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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십대의 중간, 중학생 시절에 주말이면 텔레비젼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방화중 기억에 남는것, 재미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얄개 영화를 들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날 무렵의 일이니 그 당시에도 이미 한참전의 배경이지만 주인공들이 겪는 에피소드들은 영화속 주인공들과 같은 연령때의 내가 공감하기에 충분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정감있고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여주었기에 얼마간은 동경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던거 같기도 합니다. 목까지 단추를 채우는 까만 교복에 까까머리, 하얀 플랫카라에 플레어 스커트로 대변되는 그 시대의 중고생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십수년이 흘러 교복자율화 세대인 나에게도 소위 먹혔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영화를 보던 당시 내 나이에서 이십년이 흐른 지금 다시 그 추억의 얄개들을 만났으니 바로 <머저리 클럽>입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릴적의 느낌보다는 더 복고적인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글이지만 그 안에서 전해오는 감정들은 낡은 서랍속, 한쪽에 자리잡은 앨범속에서 빛바랜 사진으로 남겨져 잊고 지냈던 나의 빛나는 시간들과 다시 마주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서문에 최인호 선생님은 5년전의 일은 기억이 희미한데 오히려 그보다 오래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신다고 하셨어요. 그것은 아마도 켜켜히 쌓인 그리움의 무게에 비례하는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저리클럽>은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여섯 친구들, 동순, 철수, 영구, 영민, 동혁, 문수가 함께한 3년간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동순이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영민을 제외한 다섯 친구들은 모두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예요. 타교에서 전학온 영민이가 건방져보여 일부러 싸움을 붙지만 매번 지면서도 오기로 달려드는 영민을 보면서 친구들은 양심에 찔리고 오기에 지쳐서 제풀에 꼬리를 내리고 어느새 여섯명은 <머저리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친구가 됩니다. 이 친구들이 인근 여고의 샛별회랑 엽합하여 샛별회라는 모임으로 만나 일어나는 에피소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정들은 열 몇살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을 마음들입니다. 나 또한 먼지 쌓인 기억속에 가리워져 잊고 지냈던 그 시간들을 살짝 꺼내서 웃음 지었습니다. 외로움, 열등의식, 짝사랑, 미래에 대한 두려움, 순수했던 우정......동순이를 비롯한 여섯 친구들의 모습들은 시대가 달랐지만 나의 그시절 모습과 별반 다를게 없어서 아련함과 그림움을 던져줍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그 감정들이 너무나 반가워 선물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루라도 얼굴을 보지 못하면 궁금해서 안달이 나고 마는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동안 말하지 못할 시샘을 느끼고 그로인해 홀로 미안해하고 그 정도 밖에 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시간도 있었고 무리에 끼어 웃고 떠들지만 정작은 사무치게 외로워 홀로 있는 시간이 두려울정도로 우울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길에 놓인 무수한 시험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했던 공부는 좌절을 선사하기도 했고 오가던 길에 만난 이성때문에 잠 못 이루고 친구와 수다로 밤을 새운적도 물론 있었습니다.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서 전혜린을 밑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으면서 그녀의 고독에 눈물짓고 그녀의 삶에 동경을 가졌던 적도 있었지요. 돌아보면 나름 아프고 괴로우면서도 즐거웠던 시간들입니다. 날계란도 아니고 완숙도 아닌 반숙같은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 여자로 지금의 자리에 앉아 있는거겠죠. 이제는 절대로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아쉬움에 목이 멜 정도입니다.
빼앗긴 첫사랑 때문에 마음 아팠지만 일어설 수 있었던것, 속상하지만 다시 친구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갈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결국 마음을 키워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감싸줄 수 있었던 머저리 클럽 친구들의 모습들과 그 시간들이 결코 우울하지 않았던 것은 그때에만 갖고 있는 때묻지 않은 마음때문이겠죠. 방황하는 별이 더욱 아름답고 빛났던 것은 그 안에 숨겨진 순수함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머저리 클럽>의 여섯 친구들을 통해서 나의 반숙같은 그 시간또한 빛나던 순간임을 깨닫고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