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박종대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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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링크의 작품으로는 세번째다.

<더 리더:책 읽어 주는 남자>와 <귀향>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주말>은 분량도 많다고 할 수 없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갔다. 물론, 개인적으로 오른쪽 각막을 다치는 등 책읽기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독일이 우리나라처럼 동서독으로 분리되어 있을때, 서독에서 일어난 반정부 좌파운동을 주요 모티브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외르크가 '적군파'소속으로 정부의 주요 인사를 납치/살해한 혐의로 23년동안 감옥에서 복역 후 대통령 사면으로 출소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보호자인 누나 크리스티아네는 동생의 출소를 축하하기 위해서 한때 동생과 친했던 친구(동지)들을 주말에 시골집으로 초대한다.

 

초대된 인물들은 덴탈랩을 운영하는 울리히, 기자인 헤너, 성직자가 된 카린, 교사이자 작가인 일제, 그리고 외르크를 다시 좌파운동의 마스코트로 삼으려고 하는 마르코 한 등이다.

 

이들은 시골집에 도착한 첫날인 금요일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를 회상하면서 외르크의 행위에 대한 감회를 드러낸다. 아내를 자살로 내몰고 아들에게 편지 한통 전달하지 않은 외르크의 삶은 과연 영웅적인 것일까? 그의 희생적(?) 행동이 과연 인류 사회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마도 저자는 이런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은 마르카레테과 외르크의 아들 게르트 슈바르츠(페르디난트)의 관점으로 표출된다. 

 

그녀가 보기엔 외르크도 병든 인간이었다. 병들지 않았다면 격정과 절망이 아니라 어떻게 멀쩡한 정신과 냉혹한 가슴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행동을 찾았어야 하지 않을까?  마르가레테는 적군파와 독일의 가을, 그리고 크리스티아네와 그 친구들이 추진한 테러리스트 사면에 대한 대화도 화제 자체가 병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의 테러리스트들뿐 아니라 지금 그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걸려 있는 병이다. 어떻게 건강한 정신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살인으로 더 나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이 모든 것이 추악하고 역겨운 병에 너무 많은 명예를 안겨주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주말> p115~116 中-

 

부모 세대의 나치즘 동조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전후세대는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나치 친위대로 젊은 날을 보냈던 노인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술자리 대화는 외르크의 출소를 계기로 다시 모인 친구들의 회합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 

 

 

오펜부르크 회합에서는 인도 요리를 해 먹었다가 모두 설사를 했던 거 기억나? 도리스가 미스 유니버시티 선발 대회에서 상을 탄 뒤 수상소감자리에서 <공산당 선언문>을 낭독했던 거 기억나? 정치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단지 에바가 좋아서 베트남 전쟁 반대 데모에 참가한 게르노트가 갑자기 '양키를 미국에서 내쫓자!'하고 소리쳤던 거 기억나? (......) 다른 사건들도 그들의 머릿속에 잇따라 떠올랐다. 우리가 라텐베르크 교수의 강의 시간에 쥐새끼들을 풀어놓았던 거 기억나? 대통령 연설 때 스피커 시설을 방해해서 엉망으로 만들었던 거는? 전철 요금 인상안이 발표되었을 때는 쇠지레로 전철기를 차단시켰던 거는? 또 우리가 고가도로 벽에 격리 감금에 항의하는 플랜카드를 내걸었던 거는 기억나? 경찰이 플래카드를 내리자 고가도로 콘크리트에다 스프레이로 다시 썼던 거는? 우리가 시위를 벌이기 위해 도로공사 건물 안뜰에서 교통  표지판들을 슬쩍해서 간선도로를 폐쇄했던 거는? (......)

 

슈바르츠는 저녁 내내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 또박또박하고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내가 자란 작은 도시에서 몇 주에 한 번 친구들과 술집에서 도펠코프를 쳤습니다. 그날 저녁도 카드를 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다섯 노인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죠. 모두 나치친위대 출신이더군요. 순간 나는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세요? 그거 기억나, 그거 기억나? 밤새 그러면서 놀더군요. 이상했어요. 빌뉴스에서 유대 놈들을 어떻게 쳐죽였고,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놈들을 어떻게 쏘아 죽였는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어요. 바르샤바에서 샴페인에 취해 떡이 된 얘기며, 폴란드 여자들과 오입질한 얘기며, 또 이발사가 그 양반들의 긴 수염을 자른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좋다고 낄낄거리면서 늘어놓았어요. 당신들도 다르지 않네요. 정작 중요한 건 왜 얘기를 하지 않죠? 은행을 습격할 때 여자를 쏘아 죽인 얘기도 있을 테고, 국경에서 경찰을 죽인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그뿐인가요? 은행장도 죽였고, 상공회의소 회장도 죽였죠. 아, 상공회의소 회장은 누가 죽였는지 우린 정확히 모르죠. 어때요, 아버지? 아버지가 죽였는지, 다른 사람이 그랬는지 아들한테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 없어요?" 외르크는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베른하르트 슐링크, <주말> p204~208 中-

 

 

결국, 그들을 영웅심에 불타오르게 만들었던 혁명, 진리, 진보, 정의 등등은 그들이 꿈꿨던 세상 대신 폭력과 복종으로 점철된 굴종된 삶은 아니었을까?

원래 혁명이란 이런 것이다. 권력을 얻고자 하는 세력이 기존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그런 거...

그러니까 혁명 이후나 혁명 이전이나 커다란 차이는 없다는 거...

인류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혁명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지배와 피지배, 폭력과 복종은 똑같이 인류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이라는 거...

 

 

한편, 주인공 중 한명인 일제의 소설 속 등장인물인 얀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모호하다.

자살을 가장하여 사라진 후, 테러리스트로 활동하다가 9.11 테러가 일어나던 당시. 어느 아랍인의 지시로 무역센터 꼭대기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방을 하나 갖다 놓고 나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오지 못했고.... 결국 추락사하는 것으로 그녀의 소설은 마무리 된다. 그 가방 안에는 비행기 유도장치가 들어있는 것으로 암시되어 있고...

 

 

얼마전, 우리나라의 극좌정치세력 중 하나인 통진당이 대법원에 의해 해산 명령을 받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그들도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국민의 지지로 국회에 들어왔으니 법의 잣대가 아닌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 대한민국 헌법질서에 위배되는 이적단체에 대한 해산은 정당하다는 주장 등도 있다.

 

어찌됐든,

의도와 취지가 아무리 좋다한들 폭력적인 방법은 더이상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그리고 젊은 혈기는 권력추종자들에 의해 즐겨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하리라.

 

혁명...?

이젠 지겹다.

 

왠지 반공 독후감이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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