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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
바바라 포어자머 지음, 박은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평점 :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 위에 코끼리가 앉아 있다. 코끼리가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다. 어둠 속에 누워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지,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생각한다. 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 언론사 '쥐트도이체차이퉁'의 촉망받는 기자 바바라 포어자머는 30여 년간 앓고 있는 우울증을 '코끼리'로 비유하며 우울과 무력함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고충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나의 아프고 아름다운 코끼리>는 그의 첫 저서로, 독일에서 우울증을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다룬 저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미디어상을 수상한 작가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한 화제작이다. 그는 우울증을 비롯하여 가면증후군, 감정표현불능증, 번아웃 등 자신의 경험을 상세이 기록하며 각종 언론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이 시대의 우울을 명확히 포착해냈다"는 평을 받았다. 저자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신 건강에 관한 연구 및 통계를 다방면으로 분석한 뛰어난 저널리스트로서 어떻게 침대 밖으로 나와 일상으로 걸어 나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우울과 무기력, 공허함이 깃든 시대, 매일 힘겨운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 일어나는 법'을 전한다.
이 책은 '1장 코끼리와 함께 산다는 것, 2장 삶은 침대 밖에 있으니까, 3장 슬픔과 우울증은 다르다, 4장 가끔 행복했고 자주 우울했던 이들에게'라는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우울증을 코끼리에 비유하며,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자신에 대한 묘사를 전하는 글들이 우울증이란 질환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어 인상적이다.
"나는 더는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무언가를 걸치고 출근을 해낸다. 그곳에서 그럭저럭 내 역할을 하고 화장실에 앉아서 운다. 나는 모든 따분하고 지루한 업무를 지원해 도맡는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모든 일이 버겁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좀 나아진다.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낸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잖아. 나는 아픈 게 아니야. 그저 별로인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새벽 4시 반에 눈이 떠지고 가슴 위에는 코끼리가 앉아 있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할 만한 나의 첫 감정에 대한 기억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열여섯 살이었던 나는 자전거를 타고 S반 선로를 따라 달리며 자살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상상했다. 같은 해에 코르시카섬으로 떠났던 청소년 캠프에서는 그네에 앉아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집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었음을 안다. 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향수병을 앓았던 적이 없다. 당신의 나는 우울 단계에 놓여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 감정을 설명해줄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은 것이다. 나는 그 원인을 스트레스나 연애 문제, 시험의 공포에서 찾았다."
저자는 우울증과 감정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우울증을 슬픔, 두려움, 자기 회의와 쉽게 혼동한다. 게다가 이 중 한 가지만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저자는 우울증은 단순히 명상을 하거나 생각을 바꾸거나 마음 정리를 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불편한 감정은 약물치료나 상담치료 없이도 극복이 가능하다. 그리고 저자는 우울 단계에 있는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거기 필요한 감정적 공간을 확보한다면 우울한 감정에서 훨씬 쉽고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경험상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생각을 너무 많이 반복하는 것도 우울증의 증상이라고 말한다. 삶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가 바뀌고, 그 중 무언가는 언제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과 거기 내포된 행복감을 '일단 ......만 하고 나면'이라는 말과 함께 항상 미루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마치 '숫자를 따라 색칠'하는 그림처럼 대하는 사람은 풍부한 감정의 삶을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느끼는 대신,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떤 것을 느껴야 하는지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태도가 과거의 자신을 우울증으로 한 발 더 밀어 넣었고, 결국 자신으 정신병원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어떤 감ㅈ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자신의 신념이 미리 적어둔 '숫자'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바로 그 색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나는 내 감정을 마치 '숫자를 따라 색칠'하는 그림처럼 다뤘다. 마치 밑그림이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상황에는 어떤 특정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집에는 큰 정원이 있고 나는 그걸 좋아해야 해. 3주 후면 이사할 거니까, 스트레스를 받아도 괜찮아. 여기는 17번이니까 분홍색으로 칠해야지. 저기는 53번이니까 검은색이야. 물론 그렇게 색칠할 수도 있다. 숫자를 따라 색칠하다 보면 예쁜 그림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색칠하든 항상 같은 그림이 나온다."
저자는 정신적 질병은 언제나 다인성이라고 말한다. 생물심리사회 모델을 사용하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선 유전자나 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유발 요인이 있다. 그다음에는 개인의 태도, 기대, 감정, 생각과 같은 심리적 요인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 요건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트라우마, 생활환경, 인간 관계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이러한 요인들은 환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가중치에 부여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정신적 질병과 관련한 편견과 오해에 대해 말하여 눈길을 끈다. 첫째, 누구에게나 기분이 안 좋은 날이 있고, 그렇다고 그게 질병은 아니다. 둘째, 기분이 자꾸 처진다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려야 하고, 운동을 해야 하고, 긴장을 하고, 더 건강한 음식을 먹거야 하고, 힘을 내야 한다. 셋째,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기분이 가라앉을 이유가 없다. 넷째, 심리적인 이유 때문에 고통을 느끼거나 심리적 질병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것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고통과 질명이며,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긴장을 이완하면 모두 괜찮아질 것이다. 다섯째,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트라우마도 없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을 리는 없다. 저자는 수년,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정신과와 심리상담소를 찾지 못하게 발목을 잡았던 것은 바로 이 문장들이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으며, 자신에게 비판과 거절은 가장 깊은 곳을 찌르고, 그 순간 자신은 이걸 할 수 없다는 확신, 자신이 모든 걸 망쳤다는 확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신이이 든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존감의 결여가 모든 것의 원인이고, 우울증의 뿌리이며, 어쩌면 그 자체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한다. 우울증 환자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가족, 친구, 직업, 취미 등 자신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한 쇼라고 느낀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을 실제로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기분,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느낌이다. 가면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이 느낌은 자신이 백 번, 천 번 성공적으로 해낸 일을 할 때도 나타난다. 나는 이 기분을 자주 느낀다. 심지어 내가 느끼는 기분은 이보다 한 단계 깊다. 나는 어떤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를 의심할 뿐만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인지도 의심한다."
"저널리즘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내가 글을 쓸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 나는 100건이 넘는 글을 발표했고 상도 받았다. 그럼에도 기사를 제출할 때마다 내 글이 가치있는지 의심이 든다. 상사가 '오케이'라고 말하고 나서야, 동료가 나를 칭찬하고 나서야, 기사가 공개되고 독자들의 메일이 들어오고 나서야 나 또한 만족감을 느낀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편두통을 '통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고 싶다는 소망만큼이나 유토피아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자는 언제라도, 누구에게라도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말한다.
"균형을 잡으려면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보는 대신 시선을 늘 앞에 두고 유연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우울증 같은 정신적 질병을 당뇨나 천식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병이 생겼나?'라는 질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현재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내가 이 문제에 대처할 방법은?'일 것이다."
저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이 도움되지 않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알아차리는 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건 좋지만, 계속 들어주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상담사에게 전화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우울증을 주제로 게시물을 올릴 때 '단지 슬프기만 한 게 아니다'라는 뜻으로 해시태그 #not justsad를 쓴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직접 겪는 이들이 우울증과 슬픔이 다른 것임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이다. 저자는 우울증은 날씨가 좋지 않아 기분이 약간 처지는 것보다 혹독하고 고통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슬픔이나 좌절, 혹은 분노와 같은 불편한 감정과는 반대로, 우울증은 많은 경우에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우울증을 겪을 때 자신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들은 모든 것이 의미 없고, 고통은 사라지지 않으며, 자신은 그런 고통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마치 검은 용암처럼 절망과 좌절, 죽음에 대한 갈망이 다른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다른 모든 감정에 엉겨 붙어 돌처럼 굳어지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느낄 수 없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뭔가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 같은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우울증이라는 자신의 질병을 성격의 한 측면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중요한 측면이긴 하지만 자신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하나의 단면으로 말이다. 저자는 결국 자신에게는 자신의 삶의 행복이 외모에 좌우되지 않는 것, 병적인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떨어뜨려놓고 좋지 않은 감정에 바로 굴복하지 않는 것 등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늘 우울증에 대한 글을 쓰려면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질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수단으로 통제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독자들에게 우울증 없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증을 앓고 있고, 대신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싸움이 아니다. 나는 내 질환을 전혀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에 지배당하지도 않는다. 대신 내게는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때가 되면 나와 내 상담사, 의사는 내게 무엇이 도움이 될지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그 증상이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살아내는 인생은 아름답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