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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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길이 있다.'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때론 또다른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정확하게는 이 책의 저자를 프리모 레비의 책(「이것이 인간인가」) 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프리모 레비는 이탈리아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디아스포라'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특정 인종이나 집단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

②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그렇다면, 서경식도 디아스포라다.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지만 "일본사람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니요, 저는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일조선인'이라고 생각한다.  


국적(nationality)과 정체성(identity)의 불일치...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숙명일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이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서곤 한다. 가능하다면, 그러니까 찾아갈 '그곳'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한국을 찾아왔던 서승, 서준식 형제의 마음도 아마 이러했으리라. 그러나 조국은 그들을 환영하는 대신,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대했다. 형제는 무려 2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정치범'의 신분으로 조국의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서경식은 서승, 서준식 형제의 친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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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은이가 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방문한 후 남긴 일종의 미술 감상문이다. 1992년 초판이 나온 이후 십년 뒤에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한때 널리 읽혔고, 최근에 다시한번 조명받고 있는데, 미술 감상 분야의 책으로써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명성'만 전해듣고서 사전지식 없이 이 책을 펼쳐든다면, 당황하게 된다. 나처럼...

 

 

이 책에는 성스러운 종교화도 아름다운 풍경화도 화려한 인상파 작품들도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유명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원작을 보고싶어하는 샤갈이나 클림트 뭉크 등등 거장의 작품들 역시 단 한점도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의 발길을 붙잡았던 그림들은 하나같이 심상찮다. 그리고 왠지 불편하다.

 

 


 

 

스위스에서 4,5일 어정거린 다음 기차편으로 독일로 들어가 하이델베르크에서 1박, 암스테르담에서 2박한 뒤, 나와 누이는 벨기에의 브뤼주로 갔다. 1983년 10월15일 토요일이었다. (...)

운하를 유람하고 탑에 오르는 따위의 정해진 관광코스를 거친 다음 그곳에 가서, 그 그림과 맞닥뜨렸다.

그 그림의 제목은「캄비세스왕의 재판」이다. (...)


여기서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이 그림에서 곧바로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하고 있었다.

시뻘건 왼쪽 발목을 꽉 잡고 마치 양말이라도 벗기고 있는 듯한 형리(刑吏)의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여기가 나른하다니까"하고 중얼거렸다는 아버지의 목쉰 음성이 귓속에서 낮게 울리는 듯하다.


이 여행을 떠나기 5개월 전인 1983년5월9일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가신 지 꼭 3년. 어머니와 같은 끔찍한 병이었다.  

아버지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으로 흘러왔었다. 피지배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굴욕과 신고를 겪었다. 만년이 가까워서야 작은 공장의 주인이 되었으나 도산의 위기를 여러차례 겪으며 마음고생이 끊이지 않았다. 4남 1녀를 두었으나 그 가운데 아들 둘은 조국의 감옥에 갇힌 채 죽는 날까지 석방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한많은 죽음이었다. -8~14쪽 中-

 

 

이어서, 그와 누이동생은 이탈리아행 야간 열차를 타고 피렌체에 이른다.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수태고지>등을 감상하고, 수도원의 원장이자 도미니크 수도회를 이끌었던 사보나롤라가 머물던 방을 보고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가 자신의 두 형을 떠올렸다는 건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승방이 있다는 그 자체가 수도사들에게는 대단한 혜택이었던 것으로, 그것을 오늘날의 기준에 비추어서 좁다든가 어둡다든가 하며 놀라거나 의아해할 일은 아니다. 당연할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비좁고 어둠침침한 승방에 잠시 머물러 서서 벽에 그려진 책형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떤 연상이 집요하게 떠오르는 것을 피할 길이 없었다. (...)

나의 두 형들은 그때까지 12년간, 바닥 면적이 0.72평이라니까 이 승방보다도 더 작은 곳에서 갇혀 있었다. 거기에는 때때로 고문은 있었지만, 수인(囚人)들이 손톱이나 나무토막으로 긁은 자국밖에는 벽화 같은 것도 없다.

그들은 수도사가 아니다. 정치범이다.

누이는 열다섯살 적부터, 지금은 안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면회와 차입을 위해서 줄곧 형들이 갇혀 있는 감옥엘 다닌 것이다. -33~36쪽 中-



 

'인권은 곧 국권이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인간적으로 누릴 수 있는 권리란 따지고보면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으로서의 권리가 없거나 박탈당했다면 인권 또한 보호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난민을 제외하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국민이 있다면 바로 정치범일 것이다. 국민이지만 또한 국민이 아닌 자들... 국가에 의해 거부당한 자들...

 


 

서승, 서준식 형제는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수형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다행이도 형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가해자들 중 일부 또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조사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그 인권법이 누군가의 생사를 건 단식 투쟁으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리라.

 

 

 

 

 

 

금년(1990년) 2월의 어느날, 한국 서울 공항에서 약간 귀찮은 일을 당했다.

 

그때 나는 서울에 있는 형에게 선물하려고 어떤 그림의 복제품을 갖고 갔었는데, 뜻밖에도 그것이 세관에서 문제가 된 것이다. 여러 명의 세관원들이 둘러서서는 검사대 위에 펼쳐진 그 그림을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이마에 총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그림 속의 인물을 가리키며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누구 그림이야?" "어디서 샀소?" "얼마에 샀소?" 하는 질문을 해대는 것까진 좋은데, "이건 소련 그림 아니야?"하는 따위 가당치도 않는 소리까지 하면서 좀처럼 통과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기야 이런 경우는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정나미가 떨어지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이 나와 같은 자를 상대할 때의 저들의 예법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그림이란 고야의「1808년5월3일, 쁘린시뻬 삐오 언덕의 총살」이다.  -96~98쪽 中-

 

 

낭만주의 화가였던 고야는 스페인이 프랑스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스페인의 민간인을 보복 살해하는 나폴레옹 군대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로부터 백여 년이 흐른 뒤, 피카소는 독재자 프랑코를 지원하기 위해 히틀러가 스페인의 작은 마을을 초토화시킨 사건을 그림(「게르니카」)으로 남겼다. 그리고 또 몇십 년 뒤 피카소는「한국에서의 학살」로 알려진 그림 한 점을 그렸는데, 그가 일짝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던 고야의 이 그림 구도를 빌려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슬픈 역사일수록 끈질기게 되풀이되곤 한다. 의도적으로 묻히고, 무의식적으로 망각되면서...


그러므로, 과거는 끊임없이 기록되고 되새겨지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고통스러운 과거일수록 더더욱...




 

이제서야 이 책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저자에게는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순례였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잘못된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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