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황진순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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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진순님의 글을 읽은게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달콤하게 키스해줘>를 통해 강씨 집안 삼형제중 막내 강산과 한정아를 만났지요. 흔히 보던 남녀 관계가 아니라서 기억속에 고히 남아 있는 글이예요. 특히 여주인공 한정아의 엄마 이야기였던 번외편 달걀 세 개 때문에 가슴이 뜨끈해져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었지요.
이번에 읽은 <반지>는 막내 강산에 이어 둘째 강두의 이야기예요.
예고편을 읽으면서 도대체 강두는 누구야 했는데 책을 펼치자마자 한번에 다다닥 떠오르더라구요. 아하! 강씨집안 삼형제.

일단 재미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전 신파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신파는 아니예요. 그런 끼가 조금 보이지만 워낙 황진순님 문체가 신파하고는 거리가 멀거든요. 필력으로 극복해야 했다고 봐야겠죠.잠깐이지만 미혼모로 9년동안 아들을 혼자 키운 해주의 설정때문에 처음부터 기대를 갖고 보았어요.

한동네에 버젓히 딴살림 차리고 부모, 처자식 내버린 아버지로 인해 이 집 남자들이 여자문제라면 아주 깔끔을 떱니다. 그래서 막내 산도 결혼할 여자 아니면 아에 연애도 하지 않는다고 했었잖아요. 그런데 유난히 아버지를 싫어했던 두는 아예 결혼 생각이 없어요. 그러다가 꼭 되갚아 주겠다고 벼르던 아버지가 죽어서 두 앞에 나타난 날  이성을 잃은 두는 해주를 안지요. 그리고 3개월 후에 해주에게 묻습니다. 임신을 했다면 결혼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요.  공허한 눈빛으로 사랑없는 결혼을 말하는 두앞에서 생명을 품은 해주는 그런일 없다고 잘라 말하고 사라집니다. 해주는 남모르게 두를 사랑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10년이 흐른 후 두는 친구를 통해서 해주와 호의 이야기를 들어요.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직감한 두는 자괴감에 치를 떨지요.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던 아버지와 똑같이 처자식 내팽겨친 인간이 됐다는 점에서요. 일사천리로 두는 해주와 아들 호를 데리고 와요.  그리고 두는 정말로 깔끔하게 호와 해주를 책임집니다. 순서가 뒤바뀐 부부의 연이 시작되는거죠. 해주는 처음엔 호와 헤어지는건 죽는거라는 생각으로 두를 따라나섰지만 마음속엔 두에게 큰 미안함을 갖고 있어요. 부자사이를 떼어놓았다는 미안함, 두가 그리도 싫어했던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그를 상처입게 했다는 미안함이 두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고 반면에 두는 자신의 일방적인 행동이 지난날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와 같았다는 미안함에 해주를 향해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그런 두의 그 깨달음은 해주를 향한 사랑의 시작이였던거죠.

그러다가  해주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안고 경험이 없었던 두가 뒤늦게 불이 붙어요. 이 사람들이 낮엔 데면데면하다가도 밤만 되면 아주 사이가 좋아져요^^  살 부대끼며 살면 정 생긴다고 시나브로 익숙해지는 두 사람. 그럼에도 사랑임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두. 그가 참으로 멋진 고백을 합니다.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고 뻣대면서 말이죠. 냉정한 두가 보여주는 사랑은 무뚝뚝하고 외곬수인 남자가 한 여자만 본다는 진리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호와 두의 만남, 두의 고백에서는 울기도 했고, 두 사람의 첫날밤 아닌 첫날밤에서는 깔깔 웃기도 했어요. 뒤늦게 불붙은 두의 "합시다"에 저는 완전 넘어갔습니다. 지금도 자판 두들기면서 실실 웃고 있어요. 글의 완급조절도 이만하면 좋은거 같아요. 갑자기 주인공들의 태도가 돌변하는 글을 만날때면 좀 당황스러운데 자연스럽게 잘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해주가 좀 급작스럽게 활발해진거 같긴한데 거기엔 작가님이 나름대로 이유를 적어놓으셔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으니 괜찮았어요. 더불어 두 사람의 아들 호. 이 귀염둥이는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아이와 너무나 닮아있어서 흐뭇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고 소장하게 된게 행운이라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제가 별을 다섯개를 드리지 못하는 이유는요.처음 해주와 두의 시작은 나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은 현실에서는 성폭행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그냥 넘어간 해주는 또 뭔가요. 뒤늦게 나타나 책임지겠다는 두의 행동으로 감싸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되요. 찜찜한 마음이 들게 하는 옥의 티 하나를 남겼습니다.아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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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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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중간, 중학생 시절에 주말이면 텔레비젼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방화중 기억에 남는것, 재미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얄개 영화를 들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날 무렵의 일이니 그 당시에도 이미 한참전의 배경이지만 주인공들이 겪는 에피소드들은 영화속 주인공들과 같은 연령때의 내가 공감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정감있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여주었기에 얼마간은 동경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던거 같기도 합니다. 목까지 단추를 채우는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하얀 플랫카라에 플레어 스커트로 대변되는 그 시대의 중고생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십수년이 흘러 교복자율화 세대인 나에게도 소위 먹혔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영화를 보던 당시 내 나이에서 이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 추억의 얄개들을 만났으니 바로 <머저리 클럽>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릴적의 느낌보다는 더 복고적인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글이지만 그 안에서 전해오는 감정들은 낡은 서랍속, 한쪽에 자리잡은 앨범속에서 빛바랜 사진으로 남겨져 잊고 지냈던 나의 빛나는 시간들과 다시 마주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서문에 최인호 선생님은 5년전의 일은 기억이 희미한데 오히려 그보다 오래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신다고 하셨어요. 그것은 아마도 켜켜히 쌓인 그리움의 무게에 비례하는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저리클럽>은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여섯 친구들, 동순, 철수, 영구, 영민, 동혁, 문수가 함께한 3년간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동순이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영민을 제외한 다섯 친구들은 모두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예요. 타교에서 전학온 영민이가 건방져보여 일부러 싸움을 붙지만 매번 지면서도 오기로 달려드는 영민을 보면서 친구들은 양심에 찔리고 오기에 지쳐서 제풀에 꼬리를 내리고 어느새 여섯명은 <머저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친구가 됩니다. 이 친구들이 인근 여고의 샛별회랑 엽합하여 샛별회라는 모임으로 만나 일어나는 에피소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정들은 열 몇살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마음들입니다. 나 또한 먼지 쌓인 기억속에 가리워져 잊고 지냈던 그 시간들을 살짝 꺼내서 웃음 지었습니다. 외로움, 열등의식, 짝사랑, 미래에 대한 두려움, 순수했던 우정......동순이를 비롯한 여섯 친구들의 모습들은 시대가 달랐지만 나의 그시절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 아련함과 그림움을 던져줍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감정들이 너무나 반가워 선물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루라도 얼굴을 보지 못하면 궁금해서 안달이 나고 마는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동안 말하지 못할 시샘을 느끼고 그로인해 홀로 미안해하고 그 정도 밖에 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도 있었고 무리에 끼어 웃고 떠들지만 정작은 사무치게 외로워 홀로 있는 시간이 두려울정도로 우울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길에 놓인 무수한 시험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했던 공부는 좌절을 선사하기도 했고 오가던 길에 만난 이성때문에 잠 못 이루고 친구와 수다로 밤을 새운적도 물론 있었습니다.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서 전혜린을 밑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으면서 그녀의 고독에 눈물짓고 그녀의 삶에 동경을 가졌던 적도 있었지요. 돌아보면 나름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던 시간들입니다. 날계란도 아니고 완숙도 아닌 반숙같은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 여자로 지금의 자리에 앉아 있는거겠죠. 이제는 절대로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아쉬움에 목이 멜 정도입니다.   

빼앗긴 첫사랑 때문에 마음 아팠지만 일어설 수 있었던것, 속상하지만 다시 친구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갈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결국 마음을 키워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감싸줄 수 있었던 머저리 클럽 친구들의 모습들과 그 시간들이 결코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그때에만 갖고 있는 때묻지 않은 마음때문이겠죠. 방황하는 별이 더욱 아름답고 빛났던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순수함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머저리 클럽>의 여섯 친구들을 통해서 나의 반숙같은 그 시간또한 빛나던 순간임을 깨닫고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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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 베틀북 그림책 63
우 니엔쩐 지음, 관 위에수 그림, 심봉희 옮김 / 베틀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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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애 처음 혼자 집을 나서 어딘가를 갔던적이 언제였나를 생각해 봅니다. 애써 기억하려해도 딱히 떠오르는 광경이 없으니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건 포기해야 할 듯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의 주인공인 나보다 훨씬 커서일거라는것만 짐작되네요. 시골에서 태어난 저도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 어딘가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고개 하나를 넘어야 했기에 부모님도 선뜻 허락하지 않으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저 또한 생각하지도 않았을테고요. 그러고보면 이 책속의 주인공의 아버지는 상당히 강하게 아이를 키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주인공 나의 아버지는 엄한 눈으로 주인공 나(이하 나)에게 이란에 있는 이모할머니댁에 가서 할머니가 놓고 오신 우산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졸리면 바를 호랑이 기름 하나만을 챙겨 홀로 이모할머니댁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기차역까지 한시간을 걸어서 기차를 타는 허우등부터 이모할머니댁의 이란까지 가는 길, 여덟살 어린 아이 혼자 가기엔 그리 쉬운 길이 아니였습니다. 기차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혼자 가는 나를 보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으니까요. 

그런중에 기차의 많은 사람들중 어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칩니다. 주인공 나가 기차에 오를적부터 계속 쳐다보며 웃고 계셨는데 왠지 무서워서 눈길을 돌리지요. 할머니는 나를 부르더니 팔다남은 구아바 세개를 주십니다. 할머니에게선 나의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와 같은 차나무 기름 향기가 났어요. 그 냄새를 맡고 나니 나의 불안감은 사라집니다.


얼마가 지나고 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향해 쓰러지고 나는 울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요. 나를 할머니의 손자로 착각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위로를 해주고 와중에 호랑이 기름을 찾기에 나는 갖고 있던 호랑이 기름을 내어줍니다. 덕분에 할머니는 정신을 차립니다. 사람들은 착하고 똑똑한 손자를 두었다고 할머니에게 나를 칭찬합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 할머니가 아니라는 말을 못합니다. 


정신을 차리신 할머니는 나에게 동전 몇 개를 주시지만 나는 사양합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한사코 꼭 쥐어주세요. 그렇게 할머니와 작별을 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차에서 내려 이모할머니댁에 무사히 도착을 하지요. 머릿속에는 내어준 호랑이 기름을 생각하면서요. 할머니의 우산과 풋마늘 다섯 근을 갖고 무사히 마을로 돌아오니 골목 어귀에서 나의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는 머릿속에는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그림이 꽤 따뜻합니다. 연필 데생에 노란빛이 돌아 아련한 느낌의 옛날 사진을 보는것 같기도 하지요. 그림만큼 마음도 따뜻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덧붙여 세세한 묘사가 참으로 인상 깊은 책이기도 합니다.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인상깊습니다. 헐렁한 칠부바지 아래 드러난 두발, 발바닥이 까맣고 커서 꼭 부채같다는 표현, 타이어를 잘라 만든것 같은 슬리퍼를 발과 뼈만 남은거 같은 다리는 할머니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또한 주인공 나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들에 대한 설명, 이를테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끝없이 펼쳐진 짙푸른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작은 섬들이 보이고 하늘을 날으는 새의 무리들은 단 두줄만으로도 머릿속에 한폭의 바다 그림은 확실하게 그릴수 있게 합니다. 글을 읽으며 날으는 갈매기 그림을 보고 있으니 정말로 푸른 바다를 보는듯한 느낌이 들정도였어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 나가 기차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한 허우둥에서부터 도착역인 이란까지의 지도가 나옵니다. 약 72킬로라는 거리라네요. 제가 살고 있는 종로에서 강화도의 끝까지 가는 거리정도 되요. 시간상으로 두시간 남짓. 아홉살 큰 아이에게 이 길을 혼자 가보라고 한다면 엄마인 저도, 아이도 고개를 흔들겁니다. 주인공 ’나’가 갔던 여정은 더 험한 길이였을텐데.....새삼 주인공 나의 아버지가 살짝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아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수 있었지요. 어려움속에 아들을 던지는 아버지의 속마음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살짝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나아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큰 뜻이 숨어 있었다는걸 언젠가는 아들이 깨달았겠지요?
혼자 짧은 여행을 시작한 여덟살 아이의 용기, 낯선 할머니와의 우정, 아버지의 사랑을 골고루 느낄 수 있는 마음 따뜻해지는 성장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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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바람 2009-01-30 0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도 좋지만 그림이 참 좋네요. 연필인지 볼펜인지 세밀화로 그려진 것이 꼭 가지고 싶은 동화책입니다.

바나나달 2009-02-02 01:31   좋아요 0 | URL
스케치 작품입니다. 그림도 물론 좋구요. 내용은 읽을수록 깊은 감동이 우러나는 글입니다.
 
내 짝꿍 김은실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9
이규희 지음, 박영미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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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학년에 소문난 악동이 있었습니다. 남자아이인 그 친구는 저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기도 했지요. 이미 여섯살 그 어린 시절부터 그 친구는 어른들을 두손 두발 다 들게 했던 소문난 골칫덩이였습니다. 늘 누런 코를 훌쩍이며 떼를 쓰느라 눈가엔 눈물이 마를날이 없었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의지를 관철시키느라 옷엔 항상 흙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였어요. 그 친구가  단지 한 동네 산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 같은 반 급우가 되던 날 우리반 친구들은 모두 그 친구의 눈길을 피하기 바빴습니다. 열두살의 아이들은 이미 힘의 균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그 친구와 짝꿍이 됐다는 거였습니다. 정말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저는 너무나 힘들었어요. 솔직히말해 그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늘 살 얼음판 걷듯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파악했었거든요. 그 친구 입에서 나왔던 말과 행동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각인되어 플레이 될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늘 두려워했지만 저를 때리지는 않았던거 같아요. 험악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아 무서웠하긴 했지만요. 

<내 짝꿍 김은실>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 그 친구가 문득 떠오릅니다. 한결이는 그 친구와 정말 비슷한 캐릭터였거든요. 한결이는 툭하면 친구들을 윽박지르고 때리고 골탕먹이는 싸움대장이라 주위에 친구들이 없습니다. 보증을 잘못서 집이 망하고 엄마는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빠를 보다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갔어요. 아빠는 그 모든 자책을 술로 풀어내며 한결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괴롭힐때마다  아빠한테 당한 앙갚음을 하는 기분이 들어 벌벌 떠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비뚤어진 한결이입니다. 
짝꿍없이 혼자 앉게 된 어느날 새로 전학온 김은실이라는 친구가 한결이 옆에 안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선물로 3령이 돼서 제법 크고 통통한 장수풍뎅이 애벌레 여덟마리를 선물로 들이밀지요. 아이들에겐 주먹을 들이미는 한결이지만 실은 벌레라면 질색을 하는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친구들 앞에서 보이게 한 은실이가 한결이는 괘씸합니다. 그래서 또 심통을 부리지요. 몰래 가방을 화장실에 숨겨버리고 공으로 얼굴을 맞춰 코피를 쏟게 만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실이는 늘 웃습니다. 모든게 제 잘못이라고 합니다. 이쯤되니 은실이를 놀리는 재미가 슬슬 없어집니다. 거기다 한결이의 딱딱해진 가슴마저 몽글몽글 풀어지게 만드는 요상한 아이입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무료함에 학교에 간 한결이는 줄넘기를 못해 쩔쩔매고 있는 은실이를 발견하고 자신있게 줄넘기를 가르쳐 줍니다. 운동이 제일 겁나고 무섭다는 은실이에게 줄넘기 넘는 요령을 가르쳐주며 호기롭게 겁내지 않으면 잘 할 수 있다는 멋진 말까지 해주지요. 고마워하는 은실이는 한결이에게 너도 겁내지 말고 애벌레를 만져보라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한결이는 아빠의 슬픈 독백을 듣고 생각합니다. 아빠도 엄마가 없으니까 겁이나서 술을 마시고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거라고요. 그날 저녁 아빠와 한결이는 끌어안고 잃어버린 날들을 되찾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한결이는 용기를 내서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을 들여다봅니다. 
어느새 한결이는 은실이를 많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6월이 돼고 장수풍뎅이가 고치에서 나오자 한결이는 용기를 내서 장수풍뎅이를 키워보기로 합니다. 은실이는 그런 한결이를 위해 암수 두마리의 장수풍뎅이를 분양하고 한결이는 장수풍뎅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돌아올 날을 희망합니다. 잘 키워서 멋진 장수풍뎅이를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날을요.  

<내 짝꿍 김은실>은 힘들다는 표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한결이가 은실이를 만나 아픔을 게워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힘은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거짓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고요. 아픔을 심술로 꼭꼭 싸맨 한결이가 타의지만 벌레를 무서워하는 진실을 드러냈듯이 은실이 또한 체육시간이 되면 겁부터 나는 자신의 약점을 한결이를 향해 보여 주었습니다. 두 친구는 서로 감추고 싶은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면서 눈높이가 맞춰집니다. 그리고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우정이 생기는 거지요.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로운 은실이의 웃음은 얼어붙은 한결이의 마음을 눈녹이듯 풀어줍니다. 사심없는 아이들이기에 갖을 수 있는 순수한 우정으로 자신안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두 친구들의 모습은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 어떤것보다 밝고 강하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문득 잊고 지냈던 어릴적 친구가 떠오르는 이유는 한참이나 지나버린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시절  모든 친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아이의 외침은 어떤 상처에서 비져나온 조각이었을까요. 제가 은실이였다면 작은 도움이 돼지 않았을까 싶은 어의없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에 웃음짓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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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공주
정림 지음, 고미영 그림 / 아테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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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30이 넘었는데도 바리데기 이야기를 잘 몰랐습니다. 바리데기 바리데기 이름은 참 많이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줄은 전혀 몰랐어요. 부끄럽게도 말이죠. 아테나에서 출간된 아버지를 살린 바리데기 공주를 읽어보니 바리데기 효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야기였네요.

저멀리 불라국의 오구대왕은 내리 딸만 일곱을 낳자 그만 화가나서 막내딸을 바리데기라 이름짓고옥함에 넣어서 바닷물에 던져버립니다. 바리데기가 들어있는 옥함은 공덕할버니 부부가 건져올려애지중지 곱게 키우지요. 세월이 흘러 병이든 오구대왕은 버린 딸을 그리워하고 대신들에게 딸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부모님과 만나게 된 바리데기 공주는 아버님인 오구대왕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은 저승의 동대산 약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아무도 떠나지 않던 그곳으로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길을 떠납니다. 길을 가다가 대별왕과 소별왕에게서 무지개 꽃과 금방울을 얻어 저승으로 향하면서 지옥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구해주고 동대산 동수자를 만나요. 그곳에서 동수자와 혼례를 올리고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살살이꽃, 피살이꽃, 개안초, 약수를 갖고와 죽은 아버지를 살립니다. 

뒤이어 들려주는 대별왕과 소별왕 이야기. 나무도령의 탄생 이야기도 참 흥미롭습니다.저승을 다스리는 대별왕과 이승을 다스리는 소별왕이 어떻게 태어나고 저승과 이승을 다스리게 됐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무도령 이야기는 성경의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이야기라서 읽으면서 동, 서양 문화의 비슷한 점을 느끼면서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불라국과 동대산 동수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리데기 이야기는 불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저승세계로 가던 중에 바리데기가 보았던 칼산지옥, 화탕지옥, 독사지옥, 철상지옥, 검수지옥, 발설지옥, 황천바다 등도 그러하구요. 저승가는 노자돈 이야기등 접하기 힘든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를 통해서 살짝 엿볼 수 있어서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리데기 공주를 통해서 아이들은 효심깊은 바리데기 공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다는 바리데기 공주의 말은 어른인 저에게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부분이었어요. 또한 나무도령 이야기를 통해서는 아무리 하찮은 미물이라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점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전래동화를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본이 되는 소중한 덕목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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