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드 Googled -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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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구글이 바꾼 세상, 구글이 바꿀 미래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켄 올레타 지음, 김우열 옮김, 타임비즈, 2010

1998년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S시장 전체의 90% 이상을 점유하며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다. 그해 한 인터뷰에서 가장 두려운 장애물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빌 게이츠는 예상과 달리 넷스케이프,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오라클, 애플 등 '막강한 적수'들을 언급하지 않고 "누군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라고 대답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1998년, 빌 게이츠의 악몽은 현실로 나타났다. 실리콘밸리의 한 차고에서 스탠퍼드대학원 동창생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막강한 검색엔진을 무기로 구글을 차린 것이다. 구글은 불과 10년 만에 시가총액 1,40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포털 업체로 성장했고, 2009년 또다시 <포춘> 선정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50대 기업'에 꼽혔다. 위성 지도 프로그램인 ‘구글 어스’를 통해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의 환경을 옆집 보듯 알 수 있고, “구글이 못 잡아내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구글의 검색력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지에 올랐다. 구글은 거기다 이미 미국 5대 방송사의 광고 수입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인터넷 광고로 벌어들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세계 모바일 검색 점유율이 98.29%에 달한다는 경악스러운 조사결과도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야후 등 구글에 맞서 모바일 검색 사업을 강화하려는 경쟁 사업자들에게는 한 마디로 맥빠지는 소식이다. 

이 책의 제목인 구글드(Googled)는 '구글에게 당하다' 또는 '구글이 만들어낸 획기적인 변화'를 뜻하는 신조어인데, 이밖에도 구글링, 누글러, 구글노믹스 등 자고나면 구글 관련 신조어가 하나씩 생길 정도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포춘>은 혀를 내두르며, "구글에 대한 최대 위협은 구글 자신의 성공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구글이 최고 기업으로 떠오른 비결은 뭘까? '20세기 100명의 기자’로 뽑힌 <뉴요커> 수석 칼럼니스트인 켄 올레타는 3년 여 간의 심층 취재를 바탕으로 내놓은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에서 ‘소비자 중심적인 사고 때문’이라는 답을 내놨다. 그가 구글을 지켜보면서 얻은 교훈은 명확하다. 구글은 비즈니스 관점이 아닌 소비자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성공했다. 

구글이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기업,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떠오르기 전에 인터넷 검색엔진 분야의 최고 기업은 야후였다. 야후는 인터넷 검색의 중요성을 깨닫고 효율적인 검색엔진을 개발하여 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한 가지 실수를 한 점이 있다. 사람들이 인터넷 검색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일단 접속을 하면 그런 사람들을 가능한 한 자신의 웹사이트에 묶어 두면서 부가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유도하려 하였다. 반면에 구글은 첫 메인 페이지에 배너 광고가 전혀 없다. 그러면 구글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구글은 굳이 자신들의 검색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묶어 놓기 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웹사이트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여기서 구글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클릭 당 가격을 매김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일단 많은 사람들이 구글의 검색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많은 기업들이 구글의 검색 서비스를 통해 그들의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고 이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구글의 검색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하는 상호 보완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구글의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뭘 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을 위해 보다 효율적일 수 있을까에 천착해 성공을 거뒀다. 

구글에선 누구나 회사 경영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누구든지 반대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라도 자기만의 연구팀을 구축할 권리가 있다. 전례 없는 구글의 민주적 경영 방식은 흔히 '70-20-10 방침'이라고 불린다. 연구 인력의 70%는 기초 사업을 관리하며 업그레이드하고, 20%는 미래 발전 사업에 매달리고, 10%는 부가적인 서비스를 담당하는 것을 말한다. 평범한 생각과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자유롭고 비범한 자들이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토론을 통해 정진하는 기업이 구글이다. 구글은 실리콘밸리 최고 스타 기업인 애플과 사업에 접근하는 방식은 물론 기업 문화와 비즈니스 모델 자체도 크게 다르다. 애플이 태양의 왕같은 스티브 잡스를 중심으로 한 중앙통제식 문화를 가진 반면 구글은 일반 엔지니어들이 경영자들에게 상향식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민주적 문화를 갖췄다. 그러나 지난 5월 서울디지털포럼 2010 기조연설을 맡은 켄 올레타는 구글의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가 세계시장에서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엔지니어 문화라는 것은 측정하는 행동을 좋아하는데 엔지니어들은 민족주의나 자존심 등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기업은 세 종류다. 물결을 일으키는 자, 물결에 간신히 올라타는 자, 그리고 물결에 쓸려 없어지는 자. 개인은 물론이고 기업 역시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는 세찬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만다. 저자는 이 책에서 150명의 구글 임직원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경영회의 현장까지 생중계함으로써, 초강력 폭풍을 몰고 올 인터넷 세계의 가공할 변화와 구글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영전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렇다고 단순히 구글의 좋은 면이나 훌륭한 점을 찬양하고 본받자는 취지는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구글이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 화려한 성공의 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무엇이고 아직까지 터지지 않았으나 구글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탄은 무엇인지, 이런 것을 함께 들여다보고 고민해보자는 글이다. 구글은 정녕 소비자를, 사용자를 위하는 도덕적인 집단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용자의 신뢰조차도 이용하려고 하는 매우 똑똑하고 야심찬 기업인가. 세상을 더 좋게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제 기분에 취해 이제 더 거대해진 불도저를 이리저리 몰고 다닐 뿐인가. 이 책은 구글이 바꾼 세상과 구글이 바꿀 미래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 최근 구글의 스트리트 뷰(Street View)가 전 세계적으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구글코리아도 개인정보 무단수집 혐의로 전면 압수수색을 받았다. 구글이 차제에 '사악한 짓을 하지 말라(Don't be evil)'는 자사의 모토가 진정한 신조이자 실제 가치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걸 지켜보고 싶다. 이래저래 당분간은 더 '구글드(Googled)' 해야 할 것 같다. -끝-
* 기획회의 279호 (2010.9.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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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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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라 

『오리진이 되라』
강신장 지음, 쌤앤파커스, 2010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좋은 시인은 다른 시간대에 살았던 작가, 다른 언어를 쓰는 작가, 관심 사항이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아이디어를 빌려온다”. 시인 T.S.엘리엇이 한 말이다. 피카소도 “나는 찾지 않는다. 있는 것 중에서 발견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모방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정확하게 따라하는 벤치마킹이다. 예전에는 이게 통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훔친다는 것은 남의 아이디어나 성과에서 한 가지 요소를 가져와서, 또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아이디어나 성과와 결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정렬시키는 것이다. 사실 하늘 아래 온전히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훔치고 결합하는게 창조에 이르는 길이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결코 새로운 뭔가를 발명한 것이 없다. 그들 역시 끊임없이 뭔가를 찾고, 남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색다르게 조합했을 뿐이다. 그것이 그들이 한 창조다. 지극히 창조적이라고 하는 시인이나 예술가들 또는 세계적인 CEO도 그럴진대 하물며 일반사람들이 훔치고 빌리는게 당연하다.

  한때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블루오션 열풍이 한바탕 불고 지나간 후, 이제 그 자리를 혁신과 창조 경영이라는 키워드가 차지하고 있지만 정작 혁신이나 창조 경영에 대한 개념은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창조를 어려운 것으로 여기거나, 그저 크레용으로 그림 그리고, 고무공을 주물럭거리고, 카펫을 깔면 창조적이 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것 역시 연습과 훈련의 결과다. 최근에는 창조 경영의 출발점으로 예술을 강조한다. 시와 음악, 미술, 공연 등 예술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여기서 바로 창의력이 나온다. 『오리진이 되라』는 이러한 갈증에 목마른 사람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마다 영감의 불씨를 지펴줄 자극제가 필요했던 사람이라면 환영할 만한 영감의 재료들이 가득하다. 저자는 삼성의 씽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8년간 지식경영실장으로 재직하며 지식과 감성을 연결하는 크리에이티브탱크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최대의 CEO 커뮤니티 ‘SERICEO'를 기획하고 만들어 1만명 이상의 경영자들을 연회비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창조경영 학교'로 등교시킨 유혹의 달인이기도 하다.

그동안 창조에 관한 책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원론적이어서 현실에 곧바로 써먹기에는 적당치 않거나 기존의 자기계발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창조의 영감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하고 있다. 창의력은 ‘키우는’게 아니다. 키울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 저자가 창조의 정점에서 찾아낸 답이 바로 ‘오리진(origin)!’이다. 더 나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는 ‘오리진’과 그 나머지 사람이 있다. 스스로 처음인 자, 게임의 룰을 만드는 자, 새 판을 짜는 자, 원조(기원)가 되는 자, 그리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 그가 바로 오리진이다. ‘나머지’는 오리진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 안에서 서로 피터지게 싸우는 이들이다. 이제는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전제다. 이 화두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저자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비즈니스는 물론 미술, 음악, 와인, 문학,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국내외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시종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에베레스트는 그 높이가 8,848m로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의 정상에 인류가 처음 오른게 1953년이고, 24년 후 한국도 세계에서 58번째로 족적을 남겼다. 매년 2.4명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요즘은 1년에 몇 팀이나 에베레스트에 오를까? 2004년 330명, 2006년 480명, 2008년에는 600명이 올랐다. 왜 이렇게 많이들 올라가는 게 가능했을까? 그 이유는 베이스캠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베이스캠프 높이가 예외 없이 해발 3,000m 이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보통 5,200m에서 6,000m 이상에도 베이스캠프를 친다. 남은 거리는 이제 3,000m가 채 되지 않는다. 순 등정거리가 절반 이하로 확 줄어든 것이다. 물론 옛날에도 베이스캠프를 높이 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다만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정도 높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 단순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실로 엄청나다. “무슨일을 하든 성공하고 싶다면 베이스캠프를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하는 곳에 높이 쳐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베이스캠프는 생각의 베이스캠프고, 상상의 베이스캠프다.” 그 밖에도 아오모리 사과, 아사히야마 동물원, 월계수 잎사귀를 붙인 삼겹살 이야기 등 색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컨셉을 갖게 하는 흥미를 끄는 사례가 가득하다. 책에는 이처럼 다양한 창조의 사례들을 잘 버무려 비즈니스를 넘어 세상을 보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그러나 결국 창조를 완성하는 것은 ‘실천’이다. 창조가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그 앞에 ‘전략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실천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에, 그 위험과 싸우기보다는 지레 포기하고 안주해버리는 세태를 경고하고 있다.

책 앞뒤로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례사 같은 추천사와 홍보성 카피들은 바탕이 고운 미인이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서 점수를 까먹는 격이다. 성급한 독자들이 지레짐작으로 책을 덮을까 걱정된다. 10개의 장(章)마다 시 한편씩을 끼워 넣은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창조적인 의도겠지만 작위적으로 보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시 한편 한편이 모두 아름다운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8장에 소개된 고두현의 ‘늦게 온 소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정보의 홍수라고 할 정도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웬만한 것은 다 나와서 이제 더 이상 베낄 것이 없는 시대다. 과거의 성공도 오히려 독이 될 지경이다. 특히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숙명적인 고민을 안고 사는 경영자들은 매 순간 ‘창조 아니면 죽음’이라는 절박함 속에 산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칠 때 선별의 기준이 필요하다면 워런 버핏이 여기에 팁을 제공한다. “특정분야를 연구한 후에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전문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50대 50으로 나눠 독서해라” 진작에 사놓고 먼지만 쌓여가는 시집에 저절로 눈길이 간다. 이젠 손길이 갈 차례다.  

-끝-
* 기획회의 277호 (2010.8)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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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 21세기 조공은 이자와 배당이다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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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칠 거냐 받을 거냐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전병서 지음, 밸류앤북스, 2010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칠 거냐 받을 거냐?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에서 저자가 제기하는 도발적 질문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뚱딴지같이 조공이라니, 무슨말인가 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당․송․원․명․청나라로 이어지는 시대에 중국은 세계 GNP의 30〜40%를 차지했다. 1600년대까지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주변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엄청난 물량의 조공을 받았다. 형식상으로는 조공무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식민지 수탈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이후 중국은 줄을 잘못 서 공산주의를 택하는 바람에 과거 50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한국은 자본주의로 줄을 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중국을 앞서가고 있다. 우리로서는 천만다행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조공은 무엇일까? 21세기 조공은 배당과 이자고, 중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 위해선 중국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 잘나가는 나라의 주요기업 주식을 사서 성장의 수혜를 탐닉하는 것이 21세기의 돈벌이 방식이다. 저자는 중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 불혹이 넘은 나이에 중국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의 정치 중심지인 베이징의 최고 명문대학인 칭화대학과 금융 중심지인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푸단대 재정금융 전공 박사과정과 베이징사범대 증권투자전공 박사과정에 있다. 국내 유수의 증권회사에서 애널리스트와 IB(투자은행) 뱅커로 25년간 근무했고 '애널리스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 최초로 중국기업 한국상장 업무를 시작하는 등 명실공히 중국 자본시장 분야에 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은 개방 30년만에 수출 세계 1위, 기업 시가총액 2위, 군사비 2위, GDP 2위로 올라섰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당당하게 미국과 ‘맞짱’을 뜨는 G2,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부상했다. 예전에는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중국은 독감에 걸렸지만, 지금은 미국이 폐렴에 걸려도 중국은 가벼운 기침만 할 뿐이다. 세계적인 프로 투자가 짐 로저스가 일찌감치 미국의 헤지펀드와 작별하고 중국시장에 집중하며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역사에서 말해주는 강대국의 흥망에는 공식이 있다. '제조대국'에서 시작해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다음, '군사대국'으로 융성하고 '금융대국'이 되면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이 그랬다. 금융위기로 서구의 경제강대국들이 휘청거리는 사이에 중국이 '금융대국'의 꿈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통해 새롭고 기막힌 돈 벌이 방법을 터득했다. 바로 '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부도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다른 나라가 나자빠졌다. 초강대국이 친 대형 사고를 못 사는 중소국들이 분담해 수습하는 형국이 되었다. 다행히 미국에 대해 9천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전 세계가 함께하는 미국과의 고통 분담에서 열외될 수 있었다. 미국은 ‘기업 부채’를 '정부 부채'로 바꾸는 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가능한 건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의 화폐 주조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세뇨리지 효과). 종이 값과 잉크 값을 제외한 화폐 제조원가와 액면가의 차액을 모두 챙길 수 있는, 마진이 99배가 넘는 초고수익 사업에 중국이 뛰어들었다. 소위 '위안화 국제화' 프로젝트다. 물론 기축통화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이 숟가락을 얹으려는 중국의 이런 행동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리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기로 하는 전쟁에서는 제대로 이긴 적이 없지만 돈으로 하는 화폐전쟁에서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또 미국은 지금까지 달러 패권을 건드린 나라를 무사히 내버려둔 적이 없다. 이라크와 이란이 미국에 폭격을 당한 진짜 이유는 그들이 악의 축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석유대금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바꾸겠다고 달러 주권을 뒤흔드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은 2조4천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외환보유고와, 9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미국 국채를 팔아 치우기라도 하면 미국 달러와 국채시장은 하루아침에 마비되고 달러와 위안화가 맞붙는 신(新)화폐전쟁이 불가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전쟁은 좀처럼 전면전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싸움 잘하는 개들은 함부로 물거나 짖지 않는다. 서로 선수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친구 순위는 피를 나눈 유럽도, 전쟁을 함께 한 혈맹도 아니다. 미국채를 많이 사주는 나라가 미국의 친구다. 중국은 미국의 환율절상 협박에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식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 2007년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과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대(對)중국 교역규모가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경제와 금융을 다룬 책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국제금융 이슈를 일반인도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만큼 쉽게 쓰여진 책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경제와 금융을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의 전문성에 현지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뽑아올린 생생한 사례와 역사지식이 보태져 탄탄한 내공이 돋보인다. 중국경제와 금융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포커스는 한국의 전략에 맞춰져 있다. 저자는 향후 10〜20년 안에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완벽히 부상하기 전에 한국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하면 과거 500년간의 우리 선조들처럼 다시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발 좀 귀 기울여 잘 들으라고 확성기를 귀 가까이 대고 소리지르는 듯한 저자의 우려와 충고는 따갑고 목청이 크다. 우리가 아직 금융분야에 경쟁우위가 있는 지금이 기회다. 중국의 금융시스템이 자리를 잡기전에 중국의 금융시장과 투자시장을 선점하여 중국 제조업에 미리 투자해 놓는다면, 훗날 우리 제조업이 중국에 추월당하더라도 중국 기업들로부터 이자와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시장이 한국 재벌의 순위를 바꾼다' '타이완과 중국이 합쳐지면 한국 IT가 위험하다' '금융대국 중국이 한국 기업을 싸게 먹는 방법' 등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소제목들은 책장을 넘기는 손놀림을 바쁘게 만든다. 최근에 나온 중국관련 책 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10〜20년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다시 조공이다" -끝-  

*기획회의 275호 (2010.7.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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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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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비치지 않는 세상

『천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07

상희야!
한국은 지금 4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급히 찾아온 더위에 맥을 못추고 있단다. 그러나 아빠는 여기 여름보다 몇배는 뜨거운 常夏의 나라 싱가폴에 네가 있는 동안은 절대로 덥다고 투덜대지 않기로 했다. 
아빠는 지난주부터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아빠와 동갑인 아프가니스탄 작가가 쓴「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찬란하면서도 어찌나 슬프던지 어제밤도 이 책을 마저 다 읽느라고 잠을 설쳤단다. 지난번 너한테 보내는 책에 엄마책도 몇권 넣어서 함께 보냈는데 혹시 못보았니? 히잡을 쓰고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이 카불 시내를 내려다보는 처연한 뒷모습을 배경으로 한 표지인데.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가리개고 부르카는 몸 전체를 가리고 눈 부위만 망사로 되어 있는 여성 의상이란다. 참, 싱가폴에서도 이슬람계 사람들을 자주 볼테니 잘 알겠구나. 아빠는 이 책 대부분을 출퇴근하며 전철에서 읽었는데 내려야 할 곳에서 미처 못내리고 그냥 지나친적도 있었고, 가슴을 마구 후비는 슬픈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느라 혼난적도 많단다. 아주 오랜만에 눈과 마음을 홀딱 빼앗기며 읽은 책이다. 

딸아!
책 이야기를 더 하기전에 이 소설의 배경인 아프가니스탄 이라는 나라를 먼저 얘기 해야할 것 같구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지금은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지만 17세기에는 천국에 이르는 길목이라고 불리워졌단다. 그래서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는 '카불'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지.
'황량한 산들로 둘러싸인 카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카불의 모든 거리는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가/---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아프가니스탄은 왕정붕괴, 소련의 침공, 탈레반의 득세, 미국의 침공 등 혼돈의 오랜 역사 속을 거치면서 전쟁, 기아, 무정부, 핍박으로 한때는 난민이 8백만명에 달한적도 있고 현재도 2백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이웃국가인 파키스탄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쟁지역 중의 하나란다. 특히 아프간 여성들은 숙명적으로 이중삼중의 고통과 절망속에서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여 있지.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하는 소설 속 구절처럼 아프간은 여자들한테 오랫동안 아주 몹쓸 제도를 갖고 있었다. 특히 소설에도 나오는 1996년부터 5년간 계속된 탈레반 집권시절의 광기는 도를 지나칠 정도였단다. 살인 및 간통죄는 공개처형, 도둑질은 손목 자르기 등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었고 정신을 좀먹는다는 이유로 TV, 음악, 영화가 금지 되었고 각종 기호품도 자취를 감췄다. 여성은 외출할때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고, 남자 친척 없이는 여행하는게 금지되고, 10세 이상 소녀들은 학교에도 조차 다니질 못했단다. 태양은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때 그것의 광채를 최대한 즐길수 있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아니 여자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구나. '우리 아프간 사람이 쳐부술수 없는 유일한 적이 있다면 그건 우리들 자신이란다’ 하는 소설속 구절이 대못처럼 의미심장하게 가슴에 와 박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이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뒤에 남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전쟁과 테러와 굶주림 속에서 가족을 잃고 한남자의 두 부인으로 살아야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은 두 여자-마리암과 라일라-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단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마리암의 아버지(잘릴)가 죽음을 앞두고 마리암에게 보낸 ‘사랑하는 마리암에게’으로 시작하는 속죄의 편지를 라일라가 읽는 장면이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건 너에게 용서를 비는 것밖에 없구나. 사랑하는 마리암,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라고.- 딸을 그리워하며 죽어가는 아비의 피눈물나는 고해가 있단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내딸아, 신이 너에게 길고 유복한 삶을 주시기를 기도하겠다. 신이 너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많이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하겠다. 내가 너한테 주지 못했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네가 찾기를 바란다. 잘 있어라. 나는 사랑이 깊으신 신의 손길에 너를 맡긴다".- 그러나 마리암은 끝내 이 편지를 읽어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마리암은 라일라와 그녀들의 명민하고 사랑스런 딸 아지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 같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하고 무거운 부당한 시련을 지워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된다. 아빠가 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인 이 편지를 몇 번인가를 되뇌이고 있었던 게 아마 새벽시간이었을 게다. 갑자기 네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던지 전화기를 몇 번인가 들었다가 결국 그냥 놓고 말았다. 새벽 3시는 열세살 소녀를 깨우기에는 너무 늦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더구나. 

상희야!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카불의 사진사-부르카 밑의 웃음소리」라는 사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국제적인 보도사진전에서 여러차례 상을 수상한 정은진 이라는 젊은 여류 사진작가의 개인전이었지. 지금도 출산중에 죽는 아프간 여성이 연간 2만5천명에 이르고 아프간이 세계서 두 번째로 산모 사망률이 높다는것도 그 사진전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단다. 먹을것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전 세계에 3억명이 넘고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작고 여린 생명들이 빈곤과 전쟁, 질병과 자연재해 등으로 1분마다 10명씩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쉽게 믿을수 있겠니? 네가 공부하고 있는 싱가폴은 인종간ㆍ개인간ㆍ남녀간 차별없이 독자적인 문화를 상호존중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표국가로 꼽히잖니?. 그런데 같은 아시아지역에 그처럼 불공평하고 학대받는 삶이 일반화된 세상이 있다는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러나 상희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맨 얼굴이란다. 그리고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의 많은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봉사하며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단다. 예를들면 유엔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는 한비야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지. 그사람들은 돈이 넘쳐나서도, 특별히 많이 배워서도 아니란다. 다만 자신이 가진 작은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앞세워 그런 삶을 선택한 거란다. 이 책의 저자인 할레드 호세이니 역시 아프간 사람들을 사랑하는 열정과 글쓰기라는 재능을 조국 아프간의 비참한 현실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쓰고 있잖니.

얘야!
하느님이 사람에게 재능을 주실적에는 자신을 위해서만 쓰라고 한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세계 모든곳을 다 다니지 못하시니 그 재능을 주위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써달라고 빌려준 거라고 생각하렴. 지금 네가 낯선 나라에서 아빠랑 떨어져서 힘들게 공부를 하는것도 이담에 커서 네 재능과 실력을 세상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려므나. 이책을 읽고 아빠도 불현듯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턱없이 작고 보잘것 없는 금액이지만 통장에서 일부분을 매달 그들에게 쓰여질수 있도록 해 놓았단다. 

사랑하는 상희야!
싱가폴로 떠날 때 아빠가 부탁했던 말 기억하지? - 첫째, 절대로 아프지 말것. 둘째, 네가 싱가폴에서 배워야 하는건 English가 아니고 Global이라는 것을. 단순히 영어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나라 친구들의 좋은 습관과 행동을 많이 배우도록 해라. 습관은 나무껍질에 글자를 새긴 것과 같단다. 그 나무가 커감에 따라 글자도 커진단다. 아침에 일찍 못일어날것 같던 네가 거기서는 그렇게 이른 아침에 학교에 가는걸 보면 너도 알겠지? 이 책은 아빠 서재에 잘 보관하고 있을테니 네 생각과 사고가 한뼘쯤 더 커져서 한국에 돌아오는날 꺼내 읽도록 하려므나. 뜨거운 햇빛에 피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혹여 더운 날씨에 찬 음식만 찾다가 배라도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다음달 출장때는 싱가폴을 들러서 올까 생각중이다. 그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지내거라. 아빠는 늘 네 생각 뿐이다. 사랑한다. 딸아! -끝- (2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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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사마천 사기열전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9
정연 지음, 진선규 그림, 손영운 기획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길을 묻다

  
『만화 사기열전』(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 v9)
사마천 지음, 주니어김영사, 2008 

재작년 초, 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기념으로 서울대에서 선정한 ‘만화로 만나는 인문고전 50선’을 선물로 사주었다. (당시는 20권까지 발간되었다) 워낙 만화를 좋아하기에 아이도 무척 기뻐하는 눈치였다. 주문한 책이 도착한 날 딸아이와 나는 관심 끌리는 대로 한 권씩 집고 읽기 시작했다. (만화지만 분명 이 책은 보는 책이 아니고 읽는 책이다). 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자주 듣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먼저 집었고, 평소 동양고전에 관심이 있던 나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먼저 손이 갔다.

흔히 고전을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다. 동양고전을 말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책중의 하나인 《사기》도 그런면에서 예외는 아니다. 《사기》는 중국의 오제(五帝)부터 한무제까지 3천여 년의 시간을 포괄하는 웅대한 스케일을 담은 역사책이다. 사마천이 생식기를 절단당하는 궁형의 치욕을 겪으며 그 절망을 이겨내고 16년의 각고 끝에 집필한 책으로 유명하다. 특히 뛰어난 개인들의 전기를 다룬 70편으로 이루어진『사기열전』은 그중 돋보인다. 2천여년 전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인생의 의미, 처세의 태도, 인간관계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어 오늘날에도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이 한평생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인간군상이 다 녹아 있고, 인간사회의 영원한 주제인 ‘권력’과 ‘조직’에 관한 통찰에서도 다른 어떤 책보다 앞선다. 현대 경영학에서 전략과 조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나타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방대한 분량에 압도당해 읽을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게 문제다. 진작 사놓고도 아직도 다 못읽은 2권으로 이루어진 『사기열전』의 책 두께가 한권만도 무려 900여쪽에 이른다. 그러던 참에 200쪽이 겨우 넘는, 그것도 만화로 된 책을 만났으니 그야말로 단숨에 읽을 수 밖에.

이 책에는 《사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만화의 옷을 입고 흥미롭게 출연한다. 우선 이 책의 저자인 사마천과 《사기》의 배경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백이와 숙제, 관중과 포숙, 오자서, 소진, 한신 등 중국 역사의 충신과 역적, 영웅과 호걸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그 외에도 한번쯤 들어 봤을 이름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모두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마다 독립된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어 굳이 순서를 지켜 읽지 않아도 된다. 어느 쪽을 펼쳐도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사기》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유의 힘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야기 하나 하나가 그 자체로 돋보이고 우뚝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사기열전』을 역사서 이전에 고품격 문학작품으로 읽었다는 이도 많을까. 모두 한번쯤은 들어봤던 이야기인데 다시 읽으니 새삼 흥미롭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2천년전 역사가 가지고 있는 현대적 힘이다. 『사기열전』의 생각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현재적인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마천의 말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화두를 던지며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하늘은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고 말했지만 백이와 숙제 같은 착한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을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과연 하늘의 뜻은 옳은가, 그른가.” (73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의 태도로 자신의 공로를 뽐내지 않고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147쪽)

“여자는 아름답건 못생겼건 간에 궁궐 안에 있기만 하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건 그렇지 못하건 간에 조정에만 들어가면 의심을 받는다. 그렇듯 편작은 뛰어난 의술 때문에 화를 입었다. 노자는 ”아름답다고 좋은 그릇은 좋지 못한 조짐이 있는 그릇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편작을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173쪽)

《사기》를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으나 방대한 분량에 질려 감히 시도를 못했다면 이 책부터 권하면 좋을 듯 하다. 무엇보다 원전의 중후하고 깊이 있는 사유가 인문학적 결을 잃지 않으면서 만화와 어울려, 글은 그림을 북돋우고 그림은 글을 간지른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유익함과 재미가 곁들여진 선물로 적당하다. -끝- (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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