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맺힌 말들 - 각자의 역사를 거쳐 가슴에 콕 박힌 서툴지만 마땅한 마음의 낱말들
박혜연 지음 / 아몬드 / 2021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맺힌 말들>은 사람의 마음을 과학자의 자세로 탐구하는 심리학자이자 사람 사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심리상담가 박혜연이 발견한 일과 관계, 삶을 관통하는 24가지 낱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심리 에세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내담자와 이야기를 나눈 대목도 등장하고, 우리가 흔히 쓰는 말 또는 단어에 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내용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누군가의 마음에 맺혀 있던 낱말들을 단서로 그 마음의 실체를 따라가보는 여정을 통해 많은 마음이 어느새 형태를 갖추어 실체가 되고, 그 마음을 서로 정확하게 주고 받는 날들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우리가 늘 쓰는 어떤 말들이 마땅한 마음을 담아낼 때의 이야기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이 때로는 흥미진진했고 자주 가슴이 묵직해져서 숨을 골라야 했다. 내가 가려 뽑은 이 말들이 이제는 제각각의 마음에 가닿아 새로운 의미로 맺히기를 바란다."
이 책은 '1장 일의 말들, 2장 관계의 말들, 3장 살아가는 말들, 4장 때론 폭력의 말들'이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꿈이라는 것의 정말 아이러니한 점은 포기할 때 비로소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떤 꿈은 포기한 후에야 비로소 가까워진다. '내가 포기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은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의 일부이며, 그 답을 찾은 사람의 꿈은 다만 변주될 뿐 포기할 일이 없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우리가 애타게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을 원하는 마음 자체이지, 그 '무엇'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두려운 것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까 봐서가 아니라 끝내 원하지 않게 될까 봐서가 아닐까?
"포기는 할 수 없이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신중하게 내리는 결정이어야 한다. 내가 가진 것 중 어떤 것을 골라내서 인제 그만 버릴지를 정하는 중요한 결정이어야 하고, 여태 품고 있던 꿈이라는 이름의 어떤 뜻을 깊이 들여다보기로 마음먹는 용감한 결정이어야 한다. 꿈을 목적어로 하는 문장을 '포기한다', 즉 내던져버리고 그만둔다는 서술어로 마치는 사람의 마음은 아마도 무엇을 결정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고단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나 지쳐 있을 땐 '포기'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기로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상담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상담은 '깊은 대화'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적절히 질문하고 잘 알아들어 점점 더 본질에 가까워지는 대화, 본질을 묻고자 하는 질문은 서툴러도 한마디 낭비가 없으며, 본질을 전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질문도 허투루 듣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상담을 할 때, 본질을 궁금해하기, 그래서 상대의 마음은 살펴보고 알아봐주기, 그리고 질문의 이유나 목적을 되물을 때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대화를 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는 인연이라는 낱말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며, 애써 '관계의 지속'의 형태를 한 가지로 한정시키지 않는다면, 혹여 한 시절 엇갈리더라도 그 시절의 인연이 다른 시절에 만나 다른 모양새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 흐르듯이 살다 보면 한때 지극한 마음으로 맺었던 인연도 자연히 멀어질 수 있는 것이고, 한 시절이 끝나면 당시에 맺은 인연이 끝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삶을 대하는 너그러운 태도가 될 것이다.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이니까 '인'이 사람을 뜻할 것 같지만 뜻밖에 '말미암다', '원인이나 계기로 되다'라는 뜻이다. 즉 인연이란 어떤 이유로 말미암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유가 있어서 이루어진다는 뜻을 내포한다. 우연히 절로 그래진 건 줄 알고 있었지만 실은 어떤 이유로 인해 말미암은 것일 수도 있는 관계들을 생각해보자니 마음이 사뭇 진지해진다."
저자는 '괜찮지 않아요.'라고 말하던 내담자의 외로운 민낯을 발견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괜찮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괜찮다는 것은 실속이 없지 않고 보통 이상으로 좋다는 뜻으로 아주 좋은 것까지는 아니어도 별로 나쁘지 않고 탈이나 이상이 없다는 것,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아주 좋아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말하며 좋은 마음의 표현을 아끼고, 나쁘거나 힘들어도 굳이 들키거나 드러내지 않고자 괜찮다고 말하는 우리들에게 '괜찮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공명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괜찮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괜찮지 않다는 말은 그렇지 않다. 괜찮지 않음을 얘기한다고 해서 곧 괜찮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서로의 스치는, 잠깐이나마 겹치는 마음을 느끼는 것... 살아가는 중 우리의 괜찮음은 어떠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내가 괜찮지 않을 때 누군가와 잠시라도 깊은 마음을 나누고 공명하는 것. 그 잠깐의 시간이 실은 괜찮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공감보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겠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 고통을, 슬픔을, 분노를 존중하는 것, 내가 앞어 느끼거나 똑같이 혹은 더 깊이 느끼기보다 다만 받아들이고 지켜봐주는 것이다. 그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굴곡, 그 흐름을 살펴보며 기다려주고 때로는 도움을 필요할 때는 살펴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그것이 기꺼이 공감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타적인 공감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몇 년 동안이나 똑같이 따라서 느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유가족, 생존자, 직업을 잃은 사람, 크고 작은 일상의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 앞에서 정확하고 뜨겁게 같은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그의 관점에서 인식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하여 위로를 시도하고, 함께 할 방법을 생각하며 곁에 있어 주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따뜻한 무관심'이나 '무심한 배려'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누군가에게 '언제까지 슬퍼해야 하냐,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따져 묻지 않을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는 어떤 시도나 하고픈 마음을 품는 것도 자격을 따지는 엄격함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할 때조차 자격을 부여한다. 하지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자격을 가늠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고, 나 자신에게 특히 그렇다. 저자는 잘한 게 없어서 속상하거나 아쉬워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들이 소중한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허락받지 못한 감정들이 있다.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그 감정의 정체와 이유를 알게 되기도 전에 말이다. 네가 느끼는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고, 그렇게 느끼는 게 마땅하지 않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쓸데없는 짓 그만두라고 하는 말들로 부정당한 감정들이 있다. 감정을 허락하지 않고 부정한 사람은 부모이기도 하고, 형제이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나 자신이 된다. 그런데 대체 그 감정들은 어디로 갔을까."
책 <맺힌 말들>은 우리들이 흔히 쓰는 마음의 말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고 있고, 삶의 역사가 되며, 그 말들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각자의 역사를 거쳐 가슴에 콕 박힌 서툴지만 마땅한 마음의 낱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말이 지닌 온기의 힘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