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여섯 번째 시집 <야생 붓꽃>은 1992년에 출판되었으며, 시인에게 퓰리처상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협회상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으로 인상적이다. 또한 이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미 시를 가르치는 정은귀 교수가 번역 작업을 맡아 글릭의 시를 생생한 감성이 살아있는 한국어로 완성했다. 이처럼 시인 루이즈 글릭과 옮긴이가 치열하게, 오랫동안 소통한 끝에 한국 독자들도 글릭의 시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유일한 한국어 정본이 완성되었다.

<야생 붓꽃>에는 여러 층위의 화자가 등장하는데, 시인 루이즈 글릭이 서정시를 쓰는 예술가로서 얼마나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갖추었는지 확실하게 증명한다. 이 작품은 몽환적이면서도 인간 존재에 관한 예리한 관찰이 담겨있다.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다가 자신의 아픈 경험을 반추하는 그녀의 시적 화법은 '개인사'라는 한정된 틀을 벗어나 보편적 울림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정원을 배경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세 가지 목소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첫 번째는 정원사(시인)에게 말하는 꽃이고, 두 번째는 화자(시인)의 목소리이며, 세 번째는 전지전능한 신으로서의 목소리다. 사연, 신화, 민담, 개성을 담은 꽃을 등장시켜 인간의 감성과 특징을 함축한다. <야생 붓꽃>은 이러한 의인화의 시에서 얼마나 큰 힘과 울림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야생 붓꽃>은 삶과 희망, 존재의 영원한 순환에 대한 감각을 깨운다. 정원에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1년, 일시적이면서도 순환적이고, 그래서 영원한 생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를 연대하게 만드는 이 시집은 살아갈 용기, 깊은 희망, 존재로서의 정당함을 일깨운다. 생명의 영원한 본질인 '존재함을 누군가가 알아차려주는' 행위가 이 시집에서 이뤄진다.

여기에 시인 나희덕, 김소연, 문학평론가 신형철 교수가 한국 출간을 축하하며 각각의 책에 작품 해설을 수록했다. 세 문인의 글은 글릭의 시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광대수염꽃'이라는 시에서 "살아 있는 것들이 모두 똑같은 정도로 / 빛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우리 중 일부는 / 우리 자신의 빛을 만들어요: 아무도 다닐 수 없는 / 좁은 길 같은 은빛 이파리, 어둠 속 / 커다란 단풍나무들 아래 얕은 은빛 호수./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이걸 알지요. / 진리를 위해 산다고 생각하는, 나아가, / 차가운 모든 것을 사랑하는 / 당신과 그이들은."이라고 말한다. '당신 심장이 차가울 때 당신이 사는 법'이라며, '태양은 나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다'는 현대 문단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 루이즈 글릭의 언어는 온전히 꽃의 목소리를 구사한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눈풀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살아남을 줄 몰랐어요. / 대지가 나를 짓눌렀거든요. 내가 다시 깨어날 거라 / 예상하지 못했어요, 축축한 땅 속에서 / 다시 반응하는 내 몸을 느끼게 될 거라곤, / 그토록 긴 시간 흐른 후에 / 가장 이른 봄 / 차가운 빛 속에서 / 다시 나를 여는 법을 기억해 내리라고는-"이라고 말한다. 시 '눈풀꽃'은 고통과 비극 속에서도 희망의 이야기를 잃지 않은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물러가는 바람'이라는 시에서 "나 너희에게 모든 선물 다 주었지, / 봄날 아침의 푸르름, / 너희가 사용법을 몰랐던 시간을- / 너희는 더 원했지, 다른 창조물을 위해 / 아껴 두었던 그 하나의 선물까지. / 너희가 뭘 바랐든, /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들 사이에 / 너희의 자리는 없을 거야. / 너희들 삶은 식물들 삶처럼 순환하는 게 아니니:"라고 말한다. 이 시는 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며, 사랑으로 만들었지만 식물들처럼 자연의 본능대로 순환하지 않고 순수한 영혼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입구'라는 시에서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 이 유약함을 물리칠 준비를 하는 / 임박한 힘을 믿는 아이의 / 열렬한 확신과 함께, 때는 바로 / 꽃 피기 전, 그 통달의 시대 / 그 선물 나타나기 전, / 소유 이전."이라고 말한다. 이 시에서 먼저 가는 이들을 지켜보며 입구에서 서성이는 아이처럼 꽃 피기 전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는 루이즈 글릭의 시어가 인상적이다.

시인 루이즈 글릭은 '한여름'이라는 시에서 "너희들을 하나뿐인 독특한 존재로 / 만들려 한 건 아니었어. 너희들은 / 나의 화신이었지, 모든 다양함이었지 / 들판 너머로 밝은 하늘을 찾다가 / 너희들이 본다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 우연히 태어난 너희 영혼은 / 너희들을 확장한 어떤 것에 / 망원경처럼 고정되어 있어- / 내가 만약 그 상승하는 징표, / 별, 불, 분노에다 / 나 자신을 가두고자 한다면 / 내가 너희들을 왜 만들겠는가?"라고 말한다. 이 시에서 루이즈 글릭이 말하는 인간의 절망을 바라보는 신의 목소리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햇빛과 그늘, 습한 어둠, 메마른 열기를 원하는 인간, 서로 다투고 있는 인간이 천 가지 목소리들로 뒤얽힌 한 여름의 대기 속에서 외치는 필요의 목소리를 바라보는 신의 목소리는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야생 붓꽃>은 시인 루이즈 글릭이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시집으로, 삶과 희망을 깨닫게 해주는 그녀의 생생한 언어를 만나볼 수 있는 시집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청>은 첫 장편소설 <중앙역>을 비롯하여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불과 나의 자서전> 등 모두 7편의 소설책을 펴내며 한국문학에 새로운 색깔을 더하는 김혜진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임해수는 삼십 대 후반의 심리 상담 전문가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날 이후, 신뢰받는 상담사 임해수의 일상은 중단됐다. 내담자들에게 자신 있게 조언하던 임해수의 자리 역시 사라진다. 지금 해수가 있는 곳은 모욕의 한가운데. 세간의 구설에 오르며 대중의 비난과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차례로 이어진 퇴사 통보, 이별, 끝 모를 자기연민. 일과 삶의 세계로부터 모두 추방된 임해수의 삶은 캔슬컬처의 면면을 보여 준다. 그녀의 존재는 한순간 세상으로부터 '취소'당했기 때문이다.

 

<경청>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혼란에 잠겨 있는 임해수가 매일 밤 완성되지 못한 편지를 쓰는 장면과 그녀가 10살 소녀 '세이'를 만나면서 길고양이 '순무'를 구조하기 위한 일상이 교차되는 과정들이 인상적이다. 임해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들이 아니라 그녀가 기꺼이 삶을 공유한 이들이 간직한 말들, 그들이 감추고 있는 의구심과 안타까움들로 괴롭다. 이전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법을 잊었고, 과거의 자신을 잃은 임해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실했고 자신이 처한 삶과 화해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임해수는 순무를 구조하기 위한 장소에서 단 한순간도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다.

하지만 상담사였던 임해수는 완전한 침묵 안에서 언어가 생략된 순무와의 교감이 헤아림과 공감, 위로와 포용이라는 안도감을 준다는 것을 깨닫는다.

 

"끝없는 의미 찾기.

그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요?

상담사였을 때 그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그것이었다. 그렇게 질문하면 정신없이 이야기를 쏟아 내던 내담자들은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런 후엔 다급하게 찾아낸 의미들을 더듬거렸다. 그녀가 보기엔 확실하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이유들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대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의미들이란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해.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 내지 않는 의미가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허상을 좇는 것과 다름없는 의미 찾기 놀이를 그만둔 지 오래다.

결국 그녀는 순무를 돕겠다고 결심한다. 거기엔 어떤 의미도, 이유도 없다. 그런 걸 찾고 싶은 생각도 없다. 마음을 정하고 나자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동정, 연민, 연약하고 가여운 동물에게 느끼는 흔해빠진 감정.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자신이 안타까워하는 것이 순무를 사로잡는 고통인지, 그런 고통에 노출된 삶인지, 고통을 견뎌 온 지금까지의 시간인지, 얼마가 될지 모르는 앞으로의 시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이 순무에 대한 것인지, 자신에 대한 것인지, 그 둘이 뒤섞인 것인지도."

 

"말에 관해서라면 그녀는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녀는 말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해석하고, 설명하고, 반박하고, 동의하고, 고백하면서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한 말이 언제 탄생하고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임해수가 순수한 소녀 세이와 '순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불신과 두려움을 밀어내는 모습이 인간과 인간이 맞닿은 세계는 나이를 초월한 우정과 연대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장애물이 없다.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고 부드럽게 방향을 틀고 서로의 마음속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말들이 완강하게 닫힌 내면의 문을 열고, 서로의 내면 깊숙이 진입하고, 그 안에서 자신과 꼭 닮은 말을 길어 올린다.

꾸밈이 없는 말.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걸치지 않은 말. 의도도, 저의도, 악의도 없는 말. 한 번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 말. 아무런 빛깔도 모양도 부여받지 못한 채 지금껏 웅크리고 있던 말들."

 

임해수는 자살한 배우 박정기의 아내를 만나서 자신의 억울함과 해명을 선택하는 대신 침묵하고 경청한다. 임해수가 폐허같은 집에서 외부와 대적하며 쓰던 편지들이 폐기되고 진심을 담은 사과의 편지를 쓰는 행위로 변화하는 과정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삶의 태도가 자기 연민과 분노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식을 통한 선의를 믿는 힘이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말들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누른다.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는 그 말들이 철저히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것들은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결코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기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자신과 마주 앉은 저 여자가 그런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녀는 언어로만 이해하던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아프게 깨닫는다."

  

임해수는 세이 아버지에게 피구 경기 중 자신을 따돌리는 아이들을 향해 모래를 던지며 몸을 날린 세이가 사과하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임해수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일은 세이가 먼저 사과해야 해요. 이번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사과해야 한다고 말해 주세요. 사과하는 법을 알려 주세요.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세요.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이 책의 엔딩은 임해수가 세이를 집으로 초대하여 세이가 스스로 내면의 감춰둔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녀는 두 손으로 테이블 표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아이와 눈을 맞춘다. 언제, 어디서, 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보잘것없는 테이블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돌멩이와 나뭇가지. 그러니까 언제든 손가락을 갖다 대면 맥없이 무너져 버릴 것들을 다시 쌓아 올리기엔 더할 나위 없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스토리 - 박혜진 비평집
박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더스토리>는 2011년부터 현재까지 출판사 민음사에서 일해 온 문학 편집자이자, 2015년 '조선일보' 신출문예에 당선되며 비평 활동을 시작한 문학 평론가 박혜진의 첫 비평집니다. 박혜진은 누적 130만부가량 팔린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펴낸 편집자이자 월간 <릿터>의 편집장이며, 동시에 문학을 읽고 그 속으로 포착되는 의미들을 건져내는 비평가이다. 많은 비평가가 치열하게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을 정체성으로 삼아 살고 있지만, 더욱이 그에게 문학은 생업니다. 하나의 원고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편집자로서,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문학잡지를 기획하는 편집장으로서 그의 선택은 모두 생생한 문학비평의 연속이다. 시대를 비추는 소설을 펴내고, 순간의 화두를 담아내는 잡지를 만들며 문학과 삶을 떼지 않는 그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쓴 비평들을 모아 묶는다. 때문에 <언더스토리>에는 그가 편집자로서 감응했던 한 권의 책, 혹은 한 사람의 작가에 대한 비평가로서의 지지가 담겼다. 김혜진, 조남주, 배삼식, 서유미, 정용준 등 미더운 작가와 작품에 대해 박혜진은 예리한 독해와 더불어 다정한 믿음을 건넨다.

이 책에서 박혜진은 문학은 '언더스토리'라고 말한다. 박혜진은 인간사회도 식물들의 방식을 닮아서,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 공동체를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그 절실하고 애틋한 심층의 연결에서 이야기가 탄생하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향과 영양을 준다는 박혜진의 글에 공감한다. 박혜진은 이 책은 그늘진 중간층에서 생성되는 심층의 이야기에서 오늘의 문학을 찾는다고 말한다. 키워드는 모두 네 개로, 모두 인간, 자아, 사랑과 우울, 그리고 윤리이다.

"문학은 언더스토리다. 언더스토리는 하층식생 혹은 하목층을 가리키는 말로 숲 지붕과 숲 바닥 사이에 사는 생물을 뜻하는 산림학 용어다. 곰팡이나 이끼를 비롯해 어린 나무인 묘목이나 높이가 2미터 이내로 땅속에서부터 줄기가 갈라져 나오는 관목 같은 내음성 식물(그물에서 견디는 능력이 큰 식물)들이 언더스토리에 속한다. 태양빛의 상당 부분은 숲의 지붕에 해당하는 임관충 식물들이 받아먹기 때문에 중간층, 즉 언더스토리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은 늘 빛이 부족하다. 내게 있어 문학은 적은 빛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환대하는 집이다."

박혜진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소설에 관한 비평 제목으로 '다시 만난 인간: 스키어, 운전자, 알레스기 환자'라는 글을 썼다. 박혜진은 이 소설은 자연을 즐기거나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자연으로부터 영향 받는 존재를 만들어 냈다고 말한다. 동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처럼 느끼는 우울하고 미친 노파이자 '예언자'로 읽어야 할 것 같은 한 사람의 탄생이다.

"소설이 우울의 정조를 짙게 깔고 있다면 이때의 우울은 두셰이코의 멜랑콜리한 성정에서 기인한다. 부인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기에,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진실을 훨씬 예민하게 감각한다. 그러니까 토카르추크의 생태주의적 소설은 일단 두셰이코라는 희한한 인물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살인 사건은 그다음 문제다. 그 결과 두셰이코는 간혹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겐 세상을 느끼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있다는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관점과 감각이 총동원된 초인적인 캐릭터다. 스키어와 운전자, 그리고 알레르기 환자로 인간을 구분하는 이 소설은 자연을 즐기거나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자연을 예민하게 감각하고 자연으로부터 영향 받는 존재를 만들어 냈다."

"토카르추크의 소설을 읽는 내내 "인식의 문이 깨끗이 닦이면 모든 것이 무한히 드러난다."라는 블레이크의 시구절을 생각했다. 인식의 문이 닦이면 모든 것이, 그러니까 인간이 동물에게 행하는 가학적인 폭력들이 무한히 드러난다. 이 소설이 바로 그 인식의 문이다. 인간보다 약한 존재들과 연대하기 위해 점성학의 시점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시적 언어로 인간을 노래하는 어느 고독하고 우울한 노인의 예언서. 혹은 미래가 궁금한 '오늘'을 위해 펼쳐진 점괘. 믿을지 말지 고민할 시간이 없다. 신념이 능력을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박혜진은 진은영의 <가족>과 유계영의 <가족사진>은 절묘한 지점에서 상반된 방식으로 가족에 대한 감각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가족>이 비교적 익숙한 가족 서사 위에서 시상을 전개한다면 <가족사진>은 익숙한 가족 서사를 소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진은영의 <가족>에서 가족은 나를 포함하는 동시에 나를 배제하는 모순적인 구조물이므로, 나를 소유하면서, 그 소유로 인해 내가 소유되는 것을 보여준다. 박혜진은 가족은 변화하는 내 생장의 조건들을 따라오지 못하고, 그로 인해 '나'와 가족의 불일치는 점점 더 커지고, <가족>은 이 불일치를 통해 가족과 가부장으로 대변되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두드러지게 하는 시라고 이야기한다. 박혜진은 이에 반해 <가족사진>은 정물화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생명의 공간인 밖과 죽음의 공간인 안을 구분하고 안에서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개별 주체의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가족>과 구분되는 정적 이미지로 가득하다고 이야기한다.

"<가족>은 화분을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감정에 빗대어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갈등의 본질을 그러낸다. 시는 밖과 안을 대비하는 구조로 전개된다. 바깥은 꽃과 화분이 빛나고 아름답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의 공간인 데 반해 집은 아무리 환하고 예쁘던 꽃과 화분도 결국 시들어 버리는 죽음의 공간이다. 밖에서 좋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 집에 오면 밖에서 밖을 때만큼 좋아 보이지 않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인 조건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던 상태에서 나만의 소유가 되었다는 상태 변화에 있다.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누구의 것도 될 수 있는 열린 존재를 앞에 두고 있을 때 존재와 나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거리는 타자를 바라볼 수 있는 전제 조건이다. 거리가 있어야 나 아닌 존재의 다양한 측면을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긴다. 그러나 누군가의 소유가 되었을 때 거리는 위협받는다. 소유란 다름 아닌 포함 관계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거리는 공존할 수 없다. 거리가 존재할 때조차 소유 안에서 발생하는 거리라는 점에서, 그때 발생하는 거리와 이전의 거리는 같은 것일 수 없다. 거리가 존재하지 않을 때 서로 다른 두 개체는 불편하고 불안한 관계에 이르고, 서로 다른 두 개의 개체는 공존하기 위해 어느 한쪽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 예컨대 꽃과 화분이라면, 그들 각각의 존재 방식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의 방식으로 변화한다. 서로 다른 개체가 하나의 방식으로 정의될 때 발생하는 파괴, 화분의 죽음은 단지 물리적인 죽음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소유 관계와 그로 인한 거리의 소멸은 가족이라는 관계에 내재된 갈등의 본질을 관통한다."

박혜진은 임선우의 <유령의 마음으로>에서 유령은 '나'보다 '나'의 감정에 훨씬 더 충실하게 반응한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슬픔에 잠길 때면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고 기쁠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화가 날 일이 있으면 주인공은 내지 못하는 대신 화를 대신 냈다. 유령은 '나'와 분리된 '나'의 감정이라는 박혜진의 글이 인상적이다.

"타인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타인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한다. 타인으로 인해 무거워져야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정우에 대한 사랑이 소멸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픈 정우를 두고 변심했다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모든 것에 결별을 고하고 그를 떠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변심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변심했다는 사실일 주는 죄책감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 이전의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가벼웠을 것이다. 정우에게 묶여 있는 자신이 무겁다고 생각했을 테지만 사실은 정우와 결별하고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을 견디는 것이 무거운 일이다. '나'는 자신의 감정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자 비로소 자신과 만난다. 나와 정우의 결합이 해제되기 위해 '나'로부터 '나'의 감정의 분리되어야 했다. 유령의 존재를 통해 '나' 스스로는 꺼내지 못했던 마음이 밖으로 나온 것이다. 유령이라는 매개를 통해 '나'와 정우의 결별이 이루어진다. '나'는 이제 조금 더 살아 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정우의 상태에 동일시하고 있던 자신과도 결별할 수 있을 것이다."

박혜진은 고립과 불안정에서 비롯되는 비이성적인 공포와 입증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연쇄하는 가운데 지속되는 예감은 손보미 소설에서 마주하는 인간들의 모습이자 이따금 고개 드는 우리 내면의 모습이며 무엇보다 하얀색의 우울, 죽음에서 시작된 페가수스의 불안한 삶을 닮았다고 말한다.

"손보미가 그의 소설을 통해 누적하고 있는 특수한 감정들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그러나 아직은 명명되지 못한 감정들의 양태들이지만 여러 인물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감정 상태는 있다. 바로 우울이다. 요컨대 손보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읽는 일은 손보미 소설의 핵심을 지나는 일인 동시에 손보미 소설의 변화를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일시적인 기분 상태를 의미하는 슬픔과 구분되는 이들의 우울감은 미래에 대한 기분 나쁜 불안감으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은 생각이라기보다 비이성적 공포에 가깝다. 불행이라는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할 때, 불행이 한 사람에게 비치는 영향을 궁금해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손보미의 소설은 불행에 맞선 인생들의 조용한 방어전이다.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하는 감정들을 사후 해석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들여다보려고 한다."

박혜진은 양안다의 시집 <숲의 소실점을 향해>는 언어화할 수 없는 우울한 감정들이 시차를 두고 도착하는 절망의 돌림도래라고 말한다. 박혜진은 끝났는가 하면 다시 시작되고 시작되기 무섭게 끝나는 이 나날의 돌림노래는 우리 감정의 그림자를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고 이야기한다. 박혜진은 양안다의 시는 고통의 기원을 탐색하거나 원인을 찾으려고 골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양안다의 시에 등장하는 병증의 주체들은 그 병증을 인식하고 병의 끝까지 상상한다. 박혜진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때까지 밀고 나가므로 우리는 종종 더할 수 없이 자기 파괴적인 구절을 만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상상하는 소실점은 소실점 너머에 닿기 위한 시선이다라는 박혜진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실점은 멀리서 바라볼 때 평행한 두 직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것같이 보이는 점이다. 두 직선의 끝과 끝을 연장했을 때 만나면서 너머로 사라지는 지점이기도 하고 볼 수 있는 공간 중에서 가장 먼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만나지 않는 두 선이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실제로는 평행하지만 우리 눈에는 모든 선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리 눈이 원근법의 원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원근법에 따라 바라볼 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라짐의 공간이 생겨난다. 소실점이 만들어내는 끝의 공간, 사라짐의 공간, 이곳과 저곳을 연상시키는 환상의 공간은 양안다가 구축해내는 유일무이한 시적 공간이자 형용할 수 없는 재난 상태에 직면한 훼손된 마음의 공간이기도 한 바, <숲의 소실점을 향해>는 나날의 소실점에 대한 기록이라 하겠다."

박혜진은 박민정의 <미스 플라이트>는 한 여성의 죽음을 스캔들의 프레임으로 소비하려 드는 태도에 강력히 반하는 구조를 취한다고 말한다. <미스 플라이트>는 오명을 뒤집어쓴 여인의 미스터리한 죽음의 배후를 그녀가 살았던 삶의 이야기로 전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을 추구한다는 박혜진의 글에 공감한다. 박혜진은 박민정 작가는 우리에게 죽음의 소비자가 될 것인지 물으며, 이 질문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대의 폭력은 죽이지 않고 죽게 만든다는 박혜진의 글이 눈길을 끈다.

"죽은 사람은 쉽게 오해된다.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삶을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이 죽음의 시점을 기준으로 단일하고 평면적인 그것으로 납작해진다. 왜 죽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동안 놓치는 것들 중에는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누가 죽었는가.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는 그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것이 누구의 죽음이든 간에 소비되지 않아야 한다. 죽음을 소비한다는 건 피해자를 지우는 가장 전형적이고 비열한 가해의 논리가 되기 때문인데, 그것은 피해자를 한 번 더 죽이는 폭력이다."

문학비평이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소설가나 시인 못지 않게 자기만의 혜안으로 작품과 작가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책에서 박혜진은 이와 같은 문학비평가로서의 삶의 길을 날카로운 눈과 따스한 마음으로 걸어간 흔적의 글을 보여주어 인상적이다. 좋은 비평이란 작품의 뼛속까지 들여다보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진실한 이야기와 세계를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일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박혜진은 분명 좋은 비평가임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그곳에 : 세상 끝에 다녀오다
지미 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이용대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극한의 상황을 담은 사진의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만날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그곳에 : 세상 끝에 다녀오다
지미 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이용대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기, 그곳에: 세상 끝에 다녀오다>는 아카데미상 수상작 <프리 솔로>의 감독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 지미 친이 자신의 모험 사진 대표작을 엮어 출간한 사진집이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스키로 하강하는 모습, 요세미티 하프돔에서 베이스 점프하는 장면, 메루 봉의 주봉 샥스핀과 남극 대륙 울베타나 봉을 등정하는 모습 등 20여 년 동안 촬영해 온 경이로운 사진들을 한데 모았다. 전 세계 극지를 탐험하며 ‘세상의 끝’에서만 볼 수 있는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순간과 함께 그 장면을 기록한 투쟁에 가까운 촬영 현장의 뒷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리 솔로>의 주인공 알렉스 호놀드와 스키 등반가 키트 델로리에, 스노보더 트래비스 라이스, 등반가 콘래드 앵커와 이본 쉬나드 등 전설적인 모험가들과 함께한 극적인 도전의 여정도 만날 수 있다. 시선을 압도하는 사진들과 모험을 향한 거대한 투지와 열정, 극한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우정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경외감과 존경심을 일깨워 줄 것이다.

"나는 자연 세계와 그 안에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사진이 확장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나는 우리 지구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자리를 공유함으로써, 후대뿐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를 위해서도 그런 장소들을 보호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우리의 책임감이 커지기를 바랐다.

그러는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거친 장소로 나아가 남들이 감히 도전하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바친 '모험가'라는 또 하나의 가족을 찾아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등반자, 멘토가 되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키트 델로리에를 비롯하여 요세미티 공원의 엘캐피탄과 그 너머까지 프리 솔로로 등반하는 알렉스 호놀드에 이르기까지,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상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경험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굉장한 성공과 참담한 실패를 직접 목격한 뒤로 나 자신의 목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사진으로 담은 사람 모두가 오늘날의 내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미 친은 노스페이스 등반가 시더 라이트와 케빈 소를 따라가며 사진을 담은 말리 여행은 등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신이 처음으로 사진을 더 중시한 원정으였으며, 최고의 작업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사진을 얻는다고 말한다. 완벽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오면 가슴이 두근두근해지고, 때로는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화면 안에 있는 것을 그저 즐기고 싶은 마음에 셔터를 누르는 것조차 거의 잊는다는 지미 친의 글에 공감한다.

"우리가 오를 곳은 '파티마의 손'이라는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암질 타워가 모인 지형이다. 남부 사하라 깊은 곳에 서 있는 파티마의 손은 다섯 손가락이 하늘로 뻗은 모양을 하고 있다. 손가락은 각기 이슬람의 다섯 기둥인 신앙 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 순례를 상징한다."

"여행이 끝날 무렵 우리는 어떻게든 그곳의 타워를 모두 등반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여행이 거의 끝날 때쯤에야 마침내 원하는 사진을 얻어 냈다. 760미터 높이의 카가톤도 타워를 타고 오르는 시더와 케빈을 흥미로운 각도로 잡으려면 나 자신이 카가푸모리 타워 높은 곳에 자리 잡을 필요가 있었다. 사진의 스케일은 타워를 타는 두 사람으로 표현될 것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구도이므로 타워의 높이가 표현될 것이고, 배경에 들어오는 그림자가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보여 줄 것이다. 우리는 로프를 설치하고 석양에 맞춰 각자 자리를 잡기 위에 타워에 오르며 마지막 날을 보냈다."




지미 친은 요세미티 계곡은 자신의 삶에 세계 어느 곳의 풍경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지미 친은 요세미티 계곡 등반은 수직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을 길러 주고, 어떤 사람이든, 얼마나 등반을 잘하는 사람이든 그곳에서 등반하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한까지 넓히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필사적으로 요세미티 계곡 안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담아낸 지미 친의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0년 5월호에 출간되었고, 하프돔 위에 있는 알렉스 호놀드를 찍은 사진이 표지에 실렸다.

"2009년 가을, 나는 요세미티에서 등반 문화의 정신과 진화하는 등반의 최신 트렌드를 포착하는 작업을 맡아 진행하기 시작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위한 나의 첫 특집 사진 작업이었다. 나는 요세미티의 다른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고 싶었다. 출판 사진에서 세계 최고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사진 작가에게 특별한 짐을 지우는데, 바로 그 전통을 이어 가는 것이다. 이 잡지는 촬영을 위해 사진작가를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씩도 파견한다. 때로 사진작가가 오랫동안의 작업 끝에 돌아왔는데도 그 결과물이 퇴짜를 맞고 출판되지 않기도 한다. 이 사실은 내게 두려움을 주기도 했고 의욕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지미 친이 알렉스 호놀드와 영화 <프리 솔로>를 촬영한 이야기를 전하여 눈길을 끈다. 지미 친은 알렉스와 함께 줄을 타고 암변 위아래에서 그의 삶을 사진으로 찍고 영화로 촬영한 3년이라는 시간은, 2017년 6월 3일 새벽 그가 등반화를 신고 손에 초크 가루를 바르고 엘캐피탄에 착 달라붙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절정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760미터 높이에 매달려 있는 내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무게가 느껴졌다. 영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두 팔에도 부담이 느껴졌다. 영화와 사진을 동시에 찍을 수 있도록 영화 카메라 위에 사진 카메라를 고정시켜 두었다. 나는 촬영 팀에게 들려준 지시 사항을 생각했다. "실수하면 안 됩니다. 맡은 일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알렉스가 시야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아랫배가 당길 정도로 위험한 저 크랙을 따라 한 손 한 손 침착하게 옮기며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다. 뷰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숭고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일에 집중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