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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관하여 ㅣ 그래도봄 플라워 에디션 2
오희승 지음 / 그래도봄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는 아픈 몸과 상처, 돌봄에 관한 사려 깊고 따뜻한 공감의 말들을 담은 에세이다. 이 책의 저자 오승은은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희귀병과 퇴행성 고관절염이라는 상대적으로 흔한 병 사이에서 불편함과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인내와 침묵만이 미덕이라고 여겼기에 말할 수도 내색할 수도 없었던, 질병의 낙인과 완벽한 몰이해 속에서 살아온 비참함과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던 여성이다.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경계에서 부유하는 삶을 살아온 저자는 자신의 몸과 상처에 대하여,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불편함과 통증 사이를, 균형 잡힌 시선과 공감의 태도로 서른여섯 편의 글을 써 내려갔다. 저자는 질병과 아픔으로 가득한 삶을 어떻게 정의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고통 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독과 칼 같던 생각을 가다듬어 다정한 언어로 이 책에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기를, 다른 병이라도 아픔을 관통하는 길에 동료가 있다고 느낄 수 있기를, 또, 가족과 친구, 아끼는 이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서로의 개별성과 다양성, 병의 여러 다른 양상들, 환자의 사회적 위치 등등 여러 차이 때문에 이야기를 하나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야 다채로운 언어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나의 이야기도 독자의 가슴에서는 각자의 이야기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이 책은 '1장 나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다, 2장 사람답게 사는, 그 어려운 일에 대하여, 3장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 4장 몸은 상처를 기억한다, 5장 나를 깊이 껴안다'라는 5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병명은 자신이 가진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한다. 밖으로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숨은 증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은 분명 실체는 있으나 환자의 언어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저자는 고통 자체도 괴롭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증상을 설명하는 일 역시 가혹한 시련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절대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병명은 개인의 증상이 사회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첫걸음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병명을 알게 되자, 막연히 불안했던 증상들을 통합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치료법이 없고, 점진적으로는 악화되기만 하는 병을 이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것들을 정의할 언어가 필요하다. 나 자신조차도 의심했던 몸의 증상과 통증을 타인도 인정한 언어로 확인받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정도의 '사소한' 고통과 불편을 말해도 될까? 수없이 망설였지만,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로 인한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 이 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대화를 나눌 장을 찾은 것이다."
저자는 객관적으로 비슷하다 여기는 정도의 통증을 겪고 있더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육체노동을 얼마나 하는지, 휴식을 충분히 취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지, 건강 관리를 할 경제적 여건이 되는지, 주거 환경과 근무 환경이 어떤지, 나이대가 어떻게 되는지 등 무수히 다른 조건들이 있고, 그에 따라 통증을 느끼는 정도도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통증은 겉에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타인을 납득시키기 힘들고, 환자 본인도 1부터 10이라는 단계 중 어디라고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저자의 글을 보며 통증의 객관화가 가능한가에 대해 질문해본다. 자신이 느끼는 아픔이 대수롭지 않다고 스스로 축소하면서 계속 참게 되었다는 저자의 글은 타인이 느끼는 질병의 통증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 "얼마나 아파야 진짜로 아픈 것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내가 느끼는 통증에 '진짜로'라는 표현을 덧대고 쭈뼛거릴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그대는 어느 정도 아파야 남들에게 말할 정도의 고통인지 눈치를 보았다. 항상 아픈데, 어느 정도로 통증 수치가 올라가야 말할 자격이 있을까? 어떻게 표현해야 내 상태를 알릴 수 있을까? 통증은 구체화하기 어렵고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기는 더 힘들었다."
저자는 입원 기간 동안, 길게는 수개월 이어진 재활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마음의 휴가를 떠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긴 재활 기간, 불편한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무작정 쉴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으며, 아주 오래 육아에만 몰입했던 삶에서 벗어나 다른 풍경을 보게 된 시기였다고 이야기한다. 입원 기간 동안 건강해진 몸으로 생의 온 감각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온전히 느끼고 싶어했던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몸의 고통으로 인한 수술과 입원을 통해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기묘하게 행복했다. 주변에 해야 할 일들이 널려 있지 않은 공간, 남들이 다 알아서 치워주고 먹을 것을 차려주는 생활은 여행과도 비슷했다. 운 좋게 창가자리를 차지해서 매일 밤 야경을 보기도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좋은 점만 보려고 했다. 모든 걱정을 차단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누워서 걱정만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저자는 사람들은 몸이 아픈 사람의 삶에도 고통과 즐거움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쉽게 간과한다고 말한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조금씩 아픈 부분을 끌어안고 사는 것처럼 환자도 아픈 몸으로 즐거움을 찾아다닐 수 있다. 아픈 사람도 여느 건강한 사람들과 똑같이 자신의 몸을 돌보는 걸 때때로 잊고 몸에 나쁜 습관에 빠지거나, 중독에 탐닉하기도 한다. 저자는 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건강에 유익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살지는 않으며 보통의 인간처럼 유쾌하고 명랑하다가도 비탄에 빠지고 더러는 어리석은 짓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픈 사람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으로 적당히 살고싶다는 저자의 소박한 바람이 눈길을 끈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드문 것처럼 환자에게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병의 종류와 각자가 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단 환자라는 이름을 붙여 납작하게 한 면만을 바라보고 환자다울 것을 요구한다. 환자답기를 바라는 요구에 정형화된 규칙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보는 사람 눈에 아픈 사람이 너무 튀지 않는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저자는 통증으로 시달리며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잃어버렸던 순간들을 말한다. 저자는 고통의 순간들에 해결책이 아닌 그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과 자신이 아픈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온 존재로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몸과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매일매일, 수년간 누적된 시간 속에서 내 고통은 언어를 잃어버렸다. 내가 뱉는 말에 내가 질릴 정도로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는 어느 순간 원망과 짜증, 비난이 섞여 있었다. 이해를 바라며 시작한 말이지만, 상대에게 가닿는 언어는 이미 그 의도와 기능을 잃어버렸다. 언어를 잃어버린 소리는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그저 시끄러운 아우성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지긋지긋한 푸념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반향으로만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듣고 싶었다.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듣고 있다는 것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저자는 고통의 크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다움을 잃는 과정에 더 큰 어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저자는 몸 상태가 변하고, 조금씩 불편함이 더해지고 통증의 강도가 심해질 때의 소외감과 고립감은 더 괴로웠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고통에 처한 사람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변에 돌봄을 맡은 사람이 있다면, 종종 힘들어하고 때로 미흡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탓하고 지적하기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고 부족한 점은 도와주기를 조언한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주변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끊임없이 자신의 문제를 토로하고 좁은 세계 안에 갇힌다. 나도 정답을 알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사실 정답을 볼 수가 없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상황이 조금만 나아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고통과의 관계는 중독과 같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사고의 방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을 붙잡고 같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저자는 흉터는 몸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에서 절박했던 순간에 느꼈던 생생한 감정, 아픔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했던 환희의 순간을 잊지 말라고 그 자리에 남아 속삭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몸이라는 영토는 세상의 일부이자 자신에게는 온 우주이며, 자신이 겪은 고통과 슬픔 뿐 아니라 기쁨과 깨달음, 되고 싶은 나와 이루어지지 않을 꿈 사이에서의 좌절, 어쩌지 못하는 현실의 갈등 속에서 가까스로 타협을 본 필사적인 몸부림이 담겨 있다고 이야기한다.
"수술 자국에 시선이 자꾸만 머무는 이유는 그 자리에 내가 웃고 울었던 시간들이 하나의 증표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흉터의 사전적인 정의는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이다. 그곳에는 손상과 치유의 역사가 함께 존재한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몸의 은밀한 곳에 남은 흉터는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와도 같다. 또 흐릿해진 오래된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이 시각화되어 되살아나는 시작점이다."
저자는 아름다움은 결국 잘 살아남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누리고 싶다는 저자의 글은 아름다움을 단지 외적인 미가 아니라,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한다.
"내가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이유는 객체가 되어 미를 평가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예전에는 몸의 결핍을 가리거나 채우기 위해서였다면 요즈음은 사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고 편하다.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버전의 내가 되고 싶은 것, 딱 그 정도의 욕망으로 가라앉았다. 세상의 기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몸을 성적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그것을 벗어났을 대의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아름답고 싶으면서 동시에 사라지고 싶은 두 욕망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공통점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질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것, 그들에게 내쳐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 욕망은 생존의 욕구와 닿아 있다."
저자는 존재할 가치가 있음을, 살아 있음을, 욕망을 드러내도 괜찮은 자리에서 존재 자체로 환대받는 경험은 관능을 피어나게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나와 공감할 수 있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확장할 때에야 존재의 안정감을 나눌 수 있으며, 외부 세계와 내 감정을 나누고 관계를 학장 할 때 나라는 존재의 자리를 만들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획득하고 싶은 삶의 관능은 나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온전히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확신과 안전한 느낌을 발판으로 생겨나는 힘이었다. 관능을 되찾기 위해서, 또 다정함을 갈구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나를 바라볼수록 더 깊은 심연에 빠졌다. 나는 그리 고정적이고 일관된 사람이 아니었다. 어제의 나, 며칠 전의 나, 몇 년 전의 내가 생경할 때가 있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의 '참모습'을 찾으려 했던 것만큼 덧없는 일이 없었다. 나만 달라지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조언은 절반만 맞았다. 나를 받아들여주는 세상을 찾아야 나도 바뀌는 것이다."
몸의 고통이 주는 내면의 뭉쳐 있는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과정은 치유의 시작이다. <적절한 고통의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는 질병과 아픔, 이해받지 못하는 불편함에 대한 시선과 감정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질병이 주는 고통의 언어를 제대로 말하기 힘들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이해의 글들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