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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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의 지적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평범한 일생을 보내다 19세기에 들어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른바 '대감호 시대'에 이들은 외딴 시설에 강제로 수용된다. <백치라 불린 사람들>의 저자 사이먼 재럿은 1980년대 한 시설에서 지정장애인을 처음만난 뒤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바탕으로 이들에 대한 과거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먼저 일상 속의 재판 기록과 속어, 유머, 소설, 시, 풍자만화, 회화, 기행문학 같은 대중적인 창작물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리고 당시 서구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제국주의와 계몽주의, 우생학, 진화심리학, 도덕성 운동, 공리주의 같은 사상 및 인종주의가 지능과 지적 장애에 대해 어떤 잘못된 관념 및 사고방식을 심어줬는지 깊숙이 파고든다. 여기에는 장애인에 대한 나치의 집단 학살 사건 뒤에 숨겨진 놀라운 이야기도 들어 있다.

과거 한국사회에서는 '백치'가 지적장애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지적장애인을 가리키는 용어는 시대와 사회(국가)에 따라 바뀌고 심지어 조롱 섞인 욕설로까지 변질되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비역사주의'를 피하고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포착하고자 당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저자의 의도에 따라 과거 서구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을 지칭했던 'idiots'를 '백치'로 번역하여 반영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모든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려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교훈을 준다.

"나는 지적장애인이라 낙인 찍힌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차게 무언가에 몰두하고 노력하는 이들이자 나처럼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와 달리, 이들은 특별한 경우에만 인간으로 인정받을 뿐, 어찌된 일인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이들의 열망과 몰입 욕구는 거의 무시되기 일쑤였다. 과연 이들은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이 탄생했다. 나는 오늘날 지적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고 싶었다."



저자는 1739년 교회 재판소의 심리 과정에서 알려진 서리의 부유한 자산가이자 태어날 때부터 판단력과 이해력이 미약해 7세 아동의 지능을 지녔던 존 리 경의 기구한 삶과 충격적인 유서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민사 사건은 18세기 법정에 나타난 상류 사회의 백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조명하는 동시에 백치로 낙인 찍힌 사람들의 기이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상속자 없이 상당한 재산가였던 58세의 존 리는 '지능이 낮아 온전치 못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분명 손쉬운 표적이었다. 그 지역에 사는 한 무리의 남성들이 존 리의 집과 재산을 노리고 재빨리 존 리의 가족 같은 친구들을 몰아내는 일이 있었다. 이들은 법원의 허가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존 리의 대리인이라 칭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1732년에는 존 리의 발 통증이 심해지자, 윌리엄 베이드라는 약제사가 나타나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그를 관리하는 것처럼 행동해싿. 교활한 베이드는 존 리가 잘 속는다는 점을 간파하고, 발가락을 잘라내도 다시 자란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더니 실제로 그의 발을 통째로 절단해 버렸고, 이에 격분한 존 리는 베이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분풀이를 했다. 베이드는 계속해서 존 리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허락 없이는 방문객도 받지 못하게 했다. 그중에는 가까운 친척이지만 전에는 서로 모르고 지냈던 두 사촌도 있었다."

저자는 속어로 조롱하는 구체적인 대상에는 영리하지 못한 시골뜨기 백치가 있었는데, 이들은 우둔하고 느리면서 어수룩하여 런던 거리에서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한다. 18세기 초 이런 시골뜨기 백치의 모습은 계층과 부를 막론하고 모든 백치를 대표했다. 영리한 도시 노동자가 보기에 '촌뜨기 부자'와 시골 대지주는 쟁기질하는 농사꾼과 다를 바 없는 바보였다.

"만담집에 등장하는 시골 사람들은 런던 부두에 정박해 있는 큰 배가 한 살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배가 어른이 되면 얼나마 커질지 궁금해한다. 또 신축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면서는 자기 집 헛간을 새로 짓는 비용보다 훨씬 많은 돈이 성당 건립에 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도시에 사는 영리한 소년 견습생들은 그들을 "멍텅구기"라고 물렀다. '무지한 시골뜨기'는 자신이 글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표지판의 해학적인 문구를 잘못 이애한 나머지 런던 거리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런던은 내 엉덩이가 좋은가 봐!"라고 외친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들은 18세기 내내 유행했다."

저자는 지능과 인종을 연관 짓는 불합리한 생각은 18세기 내내 배를 타고 세계를 향해하는 계몽주의자들의 탐험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인과 오해로 생긴 이런 비논리적 생각과 도덕적 무지가 낳은 치명적인 파괴적 결과는 300년이나 지속됐다. 저자는 그 피해는 온전한 인간의 지위를 누리기에 충분한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든 인종은 물론 전 인류가 고스란히 떠안았다고 이야기한다.

"원주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기대가 양면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원주민은 그들이 사는 땅의 동식물처럼 관찰하고, 설명하고, 지도로 만들어야 할 대상이었다. 원주민과 거래를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값싼 '하찮은 물건들'만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이미 그 거래는 불공평하리란 예상이 있었다. 원주민이 우호적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과학자들의 역할은 새로운 땅에서 사는 미개한 원주민과 접축해서 그들을 관찰하고 특징을 파악하여 최종적으로 범주화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의료계에서조차 새로운 정신 의학에 강한 의구심을 보였다고 말한다. 즉, 법의학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측정하는 학문이라기보다 사용된 독극물의 종류와 자상 확인, 보험 사기 적발을 위한 실용적인 과학 수사에 좀 더 가깝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라는 미명 하에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대해 간섭할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저자는 이처럼 영국 법조계가 백치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상자라는 낡고 느슨한 범주가 때로는 무해하지만 때로는 위험스러울 정도로 도덕관념이 없어 사회구조를 뿌리째 위협하는 영구 치우에게까지 확대됨에 따라, 무능력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 처럼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늘 무기력하고, 이따금 거부감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완전한' 백치도 있었다. 일부 의료인은 백치와 치우 사건의 경우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이들을 곧바로 평생 시서로 보내 치료,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치료 목적이든 보호 목적이든, 이제 백치와 치우는 자신이 속했던 지역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세기 중반(광범위한 사회 혁명에서 갓 벗어난 두 나라)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배심원들의 비현실적인 의견과 변호인의 난해하고 장황한 변론 대신, 전문가들의 증언으로 사실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의학 지식을 도입하라는 요구가 강하게 일어났다. 이무렵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법전의 명문화를 통해 과학적 증거와 의학적 증언에 신뢰성이 확보됨에 따라 의료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시민 의사'라는 새로운 집단이 탄생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질병과의 싸움에서 구원하는 사람"이자 "국가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1838년 월간 연재소설로 처음 발표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니콜라스 니클비>에서 다정다감하고 착하지만 궁극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스카이크라는 애처로운 백치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작가 디킨스는 자의식이 생긴 백치는 오직 죽기만을 바랄 것이라고 암시한다. 세상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를 깨달은 치우보다 아무것도 모른 채 히죽히죽 공허하게 웃는 백치가 더 낫다는 이야기다. 백치는 이유 없이 학대를 당하거나 동정을 받지만 배려를 가장 많이 받는 환경에서조차 인간이 느끼는 진짜 감정과 진실한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백치는 스스로 사회를 떠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자아내는 연민은 선한 사회 구성원에게 짐이 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유발하는 혐오는 백치인 자신들에게 비참함을 안길뿐더러 사회구조도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작가 찰스 디킨스는 모든 사람이 백치의 죽음을 바란다고 밝히면서 연민과 혐오라는 두 감정을 뒤섞었다고 이야기한다. 디킨스는 사회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백치들을 교육과 통제 기능을 하는 개혀적인 전문 시설로 옮겼을 때 어떤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는지 열거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되자, 스마이크는 니콜라스의 누이인 케이트에게 연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랑은 응답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마이크가 느끼는 연정은 그 자신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그는 한 남자로서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완전한 사람한테서 나온 사랑이 아니기에 그저 헛될 뿐이다. 케이트가 스마이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가엾은 사람에 대한 다정한 연민이다. 마지막에 스마이크가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니콜라스는 아이 같은 그를 아름다운 장소로 데려갔다."

저자는 19세기의 백치는 새로운 근심거리이자 불안 유발자로 소설가에게는 당혹스러운 위협을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잡지에서는 외딴 시설에 격리해야 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칠고 난잡한 거리에서 백치가 단역으로 등장하는 조지 왕조 시대의 풍자만화가 사라짐에 따라, 새로운 영역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인종 및 계급 불안, 그리고 이따금 그 둘이 결합된 불안감이 표면화됐다. 저자는 전형적인 백치 외모에 위협적인 집단 이미지와 인종적 특징이 덧씌워진 새로운 유형의 백치가 과거 길레이, 롤랜드슨, 크룩생크 등이 묘사한 우습고 무해하며 주변에 무심한 백치를 대체했다고 이야기한다. 구체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창조된 백치 캐릭터는 이제 작품의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예의범절의 변화와 선거권 및 교육의 확대, 인도주의자의 욕망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백치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바라보게 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 지역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아도 인정받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화젯거리가 되어 관심을 끌게 되면서 공식적으로 관찰 대상이 됐고, 그 결과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지역사회에서 남과 다른 유형으로 분류되어 거리를 둬야 할 인물이 됐다. 저자는 백치는 자유롭고 이성적 시민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과 내면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이상을 모두 위협하는 존재가 됐고, 더 이상 웃음 제공자는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보호 시설의 높은 담장은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싶은 감수성 예민한 근대인에게 유혹적인 방법이었다.

저자는 영국의 식민 체제는 그곳 땅과 원주민을 백치와 치우로 구분했으며, 야생 소년 빅토르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조건과 사회화되지 못한 미개인 아이의 선천적 능력 밑 학습 행태에 관한 질문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빅토르에 대한 반응은 야생에 살던 이전의 다른 아이들을 둘러싸고 나온 반응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저자는 '아베롱의 빅토르' 이야기의 중요성은 그가 미개인으로 인식됐든 백치로 인식됐든 상관없이 도덕 체제 하에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데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인종과 지능이 연관된다는 주장을 둘러싸고 논쟁은 지속됐다. 1802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흥미롭게도 먼 이국땅의 미개인이 아닌 프랑스에서 발견된 미개인 소년이 등장했다. 이 아이는 아베롱의 '야생 소년' 빅토르였다. 이 야생 소년은 1800년에 (세 번째로) 붙잡혔는데, 아이를 발견한 소농들은 소년이 수년 동안 테른 지역의 산과 숲속을 네 발로 달려 다녔다고 주장했다. 빅토르는 1800년에 파리에 있는 국립 농아 시성로 옮겨졌는데, 그곳의 보건 담당자 장 마르크 가스파르 이타르라는 젊은 의학도가 허가 하에 빅토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가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수행했다."

저자는 백치와 치유에 관한 통념은 19세기 초부터 극단적으로 빠르게 변했다고 말한다. 지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평범하지 않지만 무해한 사람이라는 18세기 백치 이미지는 전에 없던 냉랭한 시선으로 파체쳐지고 있었다. 형법 절차는 보다 보복성을 띠면서 더욱 가혹해지고 엄격해졌다. 저자는 19세기에는 영국의 '대감호' 시대가 시작되며, 1808년부터 대규모 정신의료시설 건립이 계획되고, 1834년부터는 가혹한 구빈원과 감옥이 금증하면서 사회 풍경이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역사회를 떠나 각종 시설에 수용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런 조치에, 즉 무기력하고 위험하고 취약한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시설에 수용하는 조치에 백치들이 휘말렸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도덕주의자들은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고 구원을 얻으려면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자기 계발 의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이들과 정반대에 있는 급진주의자들도 목적은 다르지만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보수주의와 급진주의자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개선된 정신을 요구했다. 저자는 백치는 서서히 공동체 의식에서 사라지고 항해법도 모르는 진보라는 바다에 던져져 표류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소극적인 태도로 앉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듣기만 해서는 충분치 않았다. 구원에 이르는 길을 지식과 배움이었다. 급진주의자가 생각하는 정치적 구원은 지능을 개선하고 무능력자들의 의식을 깨울 때 일어난다. 보수적인 종교인이 생각하는 구원은 각자의 자리를 파악하고 신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었다. 양측의 보상으로 제시한 것은 미래에 얻게 될 지상의 행복 또는 천상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이런 진보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로 들어갈 입구는 없고 거기에서 나와야 할 출구만 있을 뿐이다."

저자는 진화 심리학이 묘사하는 백치는 반사적이고 본능적인 존재였다고 말한다. 또 의식은 완전히 발달하기 전 단계에 멈추어 있어 인간의 진화 역사에서 초기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이라는 동물과 인간이 아닌 동물 사이에 잃어버린 연결 고리 혹은 중간 다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는 우생학의 핵심 원리와 상반된다. 우생학은 인류가 열등한 유전자와 혈통 때문에 진화 상태에서 퇴보할 위험이 있으므로 약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간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진화 심리학은 우선 정신결함을 진화의 실패 사례로 여기고 진화 이전이나 초기 진화 과정으로 역전된 사례로 봤다고 이야기한다. 우생학과 진화 심리학은 공존하면서 백치와 치우를 구제 불능인 사회 부적응자로 여기고 이들을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화론자가 보기에, 백치는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이성적이고 진화된 문명인 안에 아득히 먼 과거에 살았던 야수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원시적 혈통을 감출 수 없는 백치의 두뇌로 입증됐다. 다윈은 인간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다른 동물과 더 가깝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래서 이런 불편하고 달갑지 않은 사실을 결함 있는 이들이 상기시켜주는 것으로 여겼다."

저자는 1913년 제정된 정신결함법은 "정신박약자를 의무적으로 영구히 격리하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말한다. 정신결함법에 따라 정부 내에 신설된 통제이사회는 정신결함자를 구금 및 감시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국민의 정신 건강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관장했다. 정신결함법의 핵심 내용, 두 가지는 정신결함자를 수용할 '콜로니' 설립과 콜로니 미수용자에 대한 지역사회의 통제 및 감시 체계의 마련이었다. 야당인 보수당의 경우 우생학적 불안이 국가 개입에 대한 우려를 앞질렀다. 저자는 자칭 '마지막 급진주의자' 조사이아 웨지우드 자유당 하원의원만 그 법안에 반대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반대한 이유는 정신결함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적 책임이라는 가치를 신봉했기 때문이다. 웨지우드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누구이든 어떤 꼬리표를 달았든, 모든 시민은 권리를 가진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축출되거나 밀접 감시로 통제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웨지우드에게 그 법은 우생학회 같은 자유주의 단체에 힘을 실어주는 도구이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제도였다. 그는 120번이가 수정안을 내고 150회나 반대 연셜을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저항은 효과가 없었다."

저자는 20세기 전반기에 영국에서는 이념을 막론하고 정신 결함은 어떤 식으로든 '고쳐야' 할 문제라는 인식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인식에는 정신결함자가 인류를 위협하고 문명사회를 퇴보시킨다고 주장한 우생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서구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되고 새로운 기술과 도시화를 이루면서, 지능이 모자란 사람들은 근대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복지는 그들의 비참한 상태를 영속시키고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라 도태되고 있는 것을 막았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지능 검사가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지능이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높이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생각은 영국의 심리학 연구소와 실험실에 계속 남아 있었다.

저자는 인류학자 로버트 에저턴이 1967년 출간한 <능력 망토>에서 1961년 캘리포니아 시설에서 나온 정신지체자로 꼬리표가 붙은 100명과 일대일 면담으로 수집한자료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활을 꼼꼼하게 분석했다고 말한다. 로버트 에저턴은 그들이 지적 무능력자라는 낙인에 찍힌 채 정신 감독에 갇혀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들이 자존감을 지키고 타인에게 존중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했지만 얇고 낡은 '능력 망토'를 걸친 탓에 정상 '통과'에 실패했다고 여겼다. 일단 그들은 '비정상'으로 분류되면서 원래 자리를 유지하려고 고군분투했고, "적소에서 무능력한 채로 살면서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주장은 사회가 정신지체자에게 부여한 구성원 자격은 당연히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부이자 다수 구원원의 선의에 좌우됐기 때문에, 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하더라도 낙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여전히 위협이 존재하거나 그 위협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지는 몰라도, 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에 일어난 변화와 낡은 시설병원의 종식은 마땅히 기념할 만한 사건들이라고 말한다. 개인주의 삶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지원금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저자는 지속되는 문제가 무엇이든, 또 대비해야 할 새로운 위험이 무엇이든, 펜실베니아 정신박약아 직업학교 교장이자 미국 정신박약연구회 회장인 마틴 바가 1904년 연설했던 때로부터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그는 "백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듣지도, 하지도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에서 백치, 치우, 결함자, 노둔, 정신손상자, 정신지연자, 학습장애인, 지적장애인 등 사회가 어떤 용어로 딱지를 붙이기로 했든, 이들은 가장 어두운 시절에도 계속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저자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저자는 오늘날의 사회 임무이자, 지역사회 임무는 모든 인류의 구성원에게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고, 암울한 시설 수용 조치나 T4 프로그램 같은 정책이 부활하여 인류를 수치스럽게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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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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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가 깊은 여운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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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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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브의 세 딸>은 메블라나 문학상, 터키 소설상, 문화예술 공로 훈장 기사장상 등을 받았으며 튀르키예(구 터키)를 대표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엘리프 샤팍의 장편 소설이다. 엘리프 샤팍은 작품 활동을 하며 튀르키예 정부로부터 튀르키예 모욕죄 혐의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의 속사정을 샅샅이 들추어낸다. <이브의 세 딸>은 튀르키예의 사회적 혼란, 정치, 종교 문제, 여성 인권 등 다양한 이슈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장편 소설이다. 한국어판 <이브의 세 딸>은 국내 최고의 튀르키예 문학 번역가인 오은경 번역가가 튀르키예어판을 직번역한 것으로, 생생한 번역을 통해 그 감동을 전달한다.

<이브의 세 딸>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하여 정치적, 문화적으로 혼란스러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페리는 종교에 회의적인 아빠와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엄마의 아래에서 혼란스러운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로 인해 페리는 항상 중간에 끼인 채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페리의 삶과 이스탄불이라는 배경이 맞물리면서 혼란스러운 튀르키예의 상황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작품에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주인공 페리뿐만 아니라, 종교를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무신론자이며 당당하고 주체적인 성격의 쉬린,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히잡을 쓰지만 동시에 페미니스트인 사려 깊은 성격의 모나가 등장한다. 이들은 작품에서 각각 ‘한 명의 죄인, 한 명의 신자, 한 명의 방황하는 영혼’으로 묘사된다. 이들의 우정을 통해 살아온 배경과 가치관의 차이를 뛰어넘는 여성들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브의 세 딸>에서는 종교적 가치관으로 싸우는 부모님 사이에서 짓눌린 페리의 어린 시절, 자신과 너무나 다른 두 친구를 만난 페리의 대학 시절이 현재 세 아이를 낳은 결혼 후의 페리의 모습과 번갈아 가며 나온다. 이야기는 자신의 지갑 속에 숨겨 둔 대학 시절의 사진 한 장을 주인공 페리가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옛날 사진을 통해 그녀는 감추고 싶던 과거의 회상으로 떠난다. 묻어 두고 싶은 사건으로부터 도망친 이후, 페리는 항상 자신의 내면에 숨겨 둔 여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페리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여자’의 이미지에 맞추어 살아왔다. 그러나 누군가의 아내로서, 엄마로서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 온 페리의 마음속에서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다. 페리는 외면했던 과거를 당당하게 마주하고 자유를 향해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간다.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페리의 모습은 수많은 '혼란스러운'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페리의 아빠 멘수르는 우울하고 어두운 생각을 멀리하는 방법을 페리에게 가르처 줄 수는 없지만 지울 수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쓰고 나면 지워 버려. 믿음과 의심. 질문과 답. 지식을 중시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해. 절대 한 곳에 머물지 말아라. 세상에 네가 있던 곳이 아닌 곳에 발자취를 남겨 봐. 이븐 아라비의 '사랑의 카라반'이라고 있지? 그 카라반이 어느 방향으로 가든 우리도 따라가는 거란다. 절대 한 곳에 정착하지 말아라, 뿌리를 내려서는 안 돼. 다 됐다거나 찾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단다. 어떤 소수자 집단이나 집단적 정체성, 종교 집단, 단체, 부족에도 속해서도 안 돼. 모두 널 잘못된 길로 이끌 것이고, 혼란에 빠트릴 거다. 넌 혼자가 되어라. 너 혼자. 도달하는 게 아니라,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오로지 가고 있다는 그 과정......."

페리는 이스탄불을 떠나 온 옥스퍼드 대학에서 쉬린과 모나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리고 페리는 자신의 집에서 신앙, 종교, 신과 같은 문제들이 항상 논란거리였고, 엄마 아빠가 너무나도 서로 반대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아주르 교수의 세미나 수업을 듣는다. 아주르 교수는 선입견이 없는 사람, 우주의 소리와 색깔에 머리와 가슴이 열려 있는 사람들, 대답보다 질문을 선호하는 사람들, 여행자, 유목민의 영혼을 가진 사람, 항상 길을 찾는 사람들, 어떤 곳에도 도달할 수 없는, 한곳에 정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오만함이 없고, 자신의 세미나 수업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페리는 아주르 교수가 신과 삶, 믿음과 학문에 관해 이야기할 때, 풍요롭고 다른 길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날반트오올루 가족들 속에서 자라면서 갇혀 있었던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길을 찾고 있었다. 페리는 오랫동안 엄마와 아빠의 다툼으로 슬프고 지쳐 있던 자신의 영혼이 아주르 옆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걸 알았다. 페리는 드러낼 수는 없어도, 아주르 교수에게 빠져 있었다.

아주르 교수는 페리에게 자신의 역할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약간의 믿음을 심어 주고, 믿는 사람에게 약간의 회의론을 심어 주어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르 교수는 획일적인 곳에서는 철학도 예술도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종교인들은 비판적 사고와 회의적 질문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과학계의 많은 학자는 믿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죠.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고자 합니다. 나는 모든 감각이 깨어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멋자 문어처럼. 철학, 시, 예술, 과학... 이것들을 한 데 섞자는 거죠. 딜레마를 제거하자는 거예요. 우리 시대에 우리는 정체성과 규정, 구분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신에 대한 철학에서 멀어진 겁니다. 그게 아니고, 우리가 모든 걸 잘못 알고 있다면?"

페리와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 포이라즈가 자신이 준 자두를 먹고 질식사한 후, 아빠 멘수르는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엄마 셀마가 이단 종파의 지도자를 찾아갈 만큼 독실한 무슬림이 되었다. 같은 비극이 두 사람을 정반대 방향으로 몰아넣고, 남편과 아내는 두 번 다시 화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리는 부모님의 파탄 난 결혼 생활에 대한 책임이 진심으로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무감각. 이것이 페리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기억하지 않을 수만 있담린.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과거는 갈라진 틈 사이에서 스멀스멀 스며 나왔다. 그날 오후의 기억, 쌍둥이 동생의 유령은 어디를 가든 안개 속에서 그녀와 함께했다."

페리는 아주르 교수와 친구 쉬린의 관계를 질투하여 자살기도를 하고, 아주르 교수의 의혹에 관한 진실을 진술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페리의 행동은 때로는 수동적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실수를 저지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는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수동적인 성격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평생 수동적이었다. 그녀의 쌍둥이 동생이 질식사할 때도 충격 때문에 꼼짝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마다 그녀는 갈팡질팡했다. 쉬린과 모나가 싸우는 동안 그녀는 둘 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동양과 서양 사이에 끼어 있었다. 매번, 항상 경계에서...... 그녀의 영혼은 자신의 틀에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어느 방향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브의 세 딸들>의 마지막은 초대받은 저택을 급습한 남자들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옷장 속에 숨은 페리가 아주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도 사실 신앙과 같아요. 결과를 알지 못하고, 알 수 없어도, 자신을 쏟아붓는 거죠. 이 세상의 많은 것이 실제로 신앙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을 쓰는 것도, 새로운 도시에 정착하는 것도,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을 시작하는 것도 말이죠. 이것들 모두 일종의 신앙과 같은 거죠. 사랑은 감정을 강하게 만들죠. 황홀경에 빠지게 돼요. 제한된 자신의 존재를 넘어 누군가와 연결되는 아름다움. 그러나 사람이 사랑 또는 신앙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모든 것이 독단적 신념이 돼 버려요. 사랑도 믿음도 과장되어서는 안 돼요. 어떤 것도 우상화해서는 안 돼는 거죠."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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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 101 :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
안우경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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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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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 101 :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
안우경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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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킹 101>은 일상에서 빈번하게 부딪치는 사건들로 채워져 있으며, 나아가 대규모로 진행된 실험과 연구 결과, 역사적 사건과 대중문화 속 사례들을 통해 평소에는 똑똑하고 한없이 이성적인 우리가 터무니없는 사고 오류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이자 2022년 예일대학교 렉스 힉슨 교육상 수상자인 안우경 교수는 사고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과 귀중한 지혜이다. 심리학적 오류와 그에 빠져드는 이유는 '생각'하는 습관, 방향과 관련이 싶다. 심리학의 범주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공부한다면, 다시 말해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우리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 우리의 세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좋게 변화될 수 있다.

이 책은 '1장 유창함이 일으키는 착각, 2장 확인 편향, 3장 원인 찾기의 어려움, 4장 구체적인 예시의 유혹, 5장 부정성 편향, 6장 편향 해석, 7장 조망 수용의 한계, 8장 기다려야 받는 보상이 일으키는 혼선'이라는 8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유창성의 착각에서 깨어나려면 실제로 시도해보면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해 보면 스스로 피드백을 주게 될 터이므로 타인의 피드백 없이도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판단할 때도 우리는 실제보다 더 많이 안다고 과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야 비로소 내 지식의 구멍과 추리의 결함을 인식하고 이를 고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과신을 줄이면 프리젠테이션이나 면접 기술을 향상시키고 연말 파티에서 부끄러운 상황을 피하는 등 개인적으로 이로운 건 물론이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연구에서는 개인의 과신이 줄면 정치적 극단주의가 완화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우리 대다수는 낙태, 복지, 기후 변화와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해 강경한 의견을 고집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유를 묻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는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 깨닫지 못한다."

저자는 확인 편향이라는 습관을 고치려면, 이 편향이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저자는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무작위성을 도입하여 위험 부담이 적은 일에서부터 자신의 가설을 반증하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난이도를 낮추어 반증하기를 실천할 수 있는 연습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다. 좋아하는 식당에 가거나 포장 주문을 할 때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무작위로 선택한다. 그러면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경험할 수도 있다. 출근할 때 늘 가던 길 대신 새로운 길로 가본다. 친구와 쇼핑을 갈 때 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회색 스풰터나 파란색 셔츠를 사지 않도록 친구에게 옷을 골라 달라고 부탁한다. 아침으로 우유 한 잔에 양갈비, 샐러드를 먹고 저녁으로는 와인 한 잔에 시리얼, 오믈렛을 먹는다. 인생은 관찰 가능한 세계와 관찰 불가능한 세계를 통틀어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수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발견하는 것은 순전히 여러분의 몫이다."

저자는 우리는 방관하다가 문제가 생길 때보다 어떤 행동을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더 많이 비나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도대체 뭘 했어야 좋았을지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더구나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 할 때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인종차별주의나 기후 변화 대응에 동참하지 않는 것,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을 목격하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 현장 유지에 동참하는 것, 더 공정한 대안을 알면서도 제안하지 않는 것까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이 모든 행동이 사회에 해가 된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방관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릴 수 있다. 당장 올바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는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무해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행동은, 당선됐을 경우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을 수 있는 후보자의 표를 빼앗는 것과 다름없다. 행동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악행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나쁜 행동과 동일하게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저자는 피해자들이 자책하는 이유를 인과적 귀인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까'라고 사건 당시를 되짚어볼 때 가해자의 행동을 무르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의 행동이 달랐을 경우를 상상하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가해자의 잘못이 아주 명백한데도 피해자들이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것이다.

저자는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면 자연스레 '왜 나한테?'라는 이 같은 의문이 떠오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똑같은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되고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게 되는데,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을 하더라도 '왜'라는 질문은 꼬리를 물고 늘어질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기는 걸까? 왜 나는 적응을 못하지? 왜 이게 신경 쓰이는 걸까? 왜 잊어버리지 못하지? 답 없는 질문에 계속해서 답을 찾으려고 하다 보면 점점 더 기분만 상할 뿐이다. 저자는 극단적으로 어려운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한 가지는 그 상황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설혹 그 문제가 나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는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 걸음 물러나 내가 아닌 제 3자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우리는 '왜'라는 질문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사랑 없는 부부 관계, 돈 문제, 지긋지긋한 직장생활 등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반추를 더 많이 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란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원인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게 다 통찰력을 얻는 과정이라고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 봤을 때 반추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확인 편향 때문일 수도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우리는 안 좋은 기분을 확인시켜 줄 기억을 계속해서 토해낸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럴 대는 건설적으로 문제를 풀어내기가 어렵다. 반추는 해결책이나 원인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 절망을 불어오기 십상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알코올 남용, 섭식 장애와 같은 문제에 빠져 버릴 수도 있다."

"인간은 결코 '왜'라는 질문에 확답을 찾아낼 수 없다. 우리 딴에는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조차 우리가 찾은 건 정답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가 찾은 것은 우리가 훗날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동일한 결과를 얻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다른 결과를 얻고 싶다면 무엇을 피해야 할지에 대한 최선의 대답일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통해 앞날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경우라면, 대답을 찾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 두 번 다시 처할 리 없다면, 정답을 짚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 특히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일이 일어난 이유를 찾아내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나면, 한결 수월하게 한 걸음 물러나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다. 그러면 자책감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낼 수 있고, 또 다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때는 더욱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편향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한다. 자신의 신념이나 믿음에 모순되는 사실에 맞닥뜨렸을 때 거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편견을 없애기 위한 개개인을 향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사람들의 편향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불안의 정도는 불리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시작했을 때보다 점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금수저나 은수저를 타고난 사람들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잘난 것 같고, 남들이 자신의 재능과 성과를 광고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바람에 소위 도달해야만 ㅎ나는' 수준을 끈임없이 생각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실제 자아와 이상적인 자아 사이의 괴리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인 학생들은 결국 스트레스, 불안, 패배감을 느끼고 만다. 미래의 보상을 얻기 위해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최종 목표만 바라볼 뿐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의 인생에 진짜 일순위 이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더 나은 세상은 더 공정한 세상이어야 하며, 공정하려면 우리는 편견 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씽킹 101>의 저자 안우경 교수의 글이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한 가지 사건에 가능한 원인이 언제나 여러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잘잘못을 더욱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고 싶다면, 이미 안다고 추측하거나 넘겨짚는 대신 상대방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물어보는 것만한 지름길이 없다는 저자의 글을 통해 각자 그리고 함께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보는 시간을 할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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