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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정용실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사랑이 말을걸면>의 저자인 23년차 베테랑 방송 아나운서 정용실과 다양한 방송에서 내공을 쌓은 3인의 방송작가가 KBS [즐거운 책읽기]를 통해 만났다. 그녀들은 이 책을 통해서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어오면, 당신이 다시 사랑에 기꺼이 다가갈 수 있기를, 차가운 겨울, 우리 마음을 데워줄 사랑을 꼬옥 붙들 수 있기를, 우리의 슬픔이 당신의 사랑이 되고, 우리의 과거가 당신의 미래가 되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여자 넷은 봄이 막 시잘될 무렵, 그동안 우리네가 겪은 속살 같은 사랑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여자 넷의 사랑이 우리에 겉모습만큼이나다르고, 각자의 사랑하는 모습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느 사랑과도 비교될 수 없고, 이 세상 유일한 경험임을 느낍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나 책 속의 글들을 인용하여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우리를 아프게도 하지만, 치유하게도 한다는 것을.
"봄날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지는 꽃송이들은 금세 우리의 시선을 빼앗지만, 그때뿐이다. 꽃이 지고 난 후 뜨거운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건 눈에 띄지 않는 이파리들이다. 한순간에 눈길을 빼앗는 사랑이 봄꽃이라면, 나를 지탱해주고 견디게 해주는 사랑은 푸른 잎사귀같다."
"옛사람들은 마흔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의미에서 '불혹'이라 불렀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자주 흔들린다. 요즘 사람들이 마흔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어떤 유혹에서 잘 넘어가는 나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흔들림은 어쩌면 평생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흔들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관계는 관계를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아홉이라는 숫자가 들어간 나이에 대한 불안감과 새로운 길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글귀에서 많은 공감이 갔다.
"하나, 둘, 일곱, 여덟 등과 달리, 나이 아홉은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블랙홀 하나가 생기는 시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막막함, 생이 나를 피해 가는 것만 같은 느낌은 무슨 짓이든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길이 없는 숲 속에서 어떻게든 길을 찾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과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른아홉의 고비를 넘으면서 나는 막연히 알아가고 있다. 그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폭주하는 동안 삶이라는 기관차는 기존의 경로가 아닌 새로운 경로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길로 나를 데려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 지점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그것이 이전과 다른 길일지라도 그곳에 새로운 삶이 있따면 그 또한 값진 것이 아닐까?
저자가 올리버 반틀레의 <내 안의 코뿔로>의 글을 인용하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내가 삶의 본질을 잊었던 거 같구나. 위대한 스승은 내가 아니라 삶이거든.
나는 기껏해야 삶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너에게 알려줄 수 있을 뿐이란다."
저자는 앨리스 먼로의 <쐐기풀>이라는 소설을 인용한다. '그가 심연을 본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심연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그 모든 것을 함께 겪어냈다. 그 기억이 그들을 묶어주고 잇는 것이다. 그런 일은 두 사람을 영원히 갈라서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평생 그들을 하나로 묶을 수도 있는 법이다. 힘들게 그 밑바닥을 벗어났더라도 그들은 그 차고 텅 빈, 옴싹달싹할 수 없는 심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터였다.;라는 글귀이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본 부부는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저자의 친구 이야기는 바로 앨리스 먼로의 <쐐기풀>에 등장하는 위의 글귀와 같은 말이 아닐까.
"인생의 심연, 아이나 부모의 죽음, 지독하게 낫지 않는 병, 몸서리쳐지는 가난, 너무도 고통스러운 외도 등의 힘든 순간을 누군가과 같이한다는 건 정말 버거운 일일 것이다. 누구나 이런 순간엔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어쩌면 처절하게, 가면을 벗어던지고 서로를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서로를 원망하고, 물어뜯고, 상처 내고...... 갈라서지 않고는 도저히 배겨내기 힘든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결혼의 위기란 다 이런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힘든 순간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 자신도 힘들지만 조용히 자신의 어꺠를 내어주는 사람, 묵묵히 손을 잡아주는 사람, 만일 당신이 이런 사람과 결혼했다면 둘은 인생의 심연을 같이 손잡고 건너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가 아닌 내가 이런 존재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진정한 관계란 인생의 심연처럼 깊은 아픔을 함께 통과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세이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은 사랑과 이별, 남자와 여자, 솔로와 연애, 그래도 우리가 사랑을 계속 꿈꾸는 이유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으로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