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 그 모든 우연이 모여 오늘이 탄생했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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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 슈테판 클라인의 책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모든 것의 원제는 우연한 모든 것(Alles zufall)이다. 태곳적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을 거부하며 어떻게는 세계의 규칙을 찾아가려고 했고, 이러한 시도는 세상이 이미 정해진 운명대로 굴러간다는 숙명론적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과는 별개로 세계는 여전히 갑작스러운 지진이나 코로나19로 수백만 명이 목슴을 잃는 등 더욱 예측할 수 없는 변수화 함께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그럼에도 운명을 믿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처럼 불확실하고 우연한 세계에 몸을 맡겨야 할까?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저자인 슈테판 클라인은 인간의 삶은 우연이 만들어낸 사건들의 총합일 뿐이며, 이 세계가 어떤 규칙이나 운명에 맞춰 굴러갈 것이라는 믿음은 '사랑스러운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덕스러운 삶에 무방비하게 내맡겨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 우연은 운명보다 더욱 신비롭고 낭만적인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연은 우리에게 불안이 아닌 '자유'를 안겨주며, 강자뿐 아니라 약자와 다양한 종에게도 생존의 기회를 주었다.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운명적인 사랑 역시 '우연'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연으로 가득 찬 이 세계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뇌과학부터 생물학, 철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운명과 우연에 겹겹이 쌓여 있던 착각과 오해를 한 꺼풀씩 벗겨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만날 것이다. "운명을 운명처럼 만드는 것은 신인가 나 자신인가?" "나는 어쩌다 한번 내리는 비를 피하려, 스스로 운명이라는 틀에 갇혀 살고 있지 않은라?". 출간 이후 "일상적인 통념을 깨트리고 집단적 오류를 깨트린다"라는 호평을 얻으며 미국 라이브러리 저널이 선정한 '최고의 과학책'에 오른 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하며, 불확실한 시대에서 끝없는 불안과 허무를 느끼는 이들에게 뜻밖의 선물 같은 위로를 전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가 '우연'과 친해지는 것이다. 우연은 우리의 행동, 감정, 생각 등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시각으로 보아야 평가할 수 있다. 우연은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연관들 속에 있따. 그래서 한 가지 측면만 살펴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커다란 틀 속에서,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볼 때 비로소 우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는 우연이라는 말을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한다고 말한다. 아무런 규칙을 인식할 수 없거나, 아무도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 우리에게 우연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간단하다. 우리가 다르게 설명할 수 없거나, 달게 설멸하고 싶지 않은 것은 우연한 것이다. 빗방울은 우연한 간격을 두고 창문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그것에서 질서를 볼 수 없다. 두 번째 의미는 좀 더 복잡하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일이 맞물려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기막힌 우연이네!"라고 말한다.

저자는 규칙을 찾을 수 없는 사건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연관이건 우연은 우리가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일이며, 바로 그 점이 우리를 매혹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는 우연에 상반된 감정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일이 의도하지 않게 딱딱 맞아떨어져 좋은 일이 생기면 좋지만,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불확실함을 스트레스다. 저자는 오늘날에는 제아무리 전문가라고 가까운 미래를 진단하는것 조차 힘들다고 말한다. 기술의 폭발적인 진보, 언론의 홍수, 전 지구적인 기업과 국가 간의 연계가 앞일에 대한 조망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긍정적으로 보기보다 기회에 수반되는 위험에 더 노심초사한다. 두려움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을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한 신호기제였다. 그리하여 두려움 반, 희망 반일 경우 두려움에 더 무게가 실린다. 객관적으로 마음을 놓을 이유가 더 많을 때에도 걱정이 앞선다. 자연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저자는 우리는 너무 복잡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관찰한 것들을 규칙이라는 틀 속에 붓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규칙은 그것이 어떤 일을 더 간단한 분모로 통합할 수 있을 때, 전체의 이야기를 더 적은 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성립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않고 규칙이 너무 복잡하면 일은 미궁속에 빠진다. 그럴 때는 규칙을 가늠할 수 없고 그 일을 우연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편하다. 이처럼 저자는 사건의 진행을 단순한 패턴으로 기술할 수 있을 때에만 우연의 작용을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고 우연이 작용하는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알 수 없게 되며 어떤 일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자는 어떤 시스템이 법칙을 따르고 우리가 그 법칙을 정확히 안다고 해도 그 시스템의 행동을 아무 때나 정확히 예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시선은 그리 예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언제나 인식에 이르는 것은 아니며, 뉴턴 이후의 낙천적인 지식인들에게 이런 통찰은 커다란 충격이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우리는 놀랄 정도로 '적은' 카오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고 말한다. 우리의 신체는 몇식억 개의 분자의 투입하에 최고로 섬세한 생명 과정의 균형을 이룬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이 그런대로 질서있게 더불어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에너지 투입이 중단되면 무질서가 세력을 떨치게 되고, 질서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기에 질서도 영원할 수 없다. 자동차는 고물이 되며 인간은 죽고 태양도 빛을 잃는다. 하지만 저자는 무질서에 대한 질서의 승리가 아름답게 빛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 결국은 언제나 우연이 승리한다고 말한다.

"볼츠만에 따르면 자연은 커피잔에서 우유와 커피가 뒤죽박죽되는 것처럼 무질서를 향항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는 40년 동안 카오스에 빠지지 않고 유지되어온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질서라는 아주 예외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상을 치운다. 그리고 자동차를 정기적으로 정비소에 맡긴다. 그러면 정비공은 비싼 돈을 받고 자동차가 망가지지 않게 조취를 취해준다. 우리의 몸속에서도 세포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면역체계가 청소를 함으로써 질서가 유지된다.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계속 영양을 섭취해 에너지를 공급해야 한다. 지구상의 생명이 약 2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존재할수 있는 것도 태양이 끊임없이 에너지를 방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유기체들은 계속 회복, 재생할 수 있다."

저자는 자연은 개연성이 없는 것에서 개연성이 많은 것, 즉 질서에서 무질서 쪽으로 옮겨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깨진 창문은 절대로 저절로 복구될 수 없다. 저자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옮겨가면서 비로소 과거와 미래가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우연 덕분에 시간의 흐름을 뒤쪽이 아닌 앞쪽에서부터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의 존재 역시 우연 덕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앞날의 모든 것을 모두 알고 있다면 삶이 무슨 가치가 있으며, 모든 장면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는 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우연이 없는 삶은 죽도록 지루할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현실은 대부분 상호작용을 주고받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렇게 복잡한 체계에서는 카오스 물리학의 방정식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체계에 내재된 무질서의 경향이 초기의 장애들을 쉽게 무마시켜버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유발된 폭풍은 우유가 커피에 확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희미해진다고 이야기한다. 기류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고 일반적인 뒤죽박죽 속에서 그냥 가라앉아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어떤 사건의 원인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을 때에 우연을 경험하지만 어떤 사건이 발생한 원인의 일부가 자신이라면 이 원인은 관찰되는 사건과 분리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피드백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피드백은 원자물리학에서와 같이 규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그 연구에 투입되는 수단과 분리될 수 없는 경우 개입된다. 저자는 피드백은 우리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면서 도리어 자녀의 영향을 받고, 주식 투자자들은 앞으로 어떤 주식이 오를까를 생각하며 매수를 결정하지만 주식의 등락은 바로 투자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결정으로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바로 그렇기에 미래에 대해 제한된 진술밖에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일에 더 많이 관여하고 더 큰 영향을 끼칠수록 그 결과는 더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임의로 계획할수 없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대가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미래를 내다보도록 만들어지지 않고, 프랑스 작가 폴 발레리의 말처럼 "미래를 만들어 나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의 행동을 예언할 수 없는 더 심오한 이유는 에피메니데스의 거짓말쟁이 패러독스와 같은 것, 즉 자기 연관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유는 예측할 수 없음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스스로 정할 수도, 예언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우리가 내린 많은 결정들은 우연한 것처럼 보인다. 자기 연관성이 초래하는 많은 결과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자신을 꿰뚫어볼 능력이 없다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진화론에 따르면 자연은 우연의 결과라고 말한다. 찰스 다윈에 따르면 새로운 생명체는 유전자를 도구로 한 무작위적인 실험에서 탄생했다. 다양한 동물 및 식물종의 경쟁을 통해 비로소 어떤 생물이 살아남고 어떤 생물이 멸종할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연 역시 인간 사회처럼 불확실함과 복잡함, 자기 연관성의 문제를 진화라는 탁월한 전략을 사용해서 해결해왔다고 이야기한다.

"다윈은 자연의 다양성을 우연으로 설명한다. 어떤 생물도, 인간의 어떤 특성도, 계획에 따른 것은 없다. 진화가 무슨 일을 불러왔건 간에 목표도 의도도 없었으며, 최선의 해결책을 찾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중요한 건 그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자연사가 우리의 존재를 설명해줄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이다. 어쩌다 우연히 생겨났고, 그것이 필요하거나 크게 장애가 되지 않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것밖에는 별다른 존재 이유를 발견할 수 없는 특징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의 모습으로 사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파란 눈이 더 나을 것도 없고 갈색 눈이나 초록색 눈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저자는 자연 발전과 문화 발전은 모두 결합의 작용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두 영역 모두 알려진 원료들이 놀라운 방식으로 다르게 조합되어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저자는 자연사와 문화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둘 다 결과를 대부분 예측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자연과 문화 모두 목적 없이 흘러간다. 인간 개개인은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지만 전체 역사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저자는 모든 가능성과 미래의 결과가 확실하게 알려진 시대는 없었으며, 쓸모 없는 해결법이 나올 때까지 이쪽에서는 진화가, 저쪽에서는 인간이 실험한다고 말한다.

"자연이나 문화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일은 변화하는 환경과 발맞춰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충분히 실험하지 않는 자는 발전하지 못하고 민첩한 경쟁자들에게 내몰린다. 진화와 인간의 창조는 모두 엄청난 다양성으로 흘러들고 어느 곳에서도 선과 악을 찬가름하는 전능한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어떤 생물이, 어떤 아이디어가 승리할지는 경쟁만이 결정한다. 우연 없이는 진보도 없다."

저자는 우연의 제한 없는 지배를 허락하지 않는 두 가지 힘 중에서 첫 번째 힘은 새로운 것이 출현하면 그것은 경쟁 속에서 기존의 것에 대항하여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무의미한 고안품은 제거된다. 그리고 저자는 우연을 조절하는 두 번째 힘은 진화가 가진 것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연은 기존의 것을 다르게 조합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결코 아무 때나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우연은 그런 한계 내에서만 작용한다.

저자는 우연이 우리의 길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출세할 확률이 더 낮다.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그가 모든 장벽을 딛고 성공하는 경우에는 재능과 능력 외에 뜻밖에 동시적인 사건들이 성공에 기여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연은 종종 약자의 편에서 싸운다는 진화와 관련한 이러한 법칙들에 관해 말한다. 그러므로 정의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저자는 한 인간이 성장할 때 부모의 의도보다는 우연이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며, 어른들이 잘 때닫지 못하는 아주 미미한 뉘앙스들이 아이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저자는 개성의 형성은 우리 의지로 조종되는 것이 아니며 학문적인 관찰로 추적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부모가 자녀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아이들을 보살피되 뭐든지 용납해주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부모의 양육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교육은 우연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교육에서 우연의 비중을 인정하면서도 자녀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아이의 삶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자녀에게 적절히 고무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자신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되도록 많인 주는 것은 다이에게 단순한 재능 계발 이상의 도움이 된다. 그들을 세상에서 유일한 개성을 지닌 존재로 지켜주는 것이 바로 자녀를 존중하는 일이다."

저자는 특히 감정적으로 흥분 상태에 있을 때는 우연을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일에서 운명의 작용을 본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이를 설명하려는 욕구가 강해져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을 때 이를 해석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거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목격하거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사람은 왜 자신은 살아남고 다른 사람은 떠났는지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불행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답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대답은 없다. 하지만 뇌는 대답이 없다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근거도 없는 이유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그 일을 되돌릴 수도, 그 일에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었음에도 말이다."

저자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파악할 수 없을 때 정신적으로 반란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때로는 이성적인 설득도 소용이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일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을 만나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질서, 더 높은 의지가 주관한다고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저자는 종요는 이렇듯 의미에 대한 동경이 낳은 열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수학자 존 앨런 파올로스는 불교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종교는 세계의 딱딱한 전개 과정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번역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법칙, 우연, 인간 행동의 복합성은 유일신 혹은 다수의 신을 위해 퇴장해버린다. 그리하여 인생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조차 더 높은 계획의 시각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

저자는 뇌는 끊임없이 틀과 설명을 찾고, 이 과정 끝에 어떤 해석을 믿을지는 자유라고 말한다.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경우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생명이 다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다. 전자의 시각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후자의 시각은 사람을 위로한다. 저자는 이처럼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가선에 대한 시각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모든 날은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우연에서가 아닌 나에게서 나온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표현처럼, 일상에서도 현실과 환상적인 해석 사이에서 선을 그을 수 있으며, 일상에서의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라고 전한다.

"아이들에게는 동화가 필요하고 어른들에겐 신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삶에서 위기를 겪을 때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경험을 의미와 연관 지으려고 노력한다. 좋은 징조에 대해 기뻐하고, '운명의 눈짓'을 따르며 삶의 중요한 전환기마다 더 높은 계획이 작용했다고 믿는다.

이런 태도는 해석과 사실을 구분하고, 상상의 산물을 결정의 근거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려면 이중장부를 쓰듯이 하나의 경험을 두 가지 현실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으로는 점검 가능한 사실의 세계에 발을 딛고 사실만을 행동의 근거로 삼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석과 환상의 영역으로 들어가 경험을 신비로운 시각으로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연이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우연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위험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이에 대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이 매끄럽게 돌아가면 우리는 리스크를 더 이상 예상하지 않고, 주의 집중력은 거의 잠들게 되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우리는 더욱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연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려면 우리는 늘 파괴자인 우연의 존재를 염두해 두어야 하고, 약간 불안할 때가 가장 안전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때로 실수를 저지르고자 하는 용기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복합적인 문제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하는 것이 종종 성공의 열쇠가 되어주기 때문에 단순한 사고만이 승산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안이 최소한 어떤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다. 저자는 선택의 첫 번째 단계는 알맞은 기준을 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우리가 이런 기준을 도구로 정말로 결정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변화시켜야 할 경우 작은 걸음으로 가는 것이 최상의 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현대 사회처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작은 걸음으로 걸으며 계속적으로 규칙을 조정해 나가는 것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예언을 통해, 신탁을 통해, 마법을 통해 더 높은 존재와 연결하여 지식의 진보를 이루려는 시도는 인간의 사고만큼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성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 모든 돌격 뒤에는 두 가지 모티브가 존재하며, 기분에 따라 그 중 하나가 우위를 차지한다고 이야기한다. 한 가지 모티브는 자신이 누구이며,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놓여 있는지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모티브는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려는 갓이다. 저자는 무지에 대한 반란은 우연에 대한 반항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졌으며,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음에도 오늘날처럼 개개인이 그 지식에 동참하지 못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전체의 지식에서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저자는 이는 정보를 다루는 기술과 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문자의 발명으로 지식은 이야기하는 사람과는 상관없이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단순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종족이 가진 모든 지식을 알 수 있었고 이런 공동체에서 우연은 인간관계에 그다지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날에는 전체 지식의 상당한 부분을 인지하고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인생의 앞날 역시 더욱 예측할 수 없어졌다. 우리의 길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일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 간의 연결이 매우 다양해지고 복잡해져서 우리에게 중요한 모든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연과 불확실함은 자유의 자식들이며, 우리가 일상의 편리함과 전염병과 기아로부터의 보호, 무엇보다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누리는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혜택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만 누릴 수 있고, 그런 사회에서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조망 가능한 삶을 동경하는 이유는 우연이 불안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계를 이해하고 상황을 주관하고 싶은 욕구는 삶을 유쾌하게 만드는 많은 발명품을 탄생시켰으며, 예견할 수 없는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상인들이 속주머니에 성공을 부른다는 부적을 지니고 다니고, 정치인들이 점쟁이들을 찾아다니고, 심지어 아주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조차 재수 없는 행동을 자제하는 등의 태도도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최소한 삶의 놀라운 변화들이 사실은 하늘이 정한 운명을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질서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우리 스스로는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때 어쨌든 하늘의 섭리가 우리를 이끈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연이 필요하고, 확신이 너무 강하면 아이디어가 배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불확실한 상태를 견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연을 영감의 원천으로 이용하는 데 복잡한 신탁을 필요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은 자극들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우연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빈치와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동시대인들보다 아는 게 더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성급한 답변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계속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는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예부터 예술가들과 작가들은 긴 여행을 하면서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추구했다. 괴테는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쇼팽은 마요르카를, 폴 클레는 튀니지를 여행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낯선 환경이 주는 자극들을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는 데 이용했다."

"우리가 우연과 자꾸만 거리를 두는 이유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뿐만 아니라 바로 눈에 보이는 이득을 붙잡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에게 불필요한 사람과 비전이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효율성을 추구하는 태도가 지나치면 많은 기회를 잃게 된다. 우리는 제한된 인식을 가진 존재다. 익히 아는 것에 대해서만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낯선 경험이나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순전히 선입관 때문에 낯선 사람과의 만남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우연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저자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우연은 우리에게 머릿속의 사상누각을 떠나 현실에 발을 딛도록 인도하므로 예기치 않을 일에 더 많은 여지를 허용하라는 것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험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인식을 더 날카롭게 하고 시간에 대해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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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를 위한 공부의 힘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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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제와 마주하는 법>은 도쿄대에서 철학을 연구하는 저자 야마노 히로키가 정답이 없는 시대 지성을 구하는 독학자를 위한 공부 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저자는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공부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곧바로 답이 나오는 문제를 다루는 '성취를 위한 공부'와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다루는 '탐구를 위한 공부'가 그것이다. 전자가 시험 합격이나 자격증 취득 같은 목표가 명확한 실리적 공부라면, 후자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추상적 공부다.

저자는 지금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사고하고 답을 찾아가는 힘을 키우는 '탐구를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어진 답에 만족하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사고를 발전시키며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아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저자는 탐구를 위한 공부에서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철학'이라 말한다. 철학적 사고방식은 상식 속에 묻힌 질문을 찾아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여 독창적 사고에 이르는 자기 공부를 위한 최고의 도구다.

이 책은 생존의 지혜를 구하는 현대인에게 단편적인 정보나 지식을 취하는 '성취를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탐구를 위한 공부'에 매진하라고 독려한다. '탐구를 위한 공부'의 토대가 되는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키우는 다섯 가지 사고법과 생산적 사고로 이어지는 세 가지 대화법을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생각하기는 달리기와 같다'라는 비유를 실마리로 독서와 사색의 차이, 깊이 읽기와 논리 잡기, 균형 잡힌 시각과 정연한 논리 전개, 나아가 철학 대화와 호의적 해석까지 철학적 사고방식을 일상에 접목하는 법을 알려준다. 시대와 세상을 꿰뚫어 보는 혜안은 스스로 사고하는 힘을 기를 때 비로소 열린다는 진리를 담담히 웅변해주는 책이다.

"정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 지성을 구하는 우리 앞에는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풀리지 않는 문제에 진심을 다하여 부단히 도전한다면 누구나 빛나는 지성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마음을 다하여 풀리지 않는 문제와 씨름하고 싶은 사람, 탁월한 사고력을 얻어 새로운 삶을 찾고 싶은 사람을 응원하는 도구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사고법, 곧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한다면 저자로서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1장 질문을 끌어내는 힘, 2장 분절하는 힘, 3장 요약하는 힘, 4장 논증하는 힘, 5장 이야기하는 힘, 6장 질의하는 법, 7장 논의하는 법, 8장 설명하고 공감하는 법'이라는 8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대학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바보가 되어버렸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캠퍼스를 오가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라는 책을 운명처럼 만났다고 말한다. "독서는 타인의 생각을 가져오는 일이다. 책을 읽는 우리는 타인이 생각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더듬어갈 뿐이다. 이는 습자를 연습하는 학생이 선생이 쓴 연필 선을 따라 글자를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독서를 할 때는 생각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 하루 중 대부분을 다독으로 보내는 부지런한 사람은 차츰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간다."라며 독서법을 언급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통해 저자는 독서는 타인의 사색 흔적을 추적하는 일임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저자는 단순히 책을 읽기만 한다면 타인의 사고를 강요당하는 예속적인 상태에 머무를 뿐이며, 결과적으로 사고력과 통찰력을 잃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자신이 직접 달릴 경로를 선택하고, 그 경로와 자신의 자세를 돌아보며 끊임없이 반성하는 노력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타인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고 형태는 지극히 종송적인 성격을 띠며, 지식에 사고가 지배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생각하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지적 체력'이 필요하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단련되는 사고력을 '걷기'가 아닌 '달리기'에 비유한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과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은 별개로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 지성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행위는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색을 자발적으로 거듭하는 일이다. 이처럼 저자는 지식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고, 지식을 사고를 규정하며, 사고의 본질은 사색을 전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질문을 끌어내는 힘, 분절하는 힘, 요약하는 힘, 논증하는 힘, 이야기하는 힘이라는 다섯 가지 기술이 하나로 결합될 때 사고력이 향상되고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가는 힘, 곧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을 위한 사고법의 기초가 완성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사고의 출발점은 재론의 여지 없이 질문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사고의 출발점이 되는 아홉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이는 주장의 근거, 논리의 비약, 사물의 본질 찾기라는 보편성을 둘러싼 질문과 상상하는 장면, 단어의 의미, 이해의 차이 밝히기라는 구체성을 둘러싼 질문, 그리고 공감의 이유, 공존의 길 모색하기라는 가치관을 둘러싼 질문이 있다.

저자는 책 내용을 문절하는 목적은 정보를 하나로 정리하기, 정보의 관계성을 따져보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밝혀내기라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분절은 단순히 나누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방식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책의 긍정적 주장과 부정적 주장을 찾아 각기 다른 색으로 분절하는 방법은 저자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해야 사용하수 있다고 말한다. 색으로 구분하면서 하는 다채로운 독서는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는 새하얀 독서와 비교하여 독서에 따라는 긴장감이 다르다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 목적은 '정보를 하나로 정리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한 가지 사실에 관한 사례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때가 있다. 그런 부분은 저자가 특히 신경 쓰는 점이 반영되었겠지만, '분절'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로 정리해도 된다. 성질이 같은 정보는 하나로 정리하는 것이 분절의 첫 번째 목적이다.

두 번째 목적은 '정보의 관계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무언가는 논증하는 책은 대개 'A와 B라는 두 개가 있는데, A(혹은 B) 쪽이 뛰어나다'라는 주장의 형식을 취한다. 개중에는 복수의 선택지를 제시한 뒤 '이 중 O번째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이라고 논하는 책도 있다. 어느 방향이든 무언가를 논증하는 책은 선택지 중 뛰어난 것에 '우수'라는 가치를 확실히 매긴다. 저자가 중시하는 관점과 그 근거가 되는 주장을 찾는 것이 분절이 두 번째 목적이다.

세 번째 목적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밝혀내는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해를 가로막는 것은 대개 잘 모르는 단어와 표현, 흐름이 이상한 접속하다.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반대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ㅇ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느 대목에 걸려 이해하지 못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일이다. 바꾸어 말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분절의 세 번째 목적이다."

저자는 분절력이 문자의 바닷속에서 정보 덩어리를 정리하고 수집하는 힘이라면 요약력은 그렇게 수집된 정보 덩어리로 로직을 재구성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를 레고 블록에 비유한다면 모아들인 부품을 조립하여 거실, 욕실 등의 기능적인 공간을 만들어나가는 단계로, 아직 핵심인 건축물을 세우는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요약을 하려면 사전에 분절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좋은 분절 없이 좋은 요약은 없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요약이란 저자의 주장이 담긴 주요 골자를 대담하게 짚어내는 작업이므로 매번 정밀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워 누락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요약할 때는 항상 '구성'을 찾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요약은 매우 섬세한 지적 작업이다. 저자의 주장을 구성하는 단어나 어구를 모두 수집하여 그대로 이어 붙인다면 원래 문장이 될 뿐이다. 그것은 요약이 아니라 단순한 '동어 반복'으로, 상대 이야기를 알기 쉽게 설명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고 저자의 문장을 모두 빼고 자기만의 언어로 그의 주장을 표현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요약이 아니라 '창작'으로,, 상대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상태다. 요약이란 어디까지나 저자의 주장을 구성하는 주요 골자를 짚어낸 뒤 거기서 전개되는 로직을 가장 간결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지적 작업을 말한다."

저자는 논증력은 구성된 로직을 연결하여 논거를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타자의 의견을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독창적인 논의를 전개할 수 없으므로 자신만의 추론을 통하여 도출한 판단을 곳곳에 끼워 넣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는 논거를 짤 때 중요한 것은 독선적인 논거로 전락하기 않기 위한 타자 관점에서 뽑아낸 요약과 자기 관점에서 뽑아낸 추론을 균형 있게 조합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지한 논의를 전개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심각한 질문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사안의 핵심을 담은 본질적인 질문을 가리는 표면적인 질문을 걷어내고 진실로 물어야 할 질문을 꾸준히 탐구하는 자세라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저자는 체계적으로 로직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질문과 답변의 순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심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부터 찾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의 쟁점을 잘못 받아들이거나 문제를 축소한다면 사고의 출발점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다.

해결되어야 하는데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대개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런 딜레마를 간파하여 종래의 해결책을 가로막는 문제의 어려움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 문제의 진짜 어려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칫 먼 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질문을 끌어내는 힘'이 없으면 논거를 짜는 행위, 곧 논증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저자는 '질문을 끌어내는 힘'이 달리기의 출발점을 정하는 기술이고, '분절하는 힘'과 '요약하는 힘', '논증하는 힘'이 출발점에서 실제로 달리기 시작하는 기술이라면 '이야기화하는 힘'은 달린 경로의 풍경을 매력적인 영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야기하는 힘'의 단계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아무리 치밀하게 사고를 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추상적인 개념에 얽매이지 않고, 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사고하는 기술의 한 가지 방법은 추상적인 개념을 사람에 빗대어 표현하는 '의인화'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이야기화하는 힘은 '자기 반성적인' 측면과 '타자 지향적인'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추상적인 개념을 의인화하여 정리하는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의미가 모호한 개념이 맡은 '일'이나 '역할'을 정리함으로써 사고의 '중복'과 '누락'을 막고, 마치 이야기하듯 술술 추상적인 개념의 관계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생산적이고 원활한 방식으로 대화하는 데 필요한 사고방식을 '대화적 사고'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대화적 사고를 익히고 타자와 대화하는 것은 '탐구를 위한 공부'의 힘을 기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타자와의 대화는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이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사고에 빠지는 사태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화적 사고를 익히고 실천하는 단계로 '타자에게 적합한 이미지 사용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은유'와 '유추'라는 사고 기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은유는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고, 유추는 '상대의 감정을 자기 일처럼 공감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 기술의 공통점은 짧은 말로 구체적인 이해를 돕는다는 점이다. 특히 저자는 은유는 '사고력은 특별한 훈련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갈고닦을 수 있다'라는 사실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은유는 상대에게 사물의 정보를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양자간 괴리가 큰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은유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괴리'란 서로의 사고 방식이나 감정은 물론 과거의 환경이나 현재의 환경에 큰 차이가 있는 경우를 일컫는다. 괴리가 큰 타자와의 대화는 곧란하기 짝이 없다. 서로를 오해하는 상태에서 대화가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문제와 마주하는 법>의 저자 야마노 히로키는 살면서 만나는 근본적인 문제와 마주하는 기술을 전해주기에 '탐구를 위한 공부'의 힘은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답이 없는 시대에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과 씨름하는 '탐구를 위한 공부'의 힘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풍요로운 삶을 일구는 데 밑거름이 되는 지적 자산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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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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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아그네스 그레이> 등 빅토리아 시대 가장 뜨거운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브론테 자매는 작품에 붙는 수식어들과 달리, 실제 그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가난으로 고통받았다. 브론테 자매는 그 역경을 딛고 글쓰기를 통해 삶을 구원하고 운명을 개척한 강인한 여성들이었다. 이 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작가의 기질을 가진 천제적인 세 자매의 모든 순간을 담았다.

이 책은 자매의 편지와 일기, 주변인의 증언 등 다채로운 기록을 수록했으며, 국내 도서 중에서도 유일하게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빅토리아 시대 130여 점의 삽화를 실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브론테의 삶을 그 어느 책보다 입체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세 자매가 유년 시절부터 지어낸 상상 속 이야기, 소설 속 등장인물을 창작하는 데 영감을 준 인물의 이야기 등 자매가 상상하고 쓴 창작의 순간이 담겨 있다. 외부와 단절된 목사관에서 일평생을 살면서도 어떻게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브론테 자매가 가진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 역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가난한 경제 형편과 시대적 난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작품을 탄생시킨 브론테 자매의 문장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갈 용기,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에서 샬럿이 에밀리에 관해서 쓴 글이 인상적이다. 에밀리는 로헤드에서 3개월밖에 견디지 못했다. 샬럿 이외에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먹지도 않아서 날이 갈수록 야위고 창백해졌다. 샬럿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 동생 에밀리는 황야를 사랑했다. 그 애의 눈에는 어두침침한 히스 들판에서 장미보다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광경이 떠올랐고, 검푸른 산비탈의 음침한 골짜기도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에밀리는 쓸쓸한 고독 속에서 소중한 기쁨을 무수히 찾아냈고, 자유를 적잖이,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 자유는 에밀리가 코로 들이쉬는 호흡과도 같아서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 집에서 학교로 옮겨 오며 생긴 변화, 자신만의 고요하고 은둔적이지만 구속과 강요가 없는 삶의 방식에서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일상으로의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에는 그녀의 천성이 너무 강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집과 황야의 환영이 눈앞으로 몰려오는데, 정작 그녀의 앞에는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밀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나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런 사투를 벌이느라 그 애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은 수척해졌으며 체력도 약해져서 금세 위독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에밀리가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저대로 죽으리라 확신했기에 그 애의 학업을 중단시켰다. 에밀리는 학교에 온 지 겨우 3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갔고, 그 애를 다시 집 밖으로 내보내는 실험이 시도되기까지는 그 후로 몇 년이 걸렸다."

브론테 자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고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때도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브론테 자매는 각자의 시를 몇 편씩 모아서 가능하다면 출판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브론테 자매는 실체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진짜 일므 대신 커러(샬럿), 엘리스(에밀리), 액턴(앤) 벨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처럼 모호한 이름을 선택한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성적 색채가 강한 기독교식 가명을 쓰는 건 양심상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들은 편견에 좌우되기 쉽다는 막연한 인상이 있었고, 비평가들이 때때로 비판을 위해 인신공격을 하며, 보상을 위해 진정한 칭찬이 아닌 아첨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샬럿이 쓴 <폭풍의 언덕> 서문이 눈길을 끈다. 언니인 샬럿이 훗날 다른 판본의 서문에 썼듯이 <폭풍의 언덕>에서 황야는 단순히 책의 무대나 배경이 아닌 극의 행위자 자체였다.

"<폭풍의 언덕>이 시골풍이라는 소리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비난을 인정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시골스럽다. 황양투성이고, 야생적이고, 히스 뿌리처럼 울퉁불퉁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작가 자신이 황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엘리스 벨은 그저 눈으로 보고 감상하며 그런 경관에서 기쁨을 찾아 묘사한 게 아니다. 그녀에게 고향 언덕은 단순한 자연경관 그 이상이다. 그녀는 들새처럼, 그곳의 동물들처럼, 아니면 야생화처럼, 농작물처럼 그 안에서, 옆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그녀는 그 풍경을 묘사해야만 하고 그것만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

샬럿은 두 여동생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했고, 훗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에밀리는 1848년 12월 22일,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하워스 교회의 납골당에 묻혔다. 뿐만 아니라 에밀리의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이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샬럿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인 동생을 위해 애도의 시를 써 내려갔다.

"먼저 내 동생 에밀리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그 애는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육체가 쇠하는 가운데서도 정신은 이전에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욱 강해졌다. 에밀리가 하루하루 고통과 마주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그 애를 향한 사랑과 경이감으로 괴로웠다. 그런 모습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나는 그 애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에밀리는 남자보다 강하고 어린아이보다 천진했으며, 늘 홀로 있는 걸 즐겼다."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던에서 쓴 편지>는 브론테 자매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가장 솔직하고 사적인 문학인 편지글과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이 책은 글쓰기의 열정을 키워내고 싶은 작가 또는 지망생들에게 힘이 되는 글이 담겨있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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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필독서 30 - 조지 버나드 쇼부터 아니 에르노까지 세기의 소설 3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4
조연호 지음 / 센시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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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작품들의 이해와 문학적 깊이를 고찰할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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