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 베틀북 그림책 63
우 니엔쩐 지음, 관 위에수 그림, 심봉희 옮김 / 베틀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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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애 처음 혼자 집을 나서 어딘가를 갔던적이 언제였나를 생각해 봅니다. 애써 기억하려해도 딱히 떠오르는 광경이 없으니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건 포기해야 할 듯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인 나보다 훨씬 커서일거라는것만 짐작되네요. 시골에서 태어난 저도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어딘가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기에 부모님도 선뜻 허락하지 않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저 또한 생각하지도 않았을테고요. 그러고보면 이 책속의 주인공의 아버지는 상당히 강하게 아이를 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엄한 눈으로 주인공 나(이하 나)에게 이란에 있는 이모할머니댁에 가서 할머니가 놓고 오신 우산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졸리면 바를 호랑이 기름 하나만을 챙겨 홀로 이모할머니댁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기차역까지 한시간을 걸어서 기차를 타는 허우등부터 이모할머니댁의 이란까지 가는 길, 여덟살 어린 아이 혼자 가기엔 그리 쉬운 길이 아니였습니다. 기차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혼자 가는 나를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니까요. 

그런중에 기차의 많은 사람들중 어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주인공 나가 기차에 오를적부터 계속 쳐다보며 웃고 계셨는데 왠지 무서워서 눈길을 돌리지요. 할머니는 나를 부르더니 팔다남은 구아바 세개를 주십니다. 할머니에게선 나의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은 차나무 기름 향기가 났어요. 그 냄새를 맡고 나니 나의 불안감은 사라집니다.


얼마가 지나고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향해 쓰러지고 나는 울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요. 나를 할머니의 손자로 착각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위로를 해주고 와중에 호랑이 기름을 찾기에 나는 갖고 있던 호랑이 기름을 내어줍니다. 덕분에 할머니는 정신을 차립니다. 사람들은 착하고 똑똑한 손자를 두었다고 할머니에게 나를 칭찬합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는 말을 못합니다. 


정신을 차리신 할머니는 나에게 동전 몇 개를 주시지만 나는 사양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한사코 꼭 쥐어주세요. 그렇게 할머니와 작별을 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차에서 내려 이모할머니댁에 무사히 도착을 하지요. 머릿속에는 내어준 호랑이 기름을 생각하면서요. 할머니의 우산과 풋마늘 다섯 근을 갖고 무사히 마을로 돌아오니 골목 어귀에서 나의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머릿속에는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림이 꽤 따뜻합니다. 연필 데생에 노란빛이 돌아 아련한 느낌의 옛날 사진을 보는것 같기도 하지요. 그림만큼 마음도 따뜻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덧붙여 세세한 묘사가 참으로 인상 깊은 책이기도 합니다.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인상깊습니다. 헐렁한 칠부바지 아래 드러난 두발, 발바닥이 까맣고 커서 꼭 부채같다는 표현, 타이어를 잘라 만든것 같은 슬리퍼를 발과 뼈만 남은거 같은 다리는 할머니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주인공 나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들에 대한 설명, 이를테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보이고 하늘을 날으는 새의 무리들은 단 두줄만으로도 머릿속에 한폭의 바다 그림은 확실하게 그릴수 있게 합니다. 글을 읽으며 날으는 갈매기 그림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푸른 바다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정도였어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 나가 기차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한 허우둥에서부터 도착역인 이란까지의 지도가 나옵니다. 약 72킬로라는 거리라네요. 제가 살고 있는 종로에서 강화도의 끝까지 가는 거리정도 되요. 시간상으로 두시간 남짓. 아홉살 큰 아이에게 이 길을 혼자 가보라고 한다면 엄마인 저도, 아이도 고개를 흔들겁니다. 주인공 ’나’가 갔던 여정은 더 험한 길이였을텐데.....새삼 주인공 나의 아버지가 살짝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수 있었지요. 어려움속에 아들을 던지는 아버지의 속마음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살짝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큰 뜻이 숨어 있었다는걸 언젠가는 아들이 깨달았겠지요?
혼자 짧은 여행을 시작한 여덟살 아이의 용기, 낯선 할머니와의 우정, 아버지의 사랑을 골고루 느낄 수 있는 마음 따뜻해지는 성장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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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바람 2009-01-30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도 좋지만 그림이 참 좋네요. 연필인지 볼펜인지 세밀화로 그려진 것이 꼭 가지고 싶은 동화책입니다.

바나나달 2009-02-02 01:31   좋아요 0 | URL
스케치 작품입니다. 그림도 물론 좋구요. 내용은 읽을수록 깊은 감동이 우러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