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꿈.신비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강응섭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엘리아데가 1948년에서 1955년 사이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추린 것이다. 엘리아데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문외한으로서 엘리아데의 사상에 관해서 자세히 얘기할 처지는 아니나, 그가 해석하는 신화와 상징 그리고 역사와 공간을 관통하는 인류 보편의 심적 흐름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고 심오하다고 느껴진다.

 

엘리아데는 신화 분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문에서 심리학자들이 다루는 무의식의 세계와 종교 세계를 구분할 것을 명시했다. 프로이드가 나온 이후로 모든 문화현상이 일방적으로 무의식의 문제로 환원되는 듯이 보여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종교에 대한 엘리아데의 관점은 매우 반가웠다.

프로이드 이후로 무의식은 마치 모든 문제의 해답처럼 제시되어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 태도와 무의식의 문제 역시 맥락 없이 뒤섞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엘리아데는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역동성과 종교 세계의 구조들 사이의 관계들을 끌어내고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인 활동과 종교나 신화학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만 주목해서 후자를 전자로 환원시키지는 말 것을 지적한다. 엘리아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보봐리 부인을 간통죄로 설명하는 꼴이다.

 

엘리아데는 종교를 규정하기를, 인간이 당면한 모든 실존적 위기 상황의 모범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신화를 만들어내고 지고의 신을 경배하며 의례를 구성하고 지키는 이 모든 행위들은 인간이 자신이 당면한 실존적인 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뼛속까지 종교적이며 또 필연적으로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은 종교적 인간을 설명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나 충분한 요소는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엘리아데의 논문이 총 아홉 편이 실려 있고 각각의 글이 대단히 흥미롭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으나 다만 군데군데 독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번역 때문인데,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신화에 대한 이해는 20세기의 유용한 발견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것이다. 더 이상 서양인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세상의 주인 앞에 서양인은 이제 토착민이 아니라 담론자다. 서양인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좋을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현대 서양 세계 사이에 있는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50년 전만 해도 흑인 예술이나 오세아니아 예술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양인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그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 현대 실존 안에 이런 신화적인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Pp.35-36)

 

앞뒤 문맥으로 보아, 현대 서양 세계는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연결돼 있고 그 안에서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현대 서양 세계 사이에 있는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이란 무슨 뜻일까? 그러한 연속성을 설명해줄만한 다른 해법이 없다는 뜻인지? 번역어 해결책에 해당하는 원문의 단어가 뭔지 궁금하다.

번역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해서 옮긴이의 전문성을 의문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옮긴이가 이해한 것을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가 이해하기 곤란하게 번역된 부분들이 편집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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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치 2018-05-1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을 보고 말씀드립니다.^^

˝서양인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서양인 앞에서 세상의 주인은 이제 토착민이 아니라 담론자다. [서양인은 그들과] 어떻게 대화를 개선할지 깨닫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원시적‘ 또는 ‘후진적‘ 세계와 현대 서양 사이에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solution de continuite‘)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0년 전만해도 흑인 예술이나 오세아니아 예술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양인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그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 현대 실존 안에 이런 신화적인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 앞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 조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5~36페이지)

* 여기서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solution de continuite‘)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세계 사이에 영적인 근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영적인 근원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서양인은 흑인과 오세아니아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