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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지음 / 아몬드 / 2023년 2월
평점 :
내과 의사 이기병은 공중보건의 시절, 3년간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이하 외노의원)에서 근무했다. 전문의 수련을 막 마치고 나온 의사로서 그는 그곳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아픈 몸들을 만나며 언어의 장벽, 문화의 장벽을 실감한다. 그때의 그 고단함과 좌충우돌했던 분투를 그저 '미숙'의 결과로만 생각하기엔 갑갑함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 더 나은 진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고민을 안고 있던 그는 마침내, 인류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만난다.
<연결된 고통>은 현직 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기병이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환자들과 씨름하며 겪었던 희로애락을 담은 책이다. 건강과 불건강, 몸과 마음, 삶과 죽음, 나와 너로 구분되는 이분법의 시대에 이 책은 의학이라는 단일의 카테고리에 포섭될 수 없는 아픈 몸들을 인류학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복원한다. 외노의원이 이제 폐원(2004-2007)하여 역사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외노의원과 그곳에 다녀간 이국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1장 갑상선 호르몽의 진실 : 재현의 목적은 본질의 장악에 있다, 2장 술과 심부전 :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다, 3장 어느 HIV 청년과 약혼자 : 낙인이 치료에 미치는 영향, 4장 옴과 헤테로토피아 : 그들에게 쉼터는 장소 바깥에 있는 장소였다, 5장 요통, 변비 그리고 실신 : 좋은 의료란 무엇인가, 6장 질병이나 죽음은 형벌인까 :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 고통에 관하여, 7장 고통의 이분법 : 몸과 마음 사이의 간극과 관계에 대하여'라는 7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외노의원에서 만났던 50대 초반의 몽골계 중국인 환자와의 기억을 소환하며, 자신이 진료실에서 간과했던 환자의 이야기에 대해 고백한다. 저자는 과거 어머니와 환자의 오랜 유대 속에서 형성된 질환 서사 중에서도 고되고 힘든 기억으로 점철된 그 몸의 감각이 결국 환자를 구했고, 이제 그것은 그 자신의 이야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의학이 환자의 질환 서사를 제외한 채 깔끔하게 통제되고 압축된 정보로 재단된 몸만을 다룬하면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에서 상당한 부분을 스스로 소외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의학의 무능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라고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환자가 몸의 증상이나 감정을 통해 무엇인가를 고통스럽게 재현해내고 있다면, 그것이 그 고통의 본질을 관통하고자 하는 몸의 의도가 아닌지를, 또 그 의도를 둘러싼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치료자가 제일 먼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질환 서사는 현대 의학의 거대한 패러다임과 코드화된 카테고리 속에 갇혀버린 몸의 목소리를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재현'과 같다는 저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진단 및 치료의 알고리즘은 의학이 발전할수록 점점 더 세분화되고 복잡해졌다. 물론 알고리즘이 정교할수록 진단 및 치료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확도나 속도, 효과와 효율이 강조될수록 인간의 삶이 '질병 코드'로 암호화되면서 고통이나 증상을 통해 아픈 몸이 말하고자 했던 목소리가 검열, 절삭되어 결국 일개 디지털 부호로 납작해진다는 사실은 은폐된다. 이렇게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다 담기지 않는 아픈 몸의 이야기, 즉 질환 서사 속에는 가난, 노동, 성차별, 구조적 폭력이나 사회적 고통 등의 문제가 거의 언제나 상존한다."
"질환을 가진 삶은 분명 고통스러운 면이 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가족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는다. 환자는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누리던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며 결코 원하지 않던 무엇인가를 떠안는다. 그러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그 교환의 관계가 지속되며 그는 질병이나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삶에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또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외노의원에서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심부전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는 네팔인 남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외국인노동자'인 네팔 남성에게 주어진 진단명인 '알코올중독'을 듣는 순간,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사회적 비용이나 잠재적 폭력 등을 상상했다면 의료화된 질병에 붙여진 은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것이 그를 집단 치료인 알코올 자조 모임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 보이지 않은 배제의 힘이고, 동시에 그를 해고한 고용주가 느꼈을 불안의 명확치 않은 근원이며, 그가 의학적 위기의 순간에도 입원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고용 불안의 동력이자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더더욱 고립된 그가 금단 증상과 불안, 고통 속에서 음주의 유혹에 다시 굴복하게 만드는 최후의 타격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힘든 인생 여정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안식의 길에 접더든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혼자서 한 번에 건넌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은 그 누구도 섬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란 사실상 허구이며, 다른 환경이었다면,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조건이 달랐다면 당연히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료화는 일상을 건강과 불건강의 의료적 언어로 재편하는 사회, 문화적 제도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코드화된 질병과, 개별 사회의 고유한 문화 속에서 형성된 상징과 은유가 유착된다. '의료화' 시대에는 서로 밀착되어 있는 '은유'와 '질병'을 서로에게서 떼어내는 작업이 한층 더 어렵고 요원해진다. 예전에는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을 의미했을 '과체중'이 건강에 유의해야할 잠재적 지표 정도로써의 의미를 넘어 운동 부족, 게으름, 자기 관리 실패 등의 은유와 유착되며 운동이나 식단으로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어 버린 것이 비근한 예다."
"그의 알코올중독, 그리고 그를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을 심부전을 일으킨 '선택'은 오롯이 그의 몫이었을가. 그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가족에게조차 힘들다는 말을 제대로 못하도록 만든 성장 배경은 그의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삶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네팔인 직장 동료들과의 민족적 알력과 수적 열세, 하급 카스트가 만드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구조적 고통은 과연 그에게 어떤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까."
저자는 외국인노동자 쉼터에서 옴이 퍼져나간 사건 후 쉼터에 남고자 하려는 조선족 동포들의 이야기를 건넨다. 저자는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가 그의 책 <비장소>에서 정체성과 관련되지 않고 관계적이지도 않으며 역사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없는 공간을 "비장소"라고 일컬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푸코가 장소에 관한 기존의 논의가 '안'의 장소성에만 집중해온 것과 다르게 '바깥'에도 장소성을 부여하면서 안과 밖을 아우르는 새롭고 다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관계'에 주목했고, 그 다양한 배치를 일으키는 안과 밖의 관계들 중 특수한 몇 가지 장소 유형 중 하나인 '헤테로토피'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을 소개한다. '헤테로토피아'라고 호명한 공간은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다. 저자는 그들에게 쉼터는 '다른 장소 밖에 존재하는 장소', 즉 헤테로포피아라고 말한다.
"나는 쉼터에 남고자 결정했던 일곱 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쉼터에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를 경험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물리적으로 대한민국 서울의 가리봉동 이주 노동자 쉼터와 중국 연길의 서시상 노점은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겪은 20분간의 이질감은 그것이 마법처럼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통적인 시간은 대한민국 이주 노동자의 현실에서 흐른다. 그들은 이주 노동자로서 차가운 일터이자 때로는 적대적이고 이질적인 외부 환경인 대한민국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의 쉼터에서는 시간이 바깥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기억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쉼터에 처음 입소할 때 교육받은 규율과 부자유의 초기 외압을 극복한 뒤에는 더 이상 적응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시공간은 외부와의 일시적 단절을 통해 기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쉼터는 주변의 다른 '장소'들로부터 '비장소'로 고립되어 있기도 하고 옴이 유행하면서 감염 지역으로 한 번 더 고립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고강은 폐쇄의 위협 속에서도 입소하거나 체류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에 의해 열림의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쉼터는 다른 장소 안으로 포섭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장소로써 저 바깥에 있지 않다."
"나는 푸코가 말한 대로 헤테로토피아가 쉼터가 나머지 모든 장소들에 제기하는 '이의'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소는 안과 밖을, 성원권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는 개념이다. 쉼터는 기존의 장소 개념에 이렇게 도전한다.
곡 나눠야 하는 것이냐고. 같이 들어가 함께 둘러앉으면 안 되는 것이냐고.
우리는 장소로 나타나는 성원권을 통해 '환대'를 선택할 수도, 그 반대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헤테로토피아로써 쉼터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낯선 이들을 '낯설지 않게' 보고자 함께 둘러앉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했던 장소와 그 경계가 오히려 다소 '낯설게' 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닫지 못했던 사이 우리의 공간에 침투해 있는 '헤테로토피아'를 불현듯 마주하게 되는 그런 신비한 경험의 순간들 말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40대 후반의 태국인 중년 남성이 요통과 변비, 그리고 실신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네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파편화된 질병의 단면이 아니라 다중적인 욕구와 고통을 지닌 환자 그 자체를 '돌보려고' 하는 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좋은 의료란 결국 다름 아님 '돌봄'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오늘날 환자들이 자본과 결합한 의료 시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의료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선택이 신중하게 조율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환자와의 교감이나 심층적인 이해 없이 파편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혜택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심장병은 달리 바꿀 수 없는 생물학적인 요인이라고 해도 실신과 급사의 위험을 증가시킨 요소는 다분히 사회, 문화적인 것이다. 그의 변비는 타국으로 이주해 그동안 먹은 적 없던 그 나라의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데서 기인했다. 그가 발살바 기법을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외국인노동자로서 무거운 이삿짐을 나르다 허리를 다쳤기 때문이었다. 소변을 참기 위한 탈수가 자주 일어나는 직업적 고초를 포함해서 그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하나하나 수집하듯 위험 요소를 자신의 삶에 배치하는 행위를 하게 되었던 셈이다."
"지속가능한 돌봄 의료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고, 동시에 보건 의료 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 사회 전반에서 돌봄을 주제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신체와 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는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와 당신의 것일 수 있다는 저자의 글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