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길 분도소책 2
마르틴 부버 지음, 장익 옮김 / 분도출판사 / 197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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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됐고(1977년에 출판)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도 드물다. 분도소책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 책 선정도 좋을 뿐더러 얇은 책이 주는 정감이 있어서, 이 시리즈가 중단된 것이 무척 아쉽다.  

 

원제는 <하씨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이다.

하씨즘 Hasidism은 헤브라이어의 하씨드(경건한 자)에서 유래하고, 유대종교사상에 나타난 율법의 내면성을 존중하는 경건주의 운동이라고 종교학대사전에서 설명한다. 좁은 의미로는, 18세기 초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들의 종교혁신 운동이라고 하는데, 성속일여를 주장한다고 한다.

 

1. 마음살핌

글은 하느님이 아담에게 "너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실 때 아담이 "저는 숨었습니다."고 고백하는 대목을 가지고 시작된다.

 

이 물음은 사람을 깨우고 그가 숨은 세계를 깨뜨린다. 이 물음에 정면으로 응하느냐 아니냐는 인간에게 달려있다. 이 물음은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천둥 소리로서가 아니라 '조용하고 작은 소리'로 들려온다. 

 

이 소리를 눌러버릴 때 우리에게 인간의 '길'은 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이란 무엇일까? 마르틴 부버는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있다. 신실한 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다만 그것이 하느님께로 '돌아섰을' 때 내 앞에 펼쳐지는 길이자 현실적 삶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먹고 아담이 숨어있을 때 하느님과 아담 사이에서 오고가는 저 대화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감동시키는 데가 있다. 인간의 호기심과 능력과 한계 그리고 신적 외경과 자비로움이 빚어내는 신비한 관계성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풍경이다.

 

2. 독특한 길

 

'하느님을 섬기는 보편적인 길을 하나 가르쳐' 달라는 제자의 요청에 스승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에게 어느 길로 가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네. 하느님은 배움으로 섬길 수도 있고 기도로 섬길 수도 있는가 하면 단식으로 섬길수도 있고 먹음으로 섬길 수도 있기 때문이지. 각자 자기 마음이 어디로 기우는지를 잘 살펴서 힘을 다하여 그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라네.'

 

그 길은 자신의 가장 강한 느낌, 가장 깊은 곳의 자아를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림으로써 열리는 길이다. 오직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

 

3. 시작은 자기로부터

옛날에 어떤 바보가 살았는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옷을 찾아 입는 일이 너무 어려워서 어느 날 밤에 자기 전 옷이 놓인 장소와 입는 순서를 종이에 적어놓았다. 이튿날 아침 그는 종이를 보면서 '모자'하고 읽으면 모자를 바로 찾아서 쓸 수 있었고 '바지'하고 읽으면 바지도 바로 찾아 입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옷을 다 입었는데 마지막 한가지 때문에 당황했다. "자, 다 좋은데 나는 어디 있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나'를 찾는 일이 문제다. 그 전에 '나'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도 헤매고 있다.

 

4. 자기는 그만 잊어버릴 것

사람은 각자 자기 마음을 살피고, 자기만의 고유한 길을 걸어가며, 자기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기를 잊어야하기도 한다. 자기를 출발점으로 삼되 목표로 삼지는 말라는 말이다. 자기를 파악하되 자기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이다.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이란 생각이 가 있는 그곳에 자신도 갇혀 있고, 사람 영혼이란 생각하는 그곳에 온통 잠겨 있게 마련이므로, 그런 사람은 저열한 것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잘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느라 정신력을 낭비하지 말고, 그 힘을 세상과의 적극적 관계에 쏟으라고 하씨딤은 가르친다.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세상이라고. 

 

랍비 멘델이 회중에게 했다고 하는 이 가르침이야말로, 종교를 떠나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유익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자신 밖을 몰래 내다보지 말 것, 남을 몰래 들여다보지 말 것, 자기를 목표로 삼지 말 것!

 

일평생 '나'를 찾지 못해 헤매이지만 그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있는 자리를 제대로 보려면 나는 떠나야하는 것 같다. 

오래 떠나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발견하는 가장 나다운 진짜 나.

내가 나를 반기는 기쁨과 안도감을 아는 사람은 알 거라 생각한다. 

 

진정한 나를 알고 그 나에서 출발해서 나다운 길을 걸어가는 일은, 순차적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참으로 이상하고 정말 어려운 일이다.

 

5. 제 자리에서

이 책 마지막 장의 제목이다.

여기서 랍비 예켈의 아들인 랍비 아이식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아이식은 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꾼다. 어떤 이가 꿈에 나와서 프라하의 왕궁으로 가는 다리 아래 묻힌 보물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꿈을 꾸자 아이식은 정말로 그곳을 향해 길을 떠났다.

프라하 다리까지 간 아이식은 경비병 때문에 땅을 팔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경비대장이 그를 보고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사연을 듣고 난 경비대장은 껄껄 웃으면서 자기도 비슷한 꿈을 꿨다고 했다. 꿈이 보물이 있는 장소를 일러주는 바람에 거기로 가서 땅을 팔 뻔했다고 말이다.

"그 유대인의 이름이 예켈의 아들 아이식이라나요.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죠. 거기 사는 유대인 중 절반은 이름이 아이식이고 절반은 예켈인데 집집마다 다니며 찾아헤맸을 생각을 하니, 참."

아이식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화로 밑에서 보물을 파내어 교당을 세웠다고 한다.

 

보물이 있는 장소는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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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길라잡이 민속원 교양문고 5
최동현 지음 / 민속원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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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입문서인데, 이 책의 미덕은 안내할 내용을 잘 추려서 적정한 선 안에서 설명을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글의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풍부하고, 소제목 구성이나 글의 길이도 단촐하면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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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그림읽기 그림책의 그림읽기
현은자 외 지음 / 마루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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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론에 대한 입문서로 일반 독자를 겨냥한 책. 이론과 예시를 전개하는 전달력이 아쉽다. 석사 논문을 읽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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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멜 천사 - 오가와 미메이 짧은 이야기 모음
오가와 미메이 지음, 박혜정 옮김 / 이매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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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미메이는 전혀 알지 못했던 동화 작가였다. (실은 일본 작가들을 거의 모르긴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일본의 정서를 더 확연하게 감지하는 건지 모르겠다. 역자의 작가 소개에서처럼 미메이의 작품 세계는 낭만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낭만적'이라고만 하기에는 다른 정서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울감이 아닐까. 그의 동화는 어둡다, 매우.

<한중일의 미의식>에서 저자가 추정하는 일본의 기본 정서인 죽음의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미메이의 동화가 때로는 깜짝 놀랄만큼 슬픈 결말로 끝나는 것도 단순히 시대적 상황(1900년대 초반)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자연 재해가 인간의 삶을 수시로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일본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절박감 내지는 허무가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전 읽은 앤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서도 여기 <카라멜 천사>에서도 공통적으로 흐르는 감정이 그랬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이것은 일본 문학, 하고 알아맞힐 수 있는 그것.

 

그러나 우울한 구름 속에서 빛나는 시선도 보았다. 미메이의 일부 작품들은 참 아름답게 흘러간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것으로 짐작되는 <들장미> 외에도,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달리는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가 낯선 곳에 떨어진 벌이 두 계절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와,

 

이사간 친구가 선물한 푸른 단추 세 개를, 기차를 타고 세상을 두루 다닌다는 이웃 남자에게 하나, 금붕어를 팔러 멀리까지 돌아다닌다는 금붕어 장수에게 하나씩 주고, 그들이 몸에 단추를 달고 다니는 동안 친구와 우연히 만나기를 그리는 아이의 이야기...

 

작품을 놓고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너무 평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슬며시 든다. "왜 작가는 그글을 써서 괜히 엄한 비판을 받을까?" 이런 정서로, 이런 생각으로, 이런 세상을 창조해낼 수도 있구나, 다만 그렇게만 생각해야겠다.

 

내가 알고 생각하는 편협한 단색의 세상에 작은 틈을 벌려서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그저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게 마땅한 듯 싶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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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의 심층 - 그림 동화와 함께 읽는 융 심리학
가와이 하야오 지음, 고향옥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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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왕에게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하지만 공주는 너무 오만해서 구혼자들을 비웃고 퇴짜를 놓았다. 왕은 급기야 딸에게 너무 화가 나서  거지에게 딸을 주겠다고 맹세해버렸다...

 

어느 나라에 왕에게 황금 사과가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매일 하나씩 사과가 사라졌다. 왕은 누가 사과를 훔쳐가는지 조사하라고 세 아들에게 차례로 지시했다. 왕은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믿었지만 세째는 얼간이라며 무시했는데...

 

첫번째 이야기는 <지빠귀 부리 왕>의 시작이고 두번째 이야기는 <수수께끼>의 시작이다. 오만한 공주는 마지막에 가서는 사회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된다. 하지만 그녀의 곤궁한 상황은 남이 베풀어주는 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구도자의 그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고, 그렇다면 공주의 사회적 추락은 그녀가 내적인 구도 과정의 정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오만함으로 인해서 극도의 수치를 맛보았을 때 비로소 내가 조금은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민담은 이렇게 이야기로써 전달한다. 마치 내 무의식이 내 내면의 일면들을 인물로, 사건으로 꾸며서 꿈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듯 민담은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적 풍경과 내적 성장에 대한 힌트를 이런 식으로 말해준다.    

 

민담의 심층을 살펴본다는 것은, 표면의 이야기 아래 흐르는 내면의 이야기를 읽는 일이다. 나의 오만함은 공주의 그것만큼이나 불쾌한 것이었다는 깨달음, 나의 어리석음이 때로는 잘난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혜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민담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얻게 된다.

 

정신분석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민담의 심층을 읽기가 극히 힘들다. 저자의 분석을 읽으면 아하, 하는 지점들이 있지만 그 전까지는 민담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수백년을 이어왔다면 거기에는 뭔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이성으로 분석할 수 없지만 민담을 읽고 듣는 내면에서는 뜻밖의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심리적인 정화가 일어났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부지불식간에 감지하고 이 이야기들은 대를 이어서 전달했던 게 아닐까.  아궁이의 불씨를 지키듯, 어머니의 결혼 반지를 고이 간직하듯, 귀한 것을 다음 세대로 소중하게 전달하려는 무의식적 동기가 민담의 역사를 받쳐주고 있었던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앞서 두 이야기의 주인공을 비롯해서 민담의 주인공들은 너나 없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정체된 지금의 나에게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실제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면, 혹은 새로운 책, 새로운 영화, 새로운 음식을 갈구한다면, 그것은 내 심리적 상황이 정체돼 있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이 절실해진 상황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민담의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처럼 만약 내가 정체되어 있다면, 저자의 권유대로, 나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래야 민담의 이야기처럼 나의 이야기도 어딘가로 이어지며 '만들어'진다. 

 

한 고개를 넘으면 다음 고개가 나오고 한 강물을 건너면 다음 강물이 나오는 것처럼 삶은 진짜로 이런 길, 곤경이 자꾸만 나를 막아서는 길을 걸어가는 것 같다. 아주 오래 전 안소니 퀸이 나오는 <라 스트라다>라는 영화가 바로 이 '길을 가는 인생'을 다뤘다. 주인공 사내는 실제로 떠돌이다. 사내는 우연히 백치 여자를 만나 그녀를 데리고 다니게 되는데, 여자가 죽자 그제야 사내는 자기가 그 여성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운다, 뜨겁게... 이 이야기 역시 알고 보니 민담의 전형적인 구조를 따른 것이었다. 바보 같아 보이지만 순수하고 부드러운 여성(나의 영혼)을 천대하고 구박하며 비웃는 사내는 어쩌면 오만하고 거칠고 메마른, 이성적으로만 발달돼 있고 (보잘것없는) 사회적 성공에 의기양양해하는, 나의 일면일지 모른다.   

  

- 가와이 하야오의 민담 분석은 융의 정신분석 이론에 근거하고 있어서 원형이라든지 그림자 같은 융 심리학의 기본 개념을 어느 정도 알고 읽으면 그의 해설을 훨씬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가와이 하야오의 <판타지 책을 읽는다>, <어린이 책을 읽는다>는 나의 애장서다. <민담의 심층>과는 또다른 색깔의 문학 분석을 이 두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그림동화 완역본을 번역한 김열규 선생님. 대학 시절, 선생님의 민담 분석 수업을 정말 재미있게 들었더랬다. 가와이 하야오도 본문에서 두어 번 언급한 막스 뤼티의 <유럽의 민담>은 수업의 참고 도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줄을 치며 맛있게 읽었던 작은 문고판을 누군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지금은 보림에서 예쁜 장정의 작은 책으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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