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거는 영화들 - '조커'에서 '미나리'까지 생각을 넓히는 영화 읽기 생각하는 10대
라제기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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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을 거는 영화들>의 저자인 영화 전문 기자 라제기는 24편의 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영화 읽기'의 세계로 친절히 안내한다. 저자는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의 단편을 파고들어 예리하게 읽어내며 독자에게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자신이 본 영화로 생각의 영역을 조금 더 넓힐 수 있다면 영화 관람은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평생을 살아도 갈 수 없는 나라를 영화로 만나 볼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신나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요? 영화 한 편으로 우리가 몰랐던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관람이 되지 않을까요?

이 책이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은 1부 자아찾기에서 '아이 엠 우먼, 톰보이, 주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2부 갈등과 화해에서 '미나리, 우리 집, 에이브의 쿠킹 다이어리, 어디 갔어 버나뎃, 리틀 큐, 포드 VS 페라리', 3부 고발에서 '글로리아를 위하여,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조커, 어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4부 한국사에서 '남산의 부장들, 나랏말싸미, 자산어보, 강철비 2: 정상회담', 5부 미래에서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서복, 테넷, 승리호'라는 24편의 영화에 관한 저자의 깊이 있는 글을 주제별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라는 영화에 대해 '삶을 연기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글이 흥미롭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누군가에 대한 진실을 쉽게 알기 어려우며, 아무리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봐도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고, 숨겨진 진심은 금방 알아채기 힘들다고 말한다. 저자는 누군가의 진심과 진실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우리는 때와 장소에 따라 생활 속의 '적절한 연기'를 하면 오해에서 비롯되는 충돌을 막을 수 있고, 서로 화해할 실마리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파비안느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닙니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사람이지요. 연기에만 집착하는 냉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주변 사람을 무조건 품어 안는 천사도 아닙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고, 때로는 은근슬쩍 주변 사람 눈치를 보기도 하며, 표현은 안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 않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오해와 왜곡된 기억이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저자는 영화 <조커>를 통해 '악인은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선보여 인상적이다. 저자는 영화 <조커>는 진정한 가치가 전복되고 약자만이 고통받는 사회라면 조커 같은 인물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실제로 나타나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조커를 추앙하는 사회의 등장을 우리가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질문하는 영화<조커>의 의미에 대해 독자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구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는 세계에서 약자는 또 다른 약자를 착취합니다. 아서는 동료의 농간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유명 코미디언 머레이는 아서를 자신의 코미디 쇼 시청률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만 취급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아서는 무료 정신 상담을 받지 못하고, 우울증 관련 약고 처방받을 수 없게 됩니다.

광대 분장도 지우지 못한 아서는 지하철 안에서 자신에게 시비를 건 패거리에게 얻어맞다 그들을 총으로 쏘고 마는데, 이 사건 후 그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합니다. 광대 복장을 한 남성이 기득권층인 금융 회사 직원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대중은 그를 영웅시합니다. 아서는 자신이 코미디언으로 세상을 웃기려 할 땐 정작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광대 복장을 한 채 사람들을 죽이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하지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저 위 어딘가에 있는 삶의 가치를 좇기보다, 삶의 의미를 좀 더 쉽게 찾을 다른 방법을 그는 조금씩 인식합니다.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듯 악행을 저지르다 보면 사람들이 그의 존재 가치를 더 잘 알아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아서는 점차 무차별적인 악인이 되어 가고, 시민들도 그를 따라 광대 가면을 쓴 채 거리에서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또 다른 내가 나타나다'라는 제목의 영화 <어스>의 글을 통해 도플갱어 가족이 무엇을 상징하며, 또 다른 내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여 눈길을 끈다. 영화 <어스>가 주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와 '우리'를 항상 돌아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언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붕되될지 모른다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이 영화는 '인터넷 시대의 우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표현된 지하 세계는 인터넷 세상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온라인 속 우리의 모습이라 해석할 수 있지요. 즉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각종 커뮤니티가 생기고, 소셜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사람들은 그 안에 각자의 분신(아바타)을 하나씩 만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신은 결국 우리와 별개의 존재로 볼 수 없습니다. 온라인상의 분신이 현실 속 나와 구별된다 해도 사람들은 온라인 속 모습까지 모두 고려해 나를 판별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람이 오프라인상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막말을 온라인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던졌을 때, 사람들은 오프라인상에서의 행실만을 따져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상에서의 막말이 만들어 낸 파장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묻지요."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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