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지음, 김정희 엮음 / 지식공작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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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李) 마사코(方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본명이다.

잘 알다시피, 그녀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이은(垠) 영왕의 부인이다.  운좋게(?) 세자의 자리에 오른 영왕이 일본 황실의 자손과 결혼을 한 것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두 사람은 부부로서 천생연분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몰락한 왕가의 세손도 일본 황실의 여식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필부필녀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더라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그들이 부부가 되었던 것 역시 세손이요 황녀였기때문에 가능한 일이였으니 이 모든 것들을 그저 운명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듯 싶다.

 

이 책은 1984년 5월14일부터 10월24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된 이방자 여사의 자전적 기록인 <세월이여 왕조여>를 기본 텍스트로 삼아 엮어졌다.

그동안 이방자 여사에 대해 아니 조선의 마지막 왕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몰락해가는 왕조의 뒷모습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500년 조선왕조가 수십년에 걸쳐 서서히 저물어가는  와중에 일반 백성은 물론이요 왕실의 자손들 역시 말못할 고통과 슬픔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런 사실들은 정식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고 널리 다루지도 않기에 더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지막 황태자비의 비망록인만큼 훨씬 더 진솔하게 읽혔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그래서 고종의 셋째아들이었던 이은(垠)이 세자로 책봉된다. 둘째아들인 이강(剛)이 나이로는 앞서지만 모친(덕수 장씨)이 비(妃)로 책봉되지 않아 세자가 되지 못했단다. 한편, 이은 왕세손의 모친인 영월 엄씨는 명성황후 서거 후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가까이 모시면서 승은을 입어 순헌황귀비로 책봉되었기에 그의 소생인 이은이 세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11살 어린 나이에 볼모로 일본에 끌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실 자녀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20세 되던 해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 황족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이방자 여사의 일본명)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한편, 나시모토미야 마사코는 이치조오카 도키코공주와 쿠니노미야 나가코공주등과 함께 당시 일본의 황태자였던 히로히토의 비로 물망에 올랐으나 권력투쟁에서 밀려 나면서 '선일융화(鮮日融和)라는 명목으로 조선 황태자비가 되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미루어 볼때, 마사코라는 여인은 일본 천황비가 될 수도 있었던 자신이 망한 나라의 허울뿐인 천대받는 세자비가 되었다는 것에 한탄할 법도 하리라. 그러나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편인 영왕을 진심으로 존경했고 사랑했으며 마침내 한국인으로서 한국땅에 묻혔다. 

 

사람들은 나를 비운의 왕비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낙선재 뜰에 서서 회고해 보는 나의 지난날들은 마냥 비운만은 아니었다. 긴 폭풍우 속에서도 가끔 한 조각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보이듯이 여인으로서의 사랑과 행복이 있었다. 무지개 같은 꿈과 희망도 있었다. 비록 고달프고 외로웠던 기억이라 하더라도 이제 회한과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마냥 끌어안고 싶은 것들, 내가 사랑해야 할 소중한 나의 것들로 받아들이고 싶다.

은(垠)전하와 나는 피차 불행한 조국의 왕족이었기에 서로 눈물겨운 역정을 나누는 부부가 되었다. 거목이 휘어질 때 그 기우는 아픔이 크듯 망해 가는 나라의 왕세자였기에 당하는 전하의 아픔은 옆에서도 감히 추축하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인간으로서 은 전하는 훌륭한 분이었다. 따뜻하고 깊은 마음과 중후한 인품, 뛰어난 영어 프랑스어 실력과 조선 유학생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장학회 사업 등 망국한을 되씹으며 몸부림치는 그분을 보며 나는 한일 융화보다 외로운 그분의 따뜻한 벗이 되고자 했었다. 부부로서 우리 두 사람은 오히려 행복했다. 험하고 암담한 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두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결합과 깊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 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 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나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p4~6 中-

 

 

아버지(대원군)와 아내(명성황후)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임금으로만 알려졌던 고종은 실제로는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특히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물심양면 노력하다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었고 상왕의 자리에서도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시도를 그치지 않자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렀던 왕이었다. 고종의 서거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지만 앓는 지병도 없이 식혜를 마시고 바로 사경을 헤매다가 죽었으므로 그 당시에도 독살설이 파다했고, 결국 여기에 분노하여 조선 백성들이 일으킨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3.1운동이다. 

 

영왕 역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갔지만 모든 면에서 일본의 황실 자손들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조선인 유학생들이나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의 감시와 지배가 더한층 심해질 것을 감안하여 항상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해방되자마자, 조국에 돌아오고 싶어했지만 이승만대통령(1875년 생으로 같은 전주이씨였던 이승만은 1897년생으로 자신보다 22살이나 어린 영왕을 무시하고 아랫사람 취급했으며, 혹시나 영왕이 돌아오면 왕정복고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했다고 한다.)의 냉대와 무관심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일본에 남아 일본 정부의 도움도 한국 정부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한다. 이방자 여사의 수기에 이 부분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정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에서야 영왕과 이방자 여사는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많던 왕실 재산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고 왕실 후손들은 빈궁하게 살고 있었다. 

 

1970년 귀국 6년6개월만에 영왕이 서거한 후, 이방자 여사는 낙선재에 남아 1989년 눈을 감을 때까지 장애아동 등을 돕는 일에 매진했다.

 

그녀의 삶은 결코 평탄하다고 할 순 없다.

첫아이를 7개월만에 어이없이 떠나 보냈으며 잦은 유산과 암 등 병치레 또한 잦았다. 그리고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힘겨운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로서 영광보다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식민통치국의 여자라는 손가락질 또한 받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인류애)과 고결한 인품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황태자비이기에 앞서 모든 이들에게 삶의 모범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그녀가 이런 그녀의 삶이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의 25세 연하 부인이었던 프란체스코 여사보다도 덜 알려져있거나 사실이 왜곡되어 알려진 것이 못내 아쉽다. 아마도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영왕과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손인 이구 역시 안타까운 일생을 살다갔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 혼자 힘으로 미국유학길에 올라 명문 MIT까지 졸업하고 미국인 아내를 맞이했건만, 한국에 돌어온 이후 이런저런 세력들과 이씨 문중의 참견에 견디다 못해 1979년 일본으로 건너가버렸다. 그후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귀국 종용에도 불구하고 2005년 그곳에서 곡절 많은 삶을 마감했다고 하니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황세손이라는 의무와 책임만을 강요하고 걸핏하면 일본인 피가 섞였다는 질시와 비난을 견뎌내기엔 그에게 조국은 너무 낯선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올바른 역사를 남기려면 무엇보다도 흔적이 남아 있는 근현대사부터 정확히 기록하고 확인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 입니다>의 단행본 출판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되도록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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