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 베이식 아트 2.0
노르베르트 슈나이더 지음, 정재곤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려진 작품은 35점에 불과하지만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감을 주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그림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를 흥행시켰으며 암스테르담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예술 기관으로 수많은 방문객을 불러들였다.

베르메르는 편지 쓰기부터 음악 연주,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는 모습과 같은 일상적인 가사 활동을 주제로 삼았다. 베르메르의 작품 속 장면들은 세심하고, 꼼꼼하며, 평면 위로 떨어지는 장엄한 빛, 서사적 흥미를 끌어내는 비범한 능력으로 관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버지널 앞에 선 여인〉,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 그리고 가장 유명한 불가사의하고 큰 눈을 가진 매혹적인 〈진주 귀걸이 소녀〉와 같이 사랑받는 그림을 탄생시켰다. 베르메르는 재료와 질감의 효과뿐 아니라 표면 아래에 깃든 많은 이야기와 비밀을 떠올리게 한다.

책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모든 작품을 간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이야기를 통해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베르메르에 대해 알아보고, 유채 물감을 인간 삶의 살아있는 숨결로 바꾸는 그의 독특한 능력을 탐구한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가 두 차레에 걸쳐 고향인 델프트를 그렸다고 말한다. 하나는 <델프트 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이보다 훨씬 큰 작품인 <델프트 전경>이다. 베르메르는 <델프트 전경>에서 끊이없이 바뀌는 구름의 움직임과 그로 인한 빛의 효과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의 그림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그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외딴 장소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정지된 느낌을 전달한다.

"강둑 근처의 어두운 건물은 작은 색채 알갱이가 벽돌의 연결부를 이루고, 오른편의 커다란 배는 무게감을 잃고 희미하게 반짝인다. 이러한 미학은 베르메르가 사용한 옵티쿠라와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의 초기작 중 하나인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은 젊은 여성이 열려 있는 창문 앞에 서서 연애편지를 읽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창문을 열어놓은 것은 어두운 방을 조금이나마 밝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비유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을 넓혀서 바깥세상과 접촉하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젊은 여인>에서 양탄자가 걸쳐진 식탁에 놓인 과일 그릇은 혼외관계를 상징한다. 불륜은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거나 혹은 은밀하게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과일 그릇의 사과와 복숭아는 이브가 저지른 원죄를 상기시킨다. 노란빛이 도는 초록의 비단 커튼과 방의 윗부분을 가로지른 커튼봉은 베르메르 예술의 걸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은 다시 미덕과 악덕 사이의 갈등이 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갈등의 양상이 대단히 은밀하고 점잖게 표현되어 있어서 화가가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담비털을 두른 노란 상의를 입은 젊은 여인은 임신한 듯이 보인다. 옆 모습의 여인은 방 한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보고 있다. 벽에는 거울 뿐 아니라 노란 커튼으로 절반가량 가려진 창문이 있다. 여인이 양손에 진주 목걸이 끝을 붙잡고 있는데, 바로 허영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가 그린 여성 그림들은 대부분의 네덜란드 풍속화가 그러하듯이 악덕을 비판하기 위한 것라고 말한다. 이는 행실이 나쁜 여성들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사회적 규범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덕의 모범을 제시하여 '긍정적' 방식을 통해 올바른 사회적 규범을 가르치는 그림은 드물다. 베르메르의 그림 중에 이 같은 의도를 뚜렷하게 보이는 그림은 석 점 뿐이며, 그중 가장 유명한 그림은 <우유 따르는 여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는 미미하긴 하지만 여인들을 서사적 맥락에서 그렸다고 말한다.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는 함께 그린 악기나 저울 따위의 소도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풍속화 유형의 작품 중에 이러한 소도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석 점 뿐이다. 이 그림들은 인물을 가까이에서 그렸기 때문에 초상화처럼 보인다.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진주 귀걸이 소녀>은 강렬한 조형적 대비를 만들어 내는 흑색에 가까운 텅 빈 어둠을 배경으로 소녀가 관람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은 인물이 그림의 테두리를 벗어나 관람자에게 말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데, 네덜란드 풍속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기법이다. 소녀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관람자를 바라보면서도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듯이 보인다.

"소녀는 흰 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민무늬의 황갈색 상의를 걸쳤다. 베일처럼 보이는 연노란 천이 어깨 위로 늘어져 있고 그 아래 청색 터번이 또 다른 대비를 만들어낸다. 베르메르는 이 그림에서 거의 순색에 가까운 단순 채색만을 사용하고, 색조의 미묘한 차이를 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몇 색면은 작게 분할되고, 같은 색의 유약에 의해 깊이감과 음영이 표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베르메르는 알려진 것처럼, 결코 잊혀진 화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17세기와 18세기 문헌에 그를 칭송하는 대목들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그가 당대의 다른 미술가들에 비해 명성이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후 19세기 중엽부터 베르메르의 작품이 점차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는 침울한 색조의 아카데미 화풍을 멀리하고 순백의 밝은 외광회화를 지향했던 인상주의의 태동과 무관하지 않다. 베르메르의 회화기법은 동시대인들의 수용 능력을 뛰어넘는 것이었으며, 2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베르메르에게 주제나 모티브는 결코 부차적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적, 문화적 연관성 속에 인물이나 사물,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으로 양식적 특성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인물 개개인의 일상 작업에서 보이는 뚜렷한 개성과 고립된 행위(책을 읽거나 우유를 따르는 등)는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베르메르의 인물들은 동시대 네덜란드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부산함이나 긴장감, 흥분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 인물들의 얼굴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림 속 인물들, 특히 여성들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데, 감정이 배제되거나 무감각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춰져 있는 상태이다."

베르메르는 당시 화가로서는 거의 독보적으로 그라시안이나 몽테뉴와 같은 사상가들이 표방했던 도덕률을 시각적 방식을 빌려 표현했다. 그 또한 인간관계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한하고자 했고, 심리적 과정을 드러내길 꺼려했으며, 의사소통에 일정한 경계를 두고자 했다. 그의 실내화에는 양탄자나 커튼에 가려진 탁자가 울타리처럼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탁자는 장식에 불과하지만, 내용 측면에서 보면 관람자와 거리를 두고 경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베르메르의 많은 작품들은 근대 태동기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를 주제로 삼는 한편, 여성을 옭아맨 책임감이며 훈계 등이 여성에게 불러일으키는 내적 갈등이나 관능적 욕구와 상충하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베르메르는 자기 그림의 여성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대신 은밀하고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암시했기 때문에, 미학적 현상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물들의 행위는 사회적 규범이나 제약을 거부하는 문학적 반영이라 할 수 있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들은 고립된 채 겸손하게 침묵 속으로 물러서 있다는 저자의 마지막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