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수업 -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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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뉴욕 수업>은 2018년에 처음 선을 보인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판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저자 곽아람의 뉴욕 생활에 드리웠던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이 더욱 뚜렸해졌기 때문에 그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다듬어 새로이 펴낸 것이다. 단기 이민에 가까웠던 뉴욕에서의 시간 동안 저자 곽아람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접하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 예술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지나치게 빠르게 몰아치는 도시의 파도에 떠밀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그림들, 미술관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작품들이 제 품을 내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괴테처럼 살겠다 결심하고 뉴욕으로 떠나 호퍼처럼 산 이야기"라고 자신의 책을 정의하는 저자 곽아람은 <나의 뉴욕 수업>에서 뉴욕에 머물며 들었던 미술 수업, 생생한 아트 비즈니스의 세계, 그리고 스스로 몰랐던 '프로 놀러'의 기질까지, 다양한 경험과 사유를 에드워드 호퍼, 로버트 인디애나, 알렉스 카즈, 조지아 오키프 등 대도시의 흔적을 담아낸 작품들과 함께 풀어낸다.

"이 책은 2018년 출간된 <결국 뉴오커는 되지 못했지만>의 개정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뉴욕 생활에 드리웠던 호퍼의 영향이 더 뚜렸해졌기 때문에 호퍼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추가해 고쳐 썼다.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삶을, 예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예전에 비해 꽤 넓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다. 그 성장의 바탕에는 '호퍼의 도시'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뉴욕 수업>이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나는 호퍼처럼 도시의 인물들을, 풍경들을, 순간들을 포착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해 기록했다. 의식적으로 호러를 따라 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알아차려보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호퍼의 작품처럼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 나만의 이야기지만 독자들과 함께하면 더 좋을 이야기가 되었다."



저자는 뉴욕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여러 명이 함께 살았지만 잠들 때와 눈들 때는 항상 혼자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방문 밖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주면서도 때로는 외로움을 배가시켰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안방에서 자신이나 룸메이트가 각각 눈을 떠 호퍼의 <아침해>라는 제목의 그림 속 여인처럼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 아침을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혼자이면서 넷, 넷이면서 혼자인 풍경, 식사시간에 한집에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식탁을 차리던 그 기묘하게 쓸쓸한 풍경과 호퍼의 그림이 자꾸만 겹쳐 보였다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아침해>는 뉴욕에서의 공동생활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그림이다. 침대에 앉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잠긴 여자. 아무 장식 없는 간단한 침애와 그림 하나 걸리지 않은 텅 빈 벽이 그림 속 여자의 고립감을 더욱 강화시킨다."



저자는 시카고에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만난 일은 미국에서 일어난 수많은 호퍼와의 만남 중 정점에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미술관에서 호퍼의 그림을 바라보며 제 안에 품은 빛을 쏟아내고 있는 것만 같은 레몬빛 벽을 골똘이 응시하면서, 바텐더마저 사라져 텅 빈 실내를 상상하고, 밤거리의 신호등처럼 홀로 불 밝힌 채 서 있는 식당 풍경을 그려보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그림을 이야기하며 호퍼는 말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으로부터 고독한 공간을 끄집어내 화면에 재현하고, 무의식 속 외로운 인물들을 그 공간에 배치했다. 심상을 읊어내는 시인처럼, 호퍼는 마음속 이미지들을 화폭에 옮겼다. 그래서 그림 속 식당은 어디에든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환영 같지만, 실재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는 고독한 공간의 이미지가 가라앉아 있고, 호퍼의 식당오 그 중 하나니까."



저자는 뉴욕에서의 일상이 견고해져가자 에드워드 호퍼는 불식간에 자신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밤에 창밖을 내다보면서,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자주 호퍼를 떠올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뉴욕에 오기 전까지 호퍼는 고독한 사람들이 아니라 고독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저자는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호퍼는 자신에게 특별한 화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카네기홀에서 호퍼의 <뉴욕 영화관>을 생각하며 계속해서 안내원을 지켜보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공연 때마다 관객들에게 프로그램을 나눠주고, 자리를 안내하고, 관객들의 돌발 행동을 감시해야만 하는 직업이 지루하면서 외로우리라 섣불리 넘겨짚었지만, 아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공연에 몰두해 있었고, 관객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우고 있으면서도 피아니스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다. 박자가 빨라질 때는 발을 까딱였고, 흥겨운 가락이 나올 때는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연주가 끝나자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박수쳤다. 저자는 그림 밖에서 그림을 볼 때와 다른 시선으로 다시 <뉴욕 영화관>을 천천히 보았고, 안내원과 함께 그림 속 한 장면이 되고나니 그녀도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싶어 전혀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언제나 고독하다 여겼던 호퍼의 그림 속 인물에게 청년 쇼팽의 선율과 더불어 다정한 위로가 될 것 같은 장면이었다는 저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연주를 감상하던 붉은 제복의 공연장 안내원.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선 채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녀의 모습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 영화관>이 떠올랐다.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영상이 떠오르면 푸른 제복의 안내원만 홀로 조명을 받는다. 진짜 영화는 그림 왼쪽 구석에서 상영되고 있는데, 스크린이 보이는 자리로부터 소외된 안내원이 정작 영화 속 주인공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그려진 그림이다. 영화관 입구에 서서 고개를 약간 갸우뚱한 채 오른손으로 턱을 괸 안내원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단절, 지루함과 쓸쓸함을 읽어냈다. '현대인의 만성적 고독'이라는 어구는 호퍼의 그림을 해석하는 데 사용되는 단골 키워드다. 나 역시 호퍼의 그림을 볼 때면 습관적으로 고독을 이야기하곤 했다. 타성에 젖은 게으른 감상일 수도 있겠지만 '호퍼'라고 하면 자연스레 외로움이 연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자는 호퍼의 <촙 수이>는 뉴욕의 중국 음식점에 앉아 찻주전자를 앞에 놓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두 여성을 그렸다고 말한다. 1920년대 신여성답게 과감하게 보브 커트를 한 머리에 종 모양의 클로슈 모자를 쓴 여자들, 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정면을 향한 여자의 얼굴과 연두색 상의, 관람객들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또다른 여자의 청회색 등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저자는 뉴욕 시절의 자신이 차이나타운에서 자유를 느꼈던 것처럼, 그림 속 여성들은 촙 수이 식당에 앉아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며 해방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림 속 식당 이름이리도 한 '촙 수이'란 각자기 채소에 고기나 해산물 등을 넣고 볶은 미국식 중화요리를 말한다. 1920년대 미국에는 촙 수이를 파는 식당이 유행했는데, 값싸고 후딱 먹을 수 있서 젊은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성해방운동이 활기를 띠던 제1차세계대전 직후의 미국, 여성들은 더이상 집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일터로 나섰다. 이전에는 홍등가 여성들이나 자기들끼리 외식을 하는 걸로 여겨졌지만, '모던 걸'들은 남자들처럼 공공연하게 식당에서 식사하며 도시의 풍경을 바꿨다."



저자는 뉴욕에서 생활하는 1년 동안 자신의 방 벽에는 딱 한 점의 그림이 붙어 있었다고 말한다. 우연히 들른 샬롯 브론테 전시를 본 후 모건라이브러리 기프트숍에서 산 샬럿 브론테의 초상화다. 그리고 저자는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그 맹세대로 뉴욕에 있는 동안 정말 열심히 놀았고, 학교도 다니고 크리스티 수업도 들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시간들은 공부라기보다는 유희에 가까웠다고 이야기한다.

"미로 같은 뉴욕 생활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초상화를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았다. 침대에 누워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벽에 붙은 샬럿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죽은 그 여자가 자유롭게 네 맘대로 살아보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저자는 이민자들을 생각할 때면 영국 화가 포드 매덕스 브라운의 <영국에서의 마지막>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라파엘전파의 일원인 브라운은 라파엘 스타일의 원형 캔버스에 영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 가는 한 쌍의 부부를 그렸다. 1850년 중반 영국의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가 번창하고 1851년 뉴사우스웨일스에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곤 했다. 저자는 빈곤을 완화시키고 영국 본토의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이민을 권장했으며, 그림 속 주인공도 새 삶을 찾아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익숙한 모든 것들에 작별을 고하고 갖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완전히 낯선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에 대해 말한다. 이민자들이란 결국 '더 나은 삶'을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브라운의 그림은 마냥 희망적이지 않다. 화가는 고국에서 쫓기듯 떠나와 넉 달간의 고된 향해에 나선 이 부부의 고난에 주목한다. 그림 뒤편의 구명보트에 적힌 '엘도라도'라는 배의 이름이 부부가 미지의 황금 땅, 신기루 같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내의 회색 망토 사이고 살짝 비어져나온 자그마한 손이 부부가 새 생명을 함께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서양미술 전통에서 고향을 떠나는 부부와 신생아는 헤롯왕의 학살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을 상징한다. 화가는 자신과 아내 에마를 모델로 해 그림을 그렸다. 교육받을 만큼 받은 세련된 중산층이 이민 떠나는 배 안에서 각종 불편함과 모욕을 견디며 절망하다가 포기하기 직전까지 이르는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화가의 의도였다. 우산에 의지한 채, 부부는 아비규환의 배 안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애써 등을 돌리고 있다. 검정 챙 모자 아래 남편의 눈빛을 심각하며, 진홍빛 보닛에 둘러싸인 아내의 얼굴을 무표정하다. 이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더라도 성가족에 못지않은 수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위스콘신 출신의 조지아 오키프의 1925년 작품 <달이 있는 뉴욕 거리>는 오키프가 처음 그린 뉴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번화한 도시 뉴욕이 오키프의 눈에 왜 그렇게 쓸쓸하게 비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위스콘신의 드넓은 평원에서 나고 자란 오키프에게 뉴욕이라는 대도시는 매혹적이면서도 낯설고 삭막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키프와 마찬가지로 지방 소도시에서 자라 대도시 서올로 온 자신은 뉴욕에 올 때 서울 이상으로 고독했다고 말한다. 오키프는 1925년부터 1929년 사이에 약 25점의 뉴욕 드러잉과 회화를 그렸고, 주로 낮 풍경보다는 밤 풍경이었다. 저자는 오키프는 밤의 뉴욕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심취했고, 그건 곧 그녀 마음속의 풍경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오키프는 여러 방면에서 모던한 여자였지만, 그중 가장 모던한 것은 그녀가 그려낸 뉴욕 그림이라고 말한다. 나이 많은 남자 예술가의 뮤즈였던 젊은 여자 예술가가 처음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이라는 남자들의 뮤지를 제 것 삼아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글이 인상적이다.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에 의해 조각난 하늘 사이로 구름이 일고 그 구름을 비집고 달이 비죽 얼굴을 내민다. 하늘은 아직 푸르다. 노을의 잔영이 서쪽 하늘에 남아 있다. 교회의 첨탑이 붉은 하늘을 꿰뚫는다. 그리고 달보다 더 환한 도시의 빛, 가로등, 적막한 도시를 지키는 서글픈 외눈박이 괴물 같은 노란 가로등 불빛이 건물의 붉은 실루엣에 우수를 더한다. 맨해튼 47번가의 밤풍경을 그렸지만 뉴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림이 화려한 불빛의 전시작 같은 전형적인 뉴욕 야경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오키프는 언젠가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뉴욕을 그릴 수는 없어도 느끼는 대로 그릴 수는 있다.""

"오키프가 뉴욕을 그렸던 1920년대,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은 모더니티와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여자가 그리기에 적절한 주제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남자들은 여자 예술가가 건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꽃이나 그리면 될 일이었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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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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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 위에 코끼리가 앉아 있다. 코끼리가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다. 어둠 속에 누워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생각한다. 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 언론사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촉망받는 기자 바바라 포어자머는 30여 년간 앓고 있는 우울증을 '코끼리'로 비유하며 우울과 무력함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고충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는 그의 첫 저서로, 독일에서 우울증을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다룬 저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미디어상을 수상한 작가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한 화제작이다. 그는 우울증을 비롯하여 가면증후군, 감정표현불능증, 번아웃 등 자신의 경험을 상세이 기록하며 각종 언론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시대의 우울을 명확히 포착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저자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신 건강에 관한 연구 및 통계를 다방면으로 분석한 뛰어난 저널리스트로서 어떻게 침대 밖으로 나와 일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울과 무기력, 공허함이 깃든 시대, 매일 힘겨운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 일어나는 법'을 전한다.

이 책은 '1장 코끼리와 함께 산다는 것, 2장 삶은 침대 밖에 있으니까, 3장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4장 가끔 행복했고 자주 우울했던 이들에게'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울증을 코끼리에 비유하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신에 대한 묘사를 전하는 글들이 우울증이란 질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 인상적이다.

"나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무언가를 걸치고 출근을 해낸다. 그곳에서 그럭저럭 내 역할을 하고 화장실에 앉아서 운다. 나는 모든 따분하고 지루한 업무를 지원해 도맡는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모든 일이 버겁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좀 나아진다.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잖아. 나는 아픈 게 아니야. 그저 별로인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지고 가슴 위에는 코끼리가 앉아 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할 만한 나의 첫 감정에 대한 기억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여섯 살이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S반 선로를 따라 달리며 자살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했다. 같은 해에 코르시카섬으로 떠났던 청소년 캠프에서는 그네에 앉아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집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음을 안다.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향수병을 앓았던 적이 없다. 당신의 나는 우울 단계에 놓여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 감정을 설명해줄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은 것이다. 나는 그 원인을 스트레스나 연애 문제, 시험의 공포에서 찾았다."

저자는 우울증과 감정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우울증을 슬픔, 두려움, 자기 회의와 쉽게 혼동한다. 게다가 이 중 한 가지만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저자는 우울증은 단순히 명상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거나 마음 정리를 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불편한 감정은 약물치료나 상담치료 없이도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저자는 우울 단계에 있는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거기 필요한 감정적 공간을 확보한다면 우울한 감정에서 훨씬 쉽고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경험상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말한다. 삶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바뀌고, 그 중 무언가는 언제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거기 내포된 행복감을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말과 함께 항상 미루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마치 '숫자를 따라 색칠'하는 그림처럼 대하는 사람은 풍부한 감정의 삶을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느끼는 대신,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태도가 과거의 자신을 우울증으로 한 발 더 밀어 넣었고, 결국 자신으 정신병원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어떤 감ㅈ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의 신념이 미리 적어둔 '숫자'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바로 그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마치 '숫자를 따라 색칠'하는 그림처럼 다뤘다. 마치 밑그림이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상황에는 어떤 특정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집에는 큰 정원이 있고 나는 그걸 좋아해야 해. 3주 후면 이사할 거니까, 스트레스를 받아도 괜찮아. 여기는 17번이니까 분홍색으로 칠해야지. 저기는 53번이니까 검은색이야. 물론 그렇게 색칠할 수도 있다. 숫자를 따라 색칠하다 보면 예쁜 그림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색칠하든 항상 같은 그림이 나온다."

저자는 정신적 질병은 언제나 다인성이라고 말한다. 생물심리사회 모델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선 유전자나 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유발 요인이 있다. 그다음에는 개인의 태도, 기대, 감정, 생각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 요건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트라우마, 생활환경, 인간 관계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러한 요인들은 환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가중치에 부여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정신적 질병과 관련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말하여 눈길을 끈다. 첫째, 누구에게나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고, 그렇다고 그게 질병은 아니다. 둘째, 기분이 자꾸 처진다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고, 긴장을 하고, 더 건강한 음식을 먹거야 하고, 힘을 내야 한다. 셋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기분이 가라앉을 이유가 없다. 넷째,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느끼거나 심리적 질병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고통과 질명이며,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긴장을 이완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 다섯째,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트라우마도 없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을 리는 없다. 저자는 수년,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정신과와 심리상담소를 찾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던 것은 바로 이 문장들이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으며, 자신에게 비판과 거절은 가장 깊은 곳을 찌르고, 그 순간 자신은 이걸 할 수 없다는 확신, 자신이 모든 걸 망쳤다는 확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이이 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존감의 결여가 모든 것의 원인이고, 우울증의 뿌리이며, 어쩌면 그 자체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우울증 환자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가족, 친구, 직업, 취미 등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한 쇼라고 느낀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을 실제로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기분,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느낌이다. 가면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느낌은 자신이 백 번, 천 번 성공적으로 해낸 일을 할 때도 나타난다. 나는 이 기분을 자주 느낀다. 심지어 내가 느끼는 기분은 이보다 한 단계 깊다. 나는 어떤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를 의심할 뿐만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인지도 의심한다."

"저널리즘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 나는 100건이 넘는 글을 발표했고 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기사를 제출할 때마다 내 글이 가치있는지 의심이 든다. 상사가 '오케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동료가 나를 칭찬하고 나서야, 기사가 공개되고 독자들의 메일이 들어오고 나서야 나 또한 만족감을 느낀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편두통을 '통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유토피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자는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균형을 잡으려면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보는 대신 시선을 늘 앞에 두고 유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을 당뇨나 천식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병이 생겼나?'라는 질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현재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이 문제에 대처할 방법은?'일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이 도움되지 않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차리는 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건 좋지만, 계속 들어주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상담사에게 전화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우울증을 주제로 게시물을 올릴 때 '단지 슬프기만 한 게 아니다'라는 뜻으로 해시태그 #not justsad를 쓴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직접 겪는 이들이 우울증과 슬픔이 다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이다. 저자는 우울증은 날씨가 좋지 않아 기분이 약간 처지는 것보다 혹독하고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슬픔이나 좌절, 혹은 분노와 같은 불편한 감정과는 반대로, 우울증은 많은 경우에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울증을 겪을 때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은 모든 것이 의미 없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으며, 자신은 그런 고통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마치 검은 용암처럼 절망과 좌절, 죽음에 대한 갈망이 다른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다른 모든 감정에 엉겨 붙어 돌처럼 굳어지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느낄 수 없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우울증이라는 자신의 질병을 성격의 한 측면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요한 측면이긴 하지만 자신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하나의 단면으로 말이다. 저자는 결국 자신에게는 자신의 삶의 행복이 외모에 좌우되지 않는 것, 병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려놓고 좋지 않은 감정에 바로 굴복하지 않는 것 등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늘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쓰려면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질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수단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독자들에게 우울증 없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고, 대신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나는 내 질환을 전혀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에 지배당하지도 않는다. 대신 내게는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때가 되면 나와 내 상담사, 의사는 내게 무엇이 도움이 될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그 증상이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살아내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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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어디서 오는가 - 부자들의 교과서로 읽혀온 부의 원리
월리스 D. 와틀스 지음 / 다른상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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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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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어디서 오는가 - 부자들의 교과서로 읽혀온 부의 원리
월리스 D. 와틀스 지음 / 다른상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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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분야의 선구자 월리스 와틀스가 쓴 책 <부는 어디서 오는가>는 1910년 ‘부자가 되는 과학(The Science of Getting Rich)’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자들의 교과서로 사랑받아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시크릿]의 저자 론다 번, 나폴레온 힐, 데일 카네기,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까지 이 책을 ‘자신의 인생을 바꾼 책’으로 꼽는다. 아마존 최장기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 세계 1억 3천만 부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성공과 부의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철학서나 이론적인 논문이 아니라 실용적인 설명서이다. 한시라도 빨리 부를 얻고 싶은 사람, 그동안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고 적용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는 행동하여 눈앞의 결실을 맺고 싶은 사람을 위해 즉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월리스 와틀스가 설명하는 성공과 부의 원리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는다. 누구나 행할 수 있으나 아주 명징한 결과를 향해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지침을 삶에 적용하여 부를 내 것으로 만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무형의 근원 물질을 유형의 부로 만들어내는 힘은 '생각'에 있다고 말한다. 무형의 근원 물질은 생각하는 존재이며, 그 생각으로 만물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저자는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형상의 탄생과 소멸은 근원 물질의 생각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자가 되는 첫 번째 원칙으로, 자신이 제시한 세 가지 대전제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스스로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고의 중심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근원 물질에 전달할 수 있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실제로 구현해낼 수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세상 만물의 바탕에는 생각하는 근원 물질이 있다. 이 근원 물질은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둘째, 이 근원 물질에 하나의 생각이 깃들면, 그 생각대로 사물이 창조된다.

셋째, 사람은 사물을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을 근원 물질에 각인함으로써 사물을 창조할 수 있다."

저자는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한마디로 '더 충만한 삶을 추구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부자가 되고 싶은 목적이 단순히 쾌락이나 감각적 만족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는 당신이 행하는 모는 것이 진정한 삶을 향해가는 수행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직 정신적 쾌락을 즐기고, 지식을 쌓고, 야망을 이루는 것, 또 다른 사람을 능가하고 유명해지기 위해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또한 삶의 일부이지만 지적 쾌락만 추구한다면 함몰된 삶을 살게 될 뿐 결코 자신의 운명에 만족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오로지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인류를 구하고자 자신을 버리고 박애주의와 희생의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 부자가 되려는 것도 함몰된 삶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하서다. 주변을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고,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고, 마음을 풍족하게 하고, 빛나는 지성을 갖추고, 서로를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고, 세상이 진리에 닿을 수 있도록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명심하라. 극도의 이타주의는 극도의 이기주의보다도 훌륭하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양쪽 다 바람직하지 않다.신은 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신이 원하는 바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려면 경쟁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돈이 어느 한 부류에 의해 독점되고 통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부류를 몰아내고 그쪽으로 흐르는 돈의 흐름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경쟁의식에 빠지고 창조력도 사라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감사하는 마음은 계속해서 좋은 것들을 기대하게 하고 그 기대가 곧 믿음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감사하면 그 반작용으로 믿음이 생겨나며, 또 감사할 일들이 넘쳐나서 믿음을 증가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은 일을 해내려고 괴로워하거나 아무런 계획없이 맹목적으로 달려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중요한 것은 일의 양이 아니라 행동의 효율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실패의 원인은 비효율적으로 하는 일이 너무 많고 효율적으로 하는 일은 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떻게 각각의 행동을 항상 효율적인 방식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밖에도 저자는 권력을 탐하고, 주인이 되고, 대중 위에 선 자로 인식되고, 호화로운 과시로 남을 놀라게 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마음은 경쟁의식이고, 경쟁의식은 창조 의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더 높은 자리를 얻으려고 경쟁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운명과 환경에 지배당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부자가 되는 것도 우연과 요행의 손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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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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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학의 혁신을 이룬 영국의 작가 버니지아 울프는 사망 직전까지 50여 편에 달하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블루&그린>은 지금껏 소개되지 않았던 스케치글을 포함하여 총 18편의 보석 같은 최고작을 엄선하여 담은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집이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우울이나 어둠의 정서로만 비쳤던 오인의 그늘을 벗어던진다. 페미니즘, 여성 퀴어 등 시대를 초월한 주제의식을 포함해 다정함, 따뜻한 사랑, 유머와 위트,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비행"을 끝없이 추적하는 열정에 놀라운 온기를 느낄 것이다.

이 책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문명의 도시에서 유령 같은 존재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V양이라는 여성에 대한 화자의 시선을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자기 존재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삶이라는 촘촘한 사슬에서 떨어져 나가 영영 모두의 의식 속에서 사라지는 여성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화자는 V양의 회색 그림자를 찾아 나서겠다면서 V양의 집으로 갔지만, 화자가 발견한 것은 V양의 죽음에 대한 소식 뿐이었다. 이 소설은 마치 가구처럼 존재감을 잃어버린 여성 V양의 이름인 메리 V를 부르는 화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개별적인 정체성을 지닌 여성에게 필요했을 인간이라는 생명력을 빼앗아버린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전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날이 밝을 즈음에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다. 메리 V, 메리 V! 처음이었다.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정확하게 불러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치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있는 듯 별 의미 없는 수식어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외침은, 물론 별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스름한 방 안에 V 양은커녕 그녀와 비슷한 사람도 불러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은 하루 종일 나의 외침이 머릿속에 맴돌았으며, 어느 거리 모퉁이에서든 예전처럼 그녀와 마주치고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아야만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은 느낌까지 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급기야는 한밤중에 뜬 눈으로 누워 있다가 한 가지 엉뚱한 계획을 떠올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공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점점 진지해져서 내가 직접 메리 V의 집에 찾아가 보겠다는 마음까지 먹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단편 '존재의 순간들 '슬레이터네 핀은 끝이 무뎌''을 통해 남자의 보호만을 위한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크레이 선생님에 대한 제자 페니의 시선이 담겨 있어 흥미롭다. 페니는 크레이 선생님은 자신의 일상을 져버려야 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아서 안전했고, 그녀가 결혼했다면 일상의 습관들을 지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소설에서 "그녀라는 존재의 샘에서 은빛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라는 페니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어 인상적이다.

"드디어 핀이 보였다. 페니 윌모트는 그것을 집어 들고 크레이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외로웠을까? 아니다. 선생님은 안정적이고 축복 받은 삶을 사는 행복한 여자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패니는 그 기쁨의 순간에 그녀를 놀라게 한 거였다. 그녀는 카네이션을 똑바로 세워 든 채 깍지 낀 두 손을 무릎에 올리고 피아노 앞에 반쯤 돌아앉아 있었다. 그녀 뒤로는 커튼이 젖혀진 창문을 통해 보랏빛 저녁 하늘이 보였다. 음악실에 있는 갓 없는 전등에 불을 밝히니 창문 밖에 펼쳐진 보랏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꽃을 쥔 채 몸을 조그맣게 말아 앉은 줄리아 크레이는 마치 망토를 뒤로 펄럭이듯 런던의 밤을 벗어던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채 홀연히 앉아 있는 그녀의 둘레에는 영혼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기운, 그녀가 만들어 자신을 둘러싸게 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페니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단편 '동감'에서 험프리 해먼드라는 남성의 죽음을 통해 한 인간의 죽음이 불러오는 다양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 소설은 죽음에 대한 무상함과 죽은 자에 대한 애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하는 작품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지냈던 한 젊은 남자는 자기 안에 죽음이라는 엄청난 위력을 감추고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기를 멈춤으로써, 별개였던 존재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이들을 융합시켰다. 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는 동안 창문이 열린 그 방에서, 그는 조용히 물러갔다. 그의 목소리는 미미했으나 그의 침묵은 심오하다. 망토를 벗어 우리 발밑에 깔아주듯 그는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았다. 그는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것일까? 우리는 세상의 끝까지 따라가서 내다보지만, 그는 우리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렸다. 그의 모습은 창공으로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은 건 다정한 초록과 파란 하늘뿐. 하지만 투명한 세상에 그의 자리는 없고, 그는 길이 끝나는 곳에 모여 있는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새벽빛을 가르며 사라졌다. 그는 떠났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단편 '단단한 물체들'에서 유리알 등 단단한 물체들을 수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려가는 남자 존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특히 수집된 물체들에 자신이 함몰되면서도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존의 모습은 인간의 영혼을 앗아가는 집착과 강박을 드러내는 장면은 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한 필력을 그려내어 인상적이다.

"자신의 수집품을 하나씩 들여다볼 때면, 존은 그것들을 능가하는 물체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다. 그는 점점 더 결연히 탐색에 전력을 기울였다. 언젠가 진기한 잡동사니를 무더기로 발견하면 모든 노고가 보상될 것이라는 야심과 확신이 없었다면, 그가 참아내야 했던 피로와 조롱은 차치하고라도 그 과정에서 마주해야 했던 숱한 실망감들 때문에라도 그는 그 일을 포기했을 것이다. 끝에 고리를 단 긴 막대를 들고 가방을 둘러맨 존은 흙더미를 보이는 대로 뒤지고 다녔으며 무성한 관목들 밑을 긁어보았다. 그가 찾는 물건들이 버려질 것 같은 골목과 벽 사이의 공간들도 뒤졌다. 수집하는 물건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취향이 까다로워질수록 수시로 마주해야 하는 실망감도 커졌다. 하지만 언젠 신기한 표식이 있거나 특이하게 깨진 도자기나 유리 조각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이 그를 옭아맸다. 존은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았고 정치가로서 그의 이력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찾아오지 않았으며,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에 그는 너무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진지한 열망에 대해 누구에게 얘기하는 법도 없었다. 그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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