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 단어 수집 - 나의 계절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단어들
김민지 지음 / 사람in / 2023년 6월
평점 :
<마음 단어 수집>은 김민지 시인의 눈으로 단어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새롭게 헤아린 책이다. 번지는 마음으로, 선명한 마음으로, 열리는 마음으로, 움트는 마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마음의 단어들을 담았다. 그때그때 만끽하고 싶은 계절을 떠올리며 읽어도 좋고, 언제든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좋다. 이 책은 평범한 단어도 섬세한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이전과 전혀 다른 단어가 된다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살면서 몇 개의 단어를 쓸지 알 수 없지만, 하나의 단어를 깊이 체득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볼 수 있는 삶의 국면이 있다. 110개의 단어가 걸칠 옷을 만드는 동안 원단을 제공해준 삶에 특별히 고맙단 인사를 전하고 싶다."
김민지 시인은 '뭉근함'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뭐든 꾸준히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뭉근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끈기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끈기가 없다면 부스러기 같은 시간을 흩날리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는 김민지 시인의 글이 눈길을 끈다. 뿐만 아니라 김민지 시인은 중북이나 약불에서 계속 익혀야 하는 무언가처럼 사소한 것을 지속하는 삶을 살면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과일잼을 만들 때 과육들이 형체를 잃어가는 것처럼 긴 시간 초조한 감정들을 스스로 진득하게 졸여낸 사람들이 전해주는 잔잔한 에너지. 그 가치를 체득한 사람들은 점도 높은 삶을 살아간다."
김민지 시인은 '멍'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속에서 맺힌 피처럼 멍의 모양을 한 채 번지는 무표정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말한다. 김민지 시인은 표정 없는 표정도 결국 표정일 텐데, 익히 알고 기대하는 표정이 없다고 해서 무표정이라 표현하는 건 그 표정을 깊게 이해하지 않으려는 태도일지로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의 무표정은 서서히 빠져가는 파란 멍의 가장자리처럼 노랗게 번져 있었고, 이따금 어둠을 둘러싼 안개처럼 핏기 없이 창백한 무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김민지 시인은 '편지'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도 마음에 맴도는 이야기, 정성이 가득한 편지에는 진심의 굴레가 담긴다고 말한다. 김민지 시인은 그 굴레를 벗어나선 좀처럼 읽히기 어려운 감정들이 놓여 있따고 이야기한다. 멀어진 진심은 시간에 온전히 종속되어 흘러갈 뿐이라는 김민지 시인의 글이 인상적이다.
"말로 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편지로 전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 사람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일까. 편지로 전해져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편지처럼 정성스러운 것을 주고 싶은 사람일까."
김민지 시인은 '수줍음'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어려워하는 것과 적대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김민지 시인은 내성적이어도 수줍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무뚝뚝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김민지 시인은 대체로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매사 어려워하면서 애를 먹는 게 티가 나고, 그 과정에서 사랑스러움이 묻어나기도 한다고 말한다. 어려워한다는 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김민지 시인의 글에 공감한다.
이 책에서 김민지 시인이 '위로'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글이 깊은 위안을 준다. 같은 아픔과 슬픔을 경험한 이들이 전하는 위로야말로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닐까?
"비슷한 아픔을 겪은 이가 전해주는 응원만큼 적절한 위로가 있을까. 앞서 겪었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 어떤 부분에서 무슨 말과 도움이 필요할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보고 "이 사람만큼은 부디 건강하고 무탈했으면" 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챙겨주는 어떤 사람. 어떤 사람의 어떤 위로가 봄기운처럼, 혼자 간직한 억울함을 나른하게 한다. 함께 일렁일 수 있는 게 슬픔의 가치라는 듯,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해준 사람들. 기쁘고도 슬픈 마음이 노인이 어린아리를 보고 짓는 미소처럼 시간이 지나간 주름의 길을 다시 내준다. 고생이 많았던 만큼 보람도 많았다고 함께 이야기해 줄 사람들과 있는 날이 봄날이다."
김민지 시인이 '알람'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인간의 정신을 깨우는 소리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담아내어 흥미롭다. 특히 김민지 시인이 우리를 잠든 세상을 깨우기 위해 태어난 알람이라고 비유하는 글은 우리들이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눈길을 끈다.
"우리 모두는 잠든 세상을 깨우기 위해 태어난 알람인지도 몰라.
우리를 한꺼번에 울릴 만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슬픔이 세상을 맑게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일 때,
잊지 말고 함께 깨어나자."
김민지 시인은 '죄'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수록 중증에 해당하는 삶의 병. 자신이 저지른 죄에 있어서 아파하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마음 속 거울과 같은 양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내면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글로 인상적이다.
김민지 시인은 '장면'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있는 장면은 풍경, 초상, 정물, 추상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김민지 시인은 하나하나 모든 장면 가운데 종국에 파노라마처럼 이어질 장면들은 어떤 것이며, 그 모르는 끝을 향해 오직 자신을 위해 개봉될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이렇게 수두룩한 장면들을 스치며 새기고 있는 오늘이라고 이야기한다.
"풍경은 주로 몸소 날씨가 계절을 느꼈을 때 눈으로 깊게 담는다. 바쁜 날들 속에서 늘 치여 있는 듯한 기분으로는 주변을 둘러볼 재간이 없다. 길을 걸을 때 바닥과 정면만 응시하지 않고 하늘을 한 번만 올려다봐도 조급함이 많이 누그러진다.
정물은 주변을 둘러싼 크고 작은 것들.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을 다해 들여다볼수록 동력이 깃들어 다각도에서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어제오늘 같은 자리에 줄곧 놓여 있떤 어떤 것을 생각의 디딤돌 삼아 다른 차원에 다녀오기도 한다.
추상은 앞서 말한 장면들이 뒤섞이거나 번져갈 때, 혹은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기운이나 기분 같은 것들이 맴돌거나 하루를 휘저을 때 불쑥 생겨나는 그림이다."
김민지 시인은 '열매'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열매를 헤아려본다고 말한다. 김민지 시인은 나 자신을 수용하고도 용납할 수 없는 상황들을 생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나를 수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열매라고 믿음으로써 나 자신을 수용하게 되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
"좋아질 거라는 믿음의 씨앗이 내 안에 있는 것처럼 굴어야 한다. 나는 열매이고, 그것을 증명하는 일은 오직 내가 열매라고 믿는 일뿐이라는 듯. 그 일이 아닌 또 다른 일을 할 때도 예전보다 덜 초조한 마음이길.
그 자체로 말간 존재이길 바란다."
김민지 시인은 '질문'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질문들, 원래 알던 나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질문들, 좋아하던 것들을 되찾아주는 질문들, 삶의 허를 찌르는 질문들을 스스로 꺼내고 나면 모든 게 다시 모인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는 질문의 힘을 이야기하는 김민지 시인의 글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보여준다.
"질문이 계속된다는 건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방증이다. 피상적인 관심만으로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없다. 좋은 질문은 엉켜 있던 생각을 풀어준다. 좋은 인터뷰 내용만 읽고 있어도 생각이 술술 풀린다. 종종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할 대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를 동시에 자처하면 좋다."
김민지 시인은 '갈피'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갈피는 계획도시처럼 구획을 나누어 관리하고 싶은 분주한 생각이 그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민지 시인은 "마음대로 가보자" 하는 추진력과 함꼐 그때그때 수습할 일들을 수습해 나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정답은 없다. 미리 준비해 볼 필요도 있겠지만 계획 없이 자유롭게 준비하며 터득해 가는 삶도 있는 거니까.
그 과정에서 얻은 필살의 비결을 책의 가름끈이나 책갈피로 삼아, 읽고 있는 인생의 한 페이지에 놓으면 된다."
김민지 시인은 '그림'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한 폭의 그림, 한 편의 시, 그 위에 여러 겹의 층처럼 쌓인 사람들의 시선이 쉽게 납작해지기 쉬운 세상 속 유일한 구원처럼 느껴질때가 있다고 말한다.
"그림이 그림 속에만 있지 않고 여기저기 있다는 사실에 새삼 안도하는 순간이 있다. 실제로 그림이 아닌데 그림 같다고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게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그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 있어서 얼마나 근사한 마음의 폭을 갖기도 하는지 체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 행복이 시 쓰기로 채워지기도 한다. 직접 쓴 시를 누군가가 읽고 마음속으로 다채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를 더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김민지 시인은 '귤'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수록 엉망이 되는 경험을 좀처럼 피할 수 없었고, 그 경험을 멍든 귤처럼 골라내기 바빴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즉시 소화하려는 마음보다 중요한 건 오래하는 것, 마음이 급해도 귤은 하나씩 떨어뜨려 서늘한 곳에 보관하고, 글을 마감까지 미뤘다가 한꺼번에 쓰지 않는 것으로 목표를 바로잡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김민지 시인은 '재'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며, 글이 안 써질 때마다 종이 인센스에 불을 붙인 뒤 춤을 추는 취미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김민지 시인은 종이를 태우는 동안 내 안을 수놓던 새하얀 여백도 사라지고 피어오르는 연기 같은 오묘한 동작이 연쇄적으로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지 이내 몇 줄이 써지기도 한다고 이야기한다. 글을 쓰는 것을 '재가 되는 것'에 비유하는 김민지 시인의 글이 인상적이다.
"글을 쓸수록 미온적인 자세를 지양하게 된다. 하나의 재가 될 때까지 나의 글도 촛불 같은 춤을 익히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것처럼 글을 쓰고 나면 살아 있는 기분이 드니까."
<마음 단어 수집>은 다채로운 단어들을 김민지 시인의 섬세한 시선을 담은 글로 만나볼 수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마음에 드는 단어를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고, 스스로 생각하는 단어의 본 모습을 적어보라는 김민지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 스며든 단어들을 만나서 글로 써보는 아름다운 경험을 시도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