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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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는 작가는 작품과는 상관없이 왠지 모를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하진 역시 그런 작가 중에 한명일 것이다.

 


본명이 진쉐페이(金雪飛)인 하진(哈金)은 1956년 하얼빈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톈안먼 사태를 접하고 귀국을 포기한 채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일찍이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전미도서상' '플래너리 오코너상' '펜 포크너상' '어네스트 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했다. 솔직히 그의 명성에 이끌려 읽게 된 그의 소설집 <멋진추락>은 미국 이민자의 생활을 다룬 작품들로 그럭저럭 읽어 내려갔지만 그의 명성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빼어난 단편작품을 쏟아내는 작가도 있지만 장편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에게 단편은 잔잔한 '소품'과도 같은 존재일 뿐, 진면목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의외로 많은 법이다. 이에 신중하게 하진의 장편 소설 되도록이면 대표작을 골랐다. 역자 또한 믿을만 했다.

 

<광인>은 톈안먼 사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톈안먼 사태가 평범한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와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고전시의 대가인 양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진다. 그리고 그의 예비사위이자 제자인 주인공 완지안과 팡반핑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돌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양교수가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터무니없는 소리들을 해대면서 시작된다. 양교수로부터 조각 조각 떨어져 나온 참담한 현실과 진솔한 고백을 통해 베이징대 대학원에 지원하려던 지안은 흔들리고 만다.


잠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떠났던 반핑의 고향 마을에서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접하면서 지안은 자신이 가고자 했던 학자의 길이 실은 '사무원'에 불과하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려지는 도마위의 고깃점'에 다름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물 한동이를 위해 5km 이상을 왕복해야 하는 가난한 마을 농민들이 마을에 들어와 영화를 찍는 촬영팀으로부터 일당 1위안을 받고 영혼을 파는 것처럼...


그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도마위의 고기를 자르는 칼'이 되고자 하지만 이 마저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이를 통해 1989년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던 당시, 중국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을 고발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양교수가 문화대혁명의 혹독한 고초를 견뎌내면서도 학자의 길을 고수해왔지만 그의 삶 역시 좌절과 배신 그리고 물욕과 권력에의 지향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광인이 되어서야 자신의 진심을 고백함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진은 80년대 후반 중국 지식인 앞에 펼쳐져 있던 숨막히는 현실을 양교수의 헛소리(?)와 식당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올빼미'라는 미치광이의 모습을 통해 또 한번 극대화시킨다.

 


메이메이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웠던 평범한 '룸펜'이었던 지안은 결국 양교수의 죽음과 함께 자신만 몰랐던 아니 어쩌면 알고도 외면해 왔던 냉정한 현실에 놀아났음을 알고 무력감에 빠진다. 그의 베이징행은 사실 그 어떤 정치적인 색깔을 띠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한롱의 사암마을로 떠난 것처럼 잠시 잠깐의 외출이요 일상 탈출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짧은 잠깐의 '한눈팔기'가 그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터닝포인트'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는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하리라.

 


하진의 인생도 그러했을까. 너무나도 순식간에 뜻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전혀 다른 방향의 삶을 살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거친 세월들을 걸어왔던 건 아닐까? 그저 지안의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통해 진실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나는 개인적인 동기들이 정치 행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메이메이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베이징으로 돌진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이유에 근거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우리 역사서들은 언제나 개인적인 동기들을 제외시켰다. 나는 나이 든 혁명주의자들이 적군(赤軍)이나 공산당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정해진 결혼을 피하거나 빚을 피하거나 충분한 음식이나 옷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종종 말했던 걸 떠올렸다. 개인을 움지이고 따라서 역사의 동력을 일으키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들이다.

 

-<광인> p435-

 

중국 본토에서 하진의 작품이 출판되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사태로 망명한 자국인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톈안문 사태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단 한번도 진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중국 대륙에서 톈안먼 사태는 집단 망각에 빠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하진과 같은 이들이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는 톈안먼 사태는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역사적 기록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겠다.


역자인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에 따르면, 하진의 작품은 샨사의 <천안문의 여자>,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등과 확연히 구분되며 이들 작품들과 비교해 볼 것을 권한다. 기회가 되면 샨사와 다이 시지에의 작품을 읽어 보리라.

 


역자가 이미 밝혔듯이, 이 작품은 영어로 쓰여진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기에 중국적인 표현 등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성장(省長)을 주지사로 표현한다거나 중국의 화폐단위인 '마오(分)'를 '펀'이라고 옮긴 점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양교수가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연대가 부적절한 것 같아 지적하고자 한다.

 

그 여자가 누구지? 그녀는 그가 스물아홉이던 1930년에 그와 같이 있었다. 그녀는 양 교수의 부인 이전에 있었던 누군가였음이 분명했다. 메이메이는 지금 스물네 살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부모가 결혼한 지 3년 만에 태어났다고 했다. 양 교수가 서른 두살이던 27년 전에 결혼했다는 의미였다. 미지의 여자가 그를 퇴짜 놓은지 3년이 지나서 였다. 그는 수십만 명의 지식인들처럼 1950년대 후반에는 박해를 받지 않았다.

-시공사 <광인> 하드양장본 229쪽-

 

잘 알다시피,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89년 톈안먼 사태가 발생하기 2~3개월전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 몇일 간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양교수의 딸 메이메이가 1989년 24살이라는 뜻이므로 양교수는 27년 전인 1962년 32세에 결혼을 했다는 의미이므로 그의 출생 연도는 대략 1930년도가 된다. 그러므로 본문 중, '그녀는 그가 스물아홉이던 1930년에 그와 같이 있었다' 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번역의 오류인지 작가의 착각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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