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양이 비치지 않는 세상

『천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현대문학, 2007

상희야!
한국은 지금 4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급히 찾아온 더위에 맥을 못추고 있단다. 그러나 아빠는 여기 여름보다 몇배는 뜨거운 常夏의 나라 싱가폴에 네가 있는 동안은 절대로 덥다고 투덜대지 않기로 했다. 
아빠는 지난주부터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아빠와 동갑인 아프가니스탄 작가가 쓴「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처럼 찬란하면서도 어찌나 슬프던지 어제밤도 이 책을 마저 다 읽느라고 잠을 설쳤단다. 지난번 너한테 보내는 책에 엄마책도 몇권 넣어서 함께 보냈는데 혹시 못보았니? 히잡을 쓰고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이 카불 시내를 내려다보는 처연한 뒷모습을 배경으로 한 표지인데.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얼굴이나 가슴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쓰는 가리개고 부르카는 몸 전체를 가리고 눈 부위만 망사로 되어 있는 여성 의상이란다. 참, 싱가폴에서도 이슬람계 사람들을 자주 볼테니 잘 알겠구나. 아빠는 이 책 대부분을 출퇴근하며 전철에서 읽었는데 내려야 할 곳에서 미처 못내리고 그냥 지나친적도 있었고, 가슴을 마구 후비는 슬픈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느라 혼난적도 많단다. 아주 오랜만에 눈과 마음을 홀딱 빼앗기며 읽은 책이다. 

딸아!
책 이야기를 더 하기전에 이 소설의 배경인 아프가니스탄 이라는 나라를 먼저 얘기 해야할 것 같구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지금은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지만 17세기에는 천국에 이르는 길목이라고 불리워졌단다. 그래서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에타브리지는 '카불'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지.
'황량한 산들로 둘러싸인 카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카불의 모든 거리는 얼마나 마음을 사로잡는가/---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아프가니스탄은 왕정붕괴, 소련의 침공, 탈레반의 득세, 미국의 침공 등 혼돈의 오랜 역사 속을 거치면서 전쟁, 기아, 무정부, 핍박으로 한때는 난민이 8백만명에 달한적도 있고 현재도 2백만명이 넘는 난민들이 이웃국가인 파키스탄에 남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쟁지역 중의 하나란다. 특히 아프간 여성들은 숙명적으로 이중삼중의 고통과 절망속에서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에 놓여 있지.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하는 소설 속 구절처럼 아프간은 여자들한테 오랫동안 아주 몹쓸 제도를 갖고 있었다. 특히 소설에도 나오는 1996년부터 5년간 계속된 탈레반 집권시절의 광기는 도를 지나칠 정도였단다. 살인 및 간통죄는 공개처형, 도둑질은 손목 자르기 등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었고 정신을 좀먹는다는 이유로 TV, 음악, 영화가 금지 되었고 각종 기호품도 자취를 감췄다. 여성은 외출할때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고, 남자 친척 없이는 여행하는게 금지되고, 10세 이상 소녀들은 학교에도 조차 다니질 못했단다. 태양은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때 그것의 광채를 최대한 즐길수 있는 것처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아니 여자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구나. '우리 아프간 사람이 쳐부술수 없는 유일한 적이 있다면 그건 우리들 자신이란다’ 하는 소설속 구절이 대못처럼 의미심장하게 가슴에 와 박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이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뒤에 남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전쟁과 테러와 굶주림 속에서 가족을 잃고 한남자의 두 부인으로 살아야하는 기구한 운명을 맞은 두 여자-마리암과 라일라-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단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마리암의 아버지(잘릴)가 죽음을 앞두고 마리암에게 보낸 ‘사랑하는 마리암에게’으로 시작하는 속죄의 편지를 라일라가 읽는 장면이다. -"지금 내가 할수 있는 건 너에게 용서를 비는 것밖에 없구나. 사랑하는 마리암,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 나를 용서해다오"라고.- 딸을 그리워하며 죽어가는 아비의 피눈물나는 고해가 있단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내딸아, 신이 너에게 길고 유복한 삶을 주시기를 기도하겠다. 신이 너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많이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하겠다. 내가 너한테 주지 못했던 행복과 평화와 사랑을 네가 찾기를 바란다. 잘 있어라. 나는 사랑이 깊으신 신의 손길에 너를 맡긴다".- 그러나 마리암은 끝내 이 편지를 읽어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하고 만다. 하지만 마리암은 라일라와 그녀들의 명민하고 사랑스런 딸 아지자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 같구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하고 무거운 부당한 시련을 지워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내 하게 된다. 아빠가 이 책의 거의 마지막 부분인 이 편지를 몇 번인가를 되뇌이고 있었던 게 아마 새벽시간이었을 게다. 갑자기 네 목소리가 얼마나 듣고 싶던지 전화기를 몇 번인가 들었다가 결국 그냥 놓고 말았다. 새벽 3시는 열세살 소녀를 깨우기에는 너무 늦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더구나. 

상희야!
언젠가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다 「카불의 사진사-부르카 밑의 웃음소리」라는 사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국제적인 보도사진전에서 여러차례 상을 수상한 정은진 이라는 젊은 여류 사진작가의 개인전이었지. 지금도 출산중에 죽는 아프간 여성이 연간 2만5천명에 이르고 아프간이 세계서 두 번째로 산모 사망률이 높다는것도 그 사진전을 보며 처음 알게 되었단다. 먹을것이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전 세계에 3억명이 넘고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작고 여린 생명들이 빈곤과 전쟁, 질병과 자연재해 등으로 1분마다 10명씩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는 쉽게 믿을수 있겠니? 네가 공부하고 있는 싱가폴은 인종간ㆍ개인간ㆍ남녀간 차별없이 독자적인 문화를 상호존중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대표국가로 꼽히잖니?. 그런데 같은 아시아지역에 그처럼 불공평하고 학대받는 삶이 일반화된 세상이 있다는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 그러나 상희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맨 얼굴이란다. 그리고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의 많은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갖고 그들에게 봉사하며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단다. 예를들면 유엔난민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는 한비야 아줌마 같은 사람들이지. 그사람들은 돈이 넘쳐나서도, 특별히 많이 배워서도 아니란다. 다만 자신이 가진 작은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앞세워 그런 삶을 선택한 거란다. 이 책의 저자인 할레드 호세이니 역시 아프간 사람들을 사랑하는 열정과 글쓰기라는 재능을 조국 아프간의 비참한 현실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쓰고 있잖니.

얘야!
하느님이 사람에게 재능을 주실적에는 자신을 위해서만 쓰라고 한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당신이 세계 모든곳을 다 다니지 못하시니 그 재능을 주위의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써달라고 빌려준 거라고 생각하렴. 지금 네가 낯선 나라에서 아빠랑 떨어져서 힘들게 공부를 하는것도 이담에 커서 네 재능과 실력을 세상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려므나. 이책을 읽고 아빠도 불현듯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턱없이 작고 보잘것 없는 금액이지만 통장에서 일부분을 매달 그들에게 쓰여질수 있도록 해 놓았단다. 

사랑하는 상희야!
싱가폴로 떠날 때 아빠가 부탁했던 말 기억하지? - 첫째, 절대로 아프지 말것. 둘째, 네가 싱가폴에서 배워야 하는건 English가 아니고 Global이라는 것을. 단순히 영어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러나라 친구들의 좋은 습관과 행동을 많이 배우도록 해라. 습관은 나무껍질에 글자를 새긴 것과 같단다. 그 나무가 커감에 따라 글자도 커진단다. 아침에 일찍 못일어날것 같던 네가 거기서는 그렇게 이른 아침에 학교에 가는걸 보면 너도 알겠지? 이 책은 아빠 서재에 잘 보관하고 있을테니 네 생각과 사고가 한뼘쯤 더 커져서 한국에 돌아오는날 꺼내 읽도록 하려므나. 뜨거운 햇빛에 피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혹여 더운 날씨에 찬 음식만 찾다가 배라도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는구나. 다음달 출장때는 싱가폴을 들러서 올까 생각중이다. 그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지내거라. 아빠는 늘 네 생각 뿐이다. 사랑한다. 딸아! -끝- (20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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