열입곱 살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어른들에게, 열입곱을 지나가고 있는 소녀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만의 독특하고 섬세한 문체가 인상적인 단편소설집으로 흥미롭다. 날카로운 감정들을 모두 포착해내는 청소년이라는 시기를 통과하는 소녀들이 담담한 마음으로 학교와 일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여섯 편의 단편소설들은 각 단편 소설마다 교실 속 아이들이 각가 주인공이 되어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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