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 도쿄 독립 서점 Title 이야기
쓰지야마 요시오 지음, 정수윤 옮김 / 돌베개 / 2023년 1월
평점 :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은 긴 시간 대형 서점에서 일하다 동네 책방을 열게 된 서점인 쓰지야마 요시오가 생각한 좋은 일, 좋은 삶에 대한 단상을 담은 에세이다. 이 책은 자기만의 철학, 자기만의 속도로 삶과 서점을 일구어가는 저자가 전하는 작은 목소리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서점 주인으로서 책을 진열하는 자신만의 관점, 서점의 철학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일의 중요성, 출판사나 서점 직원이 아닌. 책을 나르는 운송 노동자들에 대한 조명 등 책과 출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부터, 북 페어를 위해 센다이에 방문했던 일, 팬데믹 시대에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 등 현재 일본 서점인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한국에 <목소리 순례><서로 다른 기념일>라는 책으로 소개되기도 한 청각장애인 사진작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사진은 Title이 자리한 도쿄 골목의 공기를 전하며 이 책을 펼치는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한다.
멀리서 보면 별다를 것 없이 비슷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평범한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며 주어진 일을 소중히 이어가는 쓰지야마 요시오의 모습은 꼭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울림을 남긴다. 이 책은 작고 느린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태도에 스며들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속에 모서리를 접어두고 싶은 에세이다.
저자는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한 이유는, 모든 것이 나의 책임으로 귀결되는 지속 가능한 장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대형 서점에서 일할 때는 한 지점에 적응했다 싶으면 이동해야 했고, 회사의 사정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폐점이 결정되는 일까지 있어서 자신의 의지와 달리 일이 일정하게 쭉 이어지지 않는다는 딜레마를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업무량은 늘고, 육체적으로도 직장 생활보다는 힘이 들지만, 그래도 계속할 수 있는 까닭은 이 작은 자유가 자신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규모는 작아도 내가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공간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서점을 시작했다. 다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좋다고 믿는 책을 진열할 수 있고,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일은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 있다.
서점을 열었을 때, 영업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매장에서 이 공간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아주 단순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손에 넣은 작은 자유였다."
저자는 아무리 큰 서점이라 해도 세상 모든 책을 들여올 수 없는 한, 그곳에 놓인 책에는 자연히 그 서점만의 필터가 끼워진다고 말한다. 어떤 이유에 따라 서점에 놓인 책과 파는 사람의 생각 사이에 모순이 커지면, 매장은 차츰차츰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언젠가 서점을 지속할 의미를 빼앗기고 만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나는 본래 들이고 싶었던 책을 자유롭게 진열하고,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서점을 열었다. 책을 파는 일은 물건을 취급하는 일인 동시에, 물건에 실린 사상을 취급하는 일이기도 하므로 서점에 놓인 책들은 글쓴이의 생각과 함께 파는 이의 편향된 생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저자는 어떤 책을 계기로 세계가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한 사람은 몰랐던 지식이나 감정에 자극을 받아 세계의 해상도가 높아진 까닭이라고 말한다. 가령 잘 몰라도 조금은 흥미를 느낀 책이 있다면, 우선 그 책을 펼쳐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가 경제나 효율을 우선시하고 거기 포함되지 않는 것을 잘라낸 결과, 사람들의 사고가 단순화되고 있는 시기에, 서점 서가에 늘어선 모르는 책은 벽이 아니라 끝없이 풍부한 세계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세계에서 쉽고 편한 성질만을 가져오려 한다면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고 읽는 이를 뿌리까지 뒤흔드는 책은 경시된다. 그 대신 이해하기 쉽고 수월한 책만 수요가 늘어난다. 간단히 얻은 지식은 쉽게 잊히며, 독자의 내실을 넓혀주기 어렵다. 편리하지만 곤한 사회 현상에 책을 둘러싼 세계도 휩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비평가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그래서 철학, 생각의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한나 아렌트의 '일'과 '노동'의 개념을 언급하며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일이라는 말과 달리, 노동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존경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소개한다. 저자는 어머니가 위암으로 병원에 누워 있었던 시기에, 분명 '노동'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의 노동을 느끼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자신의 내면이 바뀌어 어머니의 장례 절차를 마친 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상사에게 전했다고 말한다.
"병실에서는 시간이 손에 잡힐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도쿄에서 일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일단 시간에 몸을 맡기자 바쁘다는 게 자랑처럼 여겨졌던 도쿄에서의 생활이 점차 멀어지는 듯했다.
어머니는 이렇게 시간을 보내셨구나.
할 일에 파묻힌 동안에는 의식이 늘 한발 앞어 나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들의 풍요로움을 둘러보기 어렵다. 확실하고 무게감 있게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으려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쿄와 고베를 오가며 나의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차츰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 나리 잡았다. 책을 파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보다 생활에 밀착한 삶의 방식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저자는 서점에 있는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보이면서 동시에 머나먼 과거나 이국으로부터 온 목소리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런 목소리는 마음을 차분히 한 뒤 몸을 약간 기울이듯 하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서점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고, 책이 전하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본래의 그 사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며, 서점은 지금 '거리의 대피소'가 되어가고 있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대걍의 정보가 들어오는 현대사회에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정보와 몸이 제멋대로 이어진다.
그에 비해 Title에서는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왔다가도 늘어선 책을 들여다보는 사이 어느 틈엔가 말이 없어진다. 책이 있는 공간이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는 차단하는 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 없는 책의 고요함이 '이곳은 바깥 공간과 다르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Title처럼 작은 상점을 운영하다 보면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데 지겹지도 않은가 보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말한다. 나날이 변화하는 하루도 즐겁겠지만, 자신에게는 정해진 틀 속에서 작은 변화를 포착하는 일상이 잘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에서 일상의 작은 섬세함을 느끼는 여유를 발견한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무언가 하나를 이해한다는 감각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같은 리듬으로 생활하면서 그 섬세한 변화를 깨닫게 된다.
매일 산책하는 길,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 겨울이 오면 매년 꺼내 입는 코트...... 같은 디테일을 반복하면서 그 사람 인생의 시스템이 구축된다. 우리는 그 작은 시스템을 통해 여름이 끝났다거나, 오늘은 운이 좋다거나, 그런 생활이 주는 깊이를 실감한다."
저자는 인간이 책을 손에 쥘 때 느끼는 순수한 마음의 움직임이 좋다고 말한다. 저자는 크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라며 눈앞에 있는 책을 손에 쥔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서점을 만들고 싶고, 화려하지 않아도 변함없이 오래 계속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에서 편안하고 긍정적인 희망이 엿보인다.
저자는 2020년 3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예정이던 행사가 모두 취소되었던 시간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가는 와중에, 말없이 그곳에 서서 언제나처럼 서점을 열어두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일상을 지켜내면서도, 지금 일어나는 일에 눈을 감지 않아야 한다는 저자의 글에서 코로나 팬데믹의 패닉과 단절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저자의 태도가 담겨 있다.
"한 권 한 권 손길이 닿은 서가에는 빛이 머문다. 그것은 책에 깃듯, 우리 스스로의 작은 목소리다. 그저 책을 파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서가에 빛이 머물게 하는 일은 애정이 가득 담겼을 때에만 가능한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글은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지 않고 각자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신념을 마주할 수 있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은 도교 독립 서점 Title을 운영하는 저자 쓰지야마 요시오의 책과 서점, 사람과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에세이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