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계급사회 - 누가 대한민국을 영어 광풍에 몰아 넣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4
남태현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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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영어 광풍 현상과 그 원인을 짚어낸 책이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존칭체'를 사용한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뻔한 소리를 아이에게 설명하듯 해서 살짝 짜증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간부분을 넘어가면서 영어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집단을 고발(?)하고 한국사회에서 영어란 효용가치보다는 계급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올초부터 영어 회화 공부를 한해 목표로 잡고는 지금까지 나름 잘 지켜오는 나 역시, 스스로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영어 회화를 공부하는 거지?"

나의 경우엔 좋은 직장이나 승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먼훗날 해외여행 갔을 때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학창시절부터 영어에 맺혔던 '한(限)'을 풀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영어를 잘 하는 친구가 쉽게 대학가고 직업적으로도 빨리 성공하는 걸 보면서 느꼈던 억울함...

영어를 잘 하는 친구 앞에서 (특별한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기 죽어야만 했던 슬픈 흑역사들...

 

지은이는 이와 같은 내 마음이 바로 대다수 한국인들이 영어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한가지 더 놀라웠던 건,

영어광풍사회를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는 정부의 고위층 인사들과 대기업 간부 등등.... 하나같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온 비율이 높다는 점을 신빙성 있는 자료들과 함께 제시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영어란 출세의 방편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소위, 세계화 시대에 적응하거나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서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세계화가 미국화는 아닐 터인데.... 어째서 이 사회는 술 권하는 사회, 빚 권하는 사회를 너머 영어까지 권하는 사회가 되었단 말인가.

굳이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분야, 굳이 영어가 쓰이지 않는 직업에도 영어 시험 점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말 전국민의 영어 구사 능력이 국가의 안위와 발전을 판가름 지을 만큼 중요하다면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영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영어 사교육이 판을 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글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애국심 때문에?

절대로 아니다.

이는 단지 영어 공용화를 하지 않으려는 전제하에 갖다 붙이는 효과적인 핑계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영어광풍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건,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계급을 가르는 '기준'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상류층과 중산층 그리고 하류층을 가르는 '기준'으로써 영어점수와 구사력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효과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영어가 개인의 노력이나 타고난 능력 등 기타 다른 요인보다는 경제력에 따라 그 효과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유창한 영어 없이는 성공은 점점 더 힘들어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를 쓰고 영어를 합니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상류층에 더 늦기 전에 끼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사기가 숨어 있습니다. (...) 더 많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할수록 상류층에서는 점점 더 어린 나이에, 점점 더 비싼 교육으로 대응합니다. (...) 보통사람으로선 애초에 이길 수 없는 경쟁인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상상을 해보죠. 돈 수억원을 들인 상류층이나 공립학교를 나온 노동자의 자녀도 다 완벽하게 영어를 하게 됐다고 상상해봅시다. 그럼 우리 사회의 영어광기는 사라질까요? 물론 영어 광기는 사라질 테죠. 영어가 외국인과의 소통보다는 신분 상승의 도구로서의 역할이 더 크고 한국에서 엘리트로서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이상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한다면 영어가 가진 계급적인 의미는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계급 간의 차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죠. 영어가 그 계급적 역할을 못하게 된다면 상류층은 자연스레 그 시대에 맞는 대체물을 찾겠지요. 중국어가 될수도 있고, 러시아어가 될 수도 있고, 유대교 경전이 될 수도 있고, 태국의 무술인 무예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의 영어 망국병은 영어 망국병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대신 영어 망국병은 한국 사회의 계급 문제인 것이죠. 계급 간의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분 상승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욕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다면, 영어의 문제는 개인이나 한 집단이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남태현, <영어계급사회> p191~193 中-

 

 

영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어쩌면 우리나라가 친미적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와 맞닿아 있다고도 하겠다.

내전이 일어난 상황에서 미국의 도움으로 간신히 나라의 근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반세기가 훌쩍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냉전이라는 과거에 묶여 절뚝거릴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어쩌면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영어로 상/중/하 계급이 갈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나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여전히 영어 공부에 시간과 돈을 쏟아 부을 것이며...

중산층은 가족의 행복을 담보로 상류층 영어 교육을 따라가느라 헉헉거릴 것이며...

정부와 대기업 등 기득권세력들은 얼마 안되는 기득권을 나누어 주는 기준으로 여전히 영어를 들이밀 것이다.

 

그러나, 

예전엔 모르고 무작정 따라만 했거나 사기를 진실인냥 철썩같이 믿었다면, 이젠 알고도 모르는 척 당해주자는 것이다.

그래도 속이야 상하겠지만...

배가 꼬이고 아프겠지만...

 

혹시 아는가?

이 사기극에서 운좋게 내가 사기의 대상에서 주체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

.

.

이런 게 바로 악습인줄 알면서도 악습이 답습되고 결국엔 규범과 전통이 되는 원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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