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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 21세기 조공은 이자와 배당이다
전병서 지음 / 참돌 / 2010년 5월
평점 :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칠 거냐 받을 거냐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
전병서 지음, 밸류앤북스, 2010
중국에 조공(朝貢)을 바칠 거냐 받을 거냐? 『금융대국 중국의 탄생』에서 저자가 제기하는 도발적 질문이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뚱딴지같이 조공이라니, 무슨말인가 하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당․송․원․명․청나라로 이어지는 시대에 중국은 세계 GNP의 30〜40%를 차지했다. 1600년대까지 중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주변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엄청난 물량의 조공을 받았다. 형식상으로는 조공무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식민지 수탈이었다. 그러나 청나라 이후 중국은 줄을 잘못 서 공산주의를 택하는 바람에 과거 50년간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한국은 자본주의로 줄을 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중국을 앞서가고 있다. 우리로서는 천만다행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조공은 무엇일까? 21세기 조공은 배당과 이자고, 중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기 위해선 중국 주식투자를 늘려야 한다. 잘나가는 나라의 주요기업 주식을 사서 성장의 수혜를 탐닉하는 것이 21세기의 돈벌이 방식이다. 저자는 중국이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 불혹이 넘은 나이에 중국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의 정치 중심지인 베이징의 최고 명문대학인 칭화대학과 금융 중심지인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푸단대 재정금융 전공 박사과정과 베이징사범대 증권투자전공 박사과정에 있다. 국내 유수의 증권회사에서 애널리스트와 IB(투자은행) 뱅커로 25년간 근무했고 '애널리스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명성을 날렸다. 한국 최초로 중국기업 한국상장 업무를 시작하는 등 명실공히 중국 자본시장 분야에 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은 개방 30년만에 수출 세계 1위, 기업 시가총액 2위, 군사비 2위, GDP 2위로 올라섰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당당하게 미국과 ‘맞짱’을 뜨는 G2,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부상했다. 예전에는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중국은 독감에 걸렸지만, 지금은 미국이 폐렴에 걸려도 중국은 가벼운 기침만 할 뿐이다. 세계적인 프로 투자가 짐 로저스가 일찌감치 미국의 헤지펀드와 작별하고 중국시장에 집중하며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역사에서 말해주는 강대국의 흥망에는 공식이 있다. '제조대국'에서 시작해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다음, '군사대국'으로 융성하고 '금융대국'이 되면서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미국이 그랬다. 금융위기로 서구의 경제강대국들이 휘청거리는 사이에 중국이 '금융대국'의 꿈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다. 중국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미국을 통해 새롭고 기막힌 돈 벌이 방법을 터득했다. 바로 '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부도나지 않고 엉뚱하게도 다른 나라가 나자빠졌다. 초강대국이 친 대형 사고를 못 사는 중소국들이 분담해 수습하는 형국이 되었다. 다행히 미국에 대해 9천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전 세계가 함께하는 미국과의 고통 분담에서 열외될 수 있었다. 미국은 ‘기업 부채’를 '정부 부채'로 바꾸는 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데, 이런 방식이 가능한 건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의 화폐 주조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세뇨리지 효과). 종이 값과 잉크 값을 제외한 화폐 제조원가와 액면가의 차액을 모두 챙길 수 있는, 마진이 99배가 넘는 초고수익 사업에 중국이 뛰어들었다. 소위 '위안화 국제화' 프로젝트다. 물론 기축통화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미국이 숟가락을 얹으려는 중국의 이런 행동을 그냥 지켜보기만 할 리 없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무기로 하는 전쟁에서는 제대로 이긴 적이 없지만 돈으로 하는 화폐전쟁에서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또 미국은 지금까지 달러 패권을 건드린 나라를 무사히 내버려둔 적이 없다. 이라크와 이란이 미국에 폭격을 당한 진짜 이유는 그들이 악의 축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석유대금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바꾸겠다고 달러 주권을 뒤흔드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은 2조4천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외환보유고와, 9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유한 막대한 미국 국채를 팔아 치우기라도 하면 미국 달러와 국채시장은 하루아침에 마비되고 달러와 위안화가 맞붙는 신(新)화폐전쟁이 불가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전쟁은 좀처럼 전면전으로 비화되지는 않을 것 같다. 싸움 잘하는 개들은 함부로 물거나 짖지 않는다. 서로 선수를 알아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친구 순위는 피를 나눈 유럽도, 전쟁을 함께 한 혈맹도 아니다. 미국채를 많이 사주는 나라가 미국의 친구다. 중국은 미국의 환율절상 협박에도 '너나 잘하세요'라는 식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 2007년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과 수입국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대(對)중국 교역규모가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경제와 금융을 다룬 책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국제금융 이슈를 일반인도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만큼 쉽게 쓰여진 책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경제와 금융을 오랫동안 연구한 저자의 전문성에 현지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뽑아올린 생생한 사례와 역사지식이 보태져 탄탄한 내공이 돋보인다. 중국경제와 금융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포커스는 한국의 전략에 맞춰져 있다. 저자는 향후 10〜20년 안에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완벽히 부상하기 전에 한국이 확실하게 자리 잡지 못하면 과거 500년간의 우리 선조들처럼 다시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발 좀 귀 기울여 잘 들으라고 확성기를 귀 가까이 대고 소리지르는 듯한 저자의 우려와 충고는 따갑고 목청이 크다. 우리가 아직 금융분야에 경쟁우위가 있는 지금이 기회다. 중국의 금융시스템이 자리를 잡기전에 중국의 금융시장과 투자시장을 선점하여 중국 제조업에 미리 투자해 놓는다면, 훗날 우리 제조업이 중국에 추월당하더라도 중국 기업들로부터 이자와 배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국시장이 한국 재벌의 순위를 바꾼다' '타이완과 중국이 합쳐지면 한국 IT가 위험하다' '금융대국 중국이 한국 기업을 싸게 먹는 방법' 등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소제목들은 책장을 넘기는 손놀림을 바쁘게 만든다. 최근에 나온 중국관련 책 중에서 가장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10〜20년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다시 조공이다" -끝-
*기획회의 275호 (2010.7.5)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