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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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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설마 사람을 죽였을까?


나름 단란한 가정, 안정된 직장을 가진 평범한 40대 와타나베는 불륜을 저지르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같은 직장에서 그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아파트고 직장이고 모든 것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동료를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운명적인 그녀가 나타난다. 아키하 라는 젊은 비정규직 여사원이 들어온 것. 처음에는 그녀에게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였지만, 우연한 계기로 그녀와 가까워지고,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했던 만남은 계속 이어지게 된다. 어쩔 수 없다는 변명과 함께 그가 바로 그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아키하와의 불안한 만남을 계속 해오던 어느 날,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15년 전, 그녀가 고등학생 때 그녀의 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살해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의 비서로 칼에 찔려 사망했다. 그녀를 최초로 발견한 것이 바로 아키하 였던 것이다. 그녀의 충격적인 고백 이후, 와타나베는 그녀가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것과 사건의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정말 그녀가 사람을 죽였을까? 과연 15년 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와타나베와 아키하의 위태로운 만남의 끝은?

미스터리를 기대했다면 중박,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로맨스를 기대했다면 상박

꽤 굵직한 책이다. 이 두터운 종이들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불륜과 15년 전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이 무슨 뻔뻔한 중년남의 애정행각인가 하며 눈살이 찌푸려 질 때 쯤 문득 등장하는 미스터리는 사랑하는 그녀의 충격적인 고백이다. 15년 전 그녀의 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우연치 않게 그녀가 그 사건의 최초 발견자이자 유일하고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이후로는 와타나베의 조마조마한 불륜라이프와 15년 전 사건의 미스터리가 잔상으로 남기며 이어지다가 공소시효가 끝나는 그날, 사건의 관계자와 와타나베, 아키하가 한데 모이면서 이야기는 절정에 달한다.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적절히 섞였다고 얘기하기에는 와타나베의 불륜사가 상당히 세심하게 다뤄진다. 15년 전 사건의 전말이라는 굵직한 갈등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별로 큰 긴장감을 유발하지는 못한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와타나베는 그녀가 설령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감내하겠다는 아주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남편이 방황을 끝내고 돌아오리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그녀의 아내가 없었다면 그의 로맨스는 아주 흐뭇할 만 했지만 말이다. 안정된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키하와의 외줄타기 같은 불륜을 이어가는 와타나베의 수많은 독백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은 그의 입장이 너무도 구차해 보였기 때문이리라. 40대 불륜남의 입장에 도저히 몰입이 될 수 없었던 까닭에 나는 15년 전의 미스터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그 미스터리라는 것이 생각보다 너무 명쾌하게 풀려버려서 마지막에 기운이 빠지기는 했다. 나는 미스터리를 기대한 것이지, 구차한 로맨스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허탈했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발 미스터리 소설은 정말 셀 수도 없이 많다. 많은 명작들이 있고, 여러 대표 작가들이 국내에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런 작가들 중에 한명이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 시리즈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치밀한 미스터리를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다. 나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고, 이 책에서 기대한 바도 그런 치밀한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미스터리의 측면만 따지고 보면 아무래도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15년 전 사건 미스터리는 이 책의 히든카드였다. 그런데 이렇게 지루하게 끌고 온 비밀의 결말이 이런 것이라면 아무래도 기대한 사람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잘 읽히고 재미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표 소설이다. 미스터리가 2% 부족했던 건 부족했던 거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면? 이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든다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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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호형사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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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서 느닷없이 가마쿠라 경부는 회전의자를 홱 돌려 독자들 쪽을 향해 말했다. “자, 독자 여러 번, 여기서 인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 소설의 전반부도 이제 곧 끝납니다. 현명한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사건의 범행 수법 및 밀실 트릭이 어떤 것인지 이미 알아채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작가는 본격 미스터리를 처음 쓰는 풋내기라 …….                                                                       - <부호형사> 115쪽  
   

이쯤 되면 거의 막장이다. 아니, 이미 막장인가? 저자의 뻔뻔스러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느닷없이 이야기 속에 등장해서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사실 낯간지러운 애교수준에 불과하다. 한참 이야기에 몰입중인 독자는 아랑곳 않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끼어들어 “그만두겠습니다. 이렇게 쓰니 재미가 없네요” 라고 말하며, 자기가 재미없다고 이야기 전개를 싹둑 잘라버린다. 주변 인물에 대해 설명하는구나 하면 “이번 편과는 관계가 없으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라고 하며 미련 없이 이야기를 접어버린다. 이건 뭘까? 마치 재채기가 나오려다 쏙 들어가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독자를 들었다 놨다 던졌다 메쳤다 하는 저자는 참 오랜만인 듯하다. 이런 식으로 휘둘렸던 적은 없었던 거 같아서 정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데 우습다. 신기하게 이런 막장 전개에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쯤 문득 깨닫게 된다. ‘아, 이것이 이 작가의 개그코드 구나!’

본인은 미스터리나 추리물에 개그코드가 가미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들은 대게 반인륜범죄를 소재로 한다. 납치, 방화는 우습고 사람을 잔인하게 살인하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시체를 훼손하기 까지 하는 이야기가 흔하다. 이런 심각한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는 우스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이야기들은 엄숙하고 진지하게 표현되는 것이 위화감이 적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용인될 수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에 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현실감을 부여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설정, 분위기, 전개 등 모든 면에서 이런 내 생각에는 어떠한 장단도 맞춰주지 않는다. 그저 그런 책 같았으면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집어 던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읽었다. 그것도 읽는 내내 큭큭 대면서 말이다.

작가는 뻔뻔하고, 개그는 시시껄렁하지만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일단 이 책은 아버지가 일본 제일의 갑부인 부호형사가 타고난 재력을 십분 활용해 범인을 검거한다는 설정이다. 부호형사가 활약하는 4개의 에피소드에서 소재가 되는 사건들은 다른 추리물에서 다루는 사건들과 유사하다. 부호형사는 여러 명의 강도 용의자 중에 범인을 가려내야 했고, 밀살살인의 트릭을 밝혀내야 했고, 유괴범의 의도를 알아내야 했고, 군중 속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추리소설에서 본 듯한 사건들을 어느 추리소설에서도 보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해 낸다는 것이다. 키워드는 돈이다.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 작가의 비범한 발상이 격이 다른 금전감각을 가진 부호형사의 비범한 씀씀이로 전이되어 멋지게 사건을 해결해 낸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참신한 것도 있지만, 작가가 각각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우선, 이 작가는 장면이 바뀌어도 행을 띄우질 않는다. 장면이 전환되지만 계속 이어서 쓰는 것이다. 어디서 장면이 바뀌는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읽으면서 헷갈리기 까지 한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여러 장소에서 각각 일어나는 일을 연속된 문장으로 표현하는데 행을 띄우지 않아 한 장면을 표현하는 것처럼 구성한다. 마치 극의 빠른 전개를 현란한 편집으로 표현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서사를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쪼개서 나눠놓고 독자에게 어느 순서로 읽으라고 조언을 한다. 이 부분을 페이지 순서대로 읽으면 일종의 서술트릭이 된다. 밴 다인의 ‘미스터리 소설의 금기 12법칙’을 이야기 하면서도 자신은 전문 미스터리 작가가 아니므로 플롯 상 조작은 눈감아 달라나 뭐라나.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주변 인물에 대해 설명하는 듯 하다가 주의를 슬쩍 돌려놓고 모른 척 하기도 한다. 시종일관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와 딴죽을 걸던 작가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까지도 딴죽 걸기 본능에 충실 한다. 4개의 에피소드에 각각 서술상의 변화를 시도하며 독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것도 모자라 시니컬한 척 여기저기 개입해서 내면의 개그본능을 마음껏 표출하는 작가의 사족까지 더해지니 범인을 잡고 트릭을 찾아내는 과정의 재미가 더욱 배가 된다. 

SF소설을 쓰던 작가가 2년여 간의 고심 끝에 내 놓은 최초의 미스터리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쉽고 편안하게 쓰여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읽는 내내 놀라웠다. 황당무계한 설정이지만 그 안에서도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고심했던 것 같고, 자유롭게 쓰는 것 같으면서도 장르의 형식을 지키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적절히 잘 섞였고, 재미있게 완성됐다. 이 작가의 저서 가운데 미스터리로 분류되는 작품은 단 3편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이 작가의 다른 미스터리 소설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궁금하게 하는 괜찮은 이야기였다. 더불어 드라마화 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는 후카다 쿄고의 부호형사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드라마 에서는 작가의 글재간을 표현해 낼 수 없을 테니, 감히 짐작하건데 드라마 보다는 소설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말 궁금한 것은, 드라마 에서도 사건이 해결되면 어디선가 숨어있던 서장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타날까? 그걸 확인해 보기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한번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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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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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프로그램에서 애매한 것을 속 시원하게 정해준다고 하는 남자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애매한 순간들에 대한 신랄한 일침과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안 지킨다고 경찰이 잡아가진 않지만 지킬 때 우리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규범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 그 팀 개그의 웃음 포인트이다. 그 속시언한 선언들을 듣고 있자면 자못 웃음이 나오지만, 가끔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진정 궁금해 하는 ‘애매한 무언가’는 여성의 민낯 기준이나 헤어진 연인들의 숙려기간 따위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애매하면서 항상 우리의 사회생활에 시시콜콜한 트러블을 일으키는 그 무언가. 단어로 명명하기 조차 애매해 지는 그 무언가인 것이다. 아,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왜 내게 직접적인 상해나 위해를 가하지 않은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생각도 해 보았으리라.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내가 그 사람들에게 실망해도 되고, 화를 내도되는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오지랖퍼의 바운더리는 어디까지 일까? 이것이야 말로 정말 ‘애매한 문제’가 아닌가? 뭐 그런 시답지 않은 데에 생각의 에너지를 쏟느냐고 핀잔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거 꽤 심각한 문제다. 요즘은 소셜네트워크란 놈의 발달인지 뭔지 해서 이전에 비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가 광범위하게 늘어난 데다가, 넓은 관계는 가능해 졌지만 상대적으로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는 범주의 깊은 인간관계는 줄어들게 된 탓이다. 요즘은 너무 쉽게 사람에게 실망하고 비난하고 증오한다.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나 가혹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마치 요즘 사람들은 엄청나게 길고 많은 보이지 않는 다리를 가진 다지류 생물이 된 것 같다. 그 다리들이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에게 까지 제 멋대로 뻗쳐서 그 사람이 뭔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할 때 마다 찌릿 찌릿 통증을 본체에 까지 전달해 주는 것 같달 까? 정말 기묘한 환지통을 겪고들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그런 징그러운 상상이 점점 더 선명해 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광범위한 관계 속에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흉측한 다리들이 다카하시 가족들에게 뻗쳐 있는 것만 같아서 진심으로 섬뜩했다. 정말이지,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기분 나빠지는 이야기였다.

그림 같은 그 집에서 존속살인이 벌어졌다.

히바리가오카(일본에 실제 존재하는 열차역. 실제로도 이곳 역시 부자동네라고 한다.)는 언덕위에 조성된 마을로, 고풍스럽고 호화로운 집들이 모여 있는 부자동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곳의 가장 고풍스럽고 서양의 어느 성을 닮은 것 같은 아름다운 집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이 집의 가장인 의사 남편, 피의자는 그의 부인이었다. 큰 소리 한번 난 적 없는 집에서 일어난 이 급작스럽고 잔혹한 사건으로 인해 조용했던 마을이 떠들썩해 진다. 의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듬직한 아들, 명문 여고에 다니고 있는 머리도 좋고 자기주장도 뚜렷한 예쁜 딸, 그리고 아이돌을 닮은 곱상한 외모에 운동이면 운동, 공부면 공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막내아들, 번듯한 직장에 자상한 아버지와 아름답고 고상한 어머니가 사는 이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더군다나 피해자는 아버지고, 피의자는 어머니라니?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든 히바리가오카 고급주택가 존속살인사건은 사건 당사자인 다카하시 가족과 사건이 일어난 집의 맞은편에 사는 엔도가족, 이 동네의 원년 주민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참견 쟁이 아줌마 고지마 사토코의 시선이 엇갈리며 사건 이전과 사건 이후의 일들이 서술된다. 하루아침에 살인사건 피의자의 자식들이자 피해자 가족이 된 다카하시 남매들의 이야기와 호화 주택가에 기가 눌려 온갖 피해의식에 찌들어 사는 엔도 가족이 완벽한 이상 같았던 앞집의 참사를 목격한 이후의 이야기, 동네 반장 같은 사토코의 입장이 교차되며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 내면의 독에 대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떤 사람이 있어도 되는 자리란 존재하는 것일까?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란 것이 있는 것일까? 애초에 그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제 멋대로 ‘어떤 사람’이길 정해 버리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차가운 독을 퍼뜨리는 것은 무엇일까?

속물들…….

미나토 가나에가 전작인 [고백]에서 그랬던 것과 같이, 사람을 치졸하고 이기적이며 나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다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골이 당기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책에서 그려내는 인물들의 심리가 공감이 가기도 한다. 상류층 사회를 대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높은 언덕배기에 모여든 고급 주택가는 묘한 위화감을 준다. 집으로 가기 위해, 혹은 벗어나기 위해 히바리가오카의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인물들이 느끼는 현기증이 종이를 넘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상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옭아 메고 학대하는 사람들이 미련하고 무식해 보이기보다는 불쌍해 보였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 이상은 정작 누가 정하는 걸까? 남의 속도 모르고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고, 무슨 엄청난 손해라도 끼쳤다는 듯이 구는 사람들과 나와 연관된 누군가의 잘못이로 인해 비난 받아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진정 잘못된 건 어느 쪽일까?  

이 모든 갈등을 만들어 냈던 것은 어쩌면 저 높은 데서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하고 서 있는 마을 자체가 아닐까. 높은 데 있어서는 그 곳을 밟고 서 있는 사람들 눈마저 잔뜩 높여 놓은 그 마을 말이다. 언젠가 마을 아래 들어선다는 관람차를 기대하는 다카하시 신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라도 허락되는 공간인데다가, 위도 아래도 없이 공평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며 원만하게 돌아가는 관람차라면 다카하시 신지는 아마 더 이상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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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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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척추 뼈의 연장인 목뼈는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술 도구가 흔치도 않으며, 도구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뼈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한다. 거기다가 목을 지나는 경동맥은 꽤 두꺼운 혈관으로 많은 피가 흐르는 길이라, 그것을 인위적으로 잘랐을 때 벌어질 일은……. 부러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살인을 목적으로 한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목을 베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무식한 행동이며, 이미 죽은 시신의 머리를 베어 가는 일 또한 다분히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행동이다. 구태여 머리를 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잘라야 한다면?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일까? 

역사상 형벌로써 행해졌던 머리 자르기, 즉 참수(斬首)는 전제왕권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며 대게 일부의 정치사범들 에게만 행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신체를(그것도 가장 중요하고 눈에 띄는) 훼손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겨주어 일종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수(斬首)’에는 항상 ‘효시(梟示)’라는 개념이 공존했었다. 이를 달리 생각해 보면 머리를 자르는 것은 단순히 숨통을 끊어놓는 것 보다는 잘린 머리를 효시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효시(梟示)’하지 않는 데도 머리를 자른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것이 바로 미스터리다.

많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에서 단두살인을 소재로 사용했고, 왜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또한 단두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이 책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 책에서 그리는 단두살인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다양한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감히 단언컨대, 이 책은 ‘머리 잘린 시체 트릭’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참수된 여자를 신으로 모시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의 구가(舊家) 히가미 일족

일본 오쿠다마 깊은 곳에 위치한 히메카미촌 이라는 마을은 독특하게도 참수된 여인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런 기괴한 마을 신앙이 생겨난 데에는 끔찍한 지역의 역사가 얽혀 있다. 16세기 전쟁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이 마을에 쳐들어 왔다. 결국 마을의 성주는 자결을 하고, 그의 아들은 다른 지역으로 도망했는데 그를 따르던 아오히메가 그만 적군에 게 발각되어 참수당해 죽었다. 이후 마을 여기저기에서 참수되어 죽은 아오히메가 나타나 온갖 괴이를 부려 데니,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신당을 차리고 신으로 받들게 된 것이다. 그 신당은 대대로 마을의 지주인 히가미 가에서 모시고 있다.

히가미 가로 말할 것 같으면, 히메카미촌을 오래도록 다스려온 구가로 장자계승의 전통에 따라 당주자리를 이어가며 존속해 오고 있다. 히가미가 내에서는 상하관계가 분명하여 일족 내에서도 위치에 따라 다른 성을 사용하고 있다. 당주를 배출한 집안에서는 이치가미(一守), 그 이외의 집안은 후타가미(二守), 미카미(三守)의 성을 사용하며 같은 핏줄끼리 상하를 두고 차별을 일삼아 왔다. 그렇다 보니 한 가족이지만 당주를 배출하여 이치가미의 성을 뺏어오기 위해 세 집안이 벌이는 암투는 가히 피를 튀기는 살벌한 전쟁터와도 같았다. 이치가미 가가 누리는 일족의 장으로서의 혜택은 그렇게 대단하고 막강한 것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일족이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대대로 이어지는 일족의 저주, 지벌이다. 히가미 일가가 지벌을 받게 된 데에는 지역의 역사와 묘하게 유사한 집안의 과거 때문이다. 18세기 히가미 일족의 당주는 타 지역에서 신부를 맞이했는데, 이 신부가 신혼생활이 시작된 지 몇 달 되지 않아 집안에서 부리는 가솔과 눈이 맞아 도망을 하게 된다. 화가 난 당주는 그들을 회유하여 히메카미촌 히메쿠비 산으로 유인한 뒤 부정을 저지른 부인을 목을 베어 죽인다. 이때, 부인이 죽어가며 일족을 멸하는 저주를 내렸다고 전한다. 이후 일족의 장이 되어야 할 남자아이들은 하나같이 병약하고 이유 없이 죽어갔다. 일족은 저주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오히메를 모신 것과 마찬가지로 신사를 지어 당주의 부인을 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해서 히가미 일족의 아이는 대대로 3세, 13세, 23세, 33세에 참수되어 죽은 두 신의 사당에 제를 올려 화가 피해가길 빌게 되었다고 한다. 유독 병약한 남자아이들에 대한 과보호나 여자아이에 대한 지독한 차별은 장자계승 이라는 집안전통과 함께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다.

- 끔찍한 히가미家 참극의 시작, 그리고 목이 잘린 4구의 시체

히가미가, 그 가운데서도 당주를 배출해 내는 이치가미 가에서는 특히나 일족의 지벌을 두려워했다. 일족의 장이 될 남자아이를 잃게 되면 이치가미의 성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제껏 누려온 가문의 호사와 권력을 고스란히 빼앗겨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치가미 가에는 조주로와 히메코 남매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조주로는 장차 히가미 일족의 장이 될 귀중한 아들인 것이다. 그 둘을, 정확히는 조주로를 온전히 잘 키워내는 것이 이 집안의 중대한 목표였다.

그러던 중 끔찍한 히가미가 참극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아이들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한 제의 가운데 하나인 13야 참배에서 말이다. 13야 참배를 위해 깊은 밤 히메쿠비 산의 신사로 향하던 조주로, 히메코 남매 중 히메코가 재계를 하기 위한 우물에 빠져 사망한 것이다. 이치가미가는 장사를 신속히 지냄으로서 모든 일을 덮으려고 하지만, 사위스럽게도 우물에 빠진 히메코의 시체에 머리가 없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며 일족의 지벌이 실현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떠돌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히메코의 죽음은 사고사라 하기에는 수상한 부분이 있고, 그렇다고 살해당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사건 당시 히메쿠비 산은 일종의 견고한 밀실 상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혹은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아닌지 의혹은 많았지만 사건을 그렇게 묻히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히메코의 죽음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족의 장이 되어 이치가미 가의 영광을 이끌어 갈 재목인 조주로는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 이어져 히메코의 의문사도, 히가미 가의 당주가 될 이치가미가 아들에 대한 지벌의 공포도 점차 흐릿해 지는가 싶었다. 조주로는 이후 무탈하게 성장하여 23야 참배까지 마치고 비로소 히가미가 당주 자리에 오를 모든 준비를 마친다. 혼인만 올리면 그는 비로소 히가미 가의 당주가 될 터였다. 하지만 사건은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시작된다. 조주로가 일족에서 차출된 신부후보를 만나기 위해 히메카미 당의 혼사로 향한 이후, 혼사에서는 목이 잘려 몸통만 남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조주로의 행방마저 묘연해 지는데…….

사건은 13야 참배 당시 히메코가 의문사를 당했을 때처럼 일종의 밀실 상태가 되었던 히메카미당 혼사에서 어떻게, 누가 신부 후보를 살해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사라진 신부 머리의 행방까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다. 거기다 유일한 목격자이자 어쩌면 용의자 일지도 모를 조주로는 행방불명 상태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혹시 10년 전의 히메코 의문사 사건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할 무렵, 히메쿠비산 중턱 마두관음 사당에서 머리가 없는 알몸의 남자 시체가 발견된다. 누가 신부를 살해한 것일까? 마두관음 사당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체는 누구란 말인가? 피해자들의 머리는, 머리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모든 사건은 어쩌면 10년 전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아오히메의 머리는 왜 베어져야만 했을까?

- 머리 잘린 시체를 분류하는 11가지 방법
 

시체의 머리를 베어 가는 것은 행위 자체의 잔혹성으로 인해 지독한 원한에 의한 것이나 미치광이의 광기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사실 머리를 베어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치밀하고 계산적인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추리소설에서 시체의 머리를 베어 가는 이유는 대게 피해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다. 피해자의 신원이 감춰지면 일명 ‘피해자 바꿔치기’가 가능해 진다. 범인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위장되고, 죽은 사람의 신분을 취해서 죄상을 덮어 버리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스터리가 발생하고, 이런 미스터리의 경우 머리 없는 시체의 신원을 밝혀내거나 위장중인 범인의 허점을 찾아내는 패턴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말이 안 된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수단은 머리가 꼭 아니어도 된다. 지문 대조라는 과학적이고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머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머리 잘린 시체가 발견된 곳이 일종의 밀실을 이루고 있어서 피해자의 신분이 너무도 명확한 상황에서는 머리를 베가는 일은 그야말로 헛수고가 된다. 미스터리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줄줄이 풀어내면 이 글이 밑도 끝도 없이 너무도 길어질 것이기에 이만하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머리 잘린 시체에 대한 11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있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 그 수고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11가지 이유가 괴기스러운 히가미가 참극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하게 된다면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는 몹시도 전율하게 되리라. 그 머리 잘린 시체들에 대한 분류가 끝나고 나면 그제야 흐릿하기만 했던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루하게 길어진 글이지만, 이 글에서 소개한 이 책의 내용은 8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미리니름을 하자면, 이 책은 범인을 밝혀내는 것, 트릭을 간파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진짜 반전은 범인이 밝혀지고 트릭이 모두 드러난 이후에 나타나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것이 좋다. 1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 까지 온전히 머리 잘린 시체 미스터리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민속학적 지식과 특유의 공포스러운 음침한 분위기, 짜임새 있는 추리요소가 결합된 상급 미스터리 소설이다. 과연 작가의 대표작으로 불릴만한 책이다. 더불어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다음 책이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 졌다. 다음 책을 읽고 또다시 포스팅 할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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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된 죽음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8
장-자크 피슈테르 지음, 최경란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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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킬빌>에서의 ‘더 브라이드’가 차를 달리며 내 뱉는 독백 같았다. 빌에게 모든 것을 잃은 브라이드가 빌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빌. 그래서 나는 당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이 책의 화자 에드워드 램도 그렇다. 그는 니콜라 파브리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친구이며, 동업자이며, 동경했고 사랑했던 나머지 증오하게 된 자신의 우상을, 에드워드는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것도 니콜라가 작가로서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가 꺼내든 무기는 날이 선 일본도처럼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작가인 니콜라를 나락에 떨어뜨릴 흉기로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한권의 책이었다.

- 통속적이지만 독특하고, 뻔하지만 참신한 복수극
 

예감이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프랑스 문학계 최고의 상인 ‘콩쿠르 상’ 수상자에 니콜라 파브리가 유력하다는 신문기사를 보며 에드워드 램은 불안인지 흥분인지 모를 떨림을 느낀다. 모든 일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그의 섬뜩한 계획이 거의 성공단계에 이르렀음을 예감한 것이다.

책은 화자인 에드워드 램의 불온한 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미 도입부터 사건도 가해자도 피해자도 심지어 결말 까지도 은연중에 모두 드러내 버린다. ‘비브리오 미스터리’로 소개된 책이지만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책의 비밀도, 사건의 진상도, 범행의 미스터리도, 범인 잡기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수없이 망설이고 불안해하면서도 지독하리만치 치밀한 살인을 계획할 수밖에 없었던 에드워드 램의 내면상태를 그리고 있다. 어째서 그는 살인을 계획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살인에 결정적인 무기로 책을 이용하게 되었는지가 이 이야기의 실체다. 사실 살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살인방법은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통속적인 범행 동기일 수 있고, 추측 가능한 트릭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독특한 재미를 주는 꽤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 이유는 먼저 이 책의 화자인 에드워드 램의 캐릭터에 있다. 그는 오십대의 명예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로 잠잖고 유능한 영국 신사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면과 다르게 유년시절부터 심각한 우울과 열등감에 빠져 있었던 에드워드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감추고 침착하면서도 치밀하게 범행을 실행한다. 그의 이런 캐릭터는 화려하고 독보적이며 재능이 넘치지만 오만하고 무심한 니콜라의 캐릭터와 대비되면서 뜻밖에 긴장감을 유발한다. 아주 점잖고 고급스러운 말투로 니콜라를 조롱하며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 하는 에드워드이지만 결국은 그의 입장에 동조하게 되는 것은 이런 극명한 캐릭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에드워드의 계획이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아주 오랫동안 니콜라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그가 ‘결정적인 이유’로 인해 그를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살해하기를 마음먹은 이후로 그의 계획은 정밀한 기계처럼 복잡하지만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잘 쓰인 소설처럼, 에드워드의 덫은 빠져나갈 길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 마치 그의 살인이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된 필연적인 일이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그 과정이 아주 낱낱이 묘사되고 맞아떨어지면서 일종의 희열감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니콜라는 가장 정점에 오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에드워드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기생해 오던 악마를 처단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의 뒷이야기가 이 책의 재미를 완성해 준다. 비로소 완벽한 복수가 이뤄지는 것이다.

- 이것은 ‘위대한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 일지도..

니콜라는 결국 에드워드에 의해 간접살인을 당하지만 사실 에드워드와 니콜라는 운명공동체였다. 오로지 에드워드의 입장에서만 쓰였기 때문에 니콜라에 대한 서술은 항상 왜곡되어 있고 과장되어 있으나 책장이 얇아질수록 확실히 알 수 있다. 니콜라는 에드워드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오히려 에드워드의 도움을 통해 작가로서의 성장해 왔고 그의 입지를 넓혀 왔다. 에드워드가 니콜라에게 인정받고 인식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니콜라도 에드워드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필생의 역작을 완성하자마자 그에게 달려왔던 것도, 잠적 중에 유언처럼 그에게 편지를 남겼던 것도 모두 니콜라가 에드워드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둘의 관계는 작가와 편집자라는 그들의 입장으로 인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책 한권이 발행되기 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치게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작가와 편집자간의 교섭은 아마 가장 중요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더욱 좋은 책을 만들어 내기까지 작가와 편집자는 끊임없이 투쟁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명작이 탄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은 이미 작가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작가와 편집자가 만들어낸 명작인 것이다. 에드워드가 니콜라의 작품에 마치 자기 작품처럼 여기고 나중에는 에드워드의 작가로서의 재능이 본래 자신의 것인 것처럼 여겼던 것은 어쩌면 명작을 향한 편집자와 작가의 노력과 열정의 일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는 에드워드로서는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치명적인 이유’로 그러한 노력과 열정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았지만 말이다.

훌륭한 운명공동체를 잃은 에드워드는 결국 또 다른 동료를 찾아낸다. 그런 결말이 단순한 해피엔딩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내가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너무나도 에드워드의 입장에 동조됐기 때문일까? 위대해졌고, 앞으로도 더욱 위대해 졌을 작가의 죽음 보다는 그늘에 가려졌지만 그야말로 위대한 편집자였던 어떤 남자의 이야기였다. 나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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