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저택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육식저택>은 일본의 호러 소설 대상과 SF 성운상을 수상한 <앨리스 죽이기>의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가 들려주는 SF,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의 기묘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오사카 대학 대학원 기초 공학 연구 과정을 거쳐 유명 전자 제품 업체의 신소재 연구 개발자로 근무했던 우수 인재였던 고바야시 야스미는 뻔하지 않는 이야기를 창조하는데 재능을 지닌 소설가다. <육식저택>은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초기 작품집으로서 그의 날것 같은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으며, 여러 장르의 소설 잡지에 게재된 단편들을 모은 책으로 흥미롭다.



이 책의 타이틀이자 첫 번째 작품인 <육식저택>은 지루할 정도로 한가로운 지방의 면사무소 환경과 공무원이 어느 날 뒷산에 불법 폐기물이 방치되었다는 민원을 받고 현장으로 발길을 옮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방치된 트럭을 발견한 그는 그 산의 주인이자 부근에 살고 있는 오도라는 사람의 저택을 방문하고, 살아 있는 생명같이 느껴지는 기괴한 분위기에 집을 발견한다. <육식저택>은 괴수를 테마로 한 작품으로 예상치 못한 반전의 결과를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초인종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고 문 옆을 살펴보던 중, 이상한 모양의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벽의 일부가 튀어나와서 인간의 귓불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것의 색은 벽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칙칙한 타르의 색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반쯤 열린 입술이 있었다. 그 입술의 벌어진 틈 사이로 시커먼 이빨과 혀가 보였다. 치열은 엉망이라 이중으로 되어 있거나 비스듬하게 자라 있었다. 그 이빨을 덮고 있는 입술에는 무수히 많은 균열이 있었다."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인 <정크>는 지구가 아닌 은하계 저편의 어느 행성에서 벌어지는 서부극 같은 작품이다. 기계와 생명체의 구별이 없는 이 세계에서는 신체와 장기를 기계처럼 교체하고 정비할 수 있다. <정크>는 '언데드'를 테마로 한 작품으로 서부극을 배경으로 하여 눈길을 끈다.

"나는 짐수레를 푼 다음 고삐를 당겨서 인조마를 걷게 했다. 씰룩씰룩하고 몸이 묘하게 흔들렸다. 겨드랑이 근육이 끊어져서 균형을 잃게 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조금 전에 비틀어진 오른쪽 앞다리가 심상치 않았다. 첫째 관절이 어긋나 버린 것 같았다. 인조마의 다리 관절은 다섯 개도 넘게 있어서 마치 채찍처럼 휘어져 있었다. 어긋난 부분은 흔들흔들하면서 걸을 때마다 마른 지면에 쓸려서 표면의 보호막이 긁혀 체액이 흘렀다. 건들건들한 탓에 지탱을 하지 못한 채 몸의 다른 부분의 근육에도 부담을 주고 있었다."

이 책의 세 번째 단편 <아내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는 구애를 테마로 한 작품으로, 기억 혼란을 겪고 있는 한 남자의 독백 같은 편지 속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내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는 읽어가는 동안 결말에 대한 놀라운 비밀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책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신선하고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던 젊었을 때의 나는 이제 없어. 지치고 낡아서 기억과 감정뿐 아니라 말투까지 서서히 어눌해지는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잖아."

"여러 가지 치료를 하면 몇 년 더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려면 다소의 고통을 겪어야 해. 만약 내가 젊었다면 고통을 견디며 치료를 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가치를 못 느껴. 인생의 마지막을 안락한 5년간으로 할까, 아니면 고통에 찬 10년간으로 할까 묻는다면 답은 명확하잖아."

"진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행복은 자신의 '믿음'에 달린 것이니까. 인생의 가치는 즉 '믿음'의 가치야.

나는 겨우 깨달았어. 그동안 현실 속의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야.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면 안 되었지. 사람은 훌륭한 '믿음'을 가져야 비로소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거잖아."

이 책의 마지막 단편 <짐승의 기억>은 다중 인격의 주인공이 겪는 섬짓한 경험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서스펜스 사이코 스릴러로 흥미롭다. 작가는 다중 인격이라는 소재를 비틀어 결말이 아닌 처음부터 '다중 인격물'로 선언하여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눈 안쪽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고통은 나를 억지로 각성의 세계로 끌어내려 했다. 나는 어떻게든 버티면서 포근한 수면의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몇 초 후에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고통은 무시하고 견디기엔 너무 강했고, 정신을 잃기엔 너무 약했다."

"아무래도 인격의 변환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만 잠재의식을 공유하고 있어서 행동이나 기억의 연속성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혹은 모두의 시야 속에 존재하는 맹점이라, 아무도 인식 못 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뇌 속의 기억 시스템이 잘린 기억의 절단면 사이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가짜 기억으로 보완해 주는지도 모른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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