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 - 윌리엄 블레이크 시와 아포리즘 마음으로 읽는 클래식 시리즈 1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천봉 편역 / 아이콤마(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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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다양한 시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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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 - 윌리엄 블레이크 시와 아포리즘 마음으로 읽는 클래식 시리즈 1
윌리엄 블레이크 지음, 김천봉 편역 / 아이콤마(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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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마음을 말하면 세상이 나에게 온다>는 영국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대표적인 저작과 습작 시들을 엄선한 후 충실하게 옮긴 작품집이다. 아쉽게도 그의 시와 사상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도 어려운 해석과 더불어 문학 작품, 성경 구절 등의 배경지식을 요구하는 탓에 접근이 어려웠다면 이 책은 원전을 바탕으로 더 직관적인 구성으로 새롭게 편집했고, 원문에 가장 충실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은 오랜 세월 전 세계 독자들과 호흡하며 위대한 예술가, 사업가, 과학자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 준 그의 핵심 철학들을 시를 통해 오롯이 즐기고 오래도록 소장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 화가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런던의 소호에서 양말을 파는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겨우 읽고 쓰는 법을 터득한 블레이크는 어려서부터 환영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비상한 아이로, 열 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즈음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한 블레이크는 열네 살에 한 판화가의 도제로 들어가 7년간의 수련 끝에 전문 판화가로 성장하였고, 스물한 살에 왕립미술원에 입학하여 미켈란젤로나 라파엘 풍의 고전적인 정밀성을 추구하며 그만의 독특하고 환상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결혼 후에 블레이크는 도제 생활을 함께했던 동료와 판화 가게를 열었으나 얼마 못 가서 실패하고, 그 후부터 다른 저자들의 책이나 잡지의 삽화를 제작하며 궁핍하게 살았다. 이 시기에 블레이크가 제작한 밀턴의 <실낙원>, 성서의 <욥기>, 단테의 <신곡>(미완성) 삽화들은 섬세하고 우아한 선과 장식, 특유의 환상성과 장식성이 돋보인다. 블레이크 자신이 쓴 <순수의 노래>, <천국과 지옥의 결혼>, <순수와 경험의 노래>, <밀턴>, <예루살렘> 등의 시화집 역시 대부분 동판에 글자와 그림을 하나하나 새겨 넣고 채색한 판들을 번갈아 가며 여러 번 겹쳐 찍는 방식으로 제작한 매우 진귀한 예술품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억제와 질서가 미덕으로 여겨졌던 이성의 시대였던 만큼, 독특한 상상의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했던 블레이크의 그림과 시는 당대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훗날 19세기 후반의 라파엘전파 화가들과 시인들이 블레이크의 천재성에 처음으로 주목하고, 20세기 비평가들이 그의 시를 재평가하면서, 윌리엄 블레이크는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책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웃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가 인상적이다. 자연을 인간처럼 감정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며, 태초의 자연과 어우러진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노래하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돋보인다.

"푸른 숲이 기쁜 목소리로 웃고

잔물결 이는 냇물이 웃으며 흘러갈 때

하늘이 우리의 명랑한 재치에 웃고

푸른 언덕이 저만의 소시로 웃을 때

초원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웃음 짓고

여치가 그 즐거운 정경에서 웃을 때

메리와 수잔과 에밀리가

예쁜 둥근 입슬로 하, 하, 히 노래할 때!"

이 책에서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라는 제목의 시가 눈길을 끈다. "모래 한 말에서 세상을 보고 /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는 시구를 시작으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시어들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기쁨과 슬픔은 섬세하게 짜여있는 / 신성한 영혼의 옷과 같다. / 모든 고통과 갈망 속에 / 기쁨이 비단처럼 누벼져 있다."라는 시구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어 깊은여운을 전한다.

"작은 굴뚝새에게 상처를 주는 자는

절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황소를 흥분시켜 성나게 만든 자는

절대로 여자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다.

파리를 죽이는 개구쟁이 소년은

거미의 적개심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풍뎅이의 영혼을 괴롭히는 자는

끝없는 밤에 은신처를 짓는다."

이 책에서 순수한 자연과 목가적인 조화로움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잘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일견 취약한 상태에 놓이기 쉬운 현실의 위험성을 미묘하게 드러내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인상적이다. 특히 '어린 흑인 소년'이라는 제목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검은 피부를 지닌 어린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표현하여 눈길을 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리고 우리는 대지에 잠시 머룰 뿐이기에 / 그 사랑의 광선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단다. / 그러면 이 까만 몸과 이 볕에-탄 얼굴도 / 구름 같고, 그늘진 숲 같은 것에 부로가하단다."라는 시구로 어린 흑인 소년에게 엄마의 말을 건네는 글이 섬세하게 독자의 감정을 건드린다.

"우리 엄마가 남쪽의 야생에서 나를 낳았어.

그래서 난 까매. 하지만 오, 나의 영혼은 하얘.

영국 아이는 천사처럼 하얗지

하지만 나는 마치 빛을 잃어버린 듯이 까맣지.

우리 엄마가 나무 아래서 나를 가르쳤어.

한낮의 무더위를 앞에 두고 앉아

엄마가 나를 자기 무릎에 앉히고 나에게 키스했지

그리고 동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떠오르는 해를 보렴. 저곳에서 하나님이 살면서

그분의 빛을 주시고, 그분의 열기를 보내주신단다.

그래서 꽃과 나무와 짐승들과 사람들이

아침에 위로받고 한낮에 기쁨을 누린단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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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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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이라는 질환에 대한 개인의 내밀한 서사와 삶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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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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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하는 나날들>은 한 소설가가 조현병이라는 파멸적인 정신질환으로 고군분투하는 세계로 친절히 이끄는 책이다. '타임', 'NPR', '시카고 트리뷴' 등 20여 개 주요 매체에서 2019냔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조율하는 나날들>은 정신질환으로 아스러진 일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꿰매고 엮은 나날들을 이야기한다.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정신병동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이후 스탠퍼드대를 들어가 졸업 후 스탠퍼드대 뇌 영상 연구원으로 일했고, 2016년에는 <천국의 국경>으로 소설가로 데뷔해 문학잡지 '그랜타'에서 선정한 '40세 미만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21인'에 뽑혔다.

이 책에는 양극성장애를 진단받고 8년 만에 조현정동장애라는 새로운 진단을 받기까지의 여정, 정신질환자로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에 대한 서글픈 고뇌, 병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는 정신병동의 현실 등 정신질환이 저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생생한 고통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또한 개인적 서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신질환자에 대한 비자발적 치료 논쟁, 조현병과 범죄 사건, 정신질환을 겪는 학생을 위한 대학 시스템 부재, 정신의학의 바이블 DSM에 따른 진단과 그 한계 등 정신질환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지식을 본인이 직접 경험한 맥락에서 부드럽게 녹여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숱하게 배제되고 소외된 정신질환자의 목소리를 크고 또렷하게 들려줌으로써 정신지로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다. 내면의 고통이나 삶의 장애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라면 정신질환에 맞서는 저자의 단단하고 의연한 태도를 목격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포용하는 법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처음 환각을 경험하고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의심을 한 지 8년 만에 공식적으로 조현정동장애 양극형 진단을 받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2001년에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았고, 20대 초반이던 2005년에 처음으로 환청(목소리)를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조현병은 1893년 독일의 정신의학자 에밀 크레펠린이 조발성 치매라고 부르면서 그 실체가 최초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현병'이라는 지금의 병명은 1908년에 스위스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가 만들었다. 블로일어는 이 장애에서 흔히 나타나는 '연상이완'을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어 schizo(분열)과 phrene(정신)에서 용어를 도출했다. 저자는 이로서 분열된 정신이라는 단순한 접근으로 비장애중심적이고 부정확한 용서가 탄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조현병은 무섭다. 조현병은 전형적인 광기의 병이다. 광기가 무서운 이유는 인간이 체계화하고 분별하려고 애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끝없이 이어진 날들을 연, 월, 일로 구분하며, 불행, 질병, 불편, 죽음을 막고 통제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결과일 뿐인데도). 하지만 그러한 예측불허와의 싸움도 고유의 내적 논리로 현실을 축소하는 조현병 앞에서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저자는 비자발적 치료에 따라오는 자율성의 상실을, 더불어 자신의 병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평가에 따라오는 지위의 상실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2002년, 2003년, 2011년에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고, 처음으로 비자발적 입원을 할 때의 기록을 보면 "병식이 좋지 않다"라고 적혀 있다고 이야기한다.

"비자발적으로 갇히는 공포는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선 마음대로 나갈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강제로 밀어 넣어지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얼마나 오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선택할 수도 없는데, 제한된 선택지 내에서 그마저도 역겨운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라고 하면 자야 하고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야 한다. 침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평가된다. 공용 공간에 앉아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우울하거나 지나치게 내향적이거나 긴장증적인 사람이 된다. 인간은 본래 서로에게 암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뇌 때문에 특히나 더 불투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포함해 모든 면에서 신뢰받을 수 없는 존재다."

저자는 정신병원의 계급은 누가 고기능인지, '재능을 타고났는지'에 따라 판가름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조현병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들이 연상되므로, 자신이 고기능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조현병과 그 비슷한 종류의 병들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고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극도로 소외된 집단에는 남들보다 사회적으로 좀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고,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부적합한 사람들과 스스로 거리를 둔다. 남들에게 성공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면, 그 소외된 집단 내에서 그나마 자신보다 더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신증처럼 의학적으로 실제로 미치는 병에 걸리는 게 아닐지라도, 조현병 환자들은 사회에서 가장 역기능적인 구성원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노숙자, 이해 불가능한 족속, 살인자로 여겨진다. 내가 뉴스에서 조현병을 접하는 맥락은 오로지 폭력성과 관련된 것뿐이다."

"내가 어떤 정보를 말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다. 어떤 차이는 미세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차이는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이 기울어질 정도로 크다. 나는 부모님이 대만 출신 이민자라서 중서부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고,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 다녔으며, 지금은 작가로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대화가 내 병에 관한 내용으로 흐르면, 나는 내 정상성을 강조한다. 내 평범한, 아니 남 부럽지 않은 삶이 보이지 않는가! 내가 명료하고 조리 있는 의사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직접 맛보라.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를 곱씹어보고 어느 측면에서건 균열된 틈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 기억을 더듬어서 내가 스스로 밝힌 내 병이 그럼직하다고 느껴지는 어떤 정신이상의 기미를 찾을 수 있는지 살펴보라."

저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다면, 만약 이렇게 어지러운 상태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실제로 조현병은 저자 자신이 삶을 경험하는 방식을 뒤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나는 아직도 '괜찮다'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이 병을 가진 이상 과연 정상적인 상태가 가능한지를 부단히 고심하고 있다. 암에 걸린 사람은 본래 건강한 사람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암이 '침입'한 것이기 때문에 암 환자는 암과 '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 사람 '자체'가 암이라거나 그 사람이 암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질환이 누군가를 덮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조울증이라거나 노현병이라고 말한다. 동료 교육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를 '조현정동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말하라고 배웠다. 인간 중심 용어는 망상과 횡설수설, 긴장증이 존재하지 않는 어딘가에 그 사람이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2003년 초 예일대를 영원히 떠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병원에 두 번째로 입원했고 이것이 학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휴학하라는 통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결국 예일대는 자신을 외면했고, 어떠한 설명조차도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정신병자'로 판명된 이상, 구태여 예일대는 저자를 받아 주지 않았다.

저자는 엄마란 으레 그릇된 행동을 하기 마련이며, 조현정동장애를 가졌든 아니든, 양육의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는 조증, 우울증, 정신증과는 관계없이 잘못된 양육으로 자신의 미래를 아이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신질환 또는 다른 심각한 장애가 있는 아이를 계속 돌봐야한다는 자신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이유가 어쩌면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한 궁극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내 엄마가 품은 후회와 죄책감과 비슷하게, 나도 마음속으로 엄마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내가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했지만, 수년에 걸쳐 망가지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그런 자랑스러움을 뛰어넘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엄마가 내 유전자를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을 텐데."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지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보여 주는 특징은 아무도 환자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는, 사람들이 당신에 관해 전혀 사실이 아닌 것들을 사실로 믿는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의사에게 내가 작가이고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마치 내가 우주 비행사이고 러시아 대사와 일란성 쌍둥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세상은 언제라도 우리를 가두어 놓을 수 있는 새장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세 번의 비자발적 입원은 전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정신병동에 갇혀 있었던 경험이 무서운 트라우마로 남았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정신증이 시작되려 하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감각은 저자 자신 안에서 변이되는 그로테스크함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은 왜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 의문을 품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하지만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일상을 어떻게든 관통해야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늘, 벽, 나무, 반려견, 창문, 커튼, 바닥처럼 일상의 사소한 부분이지만 자신의 시선을 잡아끄는 추상적이면서도 실재적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정신증이 나타날 때의 느낌을 알아채지 못했다. 정신이상 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붕괴되는 양상에 치닫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내 정신 중 삽화에 선행하는 징후를 알고 있다. 다른 경로로 가거나, 걷지 않고 날아 다니는 사람들까지 대변할 수는 없지만, 내 정신이 급속도로 균열 상태에 접어드는 느낌은 꽤나 익숙해졌기 때문에 잘 묘사할 수 있다."

"세상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응집성이 더는 존재하지 않음을, 혹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음을 여실히 깨닫는다. 세상이 산산이 흩어지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응집되어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내 정신이 더는 온전히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이 모든 경우가 한데 뒤섞여 있기 때문에. 가령 하늘과 커튼은 둘 다 하나의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한 번에 하나씩만 이해하 수 있고, 방안에 개가 들어오면 그 개는 내가 다루어 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서 내 시선을 끈다. 사람들은 발달장애인들이 세상 복잡한 일을 모르고 사니 평온하 것이라고 쉽게 말하고, 미친 사람은 생각이 없을 테니 안락할 것이라고 무신경하게 말하지만, 소위 미친 사람인 나도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리미널 스페이스에서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인지한다."

"뭔가가 완전히 잘못되어 간다. 그러다 '완전히' 잘못되어 버린다. 전구기가 지나면 나는 거의 참을 수 없는 상태에 돌입한다. 하나의 단계에서 또 다른 단계로 옮겨 가는 순간은 보통 급격하고 뚜렷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일순간에 내 동료들이 모두 그들과 똑같이 생긴 로봇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한다. 혹은 내 재봉틀을 흘끗 보다가 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런 식으로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망상에 빠진 채 지내게 되는데, 마치 얇은 장벽을 뚫고 이리 저리 마구 흔들리는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약을 삼켜도, 혹은 아무리 되돌아가려고 몸부림쳐도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뇔 줄 아는데도, 내가 믿는 것이 그 무엇이건 진실이 된다. 현실의 원리를 차분히 되풀이하다 보면 무언가를 '믿는다'는 개념은 공허해진다. 환각을 경험할 때, 무언가를 '본다'거나 '듣는다'는 개념도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다. 나는 몸을 휙 수그리거나 뛰어올라서 피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잘 본다. 하지만 나는 으스스한 악마가 갑자기 나타나는 비밀의 문 따위는 없다는 진실을 잘 알고 있다."

저자는 트라우마와 조현정동장애가 결합되면 강력한 신경학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2014년 봄에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발병했으며, 고등학교때 사귀던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강간했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믿는 망상을 뜻하는 코타르 증후군으로 알려진 정신증의 한 유형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데메테르는 1년에 한 번 죽음의 땅으로부터 페르세포네를 불러들인다. 내가 데메테르의 그 창백한 딸이라고 상상하면, 죽은 자들 사이에서 사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으로 오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타르 증후군은 기척도 없이 어느샌가 물러간다. 내가 부활했음을 깨닫는 순간도, 지옥에서 솟아났다는 환희의 순간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나는 식별 가능한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자가 된다. 신경 검사와 암 확인을 위한 MRI와 CT 촬영을 하고 걱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옥의 형벌 속에서는 죽음이라는 희망조차 없으며 지독한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상실, 상처, 비탄은 그 나름대로 끔찍한 것들이지만, 지옥의 형벌을 받는 죽은 여자에게는 무척이나 인간다우며 살아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저자는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일을 잘해 온 증거로서 자신의 첫 번째 소설을 꼽을 때가 많지만, 이는 저자 자신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소설을 쓸 땅시 우울증에 빠져 있었고, 종종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불안했으며, 주기적으로 정신증을 겪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까 <천국의 국경>을 쓴 저자는 상당히 건강한 여자였던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오래 지속되는 만성 질병은 급성 질병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에 병합된다고 말한다. 만약 질병이 있으면, 병이 급격이 악화하지 않는 한 삶은 질병을 끌어안은 채 초연하게 이어질 뿐이다. 저자는 그대에는 1초에서 다음 1초까지 생존하자는 것이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대단한 야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수술과 입원을 하는 동안에는 하고 싶은 일들과 이루고 싶은 꿈들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지만, 만성 질병을 앓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 자체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최악의 정신증 삽화를 겪는 동안 사진 찍기는 자신의 아픈 자아가 존재하는 것들을 믿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진은 자신의 건강한 자아가 상실을 재경험하는 도구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은 자아와 다른 이들 사이를 이어 주는 다리, 호은 미스바(먼 거리나 죽음으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이다. 건강한 사람은 아픈 사람이 증거로 남기고 떠난 사진을 해석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진정 어려운 것은, 약이든 술이든 혹은 끈질기게 치유를 추구하는 것이든 고통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고통 한가운데에서, 항상 밖으로 나갈 길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비교적 최근에 발병한 다른 병들은 잘못된 사건으로 여겨지며 도대체 자신이란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증상을 경험할 수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조현병은 너무도 오랫동안 자신의 일부였기데 삶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증을 겪는 동안 크게 고통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데 암울하고 거친 광기의 폭풍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데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가 리미널에 대해 배우려는 것은, 자신의 정신증적 경험을 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함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그릇에 담아 하나씩 차근차근 파헤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은유로 가득한 사후 세계에는 은유로 가득한 리미널 공간이 수반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리미널 경험은 반드시 특이한 것이거나 특별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리미널 경험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무엇이 진짜인지, 허상인지, 혹은 정신병인지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광기과 신비주의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도 뚜렷하지 않다. 영적 개념으로서의 리미널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구멍이 많음을 의미한다. "경계 지대"와 "중간 지대"는 대개 같은 의미로 사용되며,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 사이의 회색 구역을 가리킨다. '경계 너머로' 수업에서 브리는 사후 세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땅 위의 영역", "땅 아래의 영역", "중간 지대". "요정의 세상", "상상의 영역"이라고 표현한다. 죽음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후 세계의 유일한 징후이며, 탄생과 죽음은 리미널의 명백한 징후이다. 범위를 좀 더 좁혀서, 나는 커다란 질병, 트라우마, 결혼을 통해서 사후 세계를 엿보았다. 이들은 리미널이면서 죽음과는 달리, 내 인생의 연대표를 채우고 생채기를 남긴 사건들이다."

저자는 우리의 세계는 이성적인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한편, 비이성적인 것을 꺼린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아침 버스에서 난리 치는 노숙자, <로앤오더>에 나오는 망상적인 살인마 "사이코들"처럼 말이다. 저자는 비이성적인 것을 이해하려면 표면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하고, 이는 신비의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책 <조율하는 나날들>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수년간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이며, 심각한 망상적 사고의 삽화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것은 4년 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증의 발생을 막거나 완화해 주는 삽화들이 있고, 바로 자신이 있는 곳을 지키며 조심조심 걷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기도를 한다는 것은, 양초를 태우고 의식을 행하고 소금이나 꿀단지를 만드는 등 어떤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뜻하며, 정신증이 자신의 마음을 두렵게 했기 때문에 브리를 찾아가서 배운 것은 신성한 기술의 신념보다도, 그 기술의 행위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는 저자의 글이 깊은 여운을 전한다.

"어떤 초자연적인 이탈이 발생할 때, 나는 내 리본을 찾아 손목에 묶는다. 망상이 찾아오거나 환각이 내 감각을 다시 어지럽히면, 그 무감각의 혼란 속에서 감각을 도로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라 되뇌어 본다. 이렇게 스르르 빠져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이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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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2
문보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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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봄부터 시작된 '시소' 프로젝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한 권으로 올해의 좋은 시와 소설을 만나고,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단행본으로 기획되어, 2022년 <시소 첫 번째 : 2022 선정 작품집>이 출간된 바 있다.

올해도 이어진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은 세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간다. 하나, 시와 소설을 함께 담는다. 둘, 계간 '자음과 모음' 지면에 매 계절 다른 외부 선정위원과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실어 독자와 작가에게 공개한다. 셋,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작가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계절의 시와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마치 시소 위에서 오르고 내리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소설을 쓴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더욱 깊고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봄편"에서 임솔아 작가의 "특권"이라는 시를 읽고, 노태훈 문학평론가와 임솔아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업 작가로 지내게 된 임솔아 시인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다채로운 글들을 통해 "특권"이라는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두 사람의 심정은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갛합니다. 갖고 있는 태도나 입장도 닮은 바가 있겠죠. 그러나 상황은 다를 수도 있겠어요. 서로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다르니까요. 이들이 딱히 어떤 종류의 희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햇빛을 더 오래 가져가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버리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라서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소원을 비는 것조차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 그러면서도 작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상태.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폐를 덜 끼치려 하는 사람에 가까울 거예요. 아무것도 빌지 않겠다는 이들의 다짐은 언뜻 보기에는 냉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냉소가 아닌,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집까지 가져가서 버리겠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고통스럽겠죠. 고통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의 고통만 보고 있었을 테지만,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바깥을 둘러보게 되었을 거예요. 그제야 사실을 인지했을테죠. 자신만 인지하고 있다가 세계를 함께 인지하고 나면 자신의 고통을 예전처럼 볼 수는 없을 거예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여름" 편에서 윤혜지 시인의 시 '음악 없는 말'을 읽고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름의 결점도 있고 엄청 매끈하게 잘 쓴 작품은 아닌데도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작품, '이상한 좋음'을 가진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 내용에 공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게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위안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이야기와 함께 시 '음악 없는 말'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일흔 살이 되면, 여든 살이 되면 그렇게 오래 사는 느낌은 어떤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살면서 계속 반복되고 패턴화된 어떤 일상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되게 자잘한 차이들을 감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관성적으로 사는 사람과 일상의 사소한 균열이라든가 차이를 하나하나 보면서 생각하는 사람. 이 시에도 나와 있듯이 노인은 살면서 수없이 눈 오는 광경을 보고 겨울을 겪었겠죠. 하지만 어떤 노인은 그냥 눈이 눈이지,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인이 되면 흔하게 봐운 것도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된 사람이란 한자리에 계속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자리에서 세계가 흘러가는 걸 보고 세계의 일부가 사라지거나 멸종하는 걸 목격하는 존재로서의 노인을 생각했어요."

"이 시를 통해서 '말 없는 음악'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의례적인 말들을 많이 쓰고 있잖아요. 근데 저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을 안 써야지, 하면서도 형식적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 마나 한 말이요. 정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싶을 정도로요. 상대방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영혼 없는 말은 한 하고 싶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정말 차라리 침묵하자 싶고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 정말 이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 그런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가을' 편에서 주민현 시인의 시 '밤은 신의 놀이'를 읽으면서,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주민현 시인의 인터뷰를 통해 시에 대한 짙은 여운이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의 일상은 되게 매끄럽고 아름답고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일상을 한 겹 벗겨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밝은 곳에도 어둠이 있고, 사람에게도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고요. 저에게 시 쓰기란 바로 그 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밝은 면과 함께 그 한 겹 아래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적 진실이라는 것은 매끄러운 일상을 한 겹 벗겼을 때 나타나는 그 무엇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제목도 그 어둠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밤은 신의 놀이'라고 쓰게 되었어요."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밤은 신의 놀이'는 "밤은 신의 놀이/삶과 죽음은 주사위 놀이"라는 연에서 하나의 행을 제목으로 가지고 온 건데, 인간이 절대적이고, 완벽하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아주 많은 종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되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겨울' 편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홈 스위트 홈'이 실려 있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최진영 소설가와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인터뷰 내용은 '홈 스위트 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최진영 작가의 생각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최진영 작가는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죽음'이 있고, 이 소설을 쓰던 때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말한다. 최진영 작가는 '만약 나의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그런 질문들이 소설에도 꾸준히 드러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최진영 작가는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죽음의 미래'가는 기획 시리즈 기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엔드 게임: 생이 끝나갈 때>를 찾아보는 동안 자신 안에서 뭉쳐진 생각이 있어 소설로 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저는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건강검진만 제대로 받아도 아플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 사회보다는 아프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제가 이십대 때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분노하는 소설을 쓸 수 있었는데,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는 그렇게 분노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우리 모두 망해버릴 거야'라는 분노와 절망에서 조금은 시선을 돌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어'라는 것도 소설에 같이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가능성 중에 제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랑이고, 아직은 그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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