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 일러스트 레터 3
줄리엣 가드너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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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아그네스 그레이> 등 빅토리아 시대 가장 뜨거운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 브론테 자매는 작품에 붙는 수식어들과 달리, 실제 그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고 가난으로 고통받았다. 브론테 자매는 그 역경을 딛고 글쓰기를 통해 삶을 구원하고 운명을 개척한 강인한 여성들이었다. 이 책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작가의 기질을 가진 천제적인 세 자매의 모든 순간을 담았다.

이 책은 자매의 편지와 일기, 주변인의 증언 등 다채로운 기록을 수록했으며, 국내 도서 중에서도 유일하게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빅토리아 시대 130여 점의 삽화를 실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브론테의 삶을 그 어느 책보다 입체적으로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세 자매가 유년 시절부터 지어낸 상상 속 이야기, 소설 속 등장인물을 창작하는 데 영감을 준 인물의 이야기 등 자매가 상상하고 쓴 창작의 순간이 담겨 있다. 외부와 단절된 목사관에서 일평생을 살면서도 어떻게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는지, 브론테 자매가 가진 풍부한 상상력의 원천 역시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가난한 경제 형편과 시대적 난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작품을 탄생시킨 브론테 자매의 문장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갈 용기, 뜨겁게 사랑하고 단단하게 쓰는 삶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에서 샬럿이 에밀리에 관해서 쓴 글이 인상적이다. 에밀리는 로헤드에서 3개월밖에 견디지 못했다. 샬럿 이외에는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으며, 먹지도 않아서 날이 갈수록 야위고 창백해졌다. 샬럿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 동생 에밀리는 황야를 사랑했다. 그 애의 눈에는 어두침침한 히스 들판에서 장미보다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광경이 떠올랐고, 검푸른 산비탈의 음침한 골짜기도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에밀리는 쓸쓸한 고독 속에서 소중한 기쁨을 무수히 찾아냈고, 자유를 적잖이, 그 무엇보다 사랑했다. 자유는 에밀리가 코로 들이쉬는 호흡과도 같아서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고향 집에서 학교로 옮겨 오며 생긴 변화, 자신만의 고요하고 은둔적이지만 구속과 강요가 없는 삶의 방식에서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일상으로의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에는 그녀의 천성이 너무 강했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집과 황야의 환영이 눈앞으로 몰려오는데, 정작 그녀의 앞에는 어두침침하고 우울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에밀리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나 말고는 아무도 몰랐다. 이런 사투를 벌이느라 그 애는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은 수척해졌으며 체력도 약해져서 금세 위독한 상황이 되었다. 나는 에밀리가 집에 돌아가지 않으면 저대로 죽으리라 확신했기에 그 애의 학업을 중단시켰다. 에밀리는 학교에 온 지 겨우 3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갔고, 그 애를 다시 집 밖으로 내보내는 실험이 시도되기까지는 그 후로 몇 년이 걸렸다."

브론테 자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고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때도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브론테 자매는 각자의 시를 몇 편씩 모아서 가능하다면 출판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을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브론테 자매는 실체가 알려지는 게 싫어서 진짜 일므 대신 커러(샬럿), 엘리스(에밀리), 액턴(앤) 벨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처럼 모호한 이름을 선택한 것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성적 색채가 강한 기독교식 가명을 쓰는 건 양심상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들은 편견에 좌우되기 쉽다는 막연한 인상이 있었고, 비평가들이 때때로 비판을 위해 인신공격을 하며, 보상을 위해 진정한 칭찬이 아닌 아첨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샬럿이 쓴 <폭풍의 언덕> 서문이 눈길을 끈다. 언니인 샬럿이 훗날 다른 판본의 서문에 썼듯이 <폭풍의 언덕>에서 황야는 단순히 책의 무대나 배경이 아닌 극의 행위자 자체였다.

"<폭풍의 언덕>이 시골풍이라는 소리가 있는데, 나는 그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에 그 비난을 인정한다. 이 책은 시종일관 시골스럽다. 황양투성이고, 야생적이고, 히스 뿌리처럼 울퉁불퉁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작가 자신이 황야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엘리스 벨은 그저 눈으로 보고 감상하며 그런 경관에서 기쁨을 찾아 묘사한 게 아니다. 그녀에게 고향 언덕은 단순한 자연경관 그 이상이다. 그녀는 들새처럼, 그곳의 동물들처럼, 아니면 야생화처럼, 농작물처럼 그 안에서, 옆에서 살아왔다. 따라서 그녀는 그 풍경을 묘사해야만 하고 그것만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

샬럿은 두 여동생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했고, 훗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에밀리는 1848년 12월 22일, 어머니와 오빠를 따라 하워스 교회의 납골당에 묻혔다. 뿐만 아니라 에밀리의 장례식을 치르고 며칠이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샬럿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웠던 사람'인 동생을 위해 애도의 시를 써 내려갔다.

"먼저 내 동생 에밀리의 병세가 악화되었다....... 그 애는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육체가 쇠하는 가운데서도 정신은 이전에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욱 강해졌다. 에밀리가 하루하루 고통과 마주하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그 애를 향한 사랑과 경이감으로 괴로웠다. 그런 모습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나는 그 애에게 필적할 만한 사람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 에밀리는 남자보다 강하고 어린아이보다 천진했으며, 늘 홀로 있는 걸 즐겼다."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던에서 쓴 편지>는 브론테 자매의 삶과 작품 세계를 가장 솔직하고 사적인 문학인 편지글과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이 책은 글쓰기의 열정을 키워내고 싶은 작가 또는 지망생들에게 힘이 되는 글이 담겨있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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