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1초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곽재구 시인이 타고르의 시편들을 찾아가는 여행인 산티니케탄을 다녀온 이야기를 실은 산문집이다. 시란 생의 1초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곽재구 시인의 책 제목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책머리에 쓴 곽재구 시인의 글귀를 보면 생애 두번째 삶이 지닌 1초 1초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루 24시간 8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였지요. 내게 다가오는 86,400초의 모든 1초들을 다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1초는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1초는 지금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지요. 그런 다음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들을 사랑했습니다. 2009년 7월 나는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12월까지 이어진 이 여행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편들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지요. 타고르의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남은 산티니케탄에서 뱅골 사람들과 살아가는 시간은 기쁨 그 이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산티니케탄에서 내가 만난 시간의 향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외견상 지극히 가난했지만 아무도 가난에 대해서 구차스러워하지 않았고 불행에 대해서 몰입하지 않았습니다. 산티니케탄에서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내 삶이 지닌 1초 1초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저 시가 무엇인지요? 그 또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아니겠는지요.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생의 1초들을 사랑하는 일 아니겠는지요. 이기적이고 모순된 삶 속에서도 우리들이 꿈꾼 가장 어질고 빛나는 이미지들을 우리들의 시간 속에 반짝 펼쳐 보이는 것 아니겠는지요."

 

책 속에서는 곽재구 시인이 산티니케탄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이 함께 실려있어서 글과 함께 동일시하며 보기 좋았다.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장은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둘째장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셋째장은 마시 이야기, 넷째장은 가난한 신과 행복한 사진찍기이다. 산티니케탄에서 저자가 늘 타고다니던 릭샤를 끄는 릭샤왈라들의 이야기, 저자인 곽재구 시인의 집을 청소해주는 마시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의 따뜻한 마음과 인도의 계급사회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3장 마시 이야기는 곽재구 시인이 일기 형식으로 쓴 글귀여서 더욱 진솔함이 묻어난다.

 

"그들은 타고르의 영혼이 깃든 이곳에서 음악과 미술, 철학과 역사와 시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렇게 적은 돈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돈이 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많은 돈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돈이 더 가치 있다는 것, 어쩌면 이 사실이야말로 돈의 진정한 의미 아니겠는지요?

가난하고 소박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게 인생을 배우고 삶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라딴빨리의 노천카페들입니다. 오세요, 당신. 500원이면 하루 종일 당신의 인생과 철학, 예술과 여행에 대해 세계의 젊은이들과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대여, 그대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적 몸을 감싸주었던 무명천도, 그대가 세상을 떠날 적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그대의 낡은 몸을 감싸줄 삼베 천도 다 사각형입니다. 그대가 여행 중 매일매일 찍어대는 수백 컷의 사진들, 그토록 쓰기 좋아하는 예쁜 그림엽서들 또한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졌으니 사각형이 없다면 그대의 여행이,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해질 것인지요?"

 

"수보르의 집은 볼푸르 역으로 가는 철로 변에 있습니다. 기찻길 옆에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것은 세상 어디서나 같습니다. 두 칸짜리 작은 흙집, 안의 컴컴한 공기를 들여다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전기도 없고 변변한 세간도 없었습니다. 수보르는 맨흙인 방바닥에 주저앉아 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밥을 소부지(야채볶음)와 함게 먹고 다시 한 차례 더 먹었습니다. 나는 이날 수보르에게 집에 가자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상력은 현실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 상상력을 죽이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하나 선택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외토픽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2위가 어머니이더군요. 어머니보다 더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답은 선물이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머니조차 광대무변한 인생살이의 시난고난함을 이겨낼 수 있는 한 선물일 테니 말입니다. 산티니케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참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꽃들이 가득 피어난 길과 꽃향기로 뒤덮인 숲 그늘. 하얀 달빛들. 초롱한 눈망울의 호수. 어떤 크리스마스트리보다 아름다운 반딧불이들의 비상과 점멸. 바울들의 노래. 모르는 내게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들. 잠시 길 위에 멈춰 서서 시를 쓸 때 노트 위에 떨어지던 키 큰 나무들의 화사한 꽃잎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