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팔지 마세요! 청년사 고학년 문고 1
위기철 지음, 이희재 그림 / 청년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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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재미있게 읽히는 책입니다. 주제의식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반부에서 활약하는 보미가 중반 이후부터는 사라지고 주 무대는 미국이 돼서 이야기가 완전히 붕 떠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 아이 보미의 역할은 미국 아이 제니에게 영감을 주는 것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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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의 나비 -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권장도서, 개정판
프란시스코 지메네즈 지음, 하정임 옮김, 노현주 그림 / 다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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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있던 교실에도 손등에 때가 꺼멓게 앉은 아이가 있었다. 한번도 그 아이에게서 자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아이가 과거로부터 현재로 나를 찾아와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아프고 따뜻하고 힘들고 강인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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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세상을 만나다 카르페디엠 20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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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지나치게 독백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의 설득력은? 글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생 아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란스런 성장기를 자기 혼자만 통과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좀 위안이 될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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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꿈.신비
미르치아 엘리아데 지음, 강응섭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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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엘리아데가 1948년에서 1955년 사이에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을 추린 것이다. 엘리아데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문외한으로서 엘리아데의 사상에 관해서 자세히 얘기할 처지는 아니나, 그가 해석하는 신화와 상징 그리고 역사와 공간을 관통하는 인류 보편의 심적 흐름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고 심오하다고 느껴진다.

 

엘리아데는 신화 분석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문에서 심리학자들이 다루는 무의식의 세계와 종교 세계를 구분할 것을 명시했다. 프로이드가 나온 이후로 모든 문화현상이 일방적으로 무의식의 문제로 환원되는 듯이 보여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에, 종교에 대한 엘리아데의 관점은 매우 반가웠다.

프로이드 이후로 무의식은 마치 모든 문제의 해답처럼 제시되어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교적 태도와 무의식의 문제 역시 맥락 없이 뒤섞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엘리아데는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역동성과 종교 세계의 구조들 사이의 관계들을 끌어내고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인 활동과 종교나 신화학적인 측면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만 주목해서 후자를 전자로 환원시키지는 말 것을 지적한다. 엘리아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보봐리 부인을 간통죄로 설명하는 꼴이다.

 

엘리아데는 종교를 규정하기를, 인간이 당면한 모든 실존적 위기 상황의 모범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신화를 만들어내고 지고의 신을 경배하며 의례를 구성하고 지키는 이 모든 행위들은 인간이 자신이 당면한 실존적인 위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방책이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뼛속까지 종교적이며 또 필연적으로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은 종교적 인간을 설명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나 충분한 요소는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엘리아데의 논문이 총 아홉 편이 실려 있고 각각의 글이 대단히 흥미롭다. 학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으나 다만 군데군데 독해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번역 때문인데,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신화에 대한 이해는 20세기의 유용한 발견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것이다. 더 이상 서양인은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세상의 주인 앞에 서양인은 이제 토착민이 아니라 담론자다. 서양인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좋을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현대 서양 세계 사이에 있는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50년 전만 해도 흑인 예술이나 오세아니아 예술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양인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그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 현대 실존 안에 이런 신화적인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Pp.35-36)

 

앞뒤 문맥으로 보아, 현대 서양 세계는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연결돼 있고 그 안에서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원시적또는 후진적인 세계와 현대 서양 세계 사이에 있는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이란 무슨 뜻일까? 그러한 연속성을 설명해줄만한 다른 해법이 없다는 뜻인지? 번역어 해결책에 해당하는 원문의 단어가 뭔지 궁금하다.

번역의 문제를 지적했다고 해서 옮긴이의 전문성을 의문시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옮긴이가 이해한 것을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가 이해하기 곤란하게 번역된 부분들이 편집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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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4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치 2018-05-1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을 보고 말씀드립니다.^^

˝서양인은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니다. 서양인 앞에서 세상의 주인은 이제 토착민이 아니라 담론자다. [서양인은 그들과] 어떻게 대화를 개선할지 깨닫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은 ‘원시적‘ 또는 ‘후진적‘ 세계와 현대 서양 사이에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solution de continuite‘)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50년 전만해도 흑인 예술이나 오세아니아 예술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양인 스스로가 앞에서 말한 그 예술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 현대 실존 안에 이런 신화적인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 앞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인간 조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5~36페이지)

* 여기서 <연속성에 관한 해결책(solution de continuite‘)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세계 사이에 영적인 근원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영적인 근원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서양인은 흑인과 오세아니아의 영적인 근원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7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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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을 매우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내용뿐 아니라 문체도 독특하고 신선하며 가벼우면서도 진지하다.

 

배경은 170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로 추정되는 가상의 지방 옴브로사. 저자 칼비노가 활동했던 시기는 1900년대 중반의 이탈리아이므로,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 200년도 더 이전의 과거를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고 옴브로사라는 지방은 가상의 공간이다. 칼비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자유롭게 펼쳐놓기 위해서 과거의 가상의 공간 속에서 기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택했다.

 

칼비노는 코지모의 가족 구성원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작이 되기를 열망하는 남작인 아버지는 구시대적인 인물들을, 전쟁에만 관심이 있는 어머니를 통해서는 개인적인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패권주의를, 기괴한 취미를 가진 인물로 인간적인 감정을 결여한 누나나 자기 세계 속에 빠져 사는 삼촌을 통해서는 인간적인 연대감을 상실한 개인주의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중 인물 코지모는 나무 위에서 일생을 살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고 사람들의 삶 속으로 섞여들기 힘든 조건이었으나,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사회 참여적이고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이것은 다분히 역설적이나 역설이야말로 때로는 진실을 명료하게 전달한다. 칼비노는 글 중에서 말한다. ‘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라고. 칼비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기능은, ‘아주 강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개개인의 훌륭한 소질을 부각시키며 드물기는 하지만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기쁨과 정직하고 착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게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지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칼비노에 따르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삶은 한편으로는 공동의 문제가 해결되어 아무런 문제도 존재하지 않게 되면... 지도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소설이 전달하는 주제는 매우 진지하고 비판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옮긴이가 말하는 것처럼 우화적이다. 도대체 나무 위에서 일생을 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말이다. 우화의 형식을 취한 덕분에 이야기는 무거운 주제를 가벼우나 경망스럽지 않게 전달할 수 있었다.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는 작가가 코지모를 매우 인간적이고 지극히 자유로우면서도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이 결함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 글 자체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 독자의 머릿속에 옴브로서의 풍경을 고스란히 들여놓는 놀라운 묘사력, 그리고 유머다. ‘그때부터(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뒤부터) 이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작님이 미쳤대!” 그러자 사려 깊은 사람들이 덧붙였다. “항상 미쳐 있던 사람이 어떻게 또 미칠 수가 있지?(p.309)”’ 같은 대목이나, “(코지모는 사냥을 좋아하지만 나무 위에서 사냥을 하려면 사냥물을 물어올 개가 있어야 했는데) 사냥꾼 생활을 할 때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보완물, 즉 개가 형에게는 없었다. 대신 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공중에서 형의 총에 맞아 떨어진 개똥지빠귀와 도요새, 메추라기를 찾기 위해 관목 숲의 가시덤불에 몸을 던졌다.(p.128)” 같은 대목을 읽으면서 어찌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무 위의 남작>을 읽는 내내, 세상에는 있지도 않는 공간 옴브로사에 머물며 그곳의 향기로운 공기를 흠씬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상쾌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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