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영화수업 - 윤리와 공정에 관한 십대들의 생각 모으기
정은해 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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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영화를 통해 공정과 윤리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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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영화수업 - 윤리와 공정에 관한 십대들의 생각 모으기
정은해 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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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영화수업>은 인류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을 주제로 한 여러 나라의 영화 20편이 있다. 자본주의의 그림자는 무엇인지, 과학 기술이 과연 인류를 위해 발전하고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지구 환경을 좀먹는지, 전쟁의 광기는 무엇을 위해 발현되는지, 풍요로운 현대 사회에서 인권의 사각지대는 어디인지, 5개의 주제로 나누어 각 주제마다 다양한 시각을 담고 있는 4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구성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과 그들을 지도하는 교사 및 학부모들에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세상 속 진실을 마주하고 인간 윤리와 공정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책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메드랜드>를 소개하며,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보이는 집이 아닌 '삶의 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노메드의 삶은 가진 자들에 의해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묵묵히 그리고 의연하게 살아간다. <노메드랜드> 감독 클로이 자오는 "21세기의 삶을 은유로 표현한 것이 노메드의 삶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가능하면 계획에 따르려고 노력하겠지만 필요하면 계획을 과감히 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자 노메드가 추구하는 것이고 우리 제작진이 이 영화에서 실행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왜 정착해서 살아갈까요? 그리고 정착하는 데 얼마나 많은 물건과 돈이 필요할까요? 노메드에게는 최소한의 장소와 물건만 있으면 됩니다. 집과 돈은 살아가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집과 돈을 목적으로 삼으면 삶은 피곤하고 힘들어집니다. 이 집을 떠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펀의 삶이 비참해 보이겠지만 펀에게는 함께할 광활한 자연이 있고 길이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기쁨과 안식에 펀은 노메드의 삶을 그 어떤 집보다 만족해합니다."

이 책은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를 소개하며 허구와 환상을 기반으로 한 영화 매체를 통해 과학의 발달로 빼앗긴 인간의 존엄함과 이를 되찾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그렇다면 진짜 의미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 걸까요?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은 무엇인가의 '진짜', '진리', '진실'은 글자나 기호에 의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없이 기호와 내용의 짝 맞추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네오가 어떻게 '그'가 되었는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라는 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우리 앞에 놓인 숙제는 AI와 가상과 현실이며, 이것은 인간과 인간의 세계에 관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진짜와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내릴 수 있어야 인간의 존재와 AI의 존재를 구별할 수 있고 환상의 세계와 실제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세울 수 있다.

"<매트릭스>는 진짜와 진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질문합니다. 영화에서 언급한 진짜, 진실을 뜻하는 '리얼리티'는 철학의 핵심 개념입니다. 진실이란 우리가 '진짜'라고 '지각하는 것'으로 리얼리티를 보는 방식은 항상 우리의 정신 상태에 의존합니다. 하지만 근대 사회 이후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진짜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유명한 명언도 있지요. 매트릭스가 0과 1이라는 컴퓨터 언어로 구성되어있듯이 우리 세계도 언어와 이미지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과 글, 사진이 진짜를 보여주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문에 적힌 활자, 사진, 다큐멘터리적인 사진과 영화들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는 정말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우리는 글자를 마주하면 글자에 알맞은 내용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언어 활동을 하지만 글자와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글자와 내용의 거리가 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글자와 글자가 가리키는 개념이 딱 맞아떨어지는 진실, 진짜라고 믿어버리지요. 즉 말이나 글자가 내용과 일치한다는 믿음이 환상이라는 겁니다."

"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이 방 안에도 있고 창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 네가 노예라는 진실. 너도 다른 사람처럼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이 책은 킵 안데르센, 키컨 쿤 감독의 <카우스피라시>를 소개하며,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소인 축산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만일 모든 인간이 육식을 포기한다고 해도, 지구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고기 대신 다른 욕망을 만들어내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육식과 채식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사고에서 만들어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인간만 살아가는 곳도 인간만을 위한 곳도 아니며,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의 터전이라는 이 책의 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동물을 인간의 먹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중심주의와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사회의 다양한 대안을 성공할 수 없다는 이 책의 글은 인간에게 깊은 경종을 울린다.

"<카우스피라시>에서 제시하는 대안은 지속 가능한 축산업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율이 낮은 식품을 먹는 것, 즉 식량을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닭은 에너지 전환율이 38대 1이지만 식물로 만든 인공 달걀 파우더는 2대 1에 불과합니다. 낭비되는 에너지 없이 거의 그대로를 우리가 섭취하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동물을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선택은 결국 지구에 대한 사고방식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이 지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방법은 대안이 될 수도 있고 폐기 처분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살아야 할 지구의 생명을 늘리겠다는 인간 중심 사고로는 이 방법이 채택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만년 전 지구는 야생 동물이 99%였고 인간은 1%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인류와 인류가 소유한 가축이 전 생물량의 98%를 차지하고 야생 동물은 2%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매우 쉽게 죽입니다. 우리가 먹을 물고기 450g을 얻기 위해 2kg에 달하는 다른 야생 어류를 죽이는 것을 당연시합니다. 코끼리 3만 마리를 학살하는 것도, 늑대와 코요테에게 총을 쏘는 것도 매우 쉽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냉동고 팩에 담긴 고기나 통조림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부드러운 고기를 위해 송아지를 죽이거나 죽기 전까지 우리에 가두어서 기릅니다. 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지요. 그에 합당한 비용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미셸하자나 비시우스 감독의 <더 서치>를 소개하며, 1994년 이후 계속되어온 체첸공화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과 폭력 사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서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삶에 주목한다. 하나의 시선은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체첸의 아홉 살 아이 '하지'를 바라보며, 또 하나의 시선은 전쟁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한 청년 '콜리아'를 주목한다. 하지만 영화는 아이의 슬픔이나 병사의 잔인하보다 이 둘 모두가 경험했을 끔찍한 상황에 주목한다. 전쟁 한가운데에서 그 누구도 파괴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자는 없다고 말한다. 전쟁이 남긴 가장 잔혹한 파괴를 드러내는 영화 <더 서치>를 통해 아직까지 전쟁의 공포와 트라우마에 휩싸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만행을 그냥 방관해서는 안 되며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책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더 서치>의 마지막 장면은첫 장면에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전쟁을 기록하던 병사가 콜리아임을 보여줍니다. 순수하고 의롭던 청년 콜리아는 전쟁으로 감정이 파괴되고 인간성마저 잃습니다. 전쟁이 그의 생명을 파괴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감정과 인간성을 모조리 앗아간 것입니다.

콜리아는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요? 영화는 그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주었죠. 살아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인간성마저 말살시키는 '전쟁'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22년 전 세계가 평화를 지향하는 이 시대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잔인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이스라엘,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그저 넋 놓고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만 있을지, 아니면 펴오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생각을 모으는 삶을 살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전쟁이라는 괴물이 언젠가 지구촌 유일의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을 삼키고 온 지구촌 인류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책은 우베르토 파솔라니 감독의 <스틸라이프>를 소개하며, '정물화'라는 뜻의 영화 제목의 의미와 함께 고독사한 시신을 처리하는 존 메이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쓸모로 가치를 결정하고 쓸모가 다하면 폐기 처분하는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이 책은 영화 <스틸라이프>를 통해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남겨질 것인지, 생생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죽기 직전의 빌리 스토크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존 메이가 발견한 젊은 빌리 스토크는 진한 우정을 나눈 누군가의 단짝이었으며, 생명을 구한 누군가의 영웅이었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 누군가의 연인이자 사랑스러운 딸의 아버지였습니다. 오색 가득한 젊은 시절과 달리 노인이 된 그는 홀로 지내면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존 메이가 빌리 스토크의 인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사진 한 장으로 삶이 정리되었을 테지요.

존 메이 또한 빌리 스토크가 아니었다면 투명 인간의 삶을 이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빌리 스토크의 생동감 넘치는 인생을 따라가면서 그의 일상도 변했습니다. 그래서 투명한 존재에서 벗어나 세상에 남겨질 만한 정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정물화'로 번역되는 'Still Life'란 생명을 가졌으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거나 처음부터 생명이 없던 물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니타스 정물화는 보통 꽃과 해골이 그림의 대상이 됩니다. 이 정물화는 덧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삶의 현실을 직시하라는 '죽음의 경고'라고 말합니다.

<스틸라이프>는 우리에게 죽음을 경고하는 바니타스 정물화와 같습니다. 죽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공평한 것이며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책 <정의로운 영화수업>은 영화가 한 편 소개될 때마다, 함께 보면 더 좋은 추천 영화와 영화 감상 후 함께하는 토론 논술 활동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영화에 대한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현실에 투영되어 있는 영화 속 세계를 바탕으로 철학적 가치와 공동체 윤리에 관해 깊은 사고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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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베이식 아트 2.0
노르베르트 슈나이더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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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나르의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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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베르메르 베이식 아트 2.0
노르베르트 슈나이더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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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작품은 35점에 불과하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감을 주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그림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를 흥행시켰으며 암스테르담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예술 기관으로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들였다.

베르메르는 편지 쓰기부터 음악 연주,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는 모습과 같은 일상적인 가사 활동을 주제로 삼았다. 베르메르의 작품 속 장면들은 세심하고, 꼼꼼하며, 평면 위로 떨어지는 장엄한 빛, 서사적 흥미를 끌어내는 비범한 능력으로 관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버지널 앞에 선 여인〉,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그리고 가장 유명한 불가사의하고 큰 눈을 가진 매혹적인 〈진주 귀걸이 소녀〉와 같이 사랑받는 그림을 탄생시켰다. 베르메르는 재료와 질감의 효과뿐 아니라 표면 아래에 깃든 많은 이야기와 비밀을 떠올리게 한다.

책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모든 작품을 간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이야기를 통해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베르메르에 대해 알아보고, 유채 물감을 인간 삶의 살아있는 숨결로 바꾸는 그의 독특한 능력을 탐구한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가 두 차레에 걸쳐 고향인 델프트를 그렸다고 말한다. 하나는 <델프트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큰 작품인 <델프트 전경>이다. 베르메르는 <델프트 전경>에서 끊이없이 바뀌는 구름의 움직임과 그로 인한 빛의 효과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의 그림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그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외딴 장소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정지된 느낌을 전달한다.

"강둑 근처의 어두운 건물은 작은 색채 알갱이가 벽돌의 연결부를 이루고, 오른편의 커다란 배는 무게감을 잃고 희미하게 반짝인다. 이러한 미학은 베르메르가 사용한 옵티쿠라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은 젊은 여성이 열려 있는 창문 앞에 서서 연애편지를 읽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창문을 열어놓은 것은 어두운 방을 조금이나마 밝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비유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을 넓혀서 바깥세상과 접촉하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 양탄자가 걸쳐진 식탁에 놓인 과일 그릇은 혼외관계를 상징한다. 불륜은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은밀하게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과일 그릇의 사과와 복숭아는 이브가 저지른 원죄를 상기시킨다. 노란빛이 도는 초록의 비단 커튼과 방의 윗부분을 가로지른 커튼봉은 베르메르 예술의 걸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은 다시 미덕과 악덕 사이의 갈등이 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갈등의 양상이 대단히 은밀하고 점잖게 표현되어 있어서 화가가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담비털을 두른 노란 상의를 입은 젊은 여인은 임신한 듯이 보인다. 옆 모습의 여인은 방 한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보고 있다. 벽에는 거울 뿐 아니라 노란 커튼으로 절반가량 가려진 창문이 있다. 여인이 양손에 진주 목걸이 끝을 붙잡고 있는데, 바로 허영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가 그린 여성 그림들은 대부분의 네덜란드 풍속화가 그러하듯이 악덕을 비판하기 위한 것라고 말한다. 이는 행실이 나쁜 여성들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회적 규범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덕의 모범을 제시하여 '긍정적' 방식을 통해 올바른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는 그림은 드물다.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 이 같은 의도를 뚜렷하게 보이는 그림은 석 점 뿐이며, 그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우유 따르는 여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는 미미하긴 하지만 여인들을 서사적 맥락에서 그렸다고 말한다.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는 함께 그린 악기나 저울 따위의 소도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풍속화 유형의 작품 중에 이러한 소도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석 점 뿐이다. 이 그림들은 인물을 가까이에서 그렸기 때문에 초상화처럼 보인다.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진주 귀걸이 소녀>은 강렬한 조형적 대비를 만들어 내는 흑색에 가까운 텅 빈 어둠을 배경으로 소녀가 관람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은 인물이 그림의 테두리를 벗어나 관람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데,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소녀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관람자를 바라보면서도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듯이 보인다.

"소녀는 흰 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민무늬의 황갈색 상의를 걸쳤다. 베일처럼 보이는 연노란 천이 어깨 위로 늘어져 있고 그 아래 청색 터번이 또 다른 대비를 만들어낸다. 베르메르는 이 그림에서 거의 순색에 가까운 단순 채색만을 사용하고, 색조의 미묘한 차이를 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몇 색면은 작게 분할되고, 같은 색의 유약에 의해 깊이감과 음영이 표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는 알려진 것처럼, 결코 잊혀진 화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17세기와 18세기 문헌에 그를 칭송하는 대목들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그가 당대의 다른 미술가들에 비해 명성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 19세기 중엽부터 베르메르의 작품이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침울한 색조의 아카데미 화풍을 멀리하고 순백의 밝은 외광회화를 지향했던 인상주의의 태동과 무관하지 않다. 베르메르의 회화기법은 동시대인들의 수용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2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베르메르에게 주제나 모티브는 결코 부차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문화적 연관성 속에 인물이나 사물,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양식적 특성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인물 개개인의 일상 작업에서 보이는 뚜렷한 개성과 고립된 행위(책을 읽거나 우유를 따르는 등)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베르메르의 인물들은 동시대 네덜란드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부산함이나 긴장감, 흥분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 인물들의 얼굴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림 속 인물들, 특히 여성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 감정이 배제되거나 무감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춰져 있는 상태이다."

베르메르는 당시 화가로서는 거의 독보적으로 그라시안이나 몽테뉴와 같은 사상가들이 표방했던 도덕률을 시각적 방식을 빌려 표현했다. 그 또한 인간관계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한하고자 했고, 심리적 과정을 드러내길 꺼려했으며, 의사소통에 일정한 경계를 두고자 했다. 그의 실내화에는 양탄자나 커튼에 가려진 탁자가 울타리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탁자는 장식에 불과하지만, 내용 측면에서 보면 관람자와 거리를 두고 경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베르메르의 많은 작품들은 근대 태동기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를 주제로 삼는 한편, 여성을 옭아맨 책임감이며 훈계 등이 여성에게 불러일으키는 내적 갈등이나 관능적 욕구와 상충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베르메르는 자기 그림의 여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은밀하고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암시했기 때문에, 미학적 현상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물들의 행위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약을 거부하는 문학적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은 고립된 채 겸손하게 침묵 속으로 물러서 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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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 · 법 · 문화 · 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 생각이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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