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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ㅣ 시소 2
문보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2월
평점 :
2021년 봄부터 시작된 '시소' 프로젝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 발표된 시와 소설을 한 편씩 선정하여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한 권으로 올해의 좋은 시와 소설을 만나고,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단행본으로 기획되어, 2022년 <시소 첫 번째 : 2022 선정 작품집>이 출간된 바 있다.
올해도 이어진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은 세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간다. 하나, 시와 소설을 함께 담는다. 둘, 계간 '자음과 모음' 지면에 매 계절 다른 외부 선정위원과 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실어 독자와 작가에게 공개한다. 셋,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작가 인터뷰, 선정 과정 등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독자들은 계절의 시와 소설을 차례로 읽으면서 마치 시소 위에서 오르고 내리는 것처럼, 다양한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작품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소설을 쓴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더욱 깊고 특별한 독서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봄편"에서 임솔아 작가의 "특권"이라는 시를 읽고, 노태훈 문학평론가와 임솔아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업 작가로 지내게 된 임솔아 시인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긴 다채로운 글들을 통해 "특권"이라는 시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두 사람의 심정은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갛합니다. 갖고 있는 태도나 입장도 닮은 바가 있겠죠. 그러나 상황은 다를 수도 있겠어요. 서로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 다르니까요. 이들이 딱히 어떤 종류의 희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햇빛을 더 오래 가져가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잘 버리기 위해 계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것이라서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소원을 비는 것조차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 그러면서도 작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상태.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폐를 덜 끼치려 하는 사람에 가까울 거예요. 아무것도 빌지 않겠다는 이들의 다짐은 언뜻 보기에는 냉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냉소가 아닌, 쓰레기를 버리더라도 집까지 가져가서 버리겠다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망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고통스럽겠죠. 고통에 빠져 있을 때에는 자신의 고통만 보고 있었을 테지만, 망해가는 것도 특권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바깥을 둘러보게 되었을 거예요. 그제야 사실을 인지했을테죠. 자신만 인지하고 있다가 세계를 함께 인지하고 나면 자신의 고통을 예전처럼 볼 수는 없을 거예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여름" 편에서 윤혜지 시인의 시 '음악 없는 말'을 읽고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를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나름의 결점도 있고 엄청 매끈하게 잘 쓴 작품은 아닌데도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작품, '이상한 좋음'을 가진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인터뷰 내용에 공감이 느껴진다. 뭔가 이상하게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위안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윤혜지 시인의 이야기와 함께 시 '음악 없는 말'에 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만나볼 수 있는 글들이 인상적이다.
"일흔 살이 되면, 여든 살이 되면 그렇게 오래 사는 느낌은 어떤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살면서 계속 반복되고 패턴화된 어떤 일상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되게 자잘한 차이들을 감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관성적으로 사는 사람과 일상의 사소한 균열이라든가 차이를 하나하나 보면서 생각하는 사람. 이 시에도 나와 있듯이 노인은 살면서 수없이 눈 오는 광경을 보고 겨울을 겪었겠죠. 하지만 어떤 노인은 그냥 눈이 눈이지,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노인이 되면 흔하게 봐운 것도 생경하게 느낄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된 사람이란 한자리에 계속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자리에서 세계가 흘러가는 걸 보고 세계의 일부가 사라지거나 멸종하는 걸 목격하는 존재로서의 노인을 생각했어요."
"이 시를 통해서 '말 없는 음악'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의례적인 말들을 많이 쓰고 있잖아요. 근데 저도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을 안 써야지, 하면서도 형식적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 마나 한 말이요. 정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싶을 정도로요. 상대방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영혼 없는 말은 한 하고 싶다, 그런 말을 할 거면 정말 차라리 침묵하자 싶고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말, 정말 이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 그런 말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가을' 편에서 주민현 시인의 시 '밤은 신의 놀이'를 읽으면서, 김나영 문학평론가와 주민현 시인의 인터뷰를 통해 시에 대한 짙은 여운이 담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의 일상은 되게 매끄럽고 아름답고 평범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일상을 한 겹 벗겨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밝은 곳에도 어둠이 있고, 사람에게도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고요. 저에게 시 쓰기란 바로 그 모두가 바라보는 아름답고 밝은 면과 함께 그 한 겹 아래의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하고요. 그래서 시적 진실이라는 것은 매끄러운 일상을 한 겹 벗겼을 때 나타나는 그 무엇을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제목도 그 어둠을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 '밤은 신의 놀이'라고 쓰게 되었어요."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밤은 신의 놀이'는 "밤은 신의 놀이/삶과 죽음은 주사위 놀이"라는 연에서 하나의 행을 제목으로 가지고 온 건데, 인간이 절대적이고, 완벽하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 아주 많은 종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인간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강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서 제목을 그렇게 짓게 되었어요."
<시소 두번째 : 2023 시소 선정 작품집> '겨울' 편에서 최진영 소설가의 '홈 스위트 홈'이 실려 있어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최진영 소설가와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인터뷰 내용은 '홈 스위트 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최진영 작가의 생각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롭다. 최진영 작가는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죽음'이 있고, 이 소설을 쓰던 때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말한다. 최진영 작가는 '만약 나의 죽음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그런 질문들이 소설에도 꾸준히 드러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밖에도 최진영 작가는 조한진희의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의 '죽음의 미래'가는 기획 시리즈 기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엔드 게임: 생이 끝나갈 때>를 찾아보는 동안 자신 안에서 뭉쳐진 생각이 있어 소설로 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저는 죽음이 언제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건강검진만 제대로 받아도 아플 일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그런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건강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강박에 빠져 있는 사회보다는 아프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제가 이십대 때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분노하는 소설을 쓸 수 있었는데,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는 그렇게 분노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겠더라고요. '우리 모두 망해버릴 거야'라는 분노와 절망에서 조금은 시선을 돌려 '하지만 우리에겐 이런 가능성이 있어'라는 것도 소설에 같이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 가능성 중에 제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사랑이고, 아직은 그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