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아침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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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와 번역시를 비교하며 읽을 수 있게 했다. 감상적이거나 진부하지 않고, 야생적이면서도 다정하고 지성적인 정신을 만나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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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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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예뻐서 읽고 싶게 만든다. 참신한 주제와 재치있는 편집, 저자의 지식과 맛깔진 글맛이 멋진 합을 이룬 잘 만든 책이다. 자연스러운 번역도 빼놓 수 없을 것 같다. 새가 인간과 어떻게 비슷하면서고 다른지를 통해서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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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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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우습고 진지하며 직설적인 한국의 풍속화. 이십 대의 작가가 썼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다고 느낀 건, 노년의 정서와 생각을 아주 실감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사투리도 한몫을 한다. 개인을 너머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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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최진혁 사진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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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에 이어서 나온 이 작품은 다른 누구보다 작가에게 꼭 필요했을 것 같다. 극악한 인간성의 끝을 다녀온 뒤에도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흰 것, 순수하고 순한 무엇을 통한 치유. 지금 우리 모두 흰 것을 통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권희철의 해설은 진지하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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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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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리 작가가 세상을 등지기 전에 남긴 마지막 소설 <번외>을 읽는다. 그녀가 왜 세상을 등졌을까,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소설 속에 혹시 유언을 숨겨놓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그녀의 속내를 파헤치려 덤비는 것이 오히려 고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그녀가 섬세하게 살피고 있는 주인공의 마음을 나 역시 섬세하게 살펴주는 것이 그녀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일지 모르겠다.


소설은 고등학교 교내 총격으로 열여덟 명이 죽은 사고에서 살아난 한 남학생의 심리를 따라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넌 정말 행운아야.(p.76)” 그의 인생이 죽은 아이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덤인 것마냥 얘기하는 사람들(p.111)’도 있다. 살아서 감사하고 기뻤다면 아이는 행운아이고 죽은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살 테지만, 불행하게도, 아이는 고통스러웠다. 살아남은 것이.


이미 소설의 첫머리에서 아이의 마음은 너무 힘이 든다고(p.5) 말하고 있다. 너무 힘이 든다고. 죽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와도 같다. 그 고통의 바닥에는 깊은 죄의식과 애통함이 깔려있다.


죄의식은 자신이 여전히 살고 싶어 한다는 생존 욕구 자체에서 비롯된다. 소설 곳곳에서 반복되는 거 되게 살고 싶어 하네란 말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다.


한편으로는 절절한 애통함이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가 사람을 열여덟 명이나 살해했다는 놀라움.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는 절실함. 그러나 친구를 이해할 것 같은 그 순간, 자신이 공범자가 된 것 같은 당혹감은 주인공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하다:


설사 아주 작은 파편일지라도, 그렇게 K의 마음에서 떨어진 한 조각을 이해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면 귓속이 먹먹해지면서 온몸이 떨려 왔다. 마치 그날 내가 K와 함께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한 것처럼.(p.78)


주인공은 총격범인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했느냐는 상담 선생 닥터 장의 물음에, 운다. 친구라는 말 한마디에 울어 버릴 정도로 그 아이를 좋아했던 거였다. 주인공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생명을 놓고 망설인다. 죽어버릴까. 하지만 부끄럽게도, 되게 살고도 싶은데. 살고 싶은 것이 조금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총격범인 K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K는 짐작컨대 부모로부터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받는 상황이다. 부모는 두 사람 모두 사회에서 성공 했지만 K는 미국에서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암시되고 있다. 주인공은 심각한 꽃가루 알레르기로 여러 번 위기를 겪었고, 발작하는 창피한 모습을 친구들 앞에서 고스란히 들켰으며, 체육 시간이면 항상 열외 취급을 받는다. 두 아이 모두 소설의 제목 그대로 번외로 내몰리고 있다.


번외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아픈 고통인지. 번외에서는 존재 자체가 오롯이 드러난다. 여럿 옆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수치스럽다. 그럴 때 인간은 차라리 죽고 싶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열망은 죽음이 아니라 번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K가 벌인 살인 속에서조차 번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소설 첫 대목에서부터 주인공은 너무 힘이 든다고 고백한다. 도대체 왜 태어났을까를 물으면서:


알고 보면 스피노자도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한 번쯤은 도대체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 죽어 버릴까 하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간디도 너무 힘이 드는 날엔 물레에서 뽑은 실로 제국주의자들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지도 모르고.(p.5)


다만 슬픈 것이다. 좋아한 친구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친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다만 생명이 너무나 연약하다는 사실에. 살아서 무엇을 한다는 것보다 살아있음 자체를 직면해야 하는, 그 실존적 상황을 대면하는 일이 너무나 버거운 것이다. 어린 마음은 그것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나의 존재가, 나의 생명이 거대한 죽음 앞에서 오롯이 혼자로 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태원 사고가 난 지 이제 2년이 되었다. 158명이 사고로 생명을 잃은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 벌어졌다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사고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사고 소식을 접한 모든 이들에게도 그것은 충격이었다그런데 여기에 희생자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그날 축제에 갔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안타까운 일이다같이 갔던 친구 둘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이고죽음을 이길만한 고통이었나보다추측할 뿐이다.


이태원 사고의 159번째 희생자 소년과 박지리 작가에게 마음으로 깊은 위로와 안식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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