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개정증보판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종류의 책을 한 번씩 읽고 배움을 얻으려 한다. 역사 지식을 매력적으로 전달하고 각인되게 하는 일. 그냥 교양 상식으로 알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역사에서 뭔가를 곱씹게 하고 때로는 가슴속에서 뜨뜻한 피가 끓게 만드는 일.

그 어려운 일을 출중하게 잘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많이 배웠다. 때로는 정교하고 자세한 설명 보다, 조금은 거칠지라도 마음을 움직여서 나중에 자꾸 찾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큰 틀에서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그걸 잘 해내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칠 때 잘 해내고 싶다.



**

고구려가 곧 고려라는 이야기, 성리학의 긍정적 의미에 대한 저자의 의미 있는 항변이 무척 재미있게 잘 읽혔다. 그리고 이 논의가 근현대의 질곡을 거치며 저자가 설명하고 싶은 ‘한국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큰 줄기의 이야기로 나아가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민족주의를 믿지 않고, ‘한국인의 독특한 특성‘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의 관점에는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보급판) -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김영수 지음 / 왕의서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0년도 더 전에 이 책으로 사마천의 사기 읽기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거친 후 사기 열전과 사기 본기를 완역본으로 모두 읽었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그동안 읽었던 사기의 이모저모를 잘 갈무리할 수 있었다.



무척 좋은 책이리라.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면 된다. 잘 읽히고 내용이 잘 들어온다. 저자의 말투가 무척 아재스럽다는 특징이 있지만, 적응되면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 있다 :)



****



나는 개인적으로 골계 열전과 화식열전을 다룬 부분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그런 열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조차 못 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 시대 역사책치고 무척 신선하고 진보적인 부분이었더라.

그리고 한고조 본기와 항우 본기를 통해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을 비교한 내용도 좋았다. 그래. 나는 유방처럼 온건하고 느긋한 사람이 될 테야. 겉으로만 굳세고 개성 강해 보이는 사람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병 해방 - 치매, 암, 당뇨, 심장병과 노화를 피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법
피터 아티아.빌 기퍼드 지음, 이한음 옮김 / 부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훌륭한 책이다.



고지혈증이나 당뇨 또는 전 당뇨 같은 대사증후군을 진단받고 심란한 사람이라면 이 책이 실질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블로그와 유튜브에 어지러이 흩어진 잡다한 정보 중에 어떤 게 맞는 말인지 알 수가 없어 혼란했다면 이 책을 깊이 읽고 이해해 보라. 치매, 암, 당뇨, 심장병이라는 ˝Four Horseman˝ 질환을 효과적으로 피해 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총론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인터넷으로 돌아가 각론을 찾을 때, 어떤 정보가 나쁜 정보인지 가려낼 수 있는 선구안 정도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2, 30대 밖에 안 된 젊은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책이다. 젊은이들은 좀 더 재미있는 다른 걸 읽고, 이 책은 적어도 40살 이상 먹은, 남몰래 건강 고민을 하고 있을 나이 든 지인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겠다. 나도 이 책을 부모님과 처갓집에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도 정말 잘 읽었고. :)



나는 아래 네 가지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계란 노른자 콜레스테롤은 걱정할 거 없다. 대부분 똥으로 나온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콜레스테롤은 대부분 잉여 지방을 재료로 몸속에서 합성된 것이다. 마음껏 먹고,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싶다면 탄수화물과 포화 지방 섭취를 줄여라.

잠을 정말 잘 자야 한다. 그냥 ˝잠을 잘 자야 건강하지˝ 따위의 뜨뜻미지근한 선언 같은 느낌으로는 안 된다. 어쩌면 다른 걸 아무리 잘 챙겨도 잠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무의미해질 수도 있을 것.

운동할 때는 무엇보다도 발바닥이 중요하다. 발바닥의 네 모서리가 항상 지면을 튼튼하게 지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게 모든 운동 자세의 시작이며, 그게 안 돼서 모든 부상과 만성 통증이 따라온다.

마찬가지로 운동할 때는 호흡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몸을 호흡으로 알뜰하게 채워서, 척추가 흔들흔들하는 것을 막고 관절을 보호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납 같은 밥을 먹었네.˝


잘 읽혔지만 읽기 거북했다. 재미없었던 건 아니다. 슴슴하게 간이 된 음식을 씹는 것처럼 잔잔하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읽기 힘들었다. 납 같은 밥을 나도 함께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다른 서평들에서 왜 하나같이 ‘선생님 안에 내가 보였다‘라고 하는지 알겠다. 그의 욕망, 질투, 비겁함, 우유부단함, 그리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하다 잘못을 키워가는 어리석음까지. 소설의 유려한 문장에 빠져들수록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움을 거울 보듯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았다.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조금 개운해진 것 같다. 아. 이래서 다들 소설을 읽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마 피케티가 쓴 팸플릿. 그러나 선동적이지는 않다. 비슷한 류의 팸플릿인 공산당 선언이 얼마나 선동적인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길고 장황하고 버겁다고 하기에. 이 책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짧고 쉽게 피케티의 이론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피케티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민주의나 심지어 수정자본주의-케인스주의- 쪽에 가까워 보인다. 내가 이해하기에는.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1.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역사는 불평등에서 평등으로 뚜렷하게 전진해왔다. 인류는 소수가 부와 권력을 독점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나눠가졌을 때 더 강력해지고 더 번영해왔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항으로 놓는 건 잘못이다. 실제로 분배가 잘 이루어질 때 경제도 더 빠르게 성장했다. 오히려 분배 없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2. 그 변화는 공짜로 이뤄진 게 아니다. 차별받는 사람들의 집단행동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왔다. 이는 지금도,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3. 고삐가 풀려 통제가 되지 않는 사적 소유는 위험하다. 그러니 국가가 누진적 세금-재산세와 소득세, 상속세-을 강화하여 정부의 재정 능력을 키우고 과감하게 시장 장악력을 키워 자원을 재분배할 수 있는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

4. 자본은 이미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증식하고 있으므로, 이를 개별 국가 차원에서 길들이고 다루는 건 불가능하다. 민족 국가 체제를 뛰어넘는, 더 국제적이면서도 더 민주적인 다양한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케티는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의 시대를 무척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이 시기 미국의 케인스주의 자본주의 질서를, 피케티가 가까운 미래에 인류가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인 이른바 ‘민주적 사회주의‘의 한 형태이자 과정으로 평가하는 지점이 무척 신선했다. 아.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구나.


피케티가 생각하는 대안들을 다루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잘 읽히지 않았다. 팸플릿은 역시 팸플릿인 건지, 문장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대안들은 근본적으로 서구 선진국 정부의 ‘혜안‘과 ‘선의‘, ‘양보‘에 기대지 않으면 실현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에서 뭔가 무척 공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래서야 원, 세상이 진짜로 바뀌기는 하겠어? 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다만 생태적 관점에서도 지금 자본주의에는 미래가 없으며, 정부가 조세 재정 능력 확보를 통해 사적 소유의 고삐를 강하게 틀어쥐는 방식으로 과잉 생산과 소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강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지구 환경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아무래도 지금껏 부자 나라와 부자들이 방해 없이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싼 것들이 누적된 피해를 입혀서일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