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음과 모음 2023.봄 - 56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3월
평점 :
56호를 맞는 계간 <자음과모음>에서는 '목소리'를 키워드로 삼아 마지막 게스트 에디터로 돌기민 소설가를 모셨다. 이번 기획에서 돌기민 소설가는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목고리, 타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감각하며 목소리와 관계 맺는지에 관해 묻는다. 목소리는 젠더(혹은 지정성별), 세대(나이), 출신지(사투리), 계급, 건강 상태, 장애 유무, 감정, 목소리를 전하는 대상과의 친밀도, 발성 연습 등 폭넓은 사회적 조건과 의미가 달라붙는 한편, 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신체적인 현상이고 수많은 상호작용의 현장에서 함께하지만 말의 내용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게스트 에디터 지면은 각기 다른 목소리에 주목하여 일곱 명의 필자들과 함께하였다. 언젠가 팟캐스트를 하고 싶은 작가 김괜저, 여성, 엄마, 기획자라는 세 가지의 정체성을 지닌 김다은, 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 하루 종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이다울, 소설가 정용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최태규,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책에서 소설가 정용준의 '내게 없는 내 목소리'라는 제목의 글이 눈길을 끈다. 정용준은 어린 시절 동생의 죽음 후 목소리가 없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정용준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자신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됐고 엄마는 사람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됐다고 말한다. 정용준은 이제 거의 더듬지 않고 말도 잘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더는 아이가 아니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가 가져간 많은 기억과 생각과 언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한편으론 고맙지만 한편으로 서운한 이제는 내 것이 아닌 내 목소리에 관한 쓸쓸함에 대해 말한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시간을 자주 생각해본다. 깊은 물속에 무엇이 살고 있나 싶어 오래도록 물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기어이 물그림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 사람처럼. 나는 내 기억의 동공과 말 없는 말과 내게서 떠나간 목소리를 자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이 떠오른다. 엄마는 그것이 허구라고 했고 아빠는 그것을 착각이라고 했고 죽은 동생은 그것을 부정했으며 목소리는 그것에 관해 끝까지 침묵했다. 나는 알면서 모르고, 보면서 볼 수 없다. 이제 나는 이 이유를 안다. 목소리. 그가 내게서 떠나갔을 때, 떠나기로 결심했을 대, 내 기억도, 기억에 붙어 무럭무럭 자라나야 했을 여러 감정과 감각도, 함께 데려간 것이다."
"어떤 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 종종 복잡한 감정과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건 목소리에는 몸이 있고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듣기가 아닌 보기. 보기를 넘어선 만지기. 목소리를 들으면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목소리를 혼의 얼굴, 말은 백의 영역, 그러니까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혼이 실렸다는 하는 것은 비유가 아니다. 얼굴에서는 찾을 수 없는 얼굴, 표정에서는 볼 수 없는 표정, 목소리에서는 찾고 발견할 수 있다. 목소리에 실린 감정. 피의 온도. 어제의 일기. 오늘의 예감과 예상. 그가 걸어온 길의 풍경과 머리 위 하늘과 구름과 바람.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그가 말하지 않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최태규의 '애써 들어야 설핏 들리는 목소리'라는 제목의 글이 흥미롭다. 최태규는 곰을 돌보는 작업은 조용한 동물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목소리를 곰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최태규는 인간처럼 체계화된 언어를 갖지 않는 동물들에게 목소리는 몸의 각 기관을 이용해 낼 수 있는 소리의 일부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전혀 다른 목소리를 가진 곰들이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는 희망을 갖으며, 곰들이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까지 들어야 할 책임도 있는 것 같다는 최태규의 말이 인상적이다.
"곰이 목소리를 낼 때의 감정을 '다급할 때'라고 묶는다면, 그 외의 일상에서는 목소리를 쓰지 않는다. 소리보다 냄새로 신호를 남기면 더 긴 시간 동안 많은 대상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 소리는 효율이 떨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곰이 조용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쉴 새 없이 떠드는 인간이나,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한 개나 고양이, 소, 닭과 같은 동물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혹은 인구밀도가 급격하게 높아진 한국에서 대부분의 포유동물이 몰살당하고, 새들만 가까스로 남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새는 일상적 의사소통에 목소리가 중요하다. 결국 우리 주변엔 목소리를 내는 동물들 위주로 남았다. 목소리를 내지 않는 동물들은 존재한다고 여기지도 않고 도시를 만들었다. 곰도 그렇게 사라졌던 동물이다."
이 책에서 황시운의 '엄마의 집'이라는 제목의 글이 깊은 여운을 전한다. 황시운은 산책을 하다가 난간이 없는 작은 다리에서 추락하여 평생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게 되었고, 만에 하나의 사고로라도 떨어지지 않을 곳으로 1층의 집을 얻어 이사를 했던 엄마의 집에 대해 이야기한다. 황시운은 난독으로 놓쳤던 글을 되찾아준 엄마의 집에서라면 다시 추락할 위험 없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느릴지언정 읽고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나 역시 언젠가는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황시운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놀랍게도 글을 되찾고 싶다고 생각하자 살고 싶어졌다. 뜻하지 않게 치료 의지라는 게 생긴 셈이었다. 잃어버린 몸을 되찾는 것은 포기했지만, 글마저 영영 놓쳐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죽더라도 글을 잃은 채 죽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은 침대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로 옮겨 앉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휠체어로 옮겨 앉는 게 가능한 시간 동안에는 책상 앞을 지켰다. 틈틈이 집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는 온종일 고요에 잠겨 있었고 간혹 내려앉는 새들과 나른한 고양이들만이 그 시간 속의 나를 지켜봐 주었다."
"다시 글을 읽는 게 가능해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고마운 선배가 보내준 <달팽이 안단테>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바로 어제까지도 파사삭 부서지며 흩어졌던 글자들이 어느 순간 머릿속에 들어와 의미를 품은 채 조금씩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처음부터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나는 며칠에 걸쳐 간신히 그 책을 완독한 후 감격에 겨워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꾸준히 먹은 덕일 수도, 가능하면 자주 햇볕 아래 있으려 했던 노력일 수도, 끝도 없이 반복했던 맥락 없는 단어들의 나열 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나무가 우거져 빛이 잘 들지 않지만 결코 추락하지는 않을 엄마의 집에 있었다. 나는 사고 이후 모든 순간 나와 함께했던 엄마의 강박에 가까운 돌봄과 엄마와 내가 떠난 빈집에서 혼자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하며 조용히 병들어갔던 아빠의 희생이 어떤 순간에도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