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낭송Q 시리즈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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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고 한다. 경제력과 체력만 있으면 과거 고려조선시대 왕들보다 호사하며 살 수 있다. 지금 시대의 대통령보다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과거 유럽의 황제들도 여러 모로 오늘날 선진국의 평균적인 시민보다 가난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조차도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마차였고 주치의는 무능했으며 화장실에선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저승 앞을 흐르는 삼도천의 뱃사공 카론의 눈에 일찍 띄는 것처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길어진 여생을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태평성대 아닌가. 굶어 죽지도, 전염병이 휩쓸지도, 전쟁을 겪지도 않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이 얼마나 난세이고 혼세인지를. 무엇이 문제인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79)

 

길어진 인생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연금과 일자리가 아니라, 길어진 삶이 지닌 가능성을 어떻게 꾸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다. 매일 등산을 갈 수도 없고, 손자 손녀를 무릎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재미도 잠깐이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아이템item을 쫒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버겁다. 되도록 빨리 아이 엠i am을 찾는 공부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스는 2030년 안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직업적 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시간을 보람 있게 쓸 수 있게,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웃을 수 있게,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가장 큰 존경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삶의 질 향상사쯤이 될까.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해 보자. 예술가, 철학자, 영화제작자, 축구선수, 심리치료사는 살아남을까? 그럴 것이다. 정치인과 은행가도 살아남을까? 그러길 바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한다. “자신의 가슴을 타인의 노래로 채우지 마라!” 그렇다. 가지나 잎을 따는 사람은 절대로 꽃이나 열매를 가질 수가 없는 법이다. 나를 구원할 이는 오직 나뿐이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우리 스스로가 내딛는 공부다. 기존의 공부에 대한 통념을 전복하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통찰에 다가서야 한다. 바로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를 변혁하고 삶을 벼리는 새로운 공부의 방식이다. 다행히 디지털 문명 덕분에 누구든 어디서건 최고의 지성에 접근할 수 있다. 대신지금 당장’‘여기서시작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건지금, 여기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 강력한 의지는 삶을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 만든다. 하루가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의역학에서는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발산 운동이 지배하므로 활발히 움직이고 일하며, 40세 이후에는 수렴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로 서서히 활동을 줄이고 힘을 기르는 수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40세 이후에 공부 욕구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올해 쉰을 살았다. 주역에서 50을 기본수라고 한다. 인생에서 50이라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자연과 인생을 시작과 끝을 놓고 볼 때 중간을 매개하는 숫자가 50이다. 우리는 매년 사계절을 경험하지만 특히 봄여름에서 가을겨울로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변곡점을 어떤 식으로든 겪어야 제대로 마디를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 그럼 대체 공부란 무엇인가? 교과서를 달달 외고 문제집을 술술 풀고 계산을 척척 해내는 게 공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안다. 그렇다. 공부는 쿵푸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을 넘어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의 핵심은 역시 소리요 청각이다.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낭송과 암송이라는 전통의 공부법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비유컨대,‘정신은 몸의 의지를 수행하는 손이라는 것.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는 분리되지도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 고로, 나는 신체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2021)

 

몸은 삶의 유일한 현장이자 무대요, 존재와 우주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낭송은 아주 구체적이면서 신체적인 활동이며 몸이 좋아하는 독서법이다. 백미보다 현미가 몸에 좋은 것처럼 묵독보다 낭송이 몸에 더 잘 호응한다. 묵독은 이야기에 담긴 긴장과 갈등, 지혜와 성찰의 호흡을 제거한다. 그런데 낭송하는 순간 책속에 몽글몽글하게 웅크리고 있던 활자들이 그 뜻을 곧게 펴고 책 밖으로 걸어 나온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그 파동과 기를 몸이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하려면 입과 귀를 써야 한다. 입과 귀가 움직이면 뇌가 충전된다. 그리고 뇌를 자극하면 심장을 거쳐 신장으로, 허벅지와 발바닥까지 그 기운이 전달된다. 그래서 낭송을 일종의 양생비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일한 부작용은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쁜 중독이든 좋은 중독이건 중독은 사람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낭송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읽으려고 달려들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계부와 애 성적표일지라도. 그러니 일단 신체와 궁합이 잘 맞는 좋은 고전을 고른 다음에 머리로 바짝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낭송을 통해 몸에 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낭송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는 동양고전이다. 그중에서도 춘향전이나 심청전같은 우리말의 보고인 판소리계 소설이라면 금상첨화다.

    

낭독이나 낭송은 혼자 할 수도 있고, 같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낭독과 낭송은 그 자체로 다중적이며 공동체적 행위다. 함께 읽어야 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다. 감동을 주는 요긴한 방법 중 하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낭독이나 낭송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 길을 오래 걸어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같이 하는 것이 좋다. 광장이나 마당을 통해 일종의지성의 코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크기는 삶의 크기와 정비례한다. 말 그 자체가 명령서이면서 실천윤리이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발달할수록지혜로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욕구는 더 커지게 마련이다. 창조의 언어인 로고스logos를 통해 개인의 운명과 삶의 배치를 바꾸는 것, 그것이 디지털 문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선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는 점점 더불통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폭언과 무언 사이를 허망하게 왕복달리기 하기 일쑤다. 신체를 소외시킨 우리 시대의 화법이 호흡은 짧고 서사는 빈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은 어쩌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간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핵심은 외는 것이다. 다 외워야 낭송이 가능하다. 암기와 암송은 다르다. 암기가 음소거 상태에서 의미 단위로 텍스트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암송은 소리로써 텍스트를 몸 안에 새기는 행위다. 그렇다. 뼈에 새기려면 외워야 한다. (고미숙,『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북드라망, 2014,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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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거나 혹은 떨리거나 - 박일호 기행 서평집
박일호 지음 / 현자의마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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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 한 달 간의 인도여행! 그곳에서 길어올린 빛나는 사유가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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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마켓이 온다
무라타 히로유키 지음, 김선영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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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마켓에 주목해라

 

그레이마켓이 온다

무라타 히로유키 지, 김선영 옮김, 중앙books, 2013

 

일본의 고령화율(총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2012년 기준으로 세계 최고치인 24.1%에 달한다. 일본인 4명 중 1명은 65세 노인으로, 이대로라면 2055년엔 거의 둘 중 하나가 노인인구다. 근로자 1명이 노인 1명 가까이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일본을 필두로 각국에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가 기업들의 경영전략을 뿌리부터 바꿔놓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성패가 거대한 고령 소비층, 이른바 '그레이 달러'를 잡느냐 놓치냐에 달린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미래경제 패러다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그레이마켓이 온다는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전문가인 무라타 히로유키가 고령화사회의 일본 현실을 진단하고, 실버산업과 시니어 시장에 대해 통찰을 전한다. 저자는 미국 시니어 비즈니스 최대 싱크탱크인 더 소사이어티The Society’의 유일한 일본인 회원으로,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 시니어 비즈니스 분야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전문 컨설턴트이다. 일본은 지난 2007, 베이비부머세대의 최연장자가 퇴직연령인 60세가 되면서 노인고객이 만들어낼 유례없이 큰 시장을 기대하며 경쟁적으로 실버 화두를 내세웠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고령사회 최대집단인 노인인구의 씀씀이는 애초 시장기대를 빗나갔다.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덜 쓰고 안 쓰는 노인이 태반이었다. 이 책은 이미 시니어 시장에 진출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기업 관계자들에게는 어째서 고전하는지, 어떻게 하면 성공할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힌트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오래도록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수많은 상식이 뒤집히고 있다. 최근 언론에 부쩍 등장하는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가 그 중 하나다. 종이기저귀, 리카 인형, 노래방, 스마트폰, 패밀리 레스토랑, 슈퍼마켓과 같은 시장은 종래의 아동 및 청장년을 위한 서비스에서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로 스타일을 바꾸어 매출을 높이고 있다. 편의점 역시 그간 청장년에게 맞췄던 포인트를 점차 고령손님에게 옮기는 추세다. 진열전략을 바꾸고 노인 입맛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대거 확충했다. 미래시장의 주인공이 누군지 인구변화로 확인했으니 기업전략도 여기에 맞춰 전환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시니어 시프트는 대세이고 기다려주지 않는 시대의 물결이다. 이 변화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즈니스 기회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놓치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니어 시프트에 대처할 것인가? 먼저 시장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시니어 자산의 특징은 고자산 빈곤층이다. 자산이 많다고 해서 그 자산을 전부 일상 소비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또 시니어층의 소비 행동은 청장년층에 비해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이다. 시니어 시장은 매스마켓이 통하지 않는 다양한 마이크로 시장의 집합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니어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적극적인 소비행동을 취하는 스마트 시니어의 등장이다. 2001년 일본의 50대 인터넷 이용률은 30%대였지만 2010년에는 90%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장은 이전의 판매자 시장에서 구매자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로 무장한 시니어가 증가하면서 시니어 시장도 종래의 판매자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실버타운 체험 입주를 할 때 디지털카메라를 준비해, 운영 체제가 가장 약해지는 새벽 1시에 긴급신고 버튼을 눌러 직원의 대응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철저한 사전검증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스마트 시니어의 증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시니어 비즈니스의 기본은 ‘3해소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니어의 ‘3대 불안은 건강 불안, 경제 불안, 고독 불안이다. 책에는 이런 불안, 불만, 불편의 해소를 통해 비즈니스에 성공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다. 여성 전용 피트니스 클럽 커브스Curves는 여성이 기존 피트니스 클럽에 품고 있던 불만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해소함으로써 7년 사이 점포 수 1200, 회원 수 50만 명으로 성장했다. 게이오 백화점은 고령자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넘어지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 에스컬레이터 속도를 일반적인 평균 속도보다 늦추었다. 포화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머릿속이다. 시니어 시장에서는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에서 사업의 기회를 찾기도 한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 인구 6만 명의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2000가구의 대규모 은퇴자 커뮤니티인 윌로우 밸리Willow Valley가 그 예이다. 윌로우 밸리는 플로리다나 애리조나처럼 따뜻하고 편리한 장소가 아니다. 겨울에는 춥고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도 시설 입주율이 거의 100%에 이르는 비결은 입주자가 참가하는 독특한 영업활동에 있다. 견학자가 전미에서 모여드는데, 이때 입주자가 직접 안내를 맡는다. 가령 플로리다 주에서 온 견학자는 플로리다에서 입주한 입주자가, 캘리포니아 주에서 온 견학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이주한 입주자가 안내한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이렇게 추운 시골에서 어떻게 사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망설이던 사람도 자기와 같은 지역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 온 사람의 실제 체험을 듣고 안도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데 있다. 흔히들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말하는 근거는 바로 인구구성이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로 다가서고 있다. 2050년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7%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일본 다음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아지는 것을 뜻한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근로인구 부족과 부양인구 증가로 나타나며 이는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복지 부담과 성장 동력 상실의 원인이 된다. ‘현재 일본미래 한국의 바로미터이다. 오늘날 한국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이러한 암울한 미래 전망은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인구구성을 가진 일본을 연구해야만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시니어 산업과 고령화 이슈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현장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과 설득력 있는 해법은 내일의 한국을 보는 현미경이자 망원경이다. 우리나라 실버 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디플레가 불가피한 시대에 유력한 대안은 저성장고령화와 맞물린 시니어 시장의 잠재파워다. 향후 우리나라 역시 실버 산업, 노인시장의 경쟁이 더욱 심화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다가오는 변화의 바람을 타고 미로에서 탈출해 미래를 주도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할 듯 하다. -- (기획회의 361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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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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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2013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장편소설 롤리타에 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정상적 소아성애증을 뜻하는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까지 낳을 정도로 추잡한 중년 남자가 12살 짜리 여자아이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구역질나는 이야기라고 했다. 반면 충격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독창적인 사랑에 대한 연구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후유증으로 사춘기 이전이나 사춘기에 접어든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님펫이라고 부르는 어린 소녀들에게 집착하며 사랑의 욕망을 느끼는 험버트가 주인공이다. 어느 여름날, 37살의 험버트에게 치명적인 매력과 마력을 가진 12살 소녀 롤리타가 나타난다. 롤리타에게 완전히 매혹 당한 험버트는 그녀 곁에 머물기위해 롤리타 엄마와 재혼하여 롤리타의 의붓아버지가 된다. 롤리타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사랑을 나눈다. 험버트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배심원들을 향해 감옥 겸 정신병원에서 길게 늘어놓은 독백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성애적이자 희극적이고도 비극적인, 포에로틱한poerotie한 이 소설의 스토리를 요약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읽을 수 밖에 없다. 금지된 사랑을 다룬 이 소설은 1955년에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휩싸이며 20세기 포르노그라피라 매도당했다. 그러나 이후에는 수많은 은유와 상징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문학적으로 재평가되어, 타임 르몽드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에 포함될 정도로 고전의 반열에 놓이게 된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흰 목양말에 끈달린 운동화를 신고 눈부시게 빛나는 종아리를 드러낸 짧은 교복치마의 하반신 사진이 눈길을 끈다. 혼자있는 서재지만 혹시나 아내나 딸애가 볼세라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만든다.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 소설 은교가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롤리타는 이렇게 시작한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 혀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 . .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이렇게 압도하는 첫 문장이 있었던가.

 

사랑 혹은 광기에 집착하는 한 사내의 과도한 집착이 시종일관 고른 호흡으로 읽기를 방해하지만, 중간중간 심어놓은 깨알같은 유머코드가 심각한 독서에서 독자들을 끌어낸다. 험버트가 자신들 사랑의 훼방꾼인 극작가퀼티와 맞대결하며 그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대목이 특히 압권이다. 거창한 서부영화처럼 심각하고 잔인하고 엄숙해야 할 살인장면이 오히려 슬랩스틱 코미디를 닮았다.(471-491) 우리는 프리송frisson(두근거리는 것, 스릴을 뜻하는 프랑스어)에 잘 걸려 넘어지는 존재다.롤리타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전이나 딱딱한 상식 대신 자유로운 정신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 존재가 가진 비밀스러운 구석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정신의 밑바닥을 훑어야 가능하다.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인 나보코프는 우아하고 비유적이고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위장한 언어유희와 수많은 중의어들을 작품 곳곳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그 지뢰가 터질때마다 독자가 깜짝깜짝 놀라는 모습을 시치미를 뚝 떼고 즐기는 듯 하다. 마치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역자는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문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이 시종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며힘을 주면 금이 갈 것 같고, 조금만 열어두면 향기가 다 날아갈 듯하다고 표현했다. 사족하나. 우연인지 요즘 읽는 소설에서 꼭 한 대목씩 한국에 대한 언급이 보너스처럼 찾아온다. 이를테면 챗필드 부인이 험버트에게 하는 이런 대사. “가엾게도 그 아이는 얼마 전에 한국에서 전사했단 말예요.”(466)

 

롤리타는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나보코프가 말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재독자再讀者. 소설은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아니면 읽고 읽고 또 읽든지.”롤리타의 주석 및 해설을 담당한 나보코프 전문가인 앨프리드 아펠도 이렇게 단언했다. “전 세계의 속독가들이여, 유념하라!롤리타는 여러분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영국의 소설가 킹즐리 에이미스가 롤리타의 문제 중 하나는, 지나치게 외설적이기는커녕 충분히 외설적이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한 말이 지금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롤리타를 한 번 읽고 쓴 이 리뷰도 무효일수밖에.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해야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첫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그렇지 않은가? 미스터 험버트 험버트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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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1-30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정말 처음 문장 보고 잠시 멍했죠. 시적이잖아요.
그러면서도 뭔가 쓸쓸한... 정말 첫 문장이 황홀한 소설 넘버 원입니다....

구름을벗어난달 2014-02-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아마 저도 너무 어리거나 젊었을때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쩌면 중간에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책의 감동은 영화로도 이어졌는데, 마지막 장면에 나오던 제레미 아이언스의 허망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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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운명의 북소리를 듣는다

 

위대한 캐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문학동네, 2013

 

캐츠비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사랑과 에로스에 관한 이야기다. 에로스는 가장 젊은 신인 동시에 가장 나이 많은 신이다. 캐츠비의 에로스는 결국 비극의 그림자를 택한다. 한순간 캐츠비에게 가까이 있던 그 모든것이 단숨에 멀어졌다.

 

"데이지의 하얀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의 심장은 더욱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중략) 그의 입술이 가 닿자 그녀는 그를 향하여 꽃처럼 피어났고, 상상의 육화肉化가 완성되었다. ”

 

그렇다. 사랑은 원래 광기다. 우리가 사랑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 우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운명앞에 놓인 그림자를 사랑할 뿐이다. 그렇게 한때를 서로의 곁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다. 캐츠비가 그런 경우다.

 

 

캐츠비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인생과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은 파티와 같은 법, 끝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평생에 한번쯤은 운명의 북소리를 듣는다. 그게 쫓는 자이든 쫓기는 자이든. 또는 바쁜 자와 지쳐버린 자 일지라도. 개츠비는 바로 그 운명의 북소리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 인간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캐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믿었다. 해가 갈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지기만 하는 황홀한 미래를. 이제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뭐가 문제이겠는가. 내일 우리는 더 빨리 달리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면 마침내 어느 찬란한 아침---. 우리는 물결을 거스리는 배처럼, 쉴새없이 과거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활이며 자신들이 쏜 화살이고 동시에 과녁이다. 영화는 묻는다. 그대 운명의 북소리를 들었는지, 또 자신이 쏘아놓은 화살은 지금 어디쯤 날고 있는지.

 

서울에 첫 눈이 내렸던 지난 11월 셋째 월요일 저녁, 정독도서관 가는 길에 꽃집에 걸린 간판을 보았다. “지금 꽃을 사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산단 말인가?” 도서관에 도착해서 캐츠비를 다시 읽었다. “지금 캐츠비를 읽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읽는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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