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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2월
평점 :

<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는 매 시절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서정 시인 문태준이 접한 부드러운 자연과 고유한 사물, 생명과의 교감에서 길어 올림 샘물 같은 사유를 엮은 에세이다. 문태준 시인의 이번 산문은 이야기의 정서에 꼭 맞는 시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독자에게 산문의 따스한 감각과 함께 시적 상상력을 한껏 선물한다. 문태준 시인이 써 내려간 진실한 깨달음은 시와 어우러지며 여태 몰랐던 색깔로 아름답게 빛난다.
"그러나 문장이 올 때 이 세상에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장은 개개의 사물과 사람과 생명이 고유하게 간직한, 꺼지지 않는 빛을 발견하는 일인 까닭이다. 그리고 그 빛은 나에게는 물론, 우리 모두에게 스며들어 활동한다. 이번 산문집에 실린 문장들은 책을 통해, 관계의 경험을 통해 수업한 것들이다."

문태준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은 매번 새롭고 두려우며, 차갑고 외롭고 고통이 있다고 말한다. 문태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된 지도 25년이 지났지만, 시의 첫말을 내기는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문태준 시인은 시를 짓는 이유가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전한다. 시인이 보고 듣고 살던 삶으로부터 비탄처럼 태어난 시의 첫 문장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문태준 시인의 글에 공감한다.
"나는 시가 만들어지는 그 경과보다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 어떤 시적 기미를 알아채는 일에 더 마음을 사용한다. 그래서 날마다 시를 읽고, 음악을 옷처럼 두르고, 세계에 질문을 하고, 미술과 영화와 사진을 만나고, 생활의 시장에 가고, 홀로 단순한 시간에 오두막처럼 앉고, 하나의 생각이 걷는 미로를 따라간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의 시는 생명 세계의 살림에서 태어난 노래에 가깝다고 말한다. 부드러운 자연과 공유의 생명 세계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한 편의 좋은 시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관계를 경험하고 관계를 사유하는 좋은 시는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는 문태준 시인의 글이 눈길을 끈다.
"자연의 세계는, 자연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유연함과 공유의 세계이다. 삶의 가치와 처지를 함께 나눈다. 다른 사람에게 모자람이 생기면 내가 소유한 것에서 덜어주고, 내 손을 보탠다. 험담과 뒷말이 적고, 고통과 기쁨의 시간을 함께하고, 선의로 보살핀다. 여지도 많다. 이익의 독접을 바라지 않으며, 갈망을 접을 줄도 안다."
문태준 시인은 자신이 제주에 살면서 서너 번 찾은 제주도의 오름이 자신에게 평화의 시간을 안겨주었다고 말한다. 문태준 시인은 이성복 시인이 제주 오름을 마주한 때의 감회를 쓴 글을 소개하며, 도도록하게 나온, 소복하게 솟은 하나의 오름처럼 우리 내면의 평화는 일렁거리고 찰랑거릴 뿐 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소박의 행복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문태준 시인의 글에서 특별하지 않는 보통의 시간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조급해하고, 조금은 의연한 척도 하면서, 딴청을 피우는 척도 하면서 산다면 말이다. 못나고도 촌스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잠깐씩 각별할 것 없는 평범한 때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소박한 행복의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문태준 시인은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인생에 비유하며 다채로운 시와 소설, 영화 등의 예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 책에서 문태준 시인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도시 오랑을 휩쓴 전염병 공포에 직면한 다양한 인간 군상과 동시에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그러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문태준 시인은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균의 함의에는 우리를 공포와 불행의 수렁에 몰아넣는 여러 가지 것들, 즉 전쟁과 폭력과 부조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이야기한다. 문태준 시인은 우리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서도 한 개인이 사회적인 몸이라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고통에 빠질 수 있는 이 공동체가 우리가 직접 가꾸어야 할 하나의 정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독적인 개인이지만 사회적인 관계 속에 있는 개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영향 관계에 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고달픔은 나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가 그릇되게 되면 다른 것들도 그릇되게 된다. 연기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비방하는 것은 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된다. 우리가 종교적인 차원의 자아가 될 때 고, 나의 행복과 동시에 다름 사람의 행복을 빌게 되는데, 이러한 기도에는 우리가 하나의 유기적 생명 공동체에 살고 또 선의로써 서로를 돕는 조력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문태준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매번 어렵고 언어는 아주 예민하다고 말한다. 문태준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시인도 극도로 예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문태준 시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자신만의 관심사를 잘 보호하고, 엄하게 다루고, 풍성하게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어는 금방 도마뱀처럼 달아나고, 깍아놓은 사과처럼 색감이 변한다. 그래서 시인은 늘 마음이 조금 고양된 상태에 있도록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다른 생활을 단순하게 해서 오직 시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냥불처럼 잠깐 점화된 생각을 수첩에 얼른 적어서 보관해야 하고 구상하고 있는 시를 마치 바지 주머니에 넣어다니듯이 늘 생각하며 마음에 지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도, 식당에서 밤을 먹을 때도, 잠들기 전에도 시에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시는 줄행랑을 쳐 도망가고 마는 까닭이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