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개정판 아주 사적인, 긴 만남 1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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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존재'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마음의 우주'다.

 

 

마종기 시인과 가수 루시드폴(본명: 조윤석) 사이에 오고간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있다는 그 깊은 '심연'조차 사라지고 없다.

1938년 1월생인 마종기 시인과 1975년생인 루시드폴 사이를 가르는 무려(?) 36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도 미국과 유럽이라는 공간적 거리감도 어느덧 무의미해진다.

 

이 책을 읽기 전,

루시드폴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준 인상이란 그저 '요즘은 가수도 학벌로 되는 시대인가 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런데 지난 가을 시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노랫말에 그의 자작곡이 다섯곡이나 뽑혀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다소 뜻밖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최근에 결혼을 하면서 다시 검색어에 오르내리면서 내 관심이 자연스럽게 집중되었다.

 

한편, 마종기 시인은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삶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다만, 수능시험에 출제될 정도로 유명(?)하다는 그의 시는 나에게 그 어떤 특별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루시드폴은 그의 시들을 읽으면서 외국에서의 사무치는 외로움을 달래고 노래까지 만들었는데...

다만, 그의 부친이 나에게 어릴 적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아동문학가 마해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를 좋아할 이유, 충분하다.

 

편지 속에서 읽혀지는 루시드폴은 '떠날 때를 아는 사람'같고...

 

#- 여기에 더 이상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습니다.익숙해진다는 것이 두려워진 걸까요. 주로 3,4년이 걸리는 학위를 마칠 때가 되면 자기가 연구하던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그 연구실에서 발언권도 강해지고, 그러면서 일종의 권력도 가지게 되지요.(한국이나 유럽이나 사람 사는 건 어디를 가나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그러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기가 있던 곳에 눌러앉게 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아무튼 왠지 모르게 지금이 그냥 '떠나야 할 때'라고 느껴져서 그런지 교수님의 '배려'가 그리 반갑지많은 않았지요. -p80

 

처음엔 마종기 시인 역시 나처럼 루시드폴의 노래들을 이해하지 못했더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 이 노래들은 혹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 같은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루시드폴의 가사도 마종기 시인의 시도 소위 '시작(詩作)법'에서 한발 빗겨나 있다. 쉽고 편하게... 느낌의 순간을 살려 최대한 솔직하게... 솔직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거니까.

 

편지 속에서 느껴지는 루시드폴은 또한 '괴짜'이면서도 별 생각없는 '범인'같다...

 

#- '루시드폴'이라는 이름이 궁금하셨군요. 저는 그 얘기만 나오면 참 창피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깊게 생각해서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앨범이 나오기 전에 라디오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혼자 방송에 나가는 것이 쑥스러웠어요. 또 당시 녹음을 해주신 분이자 저의 소속사 사장이었던 분과 함께 팀(뮤지션+엔지니어)개념으로, 일종의 프로젝트처럼 소개를하면 어떨까 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정했지요. -p138

 

 

그리고 또 한없이 맑고 착한 사람 같다는 거...

 

#- 아아, 이 시를(마종기 <동생을 위한 조시>) 저는 얼마나 많이도 읽었던가요. 그리고 늘 이 시의 뒷부부늘 읽을 때면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있어 전철역에서, 집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하는 중에 얼마나 읽고 또 읽어주었던지. 보내주신 편지 중에서 무엇보다도 '쉽고 좋은 시'라는 시구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 '쉽다'라는 것이 저에겐 단어 그대로의 '쉽다'가 아니라, 시인의 가슴에서 독자의 가슴으로 '쉽게'가는, 그런 시가 '쉽고 좋은 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결심하게 되었지요. 나는 쉽고 좋은 노래를 써야겠구나......

 

 

 

마종기 시인과 가수 루시드폴의 만남은 마종기 시인이 언급했던 것처럼 조국(혹은 모국이나 고국)이 아닌, 이국땅에 있었다는 '디아스포라(diaspofa:이산의 백성)'라는 공통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루시드폴은 유럽 땅에 도착해서야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펼쳐들었고 깊이 매료되니 말이다. 일찍 고국을 떠나 의학자로서 시를 썼던 마종기 시인의 정서가 공학도로서 노랫말을 짓고 부르는 그의 심장에 정확하게 꽂혔다고나 할까.

아무튼 둘 다 남다름과 특별함을 모두 겸비한, 이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라 하겠다.

 

그들의 우정에 마음이 따듯해지면서도 한편으론 부럽기 그지없다. 

그들에게 주워져 맘껏 향유되는 지성과 감성이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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