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터줏대감 ㅣ 우리 문화 속 수수께끼 2
유다정 글.그림, 정문주 그림 / 사파리 / 2008년 8월
평점 :
어릴적 우리 부모님은 집을 여러번 지으셨다. 아직도 기억나는것이 돼지머리 고이고 시루떡 얹은 고사상이다. 십장부터 시작해서 인부 아저씨들 막걸리 따라 절하고 부모님도 절하고. 상량식이라는 말도 기억난다. 그때도, 지금도 상량식이 뭔지 몰랐다.
조금 커서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산다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다. 그 집은 당시엔 동리에서 가장 잘 지은 큰 한옥이었다. 하루는 넓은 친구 집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그 집 뒤곁으로 간적이 있다. 거기서 짚으로 덮어 씌운 뭔가를 보고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려는데 일하는 아줌마가 발견하시고 뭐라고 하셔서 멈춘적이 있다. 왠지 으스스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어릴때 봤던 이 광경들이 무엇인지 25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몰랐는데 며칠전 이 책 <터줏대감>을 통해서 알게 됐다. 상량식은 대들보를 얹고 마룻대를 얹는 것이 상량이고 그때 꼭 고사를 지냈는데 그것이 상량식이란다. 아마도 요즘엔 지붕을 얹고 나면 하는게 상량식인듯 하다. 그리고 친구집 뒤곁에 있던 그 짚더미는 터줏대감이 모셔졌던 곳이라는것도 알았다. 터를 지켜주는 귀한 터줏대감이 있는 곳이니 일하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경계했던게 왜인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터주를 그렇게 제대로 모시는 집은 흔치 않았는데 그 친구 집은 정말 정석대로 터주를 모셨다는것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이 집안의 안녕을 위해서 의지했던 신들에 대해서 알려준다. . 집안을 지켜주는 각종 신들이 그렇게 많다는것도 처음 알았다. 그 신들의 유래를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처럼 풀어나간다. 그래서 어찌보면 무서울법한 내용인데 책에선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 식으로 집을 한채 짓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각각 속해 있는 신들을 소개하고 그 신들의 유래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함께 전해준다. 집터를 관할하는 터줏대감, 집안을 지켜주고 부자가 되게 해주는 성주, 아이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머니, 부엌신인 조왕, 부자가 되게 해주는 업, 변소에 산다는 변소각시, 장독대와 장맛을 지켜준다는 칠성신, 대문에서 악귀로부터 집을 지며주는 수문장신, 집들이까지 집이 만들어지는 순서에 따라서 등장하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시골집 화장실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조금 무섭다. 그런데 정말 변소각시가 살고 있다면 담부터는 그런 푸세식 화장실엔 못갈거 같다.
사라져가는 한옥과 그래서 잊혀져가는 우리의 집 신들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이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앙, 특히 서민들의 민간 신앙은 점점 그 명맥이 사라져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우리의 일상의 모습들이였을텐데, 발전과 개발속에 지켜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옛것이 되었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어서 반갑고 뜻깊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