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꿍 김은실 좋은책어린이 창작동화 (저학년문고) 9
이규희 지음, 박영미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국민학교 시절 학년에 소문난 악동이 있었습니다. 남자아이인 그 친구는 저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기도 했지요. 이미 여섯살 그 어린 시절부터 그 친구는 어른들을 두손 두발 다 들게 했던 소문난 골칫덩이였습니다. 늘 누런 코를 훌쩍이며 떼를 쓰느라 눈가엔 눈물이 마를날이 없었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의지를 관철시키느라 옷엔 항상 흙먼지가 풀풀 날릴 정도였어요. 그 친구가  단지 한 동네 산다는 이유로 같은 학교, 같은 반 급우가 되던 날 우리반 친구들은 모두 그 친구의 눈길을 피하기 바빴습니다. 열두살의 아이들은 이미 힘의 균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그 친구와 짝꿍이 됐다는 거였습니다. 정말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저는 너무나 힘들었어요. 솔직히말해 그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늘 살 얼음판 걷듯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파악했었거든요. 그 친구 입에서 나왔던 말과 행동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각인되어 플레이 될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늘 두려워했지만 저를 때리지는 않았던거 같아요. 험악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아 무서웠하긴 했지만요. 

<내 짝꿍 김은실>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 그 친구가 문득 떠오릅니다. 한결이는 그 친구와 정말 비슷한 캐릭터였거든요. 한결이는 툭하면 친구들을 윽박지르고 때리고 골탕먹이는 싸움대장이라 주위에 친구들이 없습니다. 보증을 잘못서 집이 망하고 엄마는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빠를 보다가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갔어요. 아빠는 그 모든 자책을 술로 풀어내며 한결이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괴롭힐때마다  아빠한테 당한 앙갚음을 하는 기분이 들어 벌벌 떠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는 비뚤어진 한결이입니다. 
짝꿍없이 혼자 앉게 된 어느날 새로 전학온 김은실이라는 친구가 한결이 옆에 안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선물로 3령이 돼서 제법 크고 통통한 장수풍뎅이 애벌레 여덟마리를 선물로 들이밀지요. 아이들에겐 주먹을 들이미는 한결이지만 실은 벌레라면 질색을 하는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그 비밀을 친구들 앞에서 보이게 한 은실이가 한결이는 괘씸합니다. 그래서 또 심통을 부리지요. 몰래 가방을 화장실에 숨겨버리고 공으로 얼굴을 맞춰 코피를 쏟게 만듭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실이는 늘 웃습니다. 모든게 제 잘못이라고 합니다. 이쯤되니 은실이를 놀리는 재미가 슬슬 없어집니다. 거기다 한결이의 딱딱해진 가슴마저 몽글몽글 풀어지게 만드는 요상한 아이입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무료함에 학교에 간 한결이는 줄넘기를 못해 쩔쩔매고 있는 은실이를 발견하고 자신있게 줄넘기를 가르쳐 줍니다. 운동이 제일 겁나고 무섭다는 은실이에게 줄넘기 넘는 요령을 가르쳐주며 호기롭게 겁내지 않으면 잘 할 수 있다는 멋진 말까지 해주지요. 고마워하는 은실이는 한결이에게 너도 겁내지 말고 애벌레를 만져보라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던 한결이는 아빠의 슬픈 독백을 듣고 생각합니다. 아빠도 엄마가 없으니까 겁이나서 술을 마시고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 거라고요. 그날 저녁 아빠와 한결이는 끌어안고 잃어버린 날들을 되찾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한결이는 용기를 내서 장수풍뎅이 애벌레들을 들여다봅니다. 
어느새 한결이는 은실이를 많이 좋아하게 됐습니다. 6월이 돼고 장수풍뎅이가 고치에서 나오자 한결이는 용기를 내서 장수풍뎅이를 키워보기로 합니다. 은실이는 그런 한결이를 위해 암수 두마리의 장수풍뎅이를 분양하고 한결이는 장수풍뎅이를 키우면서 엄마가 돌아올 날을 희망합니다. 잘 키워서 멋진 장수풍뎅이를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날을요.  

<내 짝꿍 김은실>은 힘들다는 표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한결이가 은실이를 만나 아픔을 게워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 힘은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거짓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고요. 아픔을 심술로 꼭꼭 싸맨 한결이가 타의지만 벌레를 무서워하는 진실을 드러냈듯이 은실이 또한 체육시간이 되면 겁부터 나는 자신의 약점을 한결이를 향해 보여 주었습니다. 두 친구는 서로 감추고 싶은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면서 눈높이가 맞춰집니다. 그리고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우정이 생기는 거지요. 조금 더 마음이 여유로운 은실이의 웃음은 얼어붙은 한결이의 마음을 눈녹이듯 풀어줍니다. 사심없는 아이들이기에 갖을 수 있는 순수한 우정으로 자신안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두 친구들의 모습은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 어떤것보다 밝고 강하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문득 잊고 지냈던 어릴적 친구가 떠오르는 이유는 한참이나 지나버린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시절  모든 친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아이의 외침은 어떤 상처에서 비져나온 조각이었을까요. 제가 은실이였다면 작은 도움이 돼지 않았을까 싶은 어의없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에 웃음짓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