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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평점 :
<더 타임스>에서 편집자 및 칼럼리스트로 20년간 근무하며 정치와 경제, 페미니즘, 육아 및 인생 전반을 주제로 글을 써 온 메리 앤 시그하트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판적인 성편견의 광범위한 영향'을 조사했다. 시그하트는 정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풍부한 데이터를 수집했고, 부머상 수상자인 버나딘 에바리스토와 미국 재무부 장관인 재닛 옐런, 메리 매컬리스, 줄리아 길럳, 헬레 토르닝슈미트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성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여성뿐 아니라 남성, 트랜스젠더, 흑인 및 유색인, 장애인 및 비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방대한 연구 자료들을 모으로 정리해서 책 <평등하다는 착각>을 발표했다.
태어나서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여성의 삶은 차별의 또 다른 기록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사례를 나열하며 단순히 공분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그 너머로 부단히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장에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평등 실천법은 물론, 조직과 사회의 인식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구조적 방법까지 소개한다. 저자의 의도는 분노가 아니라 평등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이제는 성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고 편향적 시각을 재조정할 때다.
저자는 은밀한 편향은 과거에 대놓고 차별했던 것보다 더 여성에게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은밀한 차별은 훨씬 더 자주 일어나고 그 효과가 빠르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끼어들고, 무시하고, 의심하고, 말허리를 자르고, 과소평가하고, 얕잡아보는 행위는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사소할지 몰라도 누적되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은밀한 평향은 지적하기 어려운 까닭에 대처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는 권위 격차가 나타나는 한 가지 원인은 남성이 여성보다 자기 견해에 자신감을 내비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바라는 바를 요령 있게 얻어내고 자기 주장과 자기 홍보를 하도록 사회화되는 반면, 여성은 똑같이 행동했을 때 불이익을 당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여성도 이러한 편향을 내면화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도 겉으로 내비치는 게 늘 좋은 결과를 불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는 가정과 학교에서 남자아이만큼 여자아이의 자신감을 키워 주면서 다음 세대에서 이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노력만큼 재능고 칭찬해 주고 교실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독려해야 한다. 남자아이는 자기 말만 앞세우지 않도록 가르치고 자기 능력을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또 '자신감이 부족하다'거나 '자신감이 넘친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 그보다는 자신감을 갖는 데 납성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저자는 조지타운대학교의 언어학 교수 데버라 테넌의 말을 인용하며,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말을 훨씬 적게 한다는 것은 확실하며, 이는 여성이 쩍벌남식 대화법과 정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쩍벌남식 대화법은 남성이 대화의 지분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데다, 자기 주위에 앉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곧 상대보다 자신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현상은 권위 격차를 보여 주는 동시에 권위 격차가 나타나는 원인을 설명해준다고 이야기한다. 남성이 쉴 새 없이 떠들면서 여성이 발언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여성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제가 보기에 여성이 회의에서 발언을 덜 하는 건 말이 너무 많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조심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여성은 물리적 공간을 덜 차지하듯 대화의 공간을 덜 차지하려는 거죠. 극장이나 비행기에서 자리를 선택할 때, 사람들은 가능하면 여성 옆에 앉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경험상 여성은 옆 사람 공간을 침봄하지 않으려고 팔다리를 모으로 앉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이와 비슷한 이유로 공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여성들은 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간결하게 발언하며 대화의 공간을 적게 차지하려고 노력해요."
저자는 온화함과 호감은 남성에게는 필수가 아니지만 여성에게는 필수라고 말한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호감을 얻어야만 영향력을 행사하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남성은 호감을 얻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호감을 얻은 후에야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 남성이 여성의 견해에 귀 기울이게 만들려면, 여성은 호감 가는 사람이 되고자 무던히 애써야 한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모든 문화권의 남성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든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든 여성의 목소리에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니엘 스틸, 조조 모예스, 제인 오스틴, 마거릿 애트우드 등 여성 작가들의 책 중에서 가장 잘 팔린 책 열 권을 살펴보니, 독자의 19퍼센트만이 남성이었고 나머지 81퍼센트는 여성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찰스 디킨스, J.R.R 톨킨, 리 차일드, 스티븐 킹 같은 남성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잘 팔린 책 열 권은 독자의 55퍼센트가 남성, 45퍼센트가 여성으로 훨씬 더 균형 잡여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여성은 남성 작가가 쓴 책을 읽었지만, 남성은 여성 작가가 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여성 작가의 책 판매 실적에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경험하는 세계를 편협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그리고 저자는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이 현상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을까요? 문학은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와 생각을 탐색하며 지성과 상상력을 개발하는 방편이에요. 여성 작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쓸 때면 여성의 경험을 다뤄요. 그리고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성의 경험도 다루고요. 그러니까 남성들이 여성의 글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은 정말 많은 것을 얘기해 줘요. 굉장히 안타깝고 걱정스런 현상이죠. 저는 이것이 여성을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큰 문제예요."
저자는 문학 평론가, 즉 사회로부터 책을 평가하는 권위를 부여 받은 평론가는 대체로 남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남성이 쓴 책에 권위를 부여한다. 저자는 소설가 앤 엔라이트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나는 종종 남성들이 다른 남성들이 쓴 책에 너무나 쉽게 찬사를 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그들이 바로 돌아가며 찬사를 주고받는 방식에 질투를 느낀다. 이런 남성들의 애정은 문화를 관통하여 소용돌이처럼 휘몰라치며 남성들의 자신감과 명성을 높여 준다. 남성의 작품은 여성 평론가에게도 읽히고 논의된다. 이 등식은 오직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남성들은 여성 작가의 작품에 관심이 없다."
저자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현상은 비단 여성 작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여성은 문화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는 만약 문화를 이루는 성인의 절반에게 목소리가 없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절반은 다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로 인해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그 경험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세울 수도 없게 된다. 저자는 여성의 작품은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남성이 보고 공감하게 도와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무의식중에 남성들을 가두고 있는 공기 방울을 터트려 새로운 생각과 통찰 그리고 아이디어가 싹트게 도와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예술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육체적 힘을 요구하지 않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만큼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런 인식에 걸맞게 여성의 재능을 알아보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여성을 팔로우하고, 여성이 쓴 책을 읽고, 여성이 만든 영화를 보고, 여성이 창조한 예술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여성의 전문성에 기분 좋게 놀라게 될지 모른다."
저자는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편향을 보이는 행위인 '내면화된 여성 혐오'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자라온 양육 환경에서 눈에 비친 사회 현상 그리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권력을 쥔 남성들의 지배적인 태도로 인해 여성 혐오를 내면화한다. 저자는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고정관념에 빠지기 쉽고,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휴리스틱이 형성되면 뇌는 지름길을 애용하여 판단 기준을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성별에 두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여성이 직장에서 다른 여성에게 힘이 되어 주지는 않지만 오늘날에는 훨씬 많은 여성이 서로를 자매처럼 도우려고 애쓴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다른 여성에게 부당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여성은 스스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의심하고 바로잡으려고 할 공산이 크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려고 TV를 켜면 최근까지도 연륜과 권위를 갖추고 사건을 설명하는 사람은 모두 남성이었다고 말한다. 여성은 주름이 생기는 순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밀려난다. 반면 남성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밀려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 머릿속에서 나이는 권위와 연결되기 때문에 TV에서 나이 든 여성을 몰아내는 일은 '남성'과 '권위'를 동일시하는 무의식적 편향을 강화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여성의 견해가 남성의 견해만큼 권위를 가지려면 여른을 이끄는 오피니언 면에 남녀가 동등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간 편집 회의에 참석한 경험에 따르면 고위직의 다양성은 정말 중요하다. 남성이 이끄는 언론사의 뉴스와 특집 기사는 남성의 관심사와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여성 관련 이슈는 하찮게 취급되어 배제될 공산이 크다. 나는 육아나 워라밸을 다루는 특집 기사를 제안했다가 남성 동료들이 눈알을 부라리는 모습을 봤다.
언론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여성 언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언론에 비친 세상이 남성 쪽으로 편향돼 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남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편향된 시선은 무의식적인 태도와 편견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권위 격차를 지속시킨다."
저자는 사회 계층 같은 다른 요인이 더해질 때 권위 격차가 얼마나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성이 흑인인 데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면 정중하게 대접받기가 훨씬 어렵다고 말하는 에바리스토의 말을 인용한다.
"성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아요. 그런데 인종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성별과 인종이 얽히고설키기도 해요. 거기에 내가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점도 한몫하죠. 내가 살아온 기간뿐 아니라 기나긴 영국 역사의 대부분 동안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상류층 백인 남성이었어요. 오늘날 정부는 인력 구조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졌지만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백인이 이끌어 가고 있죠.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자'라고 하면 상류층 백인 남성을 떠올려요. 그러니까 흑인이거나 아시아인이거나 여성이거나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면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해요. 사람들이 저절로 우리를 권위자로 봐 주지 않으니까요."
저자는 극보수 진영에서는 여성이 세상을 뒤엎으려 한다고 주장하고, 남성이 겪는 모든 문제는 페미니스트 탓이라며 불안한 남성과 남자아이들을 선동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취직에 실패한 이유는 여성이 나대기 때문이거나 그들에게 여자 친구가 없는 이유는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을 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은 세상을 뒤집어엎어서 남성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만을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평등하다는 착각>는 다양한 학계 및 전문 영역에서 여성의 권위와 영향력, 능력, 그리고 권력에 관한 연구와 구체적인 증거를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모든 성별이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을 걷어내고, 새로운 세대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거대한 변화에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자 메리 앤 시그하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