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다. 척추 뼈의 연장인 목뼈는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술 도구가 흔치도 않으며, 도구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뼈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힘을 필요로 한다. 거기다가 목을 지나는 경동맥은 꽤 두꺼운 혈관으로 많은 피가 흐르는 길이라, 그것을 인위적으로 잘랐을 때 벌어질 일은……. 부러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살인을 목적으로 한다면 사람을 죽이는데 목을 베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무식한 행동이며, 이미 죽은 시신의 머리를 베어 가는 일 또한 다분히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행동이다. 구태여 머리를 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잘라야 한다면? 과연 어떤 이유에서 일까? 

역사상 형벌로써 행해졌던 머리 자르기, 즉 참수(斬首)는 전제왕권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며 대게 일부의 정치사범들 에게만 행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신체를(그것도 가장 중요하고 눈에 띄는) 훼손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감과 공포심을 안겨주어 일종의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수(斬首)’에는 항상 ‘효시(梟示)’라는 개념이 공존했었다. 이를 달리 생각해 보면 머리를 자르는 것은 단순히 숨통을 끊어놓는 것 보다는 잘린 머리를 효시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효시(梟示)’하지 않는 데도 머리를 자른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이것이 바로 미스터리다.

많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에서 단두살인을 소재로 사용했고, 왜 머리를 자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또한 단두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이 책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 책에서 그리는 단두살인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다양한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감히 단언컨대, 이 책은 ‘머리 잘린 시체 트릭’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참수된 여자를 신으로 모시는 마을, 그리고 그 마을의 구가(舊家) 히가미 일족

일본 오쿠다마 깊은 곳에 위치한 히메카미촌 이라는 마을은 독특하게도 참수된 여인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런 기괴한 마을 신앙이 생겨난 데에는 끔찍한 지역의 역사가 얽혀 있다. 16세기 전쟁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대가 이 마을에 쳐들어 왔다. 결국 마을의 성주는 자결을 하고, 그의 아들은 다른 지역으로 도망했는데 그를 따르던 아오히메가 그만 적군에 게 발각되어 참수당해 죽었다. 이후 마을 여기저기에서 참수되어 죽은 아오히메가 나타나 온갖 괴이를 부려 데니,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신당을 차리고 신으로 받들게 된 것이다. 그 신당은 대대로 마을의 지주인 히가미 가에서 모시고 있다.

히가미 가로 말할 것 같으면, 히메카미촌을 오래도록 다스려온 구가로 장자계승의 전통에 따라 당주자리를 이어가며 존속해 오고 있다. 히가미가 내에서는 상하관계가 분명하여 일족 내에서도 위치에 따라 다른 성을 사용하고 있다. 당주를 배출한 집안에서는 이치가미(一守), 그 이외의 집안은 후타가미(二守), 미카미(三守)의 성을 사용하며 같은 핏줄끼리 상하를 두고 차별을 일삼아 왔다. 그렇다 보니 한 가족이지만 당주를 배출하여 이치가미의 성을 뺏어오기 위해 세 집안이 벌이는 암투는 가히 피를 튀기는 살벌한 전쟁터와도 같았다. 이치가미 가가 누리는 일족의 장으로서의 혜택은 그렇게 대단하고 막강한 것이었다.
 

이렇게 대단한 일족이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대대로 이어지는 일족의 저주, 지벌이다. 히가미 일가가 지벌을 받게 된 데에는 지역의 역사와 묘하게 유사한 집안의 과거 때문이다. 18세기 히가미 일족의 당주는 타 지역에서 신부를 맞이했는데, 이 신부가 신혼생활이 시작된 지 몇 달 되지 않아 집안에서 부리는 가솔과 눈이 맞아 도망을 하게 된다. 화가 난 당주는 그들을 회유하여 히메카미촌 히메쿠비 산으로 유인한 뒤 부정을 저지른 부인을 목을 베어 죽인다. 이때, 부인이 죽어가며 일족을 멸하는 저주를 내렸다고 전한다. 이후 일족의 장이 되어야 할 남자아이들은 하나같이 병약하고 이유 없이 죽어갔다. 일족은 저주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아오히메를 모신 것과 마찬가지로 신사를 지어 당주의 부인을 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해서 히가미 일족의 아이는 대대로 3세, 13세, 23세, 33세에 참수되어 죽은 두 신의 사당에 제를 올려 화가 피해가길 빌게 되었다고 한다. 유독 병약한 남자아이들에 대한 과보호나 여자아이에 대한 지독한 차별은 장자계승 이라는 집안전통과 함께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것이다.

- 끔찍한 히가미家 참극의 시작, 그리고 목이 잘린 4구의 시체

히가미가, 그 가운데서도 당주를 배출해 내는 이치가미 가에서는 특히나 일족의 지벌을 두려워했다. 일족의 장이 될 남자아이를 잃게 되면 이치가미의 성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제껏 누려온 가문의 호사와 권력을 고스란히 빼앗겨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치가미 가에는 조주로와 히메코 남매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조주로는 장차 히가미 일족의 장이 될 귀중한 아들인 것이다. 그 둘을, 정확히는 조주로를 온전히 잘 키워내는 것이 이 집안의 중대한 목표였다.

그러던 중 끔찍한 히가미가 참극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아이들의 무사안녕을 빌기 위한 제의 가운데 하나인 13야 참배에서 말이다. 13야 참배를 위해 깊은 밤 히메쿠비 산의 신사로 향하던 조주로, 히메코 남매 중 히메코가 재계를 하기 위한 우물에 빠져 사망한 것이다. 이치가미가는 장사를 신속히 지냄으로서 모든 일을 덮으려고 하지만, 사위스럽게도 우물에 빠진 히메코의 시체에 머리가 없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하며 일족의 지벌이 실현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떠돌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히메코의 죽음은 사고사라 하기에는 수상한 부분이 있고, 그렇다고 살해당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사건 당시 히메쿠비 산은 일종의 견고한 밀실 상태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혹은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아닌지 의혹은 많았지만 사건을 그렇게 묻히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히메코의 죽음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족의 장이 되어 이치가미 가의 영광을 이끌어 갈 재목인 조주로는 무사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 이어져 히메코의 의문사도, 히가미 가의 당주가 될 이치가미가 아들에 대한 지벌의 공포도 점차 흐릿해 지는가 싶었다. 조주로는 이후 무탈하게 성장하여 23야 참배까지 마치고 비로소 히가미가 당주 자리에 오를 모든 준비를 마친다. 혼인만 올리면 그는 비로소 히가미 가의 당주가 될 터였다. 하지만 사건은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시작된다. 조주로가 일족에서 차출된 신부후보를 만나기 위해 히메카미 당의 혼사로 향한 이후, 혼사에서는 목이 잘려 몸통만 남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조주로의 행방마저 묘연해 지는데…….

사건은 13야 참배 당시 히메코가 의문사를 당했을 때처럼 일종의 밀실 상태가 되었던 히메카미당 혼사에서 어떻게, 누가 신부 후보를 살해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사라진 신부 머리의 행방까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다. 거기다 유일한 목격자이자 어쩌면 용의자 일지도 모를 조주로는 행방불명 상태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혹시 10년 전의 히메코 의문사 사건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시작할 무렵, 히메쿠비산 중턱 마두관음 사당에서 머리가 없는 알몸의 남자 시체가 발견된다. 누가 신부를 살해한 것일까? 마두관음 사당에서 발견된 남자의 시체는 누구란 말인가? 피해자들의 머리는, 머리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 모든 사건은 어쩌면 10년 전의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아오히메의 머리는 왜 베어져야만 했을까?

- 머리 잘린 시체를 분류하는 11가지 방법
 

시체의 머리를 베어 가는 것은 행위 자체의 잔혹성으로 인해 지독한 원한에 의한 것이나 미치광이의 광기로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사실 머리를 베어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치밀하고 계산적인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추리소설에서 시체의 머리를 베어 가는 이유는 대게 피해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다. 피해자의 신원이 감춰지면 일명 ‘피해자 바꿔치기’가 가능해 진다. 범인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위장되고, 죽은 사람의 신분을 취해서 죄상을 덮어 버리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스터리가 발생하고, 이런 미스터리의 경우 머리 없는 시체의 신원을 밝혀내거나 위장중인 범인의 허점을 찾아내는 패턴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말이 안 된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수단은 머리가 꼭 아니어도 된다. 지문 대조라는 과학적이고 간편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머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머리 잘린 시체가 발견된 곳이 일종의 밀실을 이루고 있어서 피해자의 신분이 너무도 명확한 상황에서는 머리를 베가는 일은 그야말로 헛수고가 된다. 미스터리가 성립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줄줄이 풀어내면 이 글이 밑도 끝도 없이 너무도 길어질 것이기에 이만하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머리 잘린 시체에 대한 11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하고 있다. 머리를 자른다는 것, 그 수고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11가지 이유가 괴기스러운 히가미가 참극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하게 된다면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는 몹시도 전율하게 되리라. 그 머리 잘린 시체들에 대한 분류가 끝나고 나면 그제야 흐릿하기만 했던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루하게 길어진 글이지만, 이 글에서 소개한 이 책의 내용은 8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조금 더 미리니름을 하자면, 이 책은 범인을 밝혀내는 것, 트릭을 간파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진짜 반전은 범인이 밝혀지고 트릭이 모두 드러난 이후에 나타나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는것이 좋다. 1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 까지 온전히 머리 잘린 시체 미스터리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민속학적 지식과 특유의 공포스러운 음침한 분위기, 짜임새 있는 추리요소가 결합된 상급 미스터리 소설이다. 과연 작가의 대표작으로 불릴만한 책이다. 더불어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다음 책이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 졌다. 다음 책을 읽고 또다시 포스팅 할 수 있게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